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 현장은 피비린내가 진동하고 있었다. 현장에는 수사관들과 보도진, 구경 나온 주민들이 서로 뒤엉켜 어수선하기 짝이 없었다.

경찰 감식차가 먼저 들이닥치고 폴리스 라인이 설치되었다. 그 안에는 수사관들 말고는 누구 하나 얼씬할 수 없었다. 수사관들은 피가 굳어버린 뒷좌석에서 물증을 채집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었다.

핸들을 비롯해서 문짝과 유리창, 시트 등에서 지문을 채집하고 있는 사이 한 수사관이 시신의 오른팔을 옆으로 들어 제치자 피 묻은 종이 한 장이 보였다. 그건 신문지에 끼어 있던 보신탕집 광고 전단지였는데, 뒷면에 피살자가 죽기 직전에 살아보려고 애걸복걸하면서 급히 갈겨쓴 글자가 있었다.

피가 엉겨 붙은 글씨는 죽음을 앞둔 절박한 순간에 쓴 다잉 메시지(dying message)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 순간에 남기는 최후의 메시지. 아마도 청부살인업자는 이승에서 마지막으로 볼펜을 잡고 글을 쓰는 모습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배시시 웃고 있었을 터였다.

피살자는 땀으로 뒤범벅이 된 채 혼신의 힘을 다해 덜덜 떨리는 손으로 갈겨쓴 게 분명했다.

‘적수선赤水仙’

글씨는 자세히 봐야 겨우 알아볼 수 있을 만큼 엉망이었다. 그 위에 피가 엉겨 있어 피를 씻어내자 글자가 흐릿하게 보였다. 피살자가 남긴 단 세 글자 ‘적수선’이 의문의 한가운데 놓이게 되었다. 수사관들은 이 세 글자를 보안에 붙였다.

날이 차츰 어두워지면서 속보를 듣고 언론사 취재 차량들이 속속 밀려들었다. 조경원 일대 여기저기서 비상등이 돌아가고 사이렌이 계속 울려대면서 인산인해를 이루어 발 디딜 틈도 없었다. 정원수 농원 마당 임시 천막에 취재본부가 꾸려졌다.

오전 7시 30분에 라운딩을 시작하는 라이온스 골프장에 간다고 새벽 5시 30분에 집을 나간 김한철의 행적이 끊어지면서 회사에서는 실종신고를 해놓고 있었다. 총무국장이 사고대책반장이 되어 김 사장의 동선을 추적하고 있던 터였다.

그날 밤 늦게 김한철의 부인과 가족, 친지들이 비보(悲報)를 듣고 현장으로 달려왔다. 부인은 남편의 시신을 보자마자 그 자리에서 실신해 넘어졌다. 대기하고 있던 구급차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시신을 곧바로 큰 병원으로 후송했다. 자녀와 형제들은 맑은 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것처럼 하염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그의 아들과 딸은 하얀 천으로 덮여있는 아버지의 시신 앞에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KMG 김한철 사장이 의문의 주검으로 사흘 만에 발견되었다는 속보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시중에는 그의 피살과 관련해서 이런저런 괴담(怪談)들이 밑도 끝도 없이 떠돌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김한철이 혼자서 한몫 챙기려다가 내부의 누군가가 살해했을 거란 소문도 있었다. 범인은 내부자 가운데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러시아제 권총을 맞고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는 사실에 설득력이 없었다. 그런 까닭에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의 간첩이 내려와서 그를 죽이고 도주했다는 ‘설(說)’도 떠돌았다.

심지어 김한철의 차 뒤 트렁크에 수십억 원의 현금이 실려 있었는데 그걸 노리고 저지른 범행이라는 첩보도 있었다. 이런 해괴한 소문들은 모두 그럴듯하게 꾸며져 있는데다가 인터넷과 증권가 찌라시들이 거들면서 사람들은 어느 하나도 믿지 않게 되었다.

수사팀 역시 아직은 김한철이 죽기 직전에 ‘적수선’이라는 다잉 메시지를 남겼다는 사실은 비밀에 붙이고 있었다. 범인도 살해 동기도 안개 속이었기 때문이다. 수사를 맡은 관할 경찰서 서장이 사건 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는데 그가 나타나자 기자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혹시 이강두 서장님 맞습니까?”

기자들이 벌떼처럼 몰려들어 너도나도 질문을 던져댔다.

“예, 맞습니다. 제가 일동시 경찰서장입니다.”

“저는 대한신문의 윤 기자라고 합니다.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오늘 혹시 범인을 지목할만한 물증을 찾았습니까?”

“아직은 범인을 단정할 만한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찾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범인은 아주 노련한 청부살인업자로 보입니다. 발자국조차 삽과 쇠스랑으로 지워버리고 도피했습니다. 지문은 더 분석해 봐야겠지만 이 정도로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했다면 지문을 남기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윤 기자가 다시 질문을 던졌다.

“김 사장이 권총을 맞고 죽었다는데 그 권총 탄알이나 탄피는 못 찾았습니까?”

“이 잡듯 뒤졌는데도 아직까지는 탄피를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범인이 회수해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혹시나 해서 금속탐지기까지 동원하고 있습니다. 탄알은 피살자의 시신을 부검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이강두 서장의 말을 한 마디도 놓치지 않고 열심히 메모하거나 녹취하고 있었다. 일동경찰서는 사건 현장에서 반경 100미터 이내까지 금속탐지기로 탄피를 찾았지만 녹슨 못이나 버려진 철사들만 수두룩하게 나오는 것이었다. 탄피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 최도영(崔道榮)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MBC에 입사해서 라디오에서만 근무했다.

‘환경리포트’ ‘마이크출동’ ‘여성시대’ ‘음악캠프’ ‘푸른신호등’ 등 주로 현장에 나가서 취재하는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1988년 이후 현재까지 환경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2007년에 공정방송노조를 설립했으며 사무국장, 대외협력국장을 지냈으며 2009년에는 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2월, 노조원 대상의 ‘MBC 민영화 여론조사’, 그해 5월 ‘일산제작센터 비리의혹’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때 불과 3일 사이에 노조원의 3분의 2가 빠져나갔다. 현재는 이 사회의 썩은 사과를 골라내는 ‘뉴스톰’ ‘엔터스톰’ ‘팩트스톰’ ‘블랙박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경력
라디오본부 PD(국장), MBC공정방송노동조합 사무국장 겸 대외협력국장 등.

▶담당프로그램 
환경리포트, 여성시대, 마이크출동, 배철수의 음악캠프, FM모닝쇼, 푸른신호등 아침의 행진, 강변가요제, 대학가곡제, 신인가요제, 한국민요대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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