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인 불법사찰 MB몸통 의혹

<뉴스포스트=허주렬 기자>이명박 대통령이 민간인 불법사찰의 최종 몸통임을 증명하는 문건이 드러났다. 이 문건에 따르면 불법사찰을 진행했던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명분만 ‘공직기강 확립’이었을 뿐 실제로는 ‘MB비판 인사를 불법 사찰’하는 ‘비선조직’으로 보인다. 모처럼 여야는 한목소리로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통해 청와대와의 관련성을 밝혀야 한다”고 논평을 냈다. 따라서 검찰수사가 청와대로 확대되는 것은 불가피할 것으로 관측된다. 이제는 “MB가 직접 밝혀야 한다”는 말도 나온다. MB로 향하고 있는 민간인 불법 사찰사건을 취재했다.

-지원관실 'VIP 비선조직' 증명하는 문건 드러나, 설립목적·지휘체계 명시
-명분 ‘공직기강 확립’, 실무 ‘MB비판 인사 불법사찰’, 보고 종착지는 MB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박윤해 부장검사)이 2008년 8월 28일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하 지원관실)에서 작성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제하의 문건을 확보한 것으로 지난 16일 알려졌다. 진경락(45·구속) 전 지원관실 과장이 작성한 것으로 알려진 이 문건은 지원관실의 설립 목적, 지휘체계 등이 명확하게 정리돼 있다. 이 문건 외에도 검찰은 수백건에 이르는 민간인, 여야 정치권 인사에 대한 불법사찰 문건도 추가로 확보했다.

MB향하는 불법사찰  
  
본지에서 입수해 확인한 이 문건의 내용은 그동안의 청와대 해명은 ‘거짓’이었음을 보여준다.
우선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설립 목적을 “새 정부 출범에도 불구하고 노 정권(참여정부) 코드인사들의 음성적 저항과 일부 공직자들의 복지부동으로 인해 VIP(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다”며 “공직사회의 기강확립과 사기진작을 통해 ‘일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목적으로 총리실에 지원관실을 설치한다”고 밝히고 있다.

설립 목적에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차질을 주는 인사들은 처리(?)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전 정부 인사들에 대한 사찰 또한 이뤄진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이 최근 진경락 전 지원관실 과장의 여동생 집에서 추가로 확보한 사찰 문건에는 곽모 전 KT&G사장은 “노무현 정부 핵심인사에 금품 제공 의혹이 있다. 적당한 시기에 정치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이모 CMB 회장은 “호남 출신으로 김대중 정부 때 급성장했다.” 백원우·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은 “후원회, 지원그룹의 실체를 드러내라.” 김태석 전 여성가족부 기획조정실장은 “현직에서 날릴 수 있도록.” 등의 내용이 기재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여당 의원인 현기환·정두언 의원에 대한 사찰 문건도 나왔다. 전 정부에서 임명된 공기업 사장을 중심으로 MB에 비판적인 여야 정치인, 민간인을 가리지 않는 광범위한 사찰이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추가로 드러난 것이다. 

또한 일명 ‘진경락 문건’의 지휘체계 검토안을 보면 ‘VIP의 의중을 정확히 전달’ ‘보안 유지’ ‘보고는 국무총리에게 하되 VIP께 ‘일심’으로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총괄지휘’ 등의 내용이 들어있다. 이는 알려졌을 경우 야권의 정치공세를 피하기 위해 명목상 국무총리를 보고라인으로 하고, 대통령에게 충성하는 별도 비선을 통해 사찰 보고가 이뤄졌음을 의미한다.

보고체계에 대한 논거도 담겨있다. “과거 사직동팀이 곧바로 청와대 공격루트가 되었다”며 “외양을 총리실 소속으로 하여 일상적인 것은 총리께 보고하되 민감한 사안은 절대 충성심이 보장되어 있는 비공식 선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논거를 설명한다.

