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고유가 시대의 천태만상

고유가 시대에 서민경제가 흔들리고 있다. 이는 비단 서민경제 뿐만 아니라 기업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정부는 차량 홀짝 운행제를 실시하면서 의욕적인 대책을 마련했지만 일부에서는 밤 새 밝은 전등을 켜 놓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서민경제를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일부 업체들의 얌체상혼도 한 몫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서민들과 기업들은 나름대로 고유가에 대처해 알뜰 지혜들을 내놓고 있다. <뉴스포스트>에서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얌체 상혼과 서민들의 절약 노하우를 들여다봤다.

영등포에 사는 정 모 (39,주부)씨는 최근 아이들과 인근 슈퍼에 갔다 깜짝 놀란 경험을 했다. 아이들이 좋아하는 과자를 사려고 들어갔는데 제품 봉지가 기존 보다 커져 있었다. 가격도 물론 오른 상태였다. 무심결에 과자를 산 정 씨는 집에 와서 자세히 살펴보고 기업체의 얄팍한 상혼에 혀를 내두르게 됐다.


알아보니 기존 보다 중량은 20%로 늘었지만 가격은 50%가 올랐던 것.


정 씨는 “처음엔 중량이 늘어 가격도 올랐다고 생각했는데 가만히 살펴보니 그게 아니었다. 용량은 표시나지 않을 정도로 올려놓고 가격만 터무니없이 올렸던 것이다. 이 제품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다른 제품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았다.”며 제조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했다.


식품들의 경우 고유가 시대와 원가 상승으로 인해 많은 제품들의 가격이 상승했다. 하지만 원가에 비해 가격대를 턱없이 높게 올린 상품들이 서민경제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다.


마포구에서 혼자 자취를 하는 오 모(28,여)씨는 평소 아이스크림을 즐겨 사먹는다. 하루는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가까운 편의점에 갔다. 그런데 자신이 즐겨 먹는 A사 제품의 아이스크림이 평소 먹었던 것과 사뭇 달랐다고 한다.


오 씨는 “원래 크기보다 용기가 조금 커져 있었다. 마트 관계자에게 물어보자 용량이 커진 상품이라고 말해줬다. 그런데 가격은 무려 800원이나 올랐다. 어떡할까 고민하다가 그냥 사가지고 나왔다.”고 말했다.


집에 돌아와 제품을 찬찬히 살펴본 오 씨는 제조사의 상술에 놀라웠다.


오 씨는 “용량이 기존보다 커지긴 했지만 가격은 배 이상 올랐다. 어찌됐든 물가 상승에 따른 제품 가격 상승을 막을 수 없겠지만 터무니없이 가격을 높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최근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물가인상이 원자재 가격과 유가에 큰 상관이 없는 음식이나 서비스 품목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원가가 전혀 오르지 않은 상품에 대해서도 제조사측에서 상품가격을 올리는 경향이 있다. 또한 원가는 100원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가격은 두 배 이상 올리는 사례도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또한 제조사측이 향후 원가가 계속 상승할 것이라는 기대치까지 상품가격에 적용하는 사례도 있다고 밝혔다.


지난 1월부터 5월까지 음식 값의 평균 가격 상승률은 3.6%였다. 그러나 몇몇 품목들의 경우 평균보다 높은 2배에서 많게는 4배까지 가격이 상승했다. 대표적 서민 먹거리인 김밥의 경우 지난해 보다 무려 16%가 상승했고 자장면은 12%, 피자는 11% 상승했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한 중국요리 전문점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해 조리비용이 늘어났고 밀가루 등 국제 곡물가의 상승으로 원가비용이 증가해 어쩔 수 없는 가격상승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를 자세히 보면 얄팍한 상혼이라는 것이 전문가들과 서민들의 주장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국제 곡물과 기름 값이 올랐다고 하지만 그에 비해 터무니 없이 높은 가격 상승을 가져온 것은 말이 안된다. 한 번 올릴 때 확 올려 버리고 아예 가격대를 계속 유지하기 위한 술수다. 특히 고유가 시대에 물가가 상승하자 이때다 싶어 너도나도 가격을 올려 버리는 게 문제”라고 설명했다.

