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붙은 ‘학동마을’…국세청 삼키다

한 청장, 전군표 청장과의 갈등이 불씨
대통령 동서, 이상득 지인과 골프 ‘물의’

 

국세청이 또 다시 비리혐의 의혹에 둘러 쌓였다. 한상률 국세청장이 인사 청탁을 위해 전임인 전군표 전 국세청장에게 그림을 선물했다는 주장이다. 이 같은 주장은 전 전 국세청장의 부인 이 모씨에 의해 제기됐다. 이 씨는 “2007년 당시 한상률 차장 부부와 식사를 하고 그림을 선물 받았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청장은 “그림을 본 적도 없다”면서 부인해 과연 누구의 말이 옳은지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하지만 부인에도 불구하고 한 청장에 대한 의혹이 가시지 않고 있다 .여기에 이상득 의원의 지인들과 지난 해 연말 골프모임을 가지면서 인사 청탁을 했다는 의혹도 있어 향후 검찰 수사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 전 청장의 부인 이 씨가 그림을 맡긴 곳은 서울 종로구의 G갤러리.
이곳의 대표 홍 모 씨는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 씨가 찾아와 그림을 판매하고 싶다는 의뢰가 들어왔다. 그때가 작년 10월 정도였다. 그림은 고 최욱경 화가가 아크릴 물감으로 그린 ‘학동마을’이었다”고 말했다.
홍 씨는 “그림에 대해 묻자 이씨가 ‘부하 직원에게 선물 받았다. 그림에 대해서 잘 몰라 그냥 갖고 있다가 급하게 돈이 필요해 그림을 내놓게 됐다’며 당시 상황을 상세히 설명했다”고 덧붙였다.
이씨의 말에 따르면 그림의 출처는 한상률 청장이며 인사 청탁을 목적으로 찾아와 그림을 놓고 갔다.
이와 함께 한 청장은 자신과 차기 청장자리를 놓고 경쟁구도에 있는 지방국세청장 A씨에 대한 사퇴 시나리오까지 만들어 왔다는 것이다. 이후 A씨는 돌연 사표를 제출했고 국세청 내부 통신망을 통해 “성과와 보상이 일치하는 인사문화를 만들어야 한다”며 국세청의 인사를 비판했다.
이런 로비 의혹에 대해 일본을 방문 중이던 한 청장은 귀국 기자회견을 갖고 “그림을 본 적도 없다. 4명이서 같이 만난 적도 없다”며 모든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런 사실을 말한 사람이 다름 아닌 전 국세청장의 부인이라는 점과 정황이 비교적 상세하다는 것이 설득력을 낳고 있다.

 

그림 출처와 공개 시점 의문


가장 큰 의문은 그림의 출처와 의뢰자이다. 미술계 관행상 그림의 주인을 공개하거나 출처를 말하지 않는 게 불문율처럼 돼 있는데 이번처럼 주인과 출처가 입소문을 탄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는 것.
미술계 관계자는 “보통 그림을 누가 갖고 있었으며 어디서 났는지는 공개하지 않는다. 이번 같은 경우는 드물다. 이씨가 평소 알고 지내던 홍 대표에게 의뢰한 것인데 이것이 입소문을 타서 공개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씨가 받은 ‘학동마을’은 어떻게 한 청장이 소장하고 있었던 것일까.
‘학동마을’이 전시된 적은 지난 2005년 최욱경 화가 20주기 회고전이다. 당시 소장자들이 갖고 있던 최욱경 화가의 작품들을 K갤러리에 받아 전시한 것이다.
모 언론에 의하면 당시 ‘학동마을’은 도록엔 있었지만 전시를 하지는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시기에 K갤러리는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았다. K갤러리는 2004년 8월 탈세와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서울지방국세청의 특별 세무조사를 받은 것이다.
미술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K갤러리는 해외 작가와 작품을 자주 전시하는 곳이라고 한다. 특히 외국의 고가 미술품들을 사들이는 곳은 국내 갤러리들 중에 흔하지 않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그렇다면 외환관리법 위반 등으로 조사를 받았다는 것은 납득이 가는 부분이다.
그런데 이곳을 담당했던 곳은 서울지방국세청 조사 4국이었다. 조사 4국은 국세청의 중수부처럼 특수, 기획조사를 전담하는 곳이다. 한마디로 확실한 증거가 있지 않는 상태에서는 함부로 조사에 착수하지 않는 곳이다. 물론 강도 높은 조사로도 유명하다. 결국 이런 곳에서 조사를 했다면 결코 혐의를 벗어나지 못하게 된다. K 갤러리 역시 4개월여 간의 조사를 받고 7억 원의 세금을 추징당했다. 하지만 외환관리법 위반과 관련돼서 어떠한 법적 처벌도 이뤄지지 않았다. 당시 K갤러리의 외환관리법 위반에 대해 조사를 한 조사 4국의 수장은 한 청장이었다.
이 때문에 당시 조사를 담당한 한 청장이 K 갤러리의 혐의를 축소해 주고 댓가성 뇌물로 ‘학동마을’을 받았던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대해 K갤러리 이 모 대표는 “한 청장을 만난 적도 없고 세무조사를 받은 적이 없다”며 로비설에 대해 부인했다.
또한 한 청장은 지난 해 재산공개 때는 이 그림을 신고하지 않았다. 결국 한 청장이 그림을 어떻게 소유하게 됐는지 속 시원히 밝히지 않는다면 의혹은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인다.
의문점은 또 있다. 바로 이씨가 한 청장에게 그림을 받은 사실을 왜 이 시점에서 공개했느냐는 것이다.
우선 이씨와 홍 대표의 관계도 의혹을 불러일으킨다. 홍 대표의 남편은 서울지방국세청 B국장이다.
B국장은 본청 총무과장, 서울청 조사 1국장을 거쳐 대구지방청장을 역임했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청와대 근무도 하면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한 청장이 취임하면서 그의 앞길은 흔들렸다. 지난 해 인사에서 국장으로 좌천된 것. 후속 인사에서도 외부 교육을 가는 것으로 예정돼 있었다.
이 때문에 B국장은 상당히 낙심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충분히 한 청장에게 섭섭한 마음이 들었을 수 있다는 게 국세청 안팎의 얘기다.
그렇다면 이씨는 어떨까. 이씨의 남편인 전군표 전 청장은 이미 수뢰혐의 등으로 인해 수감생활을 하고 있다.
현 시점은 4대 권력기관장의 교체와 유임설이 나돌고 있는 상황이다. 이전까지만 해도 청와대는 임채진 검찰총장과 한상률 국세청장은 유임 쪽으로 가닥을 잡은 듯 보였다. 하지만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상황에서 이씨가 그림 로비설을 터뜨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전 전 청장은 한 청장을 재임시절 상당히 밀어줬는데도 불구하고 전 전 청장이 수감되자 안면을 몰수했고 이 때문에 이씨는 한 청장에게 수차례 섭섭한 마음을 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청장 이대통령 동서와도 만나

