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 귀재도 백기 드나?


- 15일 산은-한화 최후통첩으로 협상 결렬 기운 감돌아
- 계약 결렬 시 보증금 3000억 원 반환 놓고 공방 예상

 

한화 김승연 회장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한화그룹의 대우조선해양의 인수 절차가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매각 당사자인 산은과 한화 측이 벌써부터 인수 포기에 가닥을 잡고 인수협상에 물려 있는 3,000억 원의 인수보증금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화는 15일 산업은행의 대우조선 분할 매각 거부 의사에 대해 “한화는 할 수 있는 성의를 다 보였다”는 의견을 전달함으로써 사실상 인수 성패 여부를 건 최후통첩을 보낸 셈이 됐다. 이번 인수 건이 무산될 경우 대우조선 인수를 적극 추진했던 김승연 회장의 속앓이가 적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인 가운데 과연 김승연 회장의 속내는 어떤 것인지 <뉴스포스트>가 분석해 보았다.

 

 

산업은행이 대우조선 매각을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한화컨소시엄을 선택한 것은 지난 해 10월 24일. 이후 11월 양해각서 체결과 1월 말 본 계약 체결까지 일사천리로 결정되며 사실상 한화그룹의 대우조선 인수 문제는 일단락될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지난 해 말부터 세계경제를 강타한 글로벌 경제 위기가 일파만파 번지며 국내 실물경제 위기까지 겹쳐 한화그룹이 구상했던 자산매각을 통한 인수자금 마련이 불투명하게 됐다. 은행권의 대출이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어려워진데다 내부조달로 마련하고자 했던 자금규모도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모두 실물 경제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에 따른 것이었다.
이에 한화 측은 황급히 일부 계열사 매각까지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진다. 실제로 산은 측과 자금조달계획 내용 문제로 신경전이 빚어지며 2조 원 가량의 자산매각 방침을 내놓았고, 추가로 1조 원 이상의 갤러리아 백화점 매각 방침까지 세웠던 것으로 알려진다.
문제는 이 같은 자산 매각이 한화, 산은 양측 모두에 만족스러운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데에 있다. 한화로서는 경기침체로 인해 제값을 받지 못한 채 자산을 매각해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했고, 산은 측은 기관투자가와 함께 별도의 사모펀드를 구성해 한화가 내놓은 자산을 매입해 향후 한화 측에 다시 돌려주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측은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였다. 산은은 7일 한화 측에 인수자금계획서를 다시 제출하라고 요청하며 이튿날인 8일 사모펀드 구성안을 공식적으로 발표했다. 이후 산은은 13일 다시 한 번 인수자금계획서의 보강을 다시 한 번  요청했다.
이렇듯 본 계약 체결을 앞두고 양측이 계속해서 파열음을 내자 재계는 한화 김승연 회장의 최종 선택을 주목했다.

 

김승연 회장은 지난 해 1월부터 글로벌 한화를 위한 단계로 대우조선해양 인수에 매달려온게 사실이다.
김 회장은 지난 해 신년 하례식에 참석해 “국내 시장에서의 수익성과 성장성을 뛰어 넘어, 신성장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아야 한다”며 “2011년 그룹 매출액 45조 원 달성과 해외 비중 40%를 반드시 달성해 달라”고 당부했다.
김 회장은 이어 9월 30일 공식적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2007년 차남이 폭행당한 것에 격분해 조직폭력배를 동원해 술집 종업원들을 보복 폭행한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키며 대표이사 자격을 상실한 이후 다시 주식회사 한화, 한화건설, 한화L&C, 한화테크엠 등 4개 계열사에 대표이사로 공식 복귀했다.
복귀에 앞서 김승연 회장은 7월 17일 전 계열사 대표이사들이 참석한 ‘하반기 경영전략회의’를 열어 그룹의 제 2도약을 천명하며 “한화야말로 대우조선해양의 강력한 프로펠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며 대우조선 인수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출했다. 이어 김 회장은 “인수에 성공하면 대우조선해양이 세계 제1의 조선사 및 해양자원개발회사로 도약하기 위한 과감한 투자와 혁신적인 미래 비전을 실현해 나가겠다”며 “국내외 경기 악화로 하반기에 스태그플레이션이 예상되는 등 경영환경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있지만 경영 혁신에 힘을 모아 연간 경영 목표를 반드시 달성하자”고 다짐했다.
여론은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 포기가 결국 적극적으로 대우조선 인수를 밀어부쳤던 김승연 회장에 적지 않은 부담을 끼칠 것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김 회장이 내놓을 새로운 카드를 기다렸다. 그러나 15일 한화가 내놓은 답은 “더 이상 새로운 카드는 없다”는 것. 현재 산은은 “한화가 진심으로 인수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며 원칙 고수를 주장하고 있어 대우조선 인수 문제는 별다른 해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대우조선 인수는 끝내 물 건너가나

