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의 자유 억압" VS " 국가 이익 부합“

- “80년대 만들어진 공안법 부활한 셈”
- “악성 누리꾼 막기 위한 유일한 해법”

 

미네르바 구속 논란과 함께 통신환경 및 사생활 침해 관련 법안들에 대한 논란이 격화되고 있다. 특히 미네르바 구속에 결정적인 근거로 적용된 ‘전자통신기본법’에 대해 찬반 논란이 뜨겁다. 시민사회는 이번에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이 인터넷 환경이 만들어지기 전인 80년대에 만들어져 지금까지 유명무실한 법안이었다가 이번에 문제가 된 ‘미네르바 사건’에 사용되면서 오히려 역사를 과거로 돌려놓는 역할을 하게 됐다”고 비난하고 나섰다. 그러나 ‘미네르바 구속’에 대한 찬성론자들은 “엄연히 법적 근거가 명백한 만큼 미네르바에 대한 구속 수사는 정당하다”는 입장이다. <뉴스포스트>는 전기통신기본법을 위시한 미네르바 사건 관련 법안과 그 적용 가능성에 대해 전문가들의 견해를 들어보았다.

 

 

“전기통신기본법은 80년대 전화상 허위 사실 유포 규제 목적으로 입안된 것이다. 당시에는 인터넷환경이 구성되기 전이었다. 그렇다보니 법조인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법이 있다는 것조차 최근에 알게 됐다.” 김보라미 변호사의 설명이다. 
‘미네르바 구속사건’이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면서 법조계에서도 설왕설래가 오가고 있다. 특히 미네르바 구속에 법적 근거로 작용된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미네르바’라는 필명으로 ‘인터넷 상에서 경제 관련 글들을 게재하며 경제상황에 혼란을 가중시켰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박 아무개 씨에 대해 김용상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지난 10일 전기통신기본법 위반을 문제 삼아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주요 사유는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다. 더불어 이번 구속영장에는 박 모 씨가 세계적인 경제위기 상황에서 국가 신인도를 해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보고 있어 눈길을 끈다.
이번에 적용된 전기통신기본법 제 47조는 ‘공익을 해할 목적’으로 허위의 통신을 한 자에 대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자기 또는 타인에게 이익을 주거나 타인에게 손해를 가할 목적’으로 같은 행위를 했을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을 명시하고 있다. 특히 본 법안에서 정위하고 있는 전기통신설비에는 휴대폰, 인터넷 등 현대사회에서 일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모든 커뮤니케이션 장비가 거의 다 포함될 수 있어 만일 이번 ‘미네르바 사건’에 대한 법안 적용이 인정될 경우 향후 유사한 상황에서 동 법안에 따라 규제될 대상이 급격하게 늘어날 소지가 있다. 때문에 이 같은 조항을 적용하는 데에 대해 적지 않은 법조인들이 난색을 표하고 있다. 법무법인 한강의 박윤원 변호사는 “47조 1항의 경우 기존의 언론, 표현의 자유에 의한 명예훼손 사건들과는 달리 특정한 누군가의 명예를 훼손했다거나 하는 등의 범죄구성요건을 필요로 하지 않아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을 통해 알려진 미네르바 사건의 조사과정 또한 이 같은 법리 적용의 난감함을 방증하고 있다. 관련보도에 따르면 검찰은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박 모 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조사 초반 이틀을 박 모 씨가 진짜 미네르바인가 아닌가 하는 문제에 매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윤원 변호사는 “정부에서 은행권에 외화매입금지령을 내린 것이 약간의 시간적 차이는 있지만 사실일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던데, 그렇다면 검찰은 제1항을 적용시키기가 어려울 것”이라며 “그러면 자연스럽게 개인의 이익을 취하거나 타인의 이익을 침해한 흔적을 조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실제로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박 모 씨의 계좌추적을 벌이는 등 금전적 이동 경로를 추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무법인 정평의 송호창 변호사는 지난 15일 민주당 최문순 의원이 주최한 미네르바 구속 관련 긴급토론회 ‘인터넷 막걸리 보안법 철폐하라’에 참석해 “이 사람이 정말 미네르바인지 아닌지에 대한 조사만 이틀을 하고, 경제 전망에 관한 글을 두 시간에 걸쳐 써보라고 했다더라”고 지적했다. 이 같은 지적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한 최 의원은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사람을 붙잡아 그 사람이 미네르바인지 아닌지 수사하는 것은) 전형적인 선 체포 후 수사에 해당하는 것”이라며 “이는 민주인사 잡아들이는 악습 중 하나”라고 성토했다. 
   
