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코로나 시국은 지난 몇 년간의 명절 풍경을 바꿨다. 명절 가족 모임을 거르거나 규모를 줄여야 했다. 혹은 국내외로의 여행을 취소해야 했거나. 

코로나 때문에 달라진 명절 정경을 먼 훗날 되새겨 본다면 어쩌면 과거의 이채로웠던 모습으로 기억될지 모른다. 같은 맥락으로 수십 년 전 명절 즈음에 볼 수 있었던 풍경들을 지금 소환한다면 그런 모습들이 색다르다 느껴질지도.

(2022. 09. 06) 2022 추석 즈음의 서울역 일대. 추석이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이 바빠지곤 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2022. 09. 06) 2022 추석 즈음의 서울역 일대. 추석이면 기차역이나 버스 터미널이 바빠지곤 했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고향으로 가는 차표를 구하라

예전에는 명절에 고향으로 가려면 정해진 날짜에 기차역이나 버스터미널에 가서 차표를 직접 예매해야 했다. 보통 명절을 며칠 앞두고 3일 정도만 예매 기간으로 정하기 때문에 북새통이 벌어지곤 했다. 

과거 기사를 검색하면 명절 즈음 서울역이나 용산역 광장, 혹은 강남고속버스터미널 광장의 예매 창구를 다룬 기사들이 많다. 인파로 붐비는 사진은 기본이다. 앞줄에 서기 위해 새벽에 나오거나 밤을 지새우는 귀성객도, 심지어는 표를 구하기 위해 결근하는 사람까지 있다는 기사도 볼 수 있다.

1972년 서울역 추석 귀성 차표 예매 창구. (사진: 국가기록원)
1972년 서울역 추석 귀성 차표 예매 창구. (사진: 국가기록원)

표를 구하기 어려우니 암표상이 들끓었다. 1982년 9월 23일 <경향신문>의 한 기사는 2,620원짜리 논산행 고속버스 차표를 5천원에 구매한 어느 시민을 인터뷰했다. 그는 “암표상들의 매점 행위 때문에 차표가 일찍 매진”됐다며 분노를 표했다.

암표상을 다룬 기사들은 195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꾸준히 나온다. 다만 전화 예약과 온라인 예약이 자리 잡으며 점차 사그라든 것으로 보인다.

전국의 공단에서 노동자들에게 명절 귀향 버스를 제공하는 기사도 해마다 눈에 띈다. 노동자들에게 편의 제공을 위한 것이지만 혹시 다른 공장으로 옮길까 봐 단속하는 목적도 있었다. 고향에서 친구를 데려오면 상금을 주면서 노동자 확보의 기회로 삼기도 했다. 1970년대 전국의 공단에서 일하는 저임금의 노동자들은 우리나라 산업화의 기초 동력이었다. 

특권층을 위한 특별한 예매?

시민들은 귀성 차표를 구하기 어려웠는지 몰라도 특권층들은 그렇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1955년 9월 29일 <경향신문>은 추석을 앞둔 서울역 풍경을 다뤘다. 기사는 “가족 수행원들을 이끌고 귀향하는 국회의원”들을 접대하느라 서울역장이 “골머리를 앓고” 차표까지 요구받았다는 고충을 전한다. 

한국 전쟁 후 아직은 혼란한 시기라 높으신 양반의 요구가 당연한 권리로 여길 수 있겠으나 그로부터 20여 년이 흐른 후에도 특권이 통하는 관행은 없어지지 않았다. 

1978년 10월 11일 <동아일보>의 ‘선량들의 귀성 차표 성화에 골치 아픈 서울역’ 기사는 특권층의 오랜 관행을 지적한다. 추석 연휴 즈음 서울역장실이 열차표를 청탁하는 전화와 방문객 때문에 홍역을 치렀다는 내용이다. 

심지어는 “열차 출발 30분 전에 전화를 걸어 이미 매진된” 차표를 구해내라는 어느 국회의원 때문에 이미 다른 시민에게 판매된 “예매표를 취소해 자리를 마련”해 준 사례도 있었다고.

1977년 추석 귀성 인파가 몰린 서울역. 서민들에겐 차표를 구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사진: 국가기록원)
1977년 추석 귀성 인파가 몰린 서울역. 서민들에겐 차표를 구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사진: 국가기록원)
1977년 추석 귀성 인파가 몰린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서민들에겐 차표를 구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사진: 국가기록원)
1977년 추석 귀성 인파가 몰린 강남고속버스터미널. 서민들에겐 차표를 구하는 것 자체가 전쟁이었다. (사진: 국가기록원)

이런 관행을 정부는 지켜보지만은 않았다. 1980년 9월 14일 <조선일보> 기사 ‘귀성 열차 부탁 사라져’는 교통부가 ‘특별예매행위’를 부조리로 단속하겠다는 발표를 다룬다. 