VIP보고는 ‘공직윤리지원관→BH(청와대)비선→VIP(또는 대통령실장)’으로 비선라인의 체계도 명문화 되어있다. ‘일심’, ‘절대충성’ 등 과거 군부독재시절에나 사용할 법한 말들도 심심찮게 나온다. 문건의 내용만 보면 법체계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드는 ‘불법사찰’은 오직 VIP를 위해 광범위한 범위에서 행해졌다.

‘발뺌’하는 청와대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해당 문건은 지원관실 자체 문건에 불과하다”며 “대통령 직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고 일축했다. 또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조만간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말을 아꼈다.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 또한 지난 17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 출연해 “2010년 정기국회 때 국정감사를 받을 준비를 하며 이 대통령에게 (지원관실 보고에 대해)여쭤봤다”며 “그랬더니 ‘따로 무슨 보고를 받거나 한 기억이 전혀 없다’고 답했다”고 말했다.

청와대 측은 기존의 주장대로 일단 ‘대통령과는 관계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대통령이 수시로 거론되는 문건을 일개 총리실의 직원이 개인적으로 작성했거나, 총리실 내부 문건에 불과하다는 청와대의 해명은 설득력이 부족하다. 게다가 이미 청와대의 ‘거짓말’은 들통난 전래가 여러 차례 있다.

앞서 최초로 민간인 불법사찰 문건이 KBS 새노조를 통해 공개됐을 때 청와대 측은 즉각  “노무현 정권 때 80%가 이뤄졌다”고 물타기용 거짓말을 시도했다. 물론 이후 경찰 조사에서 노무현 정권 때의 자료는 경찰의 합법적인 ‘감찰자료’임이 확인됐다.
이 외에도 내곡동 사저 논란, 광우병 쇠고기 수입 등에 대한 청와대의 해명도 ‘거짓말’임이 드러난 바 있다.

따라서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이 구속되며 최종 몸통으로 정리가 되어가던 상황에서 드러난 ‘진경락 문건’의 존재는 사찰 내용이 어떤 식으로든 MB에게도 보고됐을 가능성을 충분히 뒷받침하는 증거로 볼 수 있다.

진경락 전 지원관실 과장이 작성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업무추진 지휘체계’의 BH비선으로 지목되는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좌), 이영호 전 청와대 고용노사비서관(우) 모습.

검찰, 발빠른(?) 움직임

MB정부 5년 ‘살아있는 권력’에는 관대한 모습을 보여왔던 검찰도 모처럼 발빠른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은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을 지난 17일 오전 참고인 자격으로 불렀다. 이미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과정에서 1억7,000여만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던 박 전 차관은 민간인 사찰의 ‘윗선’으로 일찍이 지목되어 왔으나 검찰수사는 한 번도 받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이영호 비서관의 ‘윗선’이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문건의 존재에 더 이상 검찰도 수사를 미룰 수 없는 상황이 만들어졌다.

검찰은 박 전 차관이 지원관실의 불법사찰이나 증거인멸을 지시하거나 관여했는지, 사찰관련 비선 보고를 받은 사실이 있는지 등을 수사할 방침이다. 구체적인 단서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최종석(42·구속) 전 청와대 행정관의 대포폰 통화기록 분석을 통해 박 전 차관이 2010년 7월 7일 총리실 국무차장 시절 비서관인 이모(39) 서기관의 대포폰으로 최 전 행정관과 통화한 기록을 확인했다.

2010년 7월 7일은 최 전 행정관이 장진수(39) 전 지원관실 주무관에게 점검1팀과 진경락 과장의 컴퓨터 하드디스크 파기를 지시한 날이어서 박 전 차관이 증거인멸을 논의하거나 보고받았을 것으로 검찰은 추정하고 있다.

