바람이 차가웠다. 4월의 날씨치고는 햇살의 인심이 야박했다. 그래도 파릇하게 올라오는 싹들은 굵은 흙덩이를 뚫고 여지없이 생명력을 자랑했다. 기다랗게 골이 이어진 다랑논에도 풍성한 보리 순들이 바람에 하늘거렸다. 여자는 단발머리를 나풀거리며 보리밭 속으로 몸을 낮추었다. 흘러내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여자의 눈빛이 밤바다처럼 깊었다. 자박자박 밟혔던 보리 순들이 언제 밟혔냐는 듯 기지개를 켜며 허리를 굽힌 여자의 얼굴을 간질였다. 앞산에서 두견이 울었다. 그 울음에 진달래가 화들짝 꽃술을 늘어뜨렸다. 그 사이를 놓칠세라 벌 한 마리가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정길호] 한국주식시장은 지난 3월 24일 코스피 지수가 장중 2,182포인트까지 상승, 2015년 1월 이후 최고치를 보였고 IT산업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 인용 및 파면 등의 정치적 격변기에 살림살이의 어려움을 체감하고 있는 서민들의 시각으로는 이해가 안 가는 것도 사실이다.이를 대변하듯 한국 경제가 실제로 4월이 다가오면서 긴장하고 있다. 일명 4월 위기설이다. 정부와 금융정책 당국은 위기설이 과도하며 위기가 발생해도 충분히 대응할 수 있다고 하지만 시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대장간 앞에 서면 필자는 자리를 쉽게 뜨지 못한다. 지금이야 거의 기계를 이용하여 쇠를 자르고 불에 구워 자동화된 기계로 낫, 삽, 그리고 보습(따비나 쟁기, 극젱이 등의 술바닥에 맞추는 삽(鍤) 모양의 연장) 등을 만든다.그러나 6.25 직후 소시장 한구석에 허름한 대장간의 풍경은 신기했다. 힘센 장인이 쇠를 불에 달구어 자신의 마음대로 두들겨 농기구를 만들어 내는 모습은 왠지 아무나 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닌 것 같았다. 그 힘든 메(무엇을 치거나 박을 때 쓰는 방망이)를 들어 불에 벌
[뉴스포스트=김경배 국장] 동양의 대표적인 정치사상은 왕도정치(王道政治)이다. 덕망 있는 사람이 도덕적으로 어두운 사람을 다스려야 한다는 이 정치철학은 일찍이 맹자에 의해 완성되었는데 조선조 정조대왕은 덕치, 예치에 의한 왕도정치를 이상으로 했으며 주자(朱子)는 오륜에 바탕을 둔 왕도 정치의 이상을 실현하여 사회기강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역설하였다.그렇다면 덕망 없는 이가 왕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역성혁명(逆成革命)은 이에 대한 이론적 토대를 제공해 준다. 임금이 부덕하여 민심을 잃으면 다른 유덕자가 천명을 받아 부덕한 왕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구월환] 이번 대선에서 가장 유력하다는 문제인 민주당 전 대표가 안보관련 발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당선되면 북한에 먼저 가겠다, 미국에 대해 노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는 등으로 구설수에 오르더니 최근에는 군복무 때 전두환 당시 연대장으로부터 표창 받은 것을 자랑하다가 많이 시달렸다.그가 공을 들여온 광주 시민들로부터 “사과하라”는 요구를 받기도 했다. 오죽 했으면 그렇게까지 해서 본인의 안보관에 이상이 없다는 표시를 해야 하냐는 동정어린 반응마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 정도는 약과다. 그동안 TV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대체로 요즘 젊은이들은 어려움을 참고 이겨내는 교육을 전혀 시키지 않는다. 가정과 학교는 물론 사회교육 기관에서 수고로운 봉사까지도 거절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이는 한 가정에 자녀가 귀하고 그래서 어려운 훈련은 애초부터 금기시하기 때문이다. 벌써 오래된 이야기이다. 시대가 흘렀어도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은 변함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진리를 숭상하고 그 진리를 향하는 사람들을 존경하고 흠모한다.필자가 대학의 학생처장을 맡아서 첫 신입생 환영회를 ‘음성 꽃동네’로 가도록 총장께 허락을 득했다. 신입생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정길호] 2014년 6월 11일 런던에서 1만 명의 블랙캡(전통적인 검정색 런던택시)운전기사들이 주요 거리를 점거하고 농성을 벌인 사태가 있었다. 시위를 벌인 이유는 영국 관광의 상징인 웨스트민스터 사원, 버킹검 궁전과 함께 유명한 블랙캡 기사들이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기사가 되기 위해 12번의 시험을 치르고 6만개가 넘는 거리와 건물을 외워야 하는 악명 높은 암기 능력(knowledge)을 인정받아야 하는 직업의 자부심을 갖고 돈벌이(비싼 요금)를 해왔는데 디지털 기술의 발전의 결과인 스마트앱 기반의 우버