 

일부 업계 은근 슬쩍 가격 올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식품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고유가 시대를 맞아 일부 서비스업계도 상품에 대한 가격 상승폭이 크다는 지적이다.

 

가장 큰 가격 변화를 보이는 곳은 바로 운전면허학원이다.


여의도에 사는 최 모(26, 남)씨는 “최근에 운전면허를 따기 위해 학원에 갔는데 높은 수강료에 놀랐다. 처음엔 의무 수강인 기능 3시간만 수강하려 했지만 접수하는데 무려 3개월이 걸린다는 학원측 얘기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정규코스로 수강했다. 아무리 고유가 시대라지만 해도 너무한 것 같다.”고 주장했다.


실제 <뉴스포스트>는 서울시내 일부 운전면허학원에 확인해 본 결과 작년에 비해 수강료가20~25% 상승한 것을 알 수 있었다.


작년만 해도 정규코스 수강료가 75만원에서 비싼 곳은 80만원대를 형성했던 것이 올해 들어 조금씩 상승해 최근에는 100만원까지 상승했다.

 

 

고유가와 큰 관계없는 품목 덩달아 인상
고객 기름값 10억이나 떼먹은 주유소도

 


기능 수강료의 경우 50만원에서 53만원, 도로주행의 경우 37만원부터 38만원의 수강료를 받고 있었다. 합쳐서 87만원에서 91만원대를 형성했다. 여기에 각 기능마다 접수비를 따로 받기 때문에 모두 포함하면 100만원을 넘기도 한다. 이것도 일부 항목에 대한 접수비가 내려서 형성된 가격이라고.


한술 더 떠 최근에는 일부 주유소에서 주유기에 표시된 양 보다 적게 기름을 팔아 물의를 일으켰다.
지난 6월 25일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주유기에 전자센서를 부착해 미터기에 표시된 기름보다 적은 양을 주유하는 방법으로 기름 값을 더 받아 챙긴 혐의로 김 모(42)씨 등 주유업자 2명을 구속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 씨는 주유기에 무선 리모컨으로 작동하는 전자센서를 연결해 유량계에서 실제로 측정되는 것보다 많은 기름양이 미터기 눈금에 표시되도록 했다.


김 씨는 이 같은 방법으로 2006년부터 최근까지 약 10억 원을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조사 결과 김 씨는 인근 주유소들보다 L당 100원에서 200원씩 가격을 내려 손님들을 끌어 모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김 씨는 단속원이 주유소를 현장 점검할 때는 리모컨으로 주유 양을 조절해 단속을 피해 온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 이후 모 방송사에서는 전국의 주유소를 대상으로 스위치 등을 조작해 주유 미터기를 속이는 주유소를 적발해 소비자들의 관심을 받기도 했다.


유가가 급등하면서 생긴 신종 사기 범죄에 서민들만 골탕을 먹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한 소비자 단체 관계자는 “고유가 시대를 맞아 일부 업체들에서 소비자들을 속이는 상술이 계속 되고 있다. 이를 적발하기 위해 관계당국의 대책마련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에너지 절약 움직임 확산


고유가 시대가 얄팍한 상혼만을 부추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전 국민의 에너지 절약 움직임이 여기저기서 포착되고 있다.


공항이나 주요 터미널, 기차역에서는 진풍경이 연출되고 있다. 길게 늘어서 있는 택시들이 시동을 끈 채 손님을 기다리다 택시 한 대가 빠져나가면 기사들이 택시를 밀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개인택시 운행 20년 째인 권 모(56)씨는 “정말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기름 값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상황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기사들이 시동을 끈 채 차를 미는 상황이다. 일부 택시들의 경우 한 낮을 제외하고 에어컨을 끈 채 운행을 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부 손님들의 경우 택시기사와 작은 실랑이를 벌이기도 한다고. 최근 급격한 고온 현상으로 인해 아침, 저녁에도 더운 날씨이기 때문에 손님들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내버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에너지 절약 차원에서 설정 냉방온도를 높여 운행하고 있는 회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일부 회사들의 경우 노선과 거리 등을 감안해 사용할 기름 량을 최소화 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가정에서는 물가 상승으로 조금이라도 지출을 줄이기 위해 허리띠를 졸라 매고 있다. 조금이라도 싼 곳을 찾아 홈쇼핑 무료배송이나 인터넷 장터 등을 통해 식품 등을 주문하는 추세다.