 

대우조선 인수 문제에 있어 한화가 벼랑 끝에 몰렸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는 어렵다. 한화가 제기하고 있는 인수 상 어려움이 일견 납득할 만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설사 한화가 인수협상대상에서 탈락한다 하더라도 한화와 맺었던 계약과 비슷한 수준으로 6조원 가량의 계약을 성사할만한 기업이 없을 것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인수협상에 나선 한화의 의지가 당초 대우조선 인수에 나섰던 인수협상 초기에 비해서 상당히 누그러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한화는 산은의 추가 자금조달계획서 요구에 경기침체의 타격을 받고 있는 대우조선의 부실문제를 거론하고 나섰다.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에 관한 의지는 변함없다”는 공식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산은 측이 계약 전 대우조선 실사에 나서지 않는 점을 지적하며 가격 조정을 염두에 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대우조선은 1997년 인수한 루마니아 망갈리아조선소 등 적자를 내고 있는 해외조선소를 비롯해 자회사 부실로 인해 최근 2년간 총 2,000억원 대의 적자규모를 안고 있다. 이에 최근 조선업계에 불어닥친 키코 피해로 인해 3,000~4,000억 원대의 추가손실을 안게 된 점까지 감안해, 당초 계약과 같은 수준에서 계약이 어렵다는 것이 한화 측의 속내인 것. 
당초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가 무위에 그칠 경우 한화에 닥칠 것으로 예상되던 부담이 한결 적을 것이라는 관망도 뒤따르고 있다. 15일 한화와 산은의 신경전이 정점에 달한 이후 대우조선 인수건이 끝내 불발로 그치리라는 보도가 잇따르면서 한화그룹 계열사 주가가 일제히 상승했다.
16일 오전 한화 증시는 전날보다 950원 상승한 2만 4,600원을 기록했으며, 한화석화, 한화증권, 한화손해보험 등도 일제히 상승곡선을 그렸다. 증권가는 벌써 한화의 대우조선 인수포기에 방향을 잡고 있는 모습이다. 한 애널리스트는 “한화의 주가에는 불확실성 제거로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한화의 대우조선 포기에 있어 결정적인 걸림돌이 될 것으로 예상됐던 인수보증금 3,000억원에 대해서도 “한화가 벌써 법정공방을 염두에 두고 인수보증금 환수를 위한 준비에 착수했다”는 업계 관계자의 언급이 있었다.
이번 대우조선 인수가 난항을 겪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가 세계경제위기에 따른 것인 만큼 그룹의 출혈을 무리하게 감수하면서까지 대우조선을 인수해 이른 바 ‘승자의 저주’에 빠지기보다는 차라리 ‘인수 포기’를 연두에 둔 ‘배짱 협상’으로 응하는 것이 낫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만일 이번 인수건이 무산될 경우 한화와 맺었던 6조원 가량의 계약을 성사시킬만한 협상대상자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산은의 부담은 더욱 커지고 있다. 산은은 16일 "한화가 제출한 자금조달계획서와 지분 분할 매입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며 "한화의 요구를 검토한 후 다음 주 중 공동매각추진위원회와 이사회 논의를 거쳐 최종 입장을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승연 회장이 취임한 이래 한화는 한화석화, 한화갤러리아, 한화리조트, 대한생명 등을 줄줄이 인수하며 그룹의 몸집을 키워나갔다. 이번 대우조선 인수 건은 한화의 성장에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 그룹 내외의 평가였다. 하지만 M&A의 귀재로 불리워 온 김 회장의 진가가 드러나는 것은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라는 평가가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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