럭비공 튀자 임원들 ‘혼비백산’

김익환 부회장 이어 조남홍 사장도 사의 ‘충격’
현대차 측 “조직에 긴장감 부여, 시의 적절”

 


지난해 기아차 사장단 인사에서 또다시 ‘럭비공 인사’로 불리는 정몽구 회장의 예측불가 인사가 단행됐다. 최고 경영진들조차 전혀 예상할 수 없고, 인사의 이유도 헤아리기 힘들어 붙여진 별칭이다. 지난해 12월 19일 김익환 기아차 부회장 사임에 이어 23일 조남홍 기아차 사장마저 떠밀리듯 사의를 표명하자 그룹 내에서는 “정 회장의 복심이 뭐냐”를 두고 의견이 분분했다고 전해진다. 특히 이들은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기아차를 지난해 3분기 연속 흑자로 돌려놓았고, 3분기까지 기아차의 누적 매출액은 11조3411억 원으로 세계적인 경제 침체로 인해 자동차 업계가 사상 최악의 상황을 격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였다. 또한 올해 판매량도 경쟁사들이 모두 지난해보다 줄어드는 가운데 유일하게 16.8% 늘린 주역이기 때문이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자동차그룹 회장의 인적 쇄신이 가속화되고 있다. 세대교체와 맞물리며 강도도 높다. 작년만 해도 사장급 이상 인사가 10여 차례가 넘는다. 수시인사는 변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고 조직의 긴장감을 불어넣는 장점도 있다. 그러나 조직 안정성 훼손에 대한 우려도 만만치 않다.
현대기아차그룹은 지난해 12월 24일 기아차 생산 및 국내 담당 사장에 서영종 현대파워텍 사장을 임명했다. 이로서 기아차는 해외 판매 및 기획 담당인 정의선 사장과 함께 2인 사장 체제를 갖추게 된 셈이다. 그룹의 한 관계자는 “재판 때문에 미뤄진 인사가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일 뿐”이라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다는 장점도 있으며, 서 사장의 경우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축하고 판매 역량을 극대화하기 위해 임명했다”고 전했다.
기아차 후임 인사와 관련해 정 회장의 아들인 정의선 사장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 사장은 지난해 실적 부진 등을 이유로 대표이사직을 사임했지만 올해 기아차의 실적이 좋아지면서 연말 인사에서 현대차로 수평이동한 후 대표이사 임명, 부회장 승진 등의 코스를 밟는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내년 비상경영체제를 맞아 구조조정 등을 책임지고 진행할 사령탑이 필요한 만큼 정 사장을 이런 자리로 보직 이동시키기도 어렵지 않겠나 하는 의견도 많다. 하지만 이 또한 ‘럭비공’ 튀듯 누구도 알지 못한다는 게 그룹 내 분위기다.
정몽구 현대ㆍ기아차그룹 회장이 장남인 정의선 사장을 승진시키는 대신 승진 분위기 구축에 나섰다. 당장 경영권 승계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정 사장 시대를 대비한 차원으로 해석된다.
이는 그룹 정기 임원 인사에서 확연히 드러났다. 경영진 세대교체를 단행하고 부회장단을 두텁게 했다. 정 회장 부자(父子)의 출신대학 승진자도 눈에 띈다. 정몽구 회장의 이번 정기 인사는 그룹의 미래를 위한 포석이라는 회사 측 설명에도 불구하고 문제점은 안고 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경영진 간 갈등과 내년 기아차 실적 문제 등은 해결해야 할 과제다.
▶ 50대로 젊어진 사장단, 친정체제 구축
정몽구 회장은 광복절 사면 이후 세대교체에 본격 착수했다. 원로급 및 1세대 경영진을 퇴진시켰다.
김동진(58), 김용문(65) 현대차 부회장, 박정인(65) HMC투자증권 회장, 김익환(58) 기아차 부회장, 조남홍(57) 기아차 사장 등이 계열사로 가거나 고문으로 물러났다. 정 회장은 대신 50대를 주축으로 세웠다. 현대ㆍ기아차 부회장단도 6명에서 8명으로 늘려 참모진을 두텁게 했다.
현대차의 이정대(53ㆍ경영기획), 윤여철(56ㆍ노무), 최재국(60ㆍ국내외영업), 이현순(58ㆍ연구개발총괄), 최한영(56ㆍ상용차), 서병기(61ㆍ생산품질), 설영흥(63ㆍ중국사업) 등 7명의 부회장과 정성은(60ㆍ총괄) 기아차 부회장 등이 ‘2세대 부회장단’이다.
현대ㆍ기아차 관계자는 “(70년생인) 정 사장과 나이 차가 적은 경영진이 아무래도 함께 호흡하기 낫지 않겠느냐”며 “발 빠른 세대교체는 정 사장 시대를 본격 준비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하지만 부회장단 내의 보이지 않는 갈등은 ‘넘어야 할 산’이다. 지난달 중순에는 최재국 부회장이 맡고 있던 국내영업을 먼저 승진한 윤여철 부회장에게 넘기는 소폭의 업무조정을 했으나 내부 이견으로 일주일 만에 원점으로 돌아가기도 했다.
▶측근 배치, 부자(父子)대학 한양-고려대 라인 주목
최근 인사에서는 정몽구 회장(한양대), 정의선 사장(고려대)과 같은 대학 출신의 승진자들이 눈에 띈다. 이번에 승진한 최한영 부회장과 정성은 부회장이 한양대 출신이다. 특히 최 부회장은 현대 홍보맨 출신으로 2000년 현대그룹 승계를 둘러싸고 벌어졌던 ‘왕자의 난’ 때 대변인으로 현대차의 대내외 입장을 대변하며 정 회장의 신임이 상당히 두텁다. 지난해는 정 회장이 심혈을 기울였던 ‘여수 국제엑스포’ 유치를 위한 태스크포스 수장을 맡기도 했다.
