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용인술 대해부

박 대통령 주변 ‘충성·의리파’만 북적북적… 8개월째 인사난맥 반복

신뢰 깨진’ 용인술, 여야 “청와대 인사시스템 문제 있다” 한목소리

[뉴스포스트=허주렬 기자]취임 8개월째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이 여전히 ‘인사 문제’로 시름을 앓고 있다. 인수위 시절부터 제기된 ‘수첩 인사’, ‘불통 인사’ 등의 비판은 현재까지도 유효하다. 제대로 된 인사시스템이 작동할 시점은 이미 지났지만 현실은 더 꼬여만 가는 형국이다. 인재를 적재적소에 활용하는 ‘용인술’이 리더의 최대 덕목 중 하나라는 점에서 박 대통령 리더십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 지난 9일 오후(현지시간) 브루나이 인터네셔널 컨벤션센터(ICC)에서 열린 한-아세안(ASEAN) 정상회의에 참석한 박근혜 대통령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일본의 초정밀기계 제조업체인 주켄공업사의 CEO 마츠우라 모토오는 “최고의 엄선된 수재들을 확보하고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다면 유능한 인재들이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고 회사는 결국 쇠퇴해 갈 것”이라며 적절한 인재 활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마찬가지로 국가 경영의 성패도 어떤 사람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갈린다.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재 선택’과 ‘용인술’은 리더의 최대 덕목 중 하나로 꼽힌다. 그렇다면 취임 8개월째에 접어든 박근혜 대통령의 인재 선택과 용인술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을까.

▶청와대와 마찰=사퇴

최근 자리에서 물러난 진영 전 보건복지부 장관, 채동욱 전 검찰총장, 양건 전 감사원장의 공통점은 청와대와 마찰을 빚었다는 것이다. 진 전 장관은 지난달 27일 박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기초연금제도와 관련해 국민연금 가입기간에 반비례해 기초연금을 차등지급하는 정부안에 반발, 사의를 표명했다. 

지난해 대선 당시 박근혜 대선 캠프 국민행복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으며 대선 공약을 총괄했고, 대통령직인수위에서도 부위원장을 맡았던 공신이 청와대의 국정 운영 방식에 불만으로 표시하며 스스로 물러난 것이다.

당초 박 대통령은 정홍원 국무총리를 통해 사퇴를 만류하기도 했지만, 진 전 장관이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양심의 문제”라며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자 지난달 30일 결국 사표를 수리했다. 이에 친박계 일각에선 진 전 장관을 ‘배신자’로 표현하며 “탈당 혹은 출당까지도 고려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채 전 총장의 사퇴는 이른바 청와대의 전형적 ‘찍어내기’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채동욱 체제’ 검찰이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의혹 수사를 밀어붙여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까지 강행하자 청와대는 못 마땅해했다는 후문이다.

이후 ‘조선일보’의 혼외자 의혹 보도가 나왔고, 법무부는 이를 바탕으로 이례적인 검찰총장 감찰을 선언하며, 그의 사퇴를 압박했다. 결국 채 전 총장은 사표를 던졌고, 비판 여론을 의식하며 사표 수리를 미루던 청와대는 정황 증거만 내놓은 법무부 감찰 조사 결과를 근거로 지난달 16일 사표를 수리했다. 

양 전 감사원장도 청와대가 새누리당 대선 캠프, 인수위원 출신인 장훈 중앙대 교수를 감사위원으로 제청할 것을 요구하자 헌법상 보장된 임기(4년)를 채우지 못하고 지난 8월 26일 사표를 던졌다.

▶주요직 장기 공백 우려

더 큰 문제는 이들의 사퇴 후 후임 인선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공기업은 더 심각한데, 박근혜 정부 들어 공공기관장이 2개월 이상 공석이거나 현재까지 공석인 기관은 전체 295개 기관 중 19곳이다.