UN인권위 허위사실 유포법 폐지 권고

 

박윤원 변호사의 설명에 따르면 현재까지 ‘전기통신기본법’에 대한 위반 판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나 박 변호사는 “촛불시위 때 고등학생이 휴업을 하자는 휴대폰 문자메시지를 학생들에게 전송한 것과 관련해 재판하며 1심에서 휴업 권고를 허위사실 유포로 볼 수 없어 무죄가 선고됐으나, 촛불시위 때 여대생 사망 사실을 인터넷에 유포한 사람이 허위 사실 유포로 1심에서 유죄선고를 받은 예가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80년대 이후 사법선상에서 사용되지 않았던 법안이 유독 촛불 관련 사례들에 집중적으로 적용되고 있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는 것이다. 최문순 의원은 전기통신기본법의 재활에 대해 “83년 탄생해 미라가 됐던 법이 강시가 돼 칼을 휘두르고 있다”는 말로 현 상황을 일축했다. 통신환경이 전적으로 다른 상황에서 독재 정권의 잔재로 만들어진 과거의 법안이 현재의 상황에 적용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이번 ‘전기통신기본법’ 적용 논란은 단순히 미네르바로 추정되는 개인의 사법처리 문제에서 벗어나 전반적인 민주주의 제도적 환경문제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미네르바 구속사건’ 이후 법조계와 시민사회는 잇따라 토론회를 개최하며 이 문제에 대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부 학자 및 전문가들은 이 같은 현상이 종합적으로 민주주의의 퇴화로 연결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박경신 고려대학교 법대 교수는 “일부 독재국가를 제외하고 현재 자유민주주의 국가 중 허위사실 자체를 처벌하는 것은 우리나라 뿐”이라며 “UN인권위원회가 허위사실 유포 관련법이 국제 인권 기준에 반한다고 보고 이에 대한 폐지를 권고해 왔으며 이러한 경향은 2000년대 들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고 국제적인 상황을 설명했다.
‘허위사실 유포’ 행위에 대한 규제를 폐지하거나 제정하지 않는 추세가 이처럼 세계적으로 는 통용되는 데에는 이에 대한 사실판단에 대해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며,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 법률 적용이 남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을 안고 있기 때문이다. 김보라미 변호사는 이 같은 법률 적용이 가능해질 경우 “정치나 정책을 비판하는 경우,명예훼손 조항이 적용되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광범위하게 남용되는 것은 문제가 있다”며 “(국내의 경우)이미 헌법재판소가 명예훼손, 사실판단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바 있기 때문에 허위사실 유포 조항에 대해서는 폐지하는 방향으로 나가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또한 ‘허위사실 유포’나 ‘명예훼손’에 대한 법적 규제는 기본권의 하나인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함과 더불어 이 같은 법률적용 남용이 현실화 될 경우 주로 정부 당국을 주체로 하는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위축 현상이 일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최문순 의원은 “미네르바 학습효과는 곧바로 나타나고 있다”며 “미네르바의 구속 이후, ‘필립피셔’ 등 경제 고수로 일컬어지던 인터넷 논객들이 자신의 게시글을 삭제하고 블로그를 폐쇄하는 등 사이버상 ‘위축 효과’가 실제 나타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편, ‘미네르바 사건’으로 인해 인터넷 환경규제에 대한 논의가 불붙고 있다. 대표적 TV토론프로그램인 MBC 100분 토론이 ‘미네르바 전격 구속 수사’ 주제로 15일 방송을 편성한 데 이어 한 유명 포털사이트 또한 진보와 보수진영을 대표하는 논객 진중권 교수-변희재 대표의 맞장토론을 개최한다고 밝혔다.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미네르바는 영웅도 아니고 사기꾼도 아닌 블로거일 뿐”이라며 “이번 사건은 디지털 마인드가 없는 정부의 무지와 무능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비판하고 있어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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