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가 혼외 자녀들의 이색 사연

 

 드라마에 종종 등장하는 상류층 혼외 자녀 문제가 실제 대기업 창업주들에게 자주 일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재벌가의 경우 막대한 유산 상속 문제가 걸려 있어 직계와 혼외 자녀들 간에 마찰을 빚기 마련이다.
최근에 법원에서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외 자녀들에게 40억 원의 배상판결이 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이전에도 코오롱, CJ 등 대기업들을 상대로 친자소송이 이루어진바 있다. 이에 <뉴스포스트>에서는 대기업 창업주들의 혼외 자녀들과 소송에 대해 알아봤다.


지난 2월 서울 가정법원은 현대그룹 창업주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혼외자녀들이 낸 1백억 원대 유산 소송에서 혼외 딸의 손을 들어줬다. 두 딸에게 각각 20억원씩 지급하도록 하는 내용의 법원 조정안을 양측이 합의한 것.
합의 사항은 정 명예회장 가족과 정몽구 회장 등 친자녀들이 원고인 혼외 딸 2명에게 각각 20억 원 등 총 40억 원의 생활보조비 지급 및 가족행사에 참여토록 하는 내용이다. 또한 고인의 추모 행사에 참석하는 등 가족의 화합을 위해 힘쓰며 앞으로 재산에 관해 일절 청구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내용의 합의안에 대해 처음 혼외 딸들은 이의를 신청하는 등 반발했지만 결국 법원의 조정안을 받아들였다.

 

