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을 여행하다 보면 아무리 작은 호텔이라도 화장실 변기 옆으로 바닥에 붙은 세면대 모양의 도기 용기를 볼 수 있다.

보통 세면대와 같은 색깔로 모양도 예쁘고 깨끗하게 관리해서 그 용도를 잘 파악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수도꼭지도 같이 붙어 있어 착각하기가 쉽다. 잘 모르는 여행객들은 바닥에 있는 세면도구로 생각해 발을 닦거나 옷을 빠는데 사용하기도 한다. 심지어 그 앞에 쭈그려 앉아 얼굴을 닦는 경우도 있다.

만약 그런 모습을 유럽인들이 봤다면 얼굴이 새 하얘질 정도로 사색이 되거나 배를 잡고 웃을 지도 모른다. 그 세면대는 바로 용변 후 엉덩이를 닦는 ‘비데’ 이기 때문이다.

흔히 비데라고 하면 화장실 양변기에 연결되어 있어서 버튼만 누르면 물이 나와 닦아 주고 바람으로 말려주는 신식 비데를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그런 신식 자동 비데는 현대 사람의 생활환경에 맞게 개조되어 나온 것이고 과거에 사용했던 비데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비데의 정확한 기원은 알려지지 않고 있지만 대략 십자군 전쟁 당시 예루살렘에서 돌아오는 중세기사의 원정대에서 발명되었다고 추정하고 있다.

비데의 어원은 16세기 무렵 유럽의 귀족사회에서 화장실에 더운물을 담아 놓는 작은 욕조 모양의 도기그릇이 등장했는데 그 위에 앉으면 작은 망아지에 앉은 것 같다고 하여 프랑스어로 망아지란 뜻인 ‘비데(Bidet)'라고 불리게 되었다.

비데는 유럽의 귀족들 중 부유한 상류층 사람들만 사용했는데 영국에서는 은으로 만든 호화로운 비데도 있었다고 한다. 이런 화려함 때문에 일반인들에게 비데를 상류층을 사치품 정도로 여겨졌다.

19세기 프랑스에선 비데를 용변 후 뒤를 닦는 도구뿐만 아니라 성 관계 후 여자 몸속에 남은 정자를 씻어내기 위한 피임도구로도 사용했다. 이 때 사용했던 도구로 미국의 찰스 노턴이 발명한 ‘일리게이터(Irrigator)’ 라고 불리는 주사기 형태의 주관기를 사용했는데 주관기에 들어가는 양이 최대 2리터 정도밖에 안 돼 큰 피임 효과를 보진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많은 여자 귀족들은 주관기 사용을 꾸준히 이어갔는데 그 이유는 비데에서 주는 자극이 성적 쾌락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피임도구가 아닌 여성용 자위도구로 비데를 사용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질 정도였다.

독일의 속요에서는 비데가 부부 사랑의 마무리를 장식하는 중요한 물건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따뜻한 물이 솟아 나와 성기를 애무해 주면 황홀한 기분으로 부부관계를 마무리 할 수 있었고 비데에서 나온 물줄기는 마치 부드러운 망아지의 혀끝 같다고 표현한 노래가 있을 정도였다.

19세기 말엽엔 유럽의 도시에 상수도가 정비되었고 비데에 자동으로 물이 나오도록 제작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유럽 전역에서 급속도로 비데가 전파가 되기 시작했다. 또한 영국의 목사 멜더스는 기하악적으로 증가하는 인구밀도를 막기 위해 유럽의 대표 피임도구로 비데 사용을 적극 권장하기도 했다.

이 후 많은 유럽에서 비데를 여러 형태로 개발시켰다. 초반에 용기의 가장자리에서 수도꼭지를 이용해 물이 나왔다면 점차 중앙에서 분수처럼 물이 뿜어 나오는 형태로 변화되었고 물의 세기도 뒷물용과 피임용을 따로 구분하여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

이후 비데를 이용한 피임은 효과가 매우 낮고 안전하지 않아 청결한 뒤처리용으로 발전되었다.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서는 용변을 보고 휴지나 천을 이용해 뒤를 닦는 문화 보다 물을 이용해 씻어 내는 문화가 더욱 보편화 되어있다. 최초로 비데를 만든 십자군 원정대들도 아시아의 문화를 보고 비데를 착안 했을 거라 예상된다.

이란과 동남 아시아권에서는 아직도 휴지를 사용하지 않고 양변기 옆에 샤워 호스를 달아 수동으로 비데를 사용한다고 한다. 매우 저렴하면서도 청결하게 뒤처리를 할 수 방법이다.

사진/자료제공 = LJ비뇨기과(http://lju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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