검찰수사의 핵심은 드러난 문건만으로는 실제 비선 보고의 종착지를 MB로 단정하기 어려운 만큼, 중간의 BH비선(이영호, 박영준) 확인이 필요하다. 하지만 비선으로 지목된 이들은 관련 의혹을 철저히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이들이 ‘침묵’하더라도 다양한 정황과 증거들이 MB를 가르키고 있는 이상, 검찰이 이영호 전 비서관 선에서 수사를 끝내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 일각에서는 의혹을 규명할 검찰수사가 ‘수사 시늉’만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 아닌가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장진수 지원관실 주무관의 변호를 맡고 있는 이재화 변호사는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장진수가 45일 전에 추가 문건의 존재에 대해 언급했는데 이제 와서야 압수수색을 실시한 이유는 뭐냐”며 검찰의 지연 수사를 지적했다.

사찰의 피해자로 알려진 이석현 민주통합당 의원 또한 지난 16일 팟캐스트 방송 ‘이슈를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검찰의 수사가 이상하다. 레임덕에 MB정부와 선긋기를 하는 것인지, 수사를 하는 척을 하며 꼬리자르기 식의 솜방망이 처벌을 준비하는지는 지켜볼 일이다”고 말했다.

정치권의 대응

이와 관련해 모처럼 여야 정치권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새누리당 이상일 대변인은 지난 16일 논평을 통해 “검찰은 현 정부에서 지원관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낱낱이 밝혀야 한다”며 “청와대와의 관련성도 정확하게 규명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불법을 저지른 책임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해야 한다”며 “이 땅에 민간인 불법사찰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 또한 이날 국회 브리핑을 통해 “지원관실의 ‘업무추진 지휘체계’라는 제목의 문건은 충격이라는 말도 부족할 정도로 경악스럽다”며 “이제 대통령과 청와대가 수사대상이 되었음을 분명하게 밝힌다. 따라서 권재진 법무장관의 사퇴를 촉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권재진 법무장관의 사퇴요구에 대해 청와대는 꿈쩍도 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권재진 법무장관마저 사퇴할 경우 MB를 보호할 최후의 보호막이 사라질 것을 우려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7일 “지원관실에서 작성된 ‘업무추진지휘체계’ 문건을 보면 민간인 사찰의 몸통은 이명박 대통령으로 확인되고 있다”며 “이렇게 명명백백 한대도 계속 청와대는 ‘노무현 정권 때’라느니 하는 변명을 하면서 자기들은 관계가 없다고 하는 것은 또 한 번 국민을 분노케 하는 것이다”고 비판했다.

민주당 이석현 국기문란특위 위원장 또한 지난 17일 “이렇게 사찰 문건에 쭉하고 나오는데 대통령이 무관하다고 할 수 있나”라며 “민간 사찰은 청와대가 ‘주범’이고, 지원관실이 ‘종범’이다”고 말했다. 아울러 “그런데 검찰의 수사를 보면 스스로 몸통이라는 사람치고 몸통인 적을 한 번도 본적이 없다. 또한 민정수석은 손도 못대고 있다”며 “검찰이 수사하는 척 하지 말고 제대로 수사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이춘석 의원은 지난 17일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해 조사대상인 권재진 법무장관이 사퇴하지 않는 한 진실은 밝혀지지 않는다”며 “민간인 사찰 부분과 검찰의 중립성,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해 반드시 권재진 장관은 사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기가 막힌 것은 이러한 조사의 대상에 직접 들 수 있는 법무부 장관이 돌아오는 6월 검찰 정기인사를 또 단행하려고 한다”며 “권 장관은 검찰의 독립성과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또 민간인 사찰의 배후로 지목돼서 조사대상에 들 수 있기 때문에 반드시 즉시 사퇴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했다.

그렇다면 사찰문제는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까. 일단 1차적인 키는 검찰이 쥐고 있다. 다만 검찰의 수사여부를 지켜본 후 의혹규명이 제대로 되지 않을 경우 야권은 청문회, 특검, 국정조사 등도 예고하고 있는 상황이다. 의혹을 해소할 키를 쥐고 있는 검찰이 MB로 향하는 의혹을 명명백백히 밝혀낼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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