총수 사후에 유산분배소송 등 분쟁 터져
 현대가는 정주영 혼외자녀와 막판 합의


현재 두 딸은 미국 시민권자이며 그 중 한 명은 미국에서 직업을 얻어 어머니와 함께 한국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고 또 다른 한 명은 현재 미국의 한 대학에 재학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보다 앞서 이미 두 딸은 지난 2001년 친자확인소송을 통해 승소한 바 있다. 정 명예회장의 친자녀로 확인된 것이다. 하지만 친 자식으로 판정 난 이후에도 현대가와 왕래는 허락되지 않았으며 철저히 고립돼 미국에서 생활했다.
그렇다면 이들의 어머니 A씨와 정 명예회장은 어떻게 만났던 것일까.
A씨는 미국에서 부동산업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1970년 초반 사업차 미국에 들렀던 정 명예회장과 우연한 만남이 이루어 졌고 결국 두 딸을 낳게 됐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정 명예회장은 두 딸의 소식을 A씨에게 듣고 미국에 출장차 들를 때 A씨에게 양육비 차원의 경제적 지원을 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정 명예회장이 병상에 누웠다는 소식을 접한 A씨는 자신들의 자녀들을 생각해 친자확인소송을 하게 된다.
소송과정에서 정 명예회장은 타계했지만 현대가의 친자녀들은 유전자 검사를 거부 없이 받아들이며 신속히 진행됐다. 보통 이런 경우 친자녀쪽에서 시간을 끌지만 현대가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것 때문에 일각에서는 정 명예회장이 타계하기 전에 이미 가족들에게 A씨와의 관계를 알렸을 것이란 얘기가 흘러나오기도 했다.
아무튼 친자확인소송에서 승소한 두 딸은 나머지 형제들과 함께 정 명예회장의 유산 800억원을 나눠 받게 된다. 상속세를 뺀 금액에서 두 딸 몫은 각각 50억원 정도였다.
이후 조용하던 현대가는 2006년 또 다시 소송에 휩싸인다. 미국에 거주 하던 A씨가 유산분배에 문제가 있다며 100억원대 소송을 제기한 것.
당시 A씨는 “다른 형제들은 현금뿐만 아니라 주식과 기업 경영권을 물려받았다. 이는 형평성에 어긋난 것”이라며 100억 원의 요구액과 정 명예회장의 유언장을 공개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현대가에서는 이미 2001년 당시 혼외 자녀인 두 딸이 향후 추가적인 상속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조건으로 유산배분에 서명했다고 주장하면서 반발했다.
결국 양측의 팽팽한 주장은 수차례의 법원조정 실패로 이어졌다. 3년여를 끌어온 이번 소송은 요구조건이었던 100억원이 40억원으로 줄면서 합의에 이르게 됐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현대차 관계자는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알 수 없다. 어떤 얘기도 해줄게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코오롱 창업주 혼외자녀 상속권 주장
대기업의 혼외자녀 문제는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재계 순위 28위권인 코오롱 그룹이 있다. 코오롱 그룹 창업주인 고 이원만 회장 혼외 자녀가 처음 언론에 공개된 것은 지난 2004년이다. 자신이 이 회장의 아들이라고 주장한 이동구씨는 친자확인 및 상속권을 주장했다.
이 씨에 따르면 자신의 어머니인 B씨가 이 회장을 처음 만난 것은 1977년 서울의 한 요정이었다. 당시 그곳에서 일하던 B씨는 이 회장의 눈에 들었고 1978년 이 씨를 낳게 된다.
당시 이 회장의 나이는 72세, B씨는 18세였다고 한다.
이후 이 회장은 B씨에게 집을 마련해 주고 매달 일정 금액을 양육비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 이 씨가 4살이 됐을 무렵 B씨는 자신보다는 아버지인 이 회장 밑에서 성장하는게 좋다고 생각해 아들인 이 씨를 이 회장에게 보낸다.
하지만 이 씨의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됐다. 2004년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씨는 “처음 그곳에 갔을 때부터 나는 외지인이었다. 집안의 일꾼들과 함께 생활 했고 계모의 구박을 받았다.”고 밝혔다.
1985년 이 회장이 뇌출혈로 쓰러지자 이 씨는 고아원에 보내졌고 미국으로 입양되기에 이른다. 이후 이 씨는 생모를 22년 만인 2004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상봉하게 됐고 이 회장의 가족들을 상대로 캘리포니아 지방법원에 5백만달러(약50억원)의 상속 소송을 제기한다.
이 회장의 혼외자녀는 이 씨뿐만이 아니다. 3여년이 흐른 2007년 인터넷 블로그를 통해 이 회장의 내연의 처라고 주장하는 지은주(61)씨와 둘 사이의 딸인 이정현(38)씨의 사연이 공개되면서 부터다.
지 씨는 블로그를 통해 “이 회장이 사망한 1994년, 아무것도 모르는 학생이었던 딸을 불러들여 현금 1억원을 주고 한 서류에 도장을 찍게 했다. 당시엔 몰랐는데 그 서류는 일체의 유산에 대해 함구하겠다는 내용의 각서였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 씨에 따르면 이 회장과의 만남은 1969년으로 거슬러 내려간다. 당시 뛰어난 미모를 자랑하던 지 씨는 주변에 많은 연예인들이 있었다. 그러던 중 우연한 기회에 이 회장의 별장에 친구들과 놀러가게 되고 그 때 이 회장의 눈에 들어 서로 사랑을 하게 된다.
이후 이 회장은 서울의 모처에 집을 마련해 주고 자동차까지 사주었다고 한다.
지 씨에 따르면 “매일 집으로 찾아온 이 회장과 밥을 먹고 서재에서 책을 함께 읽기도 했다. 정 재계 인사들이 자주 집을 찾아올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1970년 둘 사이에서 이정현씨가 태어났다. 태어날 당시 주변에서는 이 회장과 딸인 이정현씨가 무척 닮았다며 신기해 할 정도였다고.
특히 이 회장은 딸인 정현씨를 무척 아껴 해외로 출장을 갔다 오면 항상 한 아름씩 아이 선물을 사왔다고 한다.
지 씨는 “일본을 자주 갔던 이 회장은 항상 아이의 선물을 잊지 않았다. 옷과 장난감은 물론 손수 이부자리까지 사올 정도로 아이를 끔찍이 여겼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지 씨는 이 회장의 곁을 떠나야했다. 자신의 존재로 인해 이 회장측의 친가족들이 고통을 받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1974년 지 씨는 딸인 정현씨를 데리고 이 회장 곁을 떠나게 된다. 이후에도 이 회장 측에서 연락이 왔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그러다 딸이 16살 되던 1986년 스웨덴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지 씨는 모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이제 와서 나의 허물을 밝히는 이유는 코오롱측으로부터 정중한 사과나 해명을 듣고 싶을 뿐이다. 나의 딸인 정현이가 이 회장의 혈육이라는 것만 밝혀준다면 모든 것을 용서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코오롱측 관계자는 “이미 돌아가신 창업주의 극히 개인적인 일이기 때문에 어떠한 답변도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재벌 총수들과 요정 문화
대기업 삼성가에서도 혼외자녀들 문제는 불거졌었다. 지난 1996년 서점가에서는 일대 파란이 일었다. 자신을 국내 3대 요정중 하나인 ‘청운각’ 기생이라고 밝히며 재벌 총수들의 은밀한 사생활을 밝힌 자서전 때문이다.
자서전의 주인공은 김송자씨로 그녀는 삼성 이병철 창업주의 친형 이병각씨의 ‘여자’라고 밝힌 것.
특히 청운각은 1960~80년대 유명세를 떨쳤던 고급요정으로 일반인들은 출입할 수 없었던 특별한 곳이었다. 특히 한국 정치사와 함께 요정정치, 밀실정치의 중심에 있었던 곳이다.
김 씨는 자서전에서 “재벌가로부터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한 내 얘기를 담아 자식들의 명예라도 회복시켜주기 위해 나섰다.”고 토로했다.
김 씨에 따르면 자신과 이병각씨는 정식혼인을 올렸고 1남 2녀를 두며 행복하게 살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남편인 이 씨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인해 쫓겨나게 됐고 지하 셋방살이를 전전했다고 한다.
김 씨는 “요정에서 기생으로 있던 중 38년이나 연상인 이 씨와 만나 행복했다. 하지만 이 씨의 죽음으로 생활은 180도 달라졌다. 그 후 파란만장한 삶을 살게 됐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아직까지도 삼성가에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거리를 두고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CJ에서도 혼외자녀 소송으로 인해 파문을 겪은 바 있다. 삼성가의 장손이자 CJ 이재현회장의 부친인 이맹희 씨의 혼외 자녀가 지난 2006년 친자소송에서 승소하면서다.
혼외 자녀는 이재휘(45)씨다.
이재현 CJ 회장의 막내 동생이 생긴 것이다. 2006년 대법원은 재휘씨가 제기한 친자확인 소송에 대해 원고 승소 확정판결을 내렸다.
재휘씨는 “행방이 묘연하고 건강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고 아버지를 찾기 위해 친자소송을 벌이게 됐다. 실종신고라도 하려면 공식적인 관계를 규명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자녀들에게 할아버지를 만나게 해주고 싶었다.”며 소송 이유를 밝혔다.
이와 관련 재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60~70년대 요정문화에서 비롯된 측면이 있다.  당시 정재계의 내로라하는 인사들은 밤이면 요정에서 회동했다. 바로 이런 요정문화가 재벌 총수들의 혼외자녀들을 낳게 만들었다. 비단 재벌 총수뿐만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예전부터 고위층들의 혼외 자녀설이 끊임없이 흘러 나왔다. 다만 수면위로 등장한 사례들이 별로 없을 뿐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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