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각 앞두고 TK-PK 대충돌

 

국세청장의 사퇴도 ‘TK-비TK 대결의 산물
청와대 및 정부청사 주변 음해성 투서 난무


 “죽 쒀서 PK 줬다.” “TK 정권이 아니라 PK 정권이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후 지난 1년 동안 대구·경북(TK) 지역에선 불만이 팽배했다. 경북 포항 출신인 이 대통령의 집권으로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 15년 동안 당했던 인사차별(?)을 일거에 만회하나 싶었지만 현실은 그렇게 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출범 초기 고·소·영(고려대·소망교회·영남) 내각이란 비아냥에서 보듯 영남 출신이 대거 약진한 것이 사실이지만 이때의 영남은 상당수가 부산·경남(PK)이고 TK는 상대적으로 요직 발탁이 적다는 불만이 팽배했다.


 실제로 대통령실의 경우, 정정길 실장을 위시한 10명의 수석비서관급 이상 가운데 영남 출신은 절반에 가까운 4명이지만 이들은 모두 PK 출신이다. 정정길 실장이 경북고를 나와 TK 정치인들과 가깝지만 고향은 경남 함안이다.


 또 여당인 한나라당도 PK들이 핵심 요직을 차지하는 바람에 “의회 권력이 PK에 넘어가 버렸다”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물론, 박희태 대표, 홍준표 원내대표 등이 모두 PK다.


 이 같은 TK들의 상대적 박탈감, 역차별 피해의식은 곧 PK에 대한 조직적 견제로 이어졌다. 정·관가를 포함해 사회 각 분야에서 TK의 암중모색이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PK를 비롯한 비(非)TK들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과거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 시절 누렸던 영화를 잊지 못해 또 다시 사회 전체를 TK가 장악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잔뜩 긴장하고 있다.

 

 

 

 특히 양측의 불만이 충돌한 시점에 이 대통령 취임 1주년(2월25일)을 전후해 개각 등 정부 요직을 대상으로 하는 대대적인 인적쇄신론이 제기되면서 불미스런 일마저 발생하고 있다.


 요즘 서울 광화문과 경기도 과천의 정부청사는 일손을 놓다시피 하면서 서로 동향 파악에 분주하고 청와대 주변에는 투서가 난무한다.

 

대개는 확인되지 않은 사생활 등을 거론한 ‘음해성’ 투서지만 더러는 구체적 정황이 포착되기도 해 청와대 민정라인이 확인 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한다.


 그 중에서도 장관 교체설이 나도는 경제 및 외교안보 부처, 1급 공무원들이 일괄사표를 낸 부처에서 ‘TK 독식설’이 불거지면서 비판 여론이 일고 있지만 TK는 TK 나름대로 역차별을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그림 로비 의혹으로 사표를 제출한 한상률 국세청장이 TK 인사들과 ‘골프 회동’을 가졌다는 의혹도 투서 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진다.

 

한 청장을 지목한 투서는 이 밖에도 몇 건 더 청와대에 전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 국세청장의 사퇴까지 불러온 그림 로비 의혹이 폭로된 자체가 ‘TK-비TK 대결구도’의 산물이란 해석이 유력하다.

 

하지만 어쩌면 이번 일은 TK와 비TK, 좀 더 구체적으로는 TK와 PK의 전면 충돌에 앞선 서전에 불과하다는 말도 나온다. 그만큼 양측의 헤게모니 다툼이 치열하다.


 TK는 “대통령을 배출한 지역이라고 역차별은 당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지만 실제론 지난 15년 동안 받았던 인사 홀대를 이명박 대통령 임기 중에 만회 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TK 출신 한 핵심 인사는 “TK가 15년간 ‘박해’를 받다보니 사회 각계에 TK의 씨가 말라 있더라, 쓸래야 쓸 인물이 없다”고 한탄하면서 “그나마 가용한 인력을 총동원해 이른 시일 내에 정상적으로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인사 과정에서 다소 무리를 해서라도 그들이 ‘차별’을 받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을 시정하겠다는 의미다.


 반면, 김영삼·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인재 풀이 많아진 PK는 “순리대로 인사를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 각 부처의 허리에 PK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는 점을 감안해 순리에 따른 승진 인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런 모습을 지켜보는 호남과 충청 출신 여권 인사들은 속을 부글부글 끓이면서 ‘영남만의 인사 잔치’을 비판하고 있지만 세력이 워낙 약하다.


 이런 가운데 현재 정치권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의원이 TK를 챙기고, MB진영의 군기반장으로 귀국을 앞둔 이재오 전 의원이 비TK의 결집으로 맞서고 있다는 소문까지 있다.


 그러자 민주당이 다시 ‘형님 인사’ ‘TK 인사’ 시비를 걸며 여권의 내전에 기름을 끼얹고 나서는 바람에 정치권이 인사 파동에 휩쓸릴 전망이다.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15일 “설 연휴 전후로 예상되는 개각이 이른바 ‘형님(이상득 의원) 인사’, ‘TK 인사’가 될 것이라고 한다”고 말했다.


 원 원내대표는 이날 당 공식회의 석상에서 “경찰청장의 유력한 후임 후보로도 TK 출신이자 최시중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가 거론되고 있다”며 그같이 주장했다.


 이상득 의원은 원 원내대표의 발언을 전해 듣고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지난해 2009도 예산안 심사 때 증액된 포항 관련 예산을 ‘형님 예산’이라고 부르며 시비를 건데 이어 또 다시 자신이 전횡을 행사하는 것처럼 거론하자 “해도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며 불쾌해 했다는 전언이다.


 그의 한 측근은 “정말 억울하기 짝이 없다. 이 의원이 정말 곤혼스러워하고 있다” 며 “10년 넘게 이 의원을 지켜봤지만 인사 문제에 개입한 것을 본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이 의원은 인사 청탁이 들어 올 경우 “ 안 그래도 ‘만사형통’이라고 하는데···”라며 강하게 물리치는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그런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 의원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꼬이고,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는 사람들이 줄을 선다. 대개는 동향인 대구·경북 출신이고 그러다 보니 이 의원이 ‘TK 인맥 심기’의 대부처럼 인식돼 있다.


 따라서 비TK로서는 이 의원을 견제하는 것이 곧 TK 견제가 되기 때문에 지난해 6월 정두언 의원이 이 의원 등을 겨냥했던 ‘권력사유화’ 발언도 나왔었다.

 

이후 반년 동안 여권 내부 친이 계의 헤게모니 다툼은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지만, 연초 대대적인 인사를 앞두고 TK와 비TK의 한판 대결 양상으로 다시 부상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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