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 ‘양정례 미스터리’ 막전막후

 


 ‘양정례 미스테리’가 총선이 끝난 정치판을 후끈 달구고 있다.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1번으로 당선된 30대 초반의 여성에게 온갖 의혹이 집중되자 마침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는 사태로까지 번졌다. 이에 친박연대는 “야당탄압” “박근혜 죽이기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양정례 당선자를 둘러싼 의혹과 루머들은 일종의 정치 스캔들로까지 확산될 조짐이다.


 양정례 미스테리의 핵심은 그가 어떻게 당선이 확실시 되는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후보 1순위가 됐고, 이 과정에서 얼마만큼의 돈을 썼느냐에 모아진다. 학력 허위 기재나, ‘박사모’ 여성회장 경력 도용 같은 문제들은 양념이다.
 무엇보다 양 당선자는 나이도 젊고 대외적으로 내세울 만한 경력이 전혀 없다. 친박 진영 사람들 사이에서도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처음에 그가 비례대표 1번으로 발표됐을 때 친박연대 사람들조차  “도대체 양정례가 누구냐”고 어리둥절해 했다.
 총선 뒤 문제가 불거지자 친박연대 사람들은 “양 당선자 얘기라면 서청원 대표에게 물어보라”고 말한다. 자신들은 전혀 아는 바가 없고 서 대표가 직접 추천하고 1번을 줬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서 대표는 기자회견까지 자청해 “양 당선인 관련 불법 사실이 없다. 한 점 부끄럼이 없다”며 오히려 검찰의 철저한 수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그러나 서 대표는 특별당비·학력·경력 등의 의혹에 대한 명확한 해명은 하지 않았다.     
 특히 양 당선자가 급하게 정당을 만드는 바람에 재정이 취약했던 친박연대에 거액의 특별당비를 내고 비례대표 1번을 받았을 것이란 관측이 일반적이지만 서 대표나 양 당선자 모두 이 부분에 대해선 명쾌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
 양 당선자는 당이 어려워서 특별당비를 냈다고 인정했지만 금액에 대해선 말문을 닫았다. 서 대표 측에선 1억100만원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정치권 인사는 거의 없다.
 처음엔 양 당선자의 모친으로 건풍건설 회장인 김순애(58)씨가 비례대표 1번을 노렸다는 소문이다. 김씨는 서청원 대표의 사조직인 ‘청산회’에 꾸준히 후원을 해왔으며 총선을 앞두고 거액의 특별당비를 기부했지만 비례대표 공천심사 과정에서 뭔가 하자가 발견돼 딸을 대타로 내세웠다는 말이 나돈다.

모친 김순애 회장, 친박연대 외 다른 당도 노크 소문
과거 3김 시절, 전국구 (錢國區) 공천장사 관행 재판?


 또 한편으론 다른 풍문도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김씨가 뭉칫돈을 싸들고 이 당, 저 당을 찾아다니다가 친박연대와 거래(?)가 성사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전했다. 당초 친박연대의 비례대표 1번은 재력가인 문희 의원에게 돌아 갈 것으로 관측됐지만 가족들이 반대한다는 이유로 포기한 바 있다.
 만일 양 당선자든 모친이든 친박연대에 1억100만원 이외의 추가 특별당비를 냈다면 그 액수는 얼마일까.
 비례대표 공천자가 당에 특별당비를 내는 것은 정치권에선 상식에 통한다. 다만 그 액수는 천차만별이다.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나 직능 대표성이 있는 인물은 그나마 기본적인 금액만 낸다. 반면, 양 당선자의 경우처럼 그런 경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 비례대표 앞 순위에 들어가기 위해선 천문학적인 돈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비례대표는 비리대표’라든가, 비례대표의 순번은 돈과 비례한다‘는 얘기가 나온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김대중·김영삼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정치판을 좌지우지 하던 ‘3김 시절’에는 전국구(당시 비례대표 명칭)는 ‘돈 錢) 자, 전국구’라는 말이 있었다. DJ와 YS의 경우 야당 생활을 오래 하면서 계보 관리를 위해 돈이 필요했고, 필요한 돈의 대부분을 총선 공천, 그 중에서도 비례대표 공천과정에서 충당했다.
 3김씨 중 한 사람은 비례대표 공천 대가로 받는 돈의 액수가 매 선거 때 마다 정해 있었다고 한다. 당선안정권에 드는 순번은 많게는 30억~40억 원에 달했다는 증언도 있다. 또 한 사람은 몇 차례 정치적 실패를 겪고 난 뒤 정계를 떠나려 했지만 선거 때 마다 재미를 보던 쏠쏠한 공천장사의 유혹을 떨치지 못해 계속 정치판에 남아 있었다고도 한다.
 꼭 20년 전인 1988년 13대 총선 때 이번에 양정례 당선자가 의혹을 받고 있는 거액 공천헌금과 유사한 사례가 실제로 있었다.
 각 당의 공천심사가 한창일 때 중견기업체의 K 회장이 3김 씨 중 한 사람인 K 총재를 찾아갔다. 혼자가 아니라 아들을 데리고였다. 그 아들은 이제 막 외국 유학을 마치고 돌아 온 29세의 ‘풋내기’였다. 물론 아무런 사회적·정치적 경력도 없다. K 회장은 아들을 K 총재에게 인사 시킨 뒤 아들을 돌려보내고 밀담을 나눴다.
 얼마 후 K 회장이 이끌던 정당의 전국구 후보 명단에서 K 회장의 아들은 당선안정권에 공천을 받았다. 결국 그는 13대 최연소 국회의원이 됐지만 임기 4년 동안 제대로 의정활동을 하지 못했음은 물론이고, 의원직을 떠난 뒤에도 이런저런 잡음을 일으켰다.
 확인될 수는 없는 일이지만 당시 K 회장이 수십억 원대의 공천헌금을 K 총재에게 전달했다는 소문이 여의도 정가에 파다했다.
 이 같은 사례는 이밖에도 많다. 당시에는 전국구 후보 가운데 절반을 여성으로 공천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유력 정당의 전국구 후보 앞 순위에는 항상 돈 많은 재력가들이 자리 잡았다. 대기업의 후원금이 몰렸던 여당은 덜 했지만 야당은 대부분 그런 방식으로 당 운영에 필요한 실탄을 마련했다.
 그런 관행은 김영삼·김대중 대통령이 차례로 정권을 잡으면서 차츰 약화되다가 노무현 대통령 시절엔 사례나 액수 면에서 현저히 줄어들었다. 특히 야당이던 한나라당은 정권이 교체될 때를 대비해 ‘보험료’를 내려던 대기업으로부터 ‘차떼기’로 돈을 받기는 했지만 공천헌금에 목매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 총선을 앞두고는 신생 정당이 급조되면서 다시 공천헌금이란 구태가 고개를 들었다. 양 당선자 뿐만 아니라 통합민주당 정국교 비례대표 당선자도 주가조작 의혹에 이어 특별당비 1억 원을 낸 경위와 당에 10억 원을 제공했다 돌려받은 과정이 문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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