기사는 ‘예매 전 예매’, 즉 특별 예매행위가 가능했던 악습을 지적한다. 청와대와 각 부처, 국회의원, 검찰, 경찰, 그리고 언론기관까지 귀성 차표 부탁을 했었다고. 그래서 철도청의 “준비성 있는 비서진들”이 미리 차표를 확보해 “권력층의 부탁에 대비하는” 일이 공공연하게 벌어졌다고 기사는 밝힌다. 

이후 ‘특별예매행위’가 근절됐는지는 알 수 없다. 여전히 있다는 소문도 있다. 자리가 없다는 비행기 좌석이 누군가 어딘가로 연락하면 자리가 생기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하니까.

예방접종을 해야 차표를 구할 수 있다고?

1970년 추석에는 콜레라 예방접종을 해야 차표를 구할 수 있었다. 1970년 9월 14일 보건사회부는 추석 귀성객들이 콜레라 예방접종 카드가 없으면 차표를 판매하지 말거나 예방접종을 실시한 후 판매하라고 관계 기관에 지시했다.

콜레라는 1960년대 우리나라에 만연했다. 오염된 물 때문에 발생하고 퍼지기 때문에 생활 여건이 열악한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취약했다. 특히 1969년에 콜레라가 전국적으로 창궐해 1천5백여 명이 감염됐고 137명이 사망했다. 1970년에도 아직 그 여파가 남아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이 몰리는 역과 터미널을 통제하려 한 것이다.

1970년 가두에서 진행된 콜레라 접종. (사진: 국가기록원)
1970년 가두에서 진행된 콜레라 접종. (사진: 국가기록원)

그런데 1980년 추석 즈음에도 콜레라가 유행했다. 주로 영남과 호남에 퍼졌었는데 두 지역 모두 귀성 인파가 많은 곳이었다. 그래서 귀성객들에게 예방접종을 의무화하는 방안이 강구되었고 전국의 모든 역과 터미널에는 검역소가 설치되기도 했다.

이후에도 콜레라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린다. 1991년과 1995년 추석 즈음 콜레라가 발생해 추석 경기에 영향을 끼쳤다는 기사를 볼 수 있다.

그런데 감염병의 종류는 다르지만 대처하는 모습이 지난 코로나 시국 상황과 겹쳐 보이기도 했다. 접종 이력이 있어야 역이나 터미널에 들어가 표를 구할 수 있다거나 검사와 접종을 위해 곳곳에 검역소를 설치한 모습에서. 

관련한 과거 기사들을 보면 콜레라가 퍼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명절에 이동을 자제하라는 사회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그런데도 고향에 가기 위해 예방접종을 받는 모습도 볼 수 있다. 2020년대 코로나 시국과 닮지 않았는가?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은 추석 풍경

지난 수십 년간 추석을 앞두고 여러 언론이 다룬 키워드에 ‘귀성’이라는 단어를 항상 볼 수 있다. 추석이면 고향으로 향하는 풍경은 그대로인 것이다. 다만 그 모습은 변화해 왔다.

특히 차표 예매는 온라인과 모바일로 가능해진 지 오래라 역이나 터미널에 가서 줄을 서야 하는 불편은 사라졌다. 대신 신속한 클릭이 필요해 디지털 기기 작동을 잘 하는 사람에게 유리해졌다. 

그동안 주력 교통수단도 달라졌다. 위에서 보듯 1980년대까지는 귀성 수단의 대부분은 열차와 버스가 차지했다. 그런데 1990년대 자가용이 늘면서 귀성 풍경을 다룬 키워드에 교통 체증을 표현하는 단어나 교통사고를 다룬 기사가 많이 보인다. 

서울역 매표소. 승객 대부분은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예약하고 현장에서는 일부만 표를 구매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역 매표소. 승객 대부분은 온라인이나 모바일로 예약하고 현장에서는 일부만 표를 구매한다.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역 플랫폼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열차.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서울역 플랫폼에서 출발을 기다리는 열차. (사진: 뉴스포스트 강대호 기자)

그리고 2000년대 들어 명절은 연휴의 의미가 더욱 커지게 된다. 그래서일까 명절이 다가오면 국내외 여행안내를 특집으로 다룬 기사들을 흔히 볼 수 있다. 2010년대는 연휴는 물론 개인 휴가까지 합쳐 장기간 해외여행을 즐기는 것이 트렌드가 되기도 했다. 코로나19가 창궐하기 전까지는.

지난 몇 년은 감염병을 이유로 가족 모임을 말리는 한편 가족을 자주 보지 못하는 그리움이 쌓인 시절이기도 했다. 아마도 전국 많은 집안의 어른들이 그렇게 느꼈을 것이다. 어쩌면 명절을 명절로 보내든 연휴로 즐기든 ‘고향의 집과 가족을 애틋하게 생각하는 마음은 변하지 않겠지’라고 어른들은 믿고 싶을지도 모른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