다음 날, 날이 밝자 세상은 온통 눈이었다. 밤새 감나무 위에 앉아 울던 부엉이의 울음이 눈을 몰고 온 듯 눈은 산마을을 소복하게 덮고 있었다. 그러고도 여전히 하늘은 무겁게 내려앉아 있었다. 이모는 서두르자며 마을로 내려가 소년을 업고 온 남자를 찾아 자작나무 숲의 동행을 부탁했다.“우리 용이 녀석이 저렇게 완강하니 아무래도 확인을 좀……”“그려, 가는 건 어렵지 않은디, 근디 거기는 모두가 알고 있는 폐가랑게, 대낮에도 귀신이 나온다는 흉가라고. 그런 집에서 저놈이 기어 나왔으니 그때 우리가 얼마나 놀랐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김경래] 정치학의 핵심적 개념인 권력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우리 인간들에게 필연적인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 이해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사회에서 규칙이 필요하고 이를 따르게 하는 힘으로서 권력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헌법은 바로 이러한 권력이 누구로부터 나오며, 어떻게 위임되는지 그리고 어떻게 행사되어야 하는 등에 대해 규정한 최상의 법으로 시대정신을 바탕으로 한 국가의 정체성과 방향성을 제시하는 정치원리이다.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이러한 헌법에 대한 개정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역대 대통령들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우리 마을에 낭창낭창한 허리를 지닌 신부가 외동아들 집으로 시집을 왔다. 하지만 한 달이 채 되지도 않아 자고나면 이들 신혼부부의 거친 음성이 담을 넘어왔다. 귀를 기울여 들어보면 별것 아닌 것으로 연일 싸움질을 계속하는 것이었다.귀하게 자란 외아들은 자기만 옳다고 우기고 금이야, 옥이야 둥둥대던 며느리는 자기 의견이 무시당한다는 것이었다. 듣다보면 민망하기 그지없다. 나는 망설임 끝에 그들 부부를 불러 일장훈시보다는 남자와 여자는 서로 다름을 인정해야 하고, 그 다름이 곧 조화라고 강변했다.타이를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구월환] 미증유의 난국이다. 탄핵도 문제지만 탄핵이후가 더 문제다. 탄핵은 헌법재판소라도 있지만 탄핵이후의 사태에는 그런 사태를 처리할 장치가 없다. 오직 필요한 것은 자제와 인내다. 그러나 한국인의 냄비기질이 과연 이런 지혜를 발휘할지 의문이다. 그간의 민주주의 경험과 훈련이 어느 정도 먹혀들어갈지 두고 볼 일이다.지금 우리 앞에 벌어지고 있는 혼란사태는 선량한 국민 누구도 원치 않는 사태다. 이건 확실하다. 이런 사태의 원인제공자는 박근혜와 최순실이다. 그런 부패와 비리가 없었다면 국민들이 그렇게 흥분했을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최창섭 서강대 명예교수] 훈수는 다수의 집합적인 지혜 표출이다. 혼자 살아가는 단순 지식이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기여하는 지혜의 복합이다. 흔히들 한국 사람들은 정치에 너무 관심이 많다고 한다. 각종 사회 현안에 너무나 예민하게 신경과민적 반응을 보이기 때문이다. 한 사건이 터지면 한국 전체가 떠들썩해지곤 한다. 이런 과민 현상에 대한 반응도 극과 극이다.나라가 너무 좁다보니 자연 하나의 이슈에 대해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 게 아니냐는 식의 당연 논리를 펴는가 하면, ‘최순실 게이트’로 시위와 맞불시위로 과열
