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권후보단일화의 ‘허와 실’

‘강기정-이용섭’ 단일화, 18대 대선 앞둔 ‘문재인-안철수’ 단일화의 재현
한쪽의 일방적 사퇴로 완성된 단일화, 두 세력의 완전한 결합 장담 못해

[뉴스포스트=허주렬 기자]민주통합당의 5·4 전당대회를 앞두고 또 다시 야권의 석연찮은 후보단일화가 재현됐다. 코앞으로 다가온 전대 당대표 경선을 앞두고 범주류 측 강기정 후보와 이용섭 후보가 강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단일화를 달성한 것. 이러한 상황은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무소속 안철수 후보 간의 단일화에서도 그대로 나타난 바 있다. 결과는 야권단일후보의 참패. 이 외에도 ‘단일화의 실패’는 앞선 선거에서도 수차례 반복된 바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권이 단일화에 목매는 이유는 뭘까.

한국 정치에서 ‘단일화’ 혹은 ‘연대’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야권의 기본 선거 전략이자 ‘필승’ 전략이었다. 1987년 13대 대선 당시 야권의 유력 대선후보였던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와 김대중 고문도 단일화를 논의했다. 결국 단일화 방안에 대한 이견으로 갈라선 두 후보는 모두 출마했고, ‘노태우(민주정의당)-김영삼(통일민주당)-김대중(평화민주당)’ 세 후보가 맞붙은 13대 대선은 야권의 표가 갈리며 노태우 후보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이 얻은 지지율은 36.64%에 불과했고, 김영삼 후보는 28.03%, 김대중 후보는 27.04%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이후 1990년 당시 집권여당이었던 민정당과 제2야당 통일민주당, 제3야당 신민주공화당 간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은 ‘정치연대’의 시초로 꼽힌다. 현 새누리당의 전신인 민자당은 한국정치사의 연대공식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며, 1992년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당시 민자당 후보의 당선을 이끌어냈다. 

1997년 15대 대선에서도 새정치국민회의 총재인 김대중 후보와 자유민주연합(자민련) 김종필 후보 간의 연대, 이른바 DJP 연합이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김대중 후보는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2002년 16대 대선에서도 연대는 어김없이 재연됐다. 지지율 3위를 달리던 당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정몽준 한나라당 전 대표와(당시 국민통합 21 대표)의 후보단일화에 극적으로 성공하며 선거기간 내내 지지율 1위를 달리던 이회창 자유선진당 대표를 꺾고 결국 당선됐다.

하지만 여기까지였다. 이후 치러진 선거에서는 단일화의 실패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2010년 6·2지방선거에서 당시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는 심상정 진보신당 전 대표와 후보단일화에 성공했지만, 결국 김문수 경기 도지사에 패배했다.

2012년 총선에서도 야권은 후보단일화에 성공했지만 결국 새누리당에 완패했다. 같은 해 치러진 18대 대선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단일화의 패배도 나타나기 시작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주당 5·4 전당대회를 앞둔 범주류 측 당대표 후보들은 일찍이 단일화를 예고했고, 지난 28일 단일화 논의가 파행된 가운데 강기정 전 후보의 일방적 사퇴로 단일화가 이뤄졌다.

강 전 후보는 이날 “지난 대선 단일화 과정에 이어 또다시 국민들을 실망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여기까지 하기로 했다. 이용섭 후보가 통합의 리더십, 새로운 리더십으로 민주당 재탄생의 길로 나가는 주역이 되길 바란다”고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어 강 전 후보는 “제가 대선 이후에 당을 좀 바꿔봐야 겠다…”고 말끝을 흐린 뒤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보였고, 도중에 연설문을 접고 “저는 여기까지 하겠다. 감사하다”고 연설을 마무리했다.

강 전 후보는 단상에서 내려와 자리에 앉아 ‘기호1번 강기정’이 적힌 가슴 띠를 풀어내면서도 연신 눈물을 훔쳤다. 이에 이용섭 후보가 곁으로 다가가 위로의 말을 건넸으나 강 전 후보는 자리에서 일어나 곧장 연설회장을 떠났다.

강 전 후보의 눈물의 의미는 당초 범주류 측의 강기정·이용섭 두 후보가 이날 오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배심원단을 상대로 간담회를 개최한 뒤 현장투표를 통해 단일후보를 결정할 예정이었으나 당 선거관리위원회가 단일화 진행방식에 대해 여러 제한조건을 제시하면서 간담회가 무산된 것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인 것으로 보인다.

또 강 전 후보는 “국민과의 약속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며 국회 헌정기념관 간담회장에 마련된 후보석에 앉아 이 후보를 기다렸지만 이 후보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등 한쪽의 일방적 사퇴를 통한 단일화 과정도 매끄럽지 못했다.  

강 전 후보의 전격 사퇴 이후에야 이 후보는 이날 연설을 통해 “지금 이 시간 천금 같은 책임감과 사명감을 느낀다”며 “강 전 후보의 통 큰 정치적 결단을 통해 단일화를 이루게 된 것이 너무 송구스럽게 죄송스럽다”고 밝혔다.

이어 이 후보는 “당 선관위가 어제 심야 회의에서 저희가 제안한 간담회 형식의 배심원 대회마저 사실상 거부해 매우 유감스럽다. 하지만 저는 당대표 후보로서 이 결정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면서 “아무리 그래도 이 과정에서 존경하는 강 전 후보와 지지자들에게 조금이나마 상처를 드렸다면 이 자리를 빌어 죄송하다는 말씀을 정중하게 드린다”고 말했다.

단일화 논의 과정에서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하고 결국 한쪽의 일방적 사퇴, 사퇴한 후보의 서운함의 표현이 나왔다는 점에서 지난 대선 당시 야권후보단일화와 이번 민주당 당대표 경선의 범주류 측 후보 단일화는 과정이 비슷하다. 

결국 강 전 후보의 전격 사퇴로 민주당 당대표 경선 구도는 호남 출신 범주류 이용섭 후보와 비주류 좌장격인 김한길 후보 간 세 대결로 구도가 짜여졌지만 강 전 후보의 지지자들이 온전히 이 후보에게 흡수될지는 미지수다.

그간 호남지역 내에서도 두 후보의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거셌던 만큼 일단 범주류 단일 후보가 된 이 후보는 호남표 결집을 발판으로 친노 주류를 비롯한 범주류를 아우르며 김한길 후보의 대세론을 꺾겠다는 복안을 가진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에서 매끄럽지 못한 강 전 후보의 ‘눈물의 사퇴’로 단일화가 달성되며 두 세력의 화학적 결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호남표나 범주류의 재결집이 기대에는 못 미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두 후보의 단일화로 호남 정치력 복원에 기대를 거는 정서가 확산될 경우 호남표 결집에 만만치 않은 영향을 줄 것”이라면서도 “과정이 매끄럽지 못해 논의를 확장시켜 당의 혁신이나 변화,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다면 별다른 효과를 보이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당대표 경선에서 이 후보를 상대할 김한길 후보도 이날 평화방송 라디오 ‘열린세상. 오늘 서종빈입니다’에 출연해 “(단일화 효과가)조금 걱정은 되지만 크게 걱정되지는 않는다”라며 “단일화라는 것이 당심과 민심이라는 큰 흐름을 거스를 수도 막을 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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