실제 모 인터넷 쇼핑몰은 올 들어 매출이 40%나 뛰었다. 3월까지만 해도 하루 300~400건 수준이던 주문이 5월 들어 1000건 이상으로 늘었다.


쇼핑몰 관계자는 “식품 매출이 지난해에 비해 약 50% 정도 늘었다. 소비자들이 유가급등으로 물가가 상승하자 조금이라도 싼 제품을 선호하는 것 같다. 특히 단박 세일 품목의 경우 순식간에 제품이 동이 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무료배달을 하는 서비스 품목의 매출도 늘었다. 모 대형마트의 경우 무료배달 이용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0%정도 급증했다고 밝혔다.


마트 관계자는 “아무래도 물가가 상승하면 가장 타격을 받는 것이 서민들일 것이다. 가정주부들의 경우 싼 물건을 파는 곳이 있으면 다리품을 팔아서라도 아끼려고 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적은 양을 살 때도 가격을 비교해보고 사는 소비자들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기업도 고유가 폭탄에 흔들


기업들도 허리띠를 졸라 맨 것은 마찬가지다. 최근 항공사들의 경우 조종사들에게 자동차와 마찬가지로 에너지 절약 운항기법을 교육하거나 국외선의 경우 조금이라도 기름 값이 싼 나라에서 급유를 하는 방법을 택하고 있다.


또한 항공기의 무게를 줄여 연료비를 절감하기 위해 기내 비치용 잡지 제작 종이를 무게가 덜 나가는 종류로 교체하기도 한다.


모 항공사 관계자에 따르면 “잡지 숫자도 줄이고 단행본의 경우 두께가 얇은 것으로 교체 중이다. 항공기에 싣고 다니던 여분의 타이어는 각 공항에 비치해 두는 쪽으로 바꾸고 있다. 또한 음료수와 세수, 화장실용 물도 필수 용량만 채우고 간다.”고 밝혔다.


기름 소비가 많은 해운업계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현대상선은 선박 연료로 사용하는 벙커C유 가격이 싼 나라에 가서 기름을 최대한 많이 넣고 있다. 상대적으로 싱가포르나 네덜란드가 기름이 싼 나라이다. 한진해운도 항로별 최단 항로를 설정해 운항을 하고 있다.


이밖에도 석유화학업계는 원가상승 부담을 줄이기 위해 생산량을 감축하고 공장 가동을 일시적으로 중지했다.


심지어 마트나 백화점 등에서는 조명을 고효율 제품으로 바꿔 전력을 줄이고 냉방온도도 높이고 있는 상태다.


SK텔레콤의 경우 야근이나 휴일 근무자들을 위해 냉방존을 운영하고 있다. 밤 9시 이후에는 특정 층에만 냉방을 가동해 야근 근무자들이 모여서 근무를 한다. 또한 화장실 온수의 온도는 낮추고 냉방 온도는 높였다.


일부 기업들은 출장비를 줄이기도 한다. 모 그룹의 경우 러시아 출장을 호텔 숙박에서 민박으로 바꾸기로 했다. 또 다른 기업의 경우 출장비를 50% 삭감하기로 확정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고유가로 인해 비용이 늘어 죽을 맛이다. 심지어 구조조정 등 극단적 상황까지 배제할 수 없는 상태”라며 하소연 했다.


또한 “지금 상황은 전반적인 경제 위기로 해석된다. 이를 타개할 적절한 대책이 마련되지 않는다면 경제 기반이 전체가 붕괴되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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