이 중 최장 공석중인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은 현재까지 무려 300일 넘게 공석이다. 이 외에도 한국마사회,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지역난방공사 등은 100일 넘게 공석이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돼 임기가 끝났지만 재신임도, 후임자 임명도 없어 눈칫밥을 먹는 경우도 10곳에 이른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실무선에서는 이미 박 대통령 책상에 후보군이 올라간 지 오래지만 박 대통령의 낙점이 없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새누리당 정우택 최고위원은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부의 인사난맥상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높다”며 “잘못된 인사를 했다는 불만도 있지만 더 큰 불만은 적기에 인사를 하지 않고 질질 끈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공공기관장 인사도 시급히 처리해야할 문제”라며 “인사에 신중함이 지나쳐 시스템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취임 초기 조각 단계의 인사검증 실패는 어느 정부에나 있는 해프닝이라고 해도, 8개월이 지난 지금도 매끄럽지 않다면 문제”라고 강조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8월 8일 청와대에서 신임 비서실장 및 수석비서관 임명장 수여식을 마친 뒤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우측),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좌측) 등과 함께 환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중용되는 원로들

이러한 와중에 지난 8월 김기춘(75) 비서실장을 시작으로 원조 친박 원로들은 속속 중용되는 모양새다. 서청원(71)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대표가 10·30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경기 화성갑 후보로 공천됐고, 홍사덕(71) 전 의원도 민족화해협력범국민협의회 대표 상임의장에 임명됐다. 두 인사는 불법자금 수수 혐의로 형사처벌을 받은 전례가 있는 인사로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박 대통령의 중요한 인사 원칙 중 하나였던 ‘쇄신’이 깨진 것이다. 

이 외에도 현경대(75)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 김동호(77) 문화융성위원장, 심대평(73) 지방자치발전위원장, 이원종(72) 지역발전위원장, 한광옥(72) 국민대통합위원장 등 원로들도 중용됐다. 이는 충성과 의리가 검증된 원로들을 중심으로 국정 운영을 해나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1930년대 출생으로 80세를 바라보며 1960년대에 사회에 진출한 사람을 뜻하는 ‘신 386의 귀환’이라는 표현을 써가며 비판에 나섰다.

물론 원로들의 귀환을 꼭 나쁘게 만은 볼 수 없다. 하지만 국가 경영은 ‘노·장·청’의 조화가 필요하다는 점에서 원로들에 편중된 인사라는 비판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새누리당 조해진 의원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인사는 기본적으로 노장청의 조화가 필요하다”며 “너무 한쪽으로 치우치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대통령 주변이나 당에 두루 많은 인재가 있는데, 몇몇 인사들이 연령적으로, 또 적재적소에 배치됐느냐는 면에서 치우친 느낌을 준다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대선 전후 바뀐 ‘용인술’

대선을 전후해 박 대통령의 ‘용인술’이 바뀌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대선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 시절 박 대통령의 인사는 고정관념을 깨는 파격적이고 신선한 인사가 많았다.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이상돈 전 중앙대 교수, 20대의 이준석·손수조 씨와 기업인 김성주 씨의 기용은 박 대통령의 과거 이미지를 미래 지향적 이미지로 바꿔놓는데 크게 기여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박 대통령은 인수위 시절과 조각 과정에서 예전과는 다른 의외의 인사 카드를 계속 내놨다. 고령의 김용준(76) 인수위원장을 총리 후보로 지명하고, 막말 논란 등 구설수가 끊이지 않았던 윤창중 인수위 대변인을 청와대 대변인에 임명했다.

결국 김 위원장은 국회 검증 과정에서 사퇴했고, 윤 대변인은 대통령 방미 수행 중 성추문 파문이라는 사상초유의 사고를 치며 자리에서 물러났다. 또 김병관 국방장관,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등을 포함해 총 14명의 고위직 인사가 집권 초 낙마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여기에 최근 진영 전 장관의 사퇴까지 끊임없는 인사난맥이 반복되며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를 뒤흔들 가장 큰 뇌관으로 재정이나 복지 정책, 공약 후퇴 논란보다 사람 쓰는 행태를 꼽고 있다. 이미 첫 조각 과정에서 실패가 증명된 ‘수첩 인사’, ‘밀실 인사’를 버리지 않는 한 이러한 인사 실패를 되풀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민주당 전병헌 원내대표는 “국민행복시대를 기대했던 국민이 국정파행시대를 겪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인사가 만사라고 말했지만 실제 인사를 되돌아보면 그저 망친 수준이 아니라 참사라고 말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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