바로 그날 아침이었다. 웬 낯선 남자 서너 명이 방으로 몰려들어와 소년을 빙 둘러섰다. 그리고 소년의 놀란 숨보다 더 세찬 숨으로 밖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오매! 이 이것이 뭐다냐? 사 사람여, 귀신여? 이게 뭔 일이여?”“시상에! 야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 것이여? 이 엄동설한에 어떻게 여기에 ……?”“하이고, 시방 너거 할매 너 죽은 줄 알고 초주검이 돼야 버맀다. 시상에, 할매랑 나무를 하러 가던 놈이 이게 뭔 꼴이다냐?”그렇게 떠들던 그들은 다짜고짜 소년을 둘러업고는 순식간에 자작나무숲을 내달려 그곳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구한말에 ‘아들이 장수하기를 원하면 충남 운산으로 보내고 돈 벌기를 원하면 홍성 천태리로 보내라’는 이야기가 있었다. 운산과 천태리는 예로부터 그만큼 부와 장수의 상징으로 유명한 마을이다.운산은 깊은 골짜기이다. 사시사철 물이 풍족하니 재해가 없다. 그러니 가뭄이 들어 논다랭이에 물을 대는 문제 때문에 싸울 일이 없고 수량이 풍부하다 보니 자연히 소출이 많아서 사람이 너그러워 진다.세상 사람들의 말로 스트레스 받을 일이 없다. 그러니 자연 남녀 수명이 늘어 80대 노인이 만만하다. 이름하여 ‘장수마을
"무장해제"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정길호] 대한민국은 지금 역사적·기술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사회적 변곡점에 도달해 있다. 최근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수개월 째 국정 마비사태에 있으며 국론이 분열되어 탄핵 찬성 측과 반대쪽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향후 국정운영 및 정치적 안정화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러한 혼란은 필연적으로 국민들의 고통이 따르게 마련이다. 민생으로 일컬어지는 국민경제가 타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한국경제는 지금 수많은 난제에 시달리고 있으며 조만간 해결하지 못할 경우 투자부진, 성장잠재력 저하, 양극화 심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이재인] 충남 홍성문학관에 가면 100년쯤 되는 명물 항아리가 있는데 이 항아리가 문학관을 찾는 이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이 항아리는 본인이 직접 말하기에는 민망하지만 필자의 집안에 대대로 내려오던 것을 홍성문학관에 영구 기증한 귀물이다. 그냥 평범한 질그릇이기 때문에 값어치를 따진다면 얼마 되지 않을지 몰라도 이 항아리야말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표본이라할까?필자의 할아버지께서는 일제강점기때 예산의 대지주 마름을 보셨다. 그러니 전답에서 나오는 생산물인 벼나 보리를 한섬들이 독에 가득히 넣어두고 어
"노선을 바꿔?"
[뉴스포스트=김경배 국장] 정부가 최근 내수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23일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주재로 열린 ‘내수활성화 관계장관회의’에는 모든 관계부처 장·차관 및 관계자들이 참석했다. 그만큼 정부가 내수경기 침체국면에 위기감을 느꼈기 때문이다.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무려 87개에 이르는 정책을 쏟아냈다. 단순히 정책에 그치는 게 아니라 실행계획이라 한다. 그야말로 정부가 내놓을 수 있는 대책이란 대책은 다 내놓은 것이다. 정부의 설명대로 이번 회의는 대내외 불확실성 확대 등에 따른 내수 둔화 흐름을 조기
[뉴스포스트 전문가칼럼=전득주 숭실대 명예교수] 한국의 현실과 정치문화의식에서는 단일국가제하의 이원집정부제(분권형)가 맞을 수 있다. 이는 소위 제왕적 대통령중심제 즉 현행 대통령의 권한을 기능적/수평적으로 분권화하는 것을 말한다.그러나 국가권력구조의 개혁을 위한 헌법 개정은 1987년에 참여한 4명의 정당대표,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그리고 김종필대표가 화해와 관용, 나눔과 화합, 사회통합과 평화통일이라는 시대정신을 무시하고 자기가 어뗳게 하면 차기 권력자가 될 것인가만을 생각하고 제정한 헌법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