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수사부는 한참 수사가 진행 중일 때 김한철이 주검으로 발견되었다는 속보를 보자 망연자실했다.

검찰이 수사를 빨리 진행해서 긴급체포라도 했더라면 그의 생명은 지켜졌을 거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그건 지나간 버스였다. 뒤쫓던 용의자가 죽었다고 수사를 접을 수도 없었다.

거액의 비자금을 만들고 이를 세탁하여 다른 곳으로 빼돌리려면 반드시 협조자, 즉 공범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수사는 김한철의 피살과 관련 없이 계속되고 있었다.

일동경찰서 박수만 수사과장은 ‘적수선赤水仙’이란 세 글자에 뭔가 의미심장한 메시지가 들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한편에서는 김한철의 이메일을 압수해서 하나하나 풀어나가고 있었다.

박 과장은 오랜만에 팀원들과 고추장불고기로 점심을 하고 나니 몸이 나른해서 잠깐 조는 사이 사이버 지능수사를 담당하는 심 경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

“과장님, 빨리 여기로 오시죠. 뭔가 있습니다. 찾았습니다.”

박 과장은 순식간에 잠이 달아나 버렸다. 그는 잽싸게 6층 사이버수사실로 올라갔다.

“과장님, 죽은 김 사장 메일과 문자서비스 SMS에서 ‘적수선’이라는 세 글자가 있습니다. 이주선이라는 인물에게 보낸 이메일을 보면 ‘적수선’이란 암호로 보냈습니다.”

박 과장은 좀도둑부터 시작해서 북한 간첩 수사까지 안 해 본 수사가 없는 베테랑 수사관이었다. 그는 심 경사에게 당부했다.

“이 봐! 이런 얘기 어디에 보고하기만 하면 죽을 줄 알라구. 당분간 내 허락이 있기 전에는 아무에게도 ‘적수선’이라는 세 글자는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네.”

그는 ‘적수선, 적수선이라…’를 입 안에서 우물거리면서 자리로 돌아왔다.

“아하! 적수선은 그쪽과 연락을 하던 암호였구나! 그런데 왜 생사의 기로에서 ‘적수선’을 썼단 말인가? ‘적수선’과 김 사장의 죽음은 어떤 관련이 있단 말인가?”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고 있는 느낌이었다.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려고 퇴근길에 불가마 사우나에 들러서 몸을 풀고 집으로 들어갔다. 밤 10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

‘적수선赤水仙’

그때 퍼뜩 그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게 있었지만, 오랜만에 가족들과 함께 김한철의 죽음과 관련된 뉴스를 보면서 푹 쉬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 한 시간씩 운동을 하기 때문에 건강 체질이었지만, 야근의 후유증이 있었는지 잠이 밀려왔다.

다음날 오전 누리병원에서 김한철의 시신에 대한 부검이 실시되려는데 심 경사한테서 문자메시지가 왔다.

<과장님, 탄환이 김 사장 머리 뒤통수 근처에 있었습니다.>

박 과장은 바로 문자를 보냈다.

<심 경사, 일체 그 얘기를 하면 안 되네. 내가 볼 때까지 의료진에게도 일체 발설하지 말라고 당부해 두게. 바로 그리로 갈 테니까…>

박 과장은 바로 병원으로 가서 심 경사한테서 탄환을 받아 챙겨 두었다. 순간 그는 당황했다. 러시아제 총알이었다.

아… 그러면 김한철은 북한의 청부살인업자의 손에 죽은 게 맞구나. 그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서장실로 발길을 돌렸다.

창밖으로 바람이 심하게 부는지 맞은편 건물에 걸린 현수막이 반쯤 찢어진 채 펄럭거리면서 아우성을 치고 있었다.

사람들은 바람에 밀려 머리를 숙이고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김한철은 자기가 살아온 날들이 허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지금까지 이렇다 할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보낸 시간들이 아쉽게 느껴졌다. 야망이 이대로 침몰하는 게 아닌가 하는 처량한 생각도 들었다.

김한철은 사실 한국미디어그룹 KMG에 입사를 했지만 애당초 방송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는 오로지 모든 감각기관의 촉수가 정치권으로 향해 있었다.

마치 거미가 거미줄을 치고 곤충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는 것처럼 항상 정치권으로 안테나를 빼놓고 있었다.

“내 꿈은 이게 아니었는데…. 왜 나는 저 창공으로 훨훨 날지 못한단 말인가? 아니야 여기서 멈출 수는 없어. 나는 더 높이 날 수 있어.”

김한철은 6시가 채 되기 전에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와 약속 장소인 광화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지난 2주 전 그는 처음으로 어딘가 좀 수상한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11월 19일 오후 7시. 광화문 서래빌딩 뒤편 한식당 고향 입구로 오시오.>

이것이 메시지 내용의 전부였다.

누군지 밝히지도 않고 다짜고짜로 광화문으로 나오라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사흘 후 다른 문자 메시지가 왔는데 이번에는 보낸 사람이 달랐다.

<노란색 쇼핑백을 든 남자를 접선하시오. 단, 말은 걸지 마시오.>

그는 이 메시지가 장난질 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조금도 개의치 않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이렇게 문자로 뭔가를 지시하는 걸 보면 장난은 아닐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전철에서 내려 4번 출구로 재빠르게 빠져 나가 서래빌딩 뒤편으로 걸어갔다. 보안상 자가용보다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다음호에 계속......

 

▶저자 최도영(崔道榮)

고려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1981년 MBC에 입사해서 라디오에서만 근무했다.

‘환경리포트’ ‘마이크출동’ ‘여성시대’ ‘음악캠프’ ‘푸른신호등’ 등 주로 현장에 나가서 취재하는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1988년 이후 현재까지 환경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2007년에 공정방송노조를 설립했으며 사무국장, 대외협력국장을 지냈으며 2009년에는 위원장을 맡았다. 2009년 2월, 노조원 대상의 ‘MBC 민영화 여론조사’, 그해 5월 ‘일산제작센터 비리의혹’ 성명서를 발표했다. 그때 불과 3일 사이에 노조원의 3분의 2가 빠져나갔다. 현재는 이 사회의 썩은 사과를 골라내는 ‘뉴스톰’ ‘엔터스톰’ ‘팩트스톰’ ‘블랙박스’ 등을 준비하고 있다.

▶경력
라디오본부 PD(국장), MBC공정방송노동조합 사무국장 겸 대외협력국장 등.

▶담당프로그램 
환경리포트, 여성시대, 마이크출동, 배철수의 음악캠프, FM모닝쇼, 푸른신호등 아침의 행진, 강변가요제, 대학가곡제, 신인가요제, 한국민요대전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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