최근 승진한 최재국 부회장과 이광선 사장은 모두 고려대 출신이다.
일각에서는 최근의 인사가 현대ㆍ기아차 내 눈에 보이지 않는 파벌 다툼의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그룹 관계자는 “그룹 인사를 부회장 몇 명이 주도한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돌고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관계자는 “정 회장이 비자금 사건으로 한바탕 수모를 겪은 후 ‘믿을 맨’ 중심으로 라인을 재정비 하는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정의선 시대 대비한 사전 ‘정지작업’
정의선 사장은 ‘현장 수업’쪽에 비중을 두는 모양새다. 당초 정 사장의 부회장 승진은 그룹 내에서 심각히 고려됐다. ‘실적이 좋은 올해가 적기’라는 의견이 공공연히 나왔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의 국내외 경제 상황과 맞물려 무리수 없이 때를 기다리자는 의견이 우세해 승진은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은 변수는 다음 달 보직인사 때 현대차로 수평이동, 3월에 물러났던 기아차 대표이사로의 복귀 등이지만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정 회장이 즐겨 쓰는 용인술로 “실적을 만들고 구체적인 명분을 쌓으라”는 메시지로 풀이된다. 이에 따라 올해 기아차 실적을 확실히 흑자구조로 만들어놓고 확실한 승진 요건을 구축할 것이라는 해석이 힘을 얻고 있다.
디자인 경영을 강조하는 정 사장을 기술 쪽에서 지원하기 위해 생산기술에 정통한 정성은 부회장을 포진시키고, 그룹 인사의 주축을 이루는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출신의 서영종 사장을 기용한 것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회사 관계자는 “내년 미국 조지아 공장 완공 등 굵직한 현안을 처리한 이후 (부회장 승진, 현대차 이동 등) 미뤘던 일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 사장의 승진에 관해서는 “(모든 것이 정 회장의 의중에 있기 때문에) 지금은 누구도, 아무것도 예측할 수 없다”는 게 회사 측의 공식 입장이었다.
▶잦은 인사, 약인가 독인가= 현대차그룹 인사는 예측불허다. 사안에 따라 수시로 단행된다. 작년과 올해에 걸친 임원 인사 모두 전격적이었다. 정 회장식 인사 스타일은 그룹 수뇌부의 조언을 듣고 정 회장이 즉각 결정한다고 한다.
이러한 인사스타일은 빠른 의사결정으로 시장상황에 민첩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최근 세계 자동차시장이 급격히 어려워지면서 발 빠른 인적쇄신을 통한 위기 돌파에 나섰다는 해석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나친 충성 경쟁이나 조직 불안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이러한 ‘럭비공 인사’가 이어지면서 현대·기아차 고위 임원들은 '언제 짐을 싸야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충성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 또한 다른 그룹에 비해 최고경영자들이 대내외 활동에 적극적이지 못한 것도 ‘알아서 낮추는’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한 애널리스트는 “잦은 경영진 교체는 조직에 긴장감을 유지시키기도 하지만 인사의 영속성 측면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전했다.
지난해 3월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현대·기아차 미국법인 경영진의 잦은 교체를 예로 들며 '군대 같은 기업 문화'라고 비꼬기도 했다. 실제 현대기아차 그룹에는 장교 출신이 많은 것으로 알려진다. 현대 그룹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특유의 가부장적인 기업문화도 한 몫 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익명을 요구한 계열사 관계자는 “회사 발전보다는 오너의 심기 방어에 경영의 흐름이 집중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움직임을 두고 실제 그룹 내에서는 “2인자가 따로 없다”, “눈 밖에 나면 곧바로 짐을 싸야 한다”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에 대해 현대차 측은 “수시 인사를 통해 조직에 긴장을 불어 넣어 요즘 같은 불황에 이만큼이라도 실적을 방어할 수 있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어떤 이유에서라도 황제식 경영에 의한 잦은 인사 조치는 글로벌 기업인 현대차 그룹의 위상에 걸맞지 않을 뿐더러 안정적 기업 경영과도 거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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