 

한편 한 청장이 지난 해 연말 이상득 의원의 지인들과 이 대통령의 동서를 만난 사실이 확인되면서 인사 청탁 의혹도 제기됐다.
지난 해 12월 25일 크리스마스 휴일을 맞아 권력 핵심에 있는 인사들의 지인들과 모임을 갖고 골프를 쳤다는 것이다. 골프회동 후 회식자리엔 이 대통령의 동서까지 참석했던 것으로 밝혀져 로비의혹을 낳고 있는 것이다. 한 청장은 당시 골프를 치기 위해 가명까지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엔 정부의 개각설이 무성했던 시기여서 한 청장이 거취를 의논하기 위해 만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한 청장은 지난 12월 26일 경주세무서 신청사 준공식에 참석하기 위해 하루 전날인 25일 경주로 내려갔다. 한 청장은 25일 오전 경주의 한 골프장에서 라운딩을 했는데 여기에는 영덕출신의 한나라당 강석호 의원, 최영우 포항상공회의소 회장, 김은호 중소기업이업종교류회 대구경북 연합회장과 함께였다.
그런데 한 청장과 함께 골프를 친 인사들이 모두 이명박 대통령, 이상득 의원과 친분이 두텁다는 것이다. 먼저 김 회장은 고려대 후배로 이 대통령과 상당히 가까운 사이다. 영부인 김윤옥 여사를 형수님이라고 부를 정도라고 한다.
최 회장은 포항의 유력 인사로 통한다. 경북상공회의소협의회 회장도 함께 맡고 있는 최 회장은 지난 총선 때 경기도 광명에 한나라당 공천을 신청하기도 했다. 강 의원은 이상득 의원의 핵심 라인 인사로 손꼽힌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들과 함께 골프를 쳤다는 것은 한 청장이 자신의 거취를 표명하고 이를 로비하기 위해 만났을 가능성이 크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지방 세무서 신축행사에 청장이 바쁜 일정을 뒤로 하고 경주까지 내려갔겠느냐”고 주장했다.
이런 의혹에 대해 당사자들은 입을 굳게 닫고 있다. 다만 만난 것은 사실이지만 일각에서 주장하는 로비는 없었다는게 공통된 주장이다.
한 청장의 이상한 행보는 계속됐다. 골프를 끝내고 대구에 있는 모 음식점으로 자리를 옮겨 저녁을 함께 했다. 여기에는 또 다른 인물이 한 명 더 동석했다. 바로 이 대통령의 동서인 신기옥씨다. 신씨는 김윤옥 여사의 셋째 언니의 남편으로 경북고교 총동창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한 청장은 “이 대통령의 동서인지 몰랐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의 관계자는 “하필 그곳에 신씨가 있었다는 것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  때에 따라 검찰 조사를 받는 불명예를 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임인 이주성 전 청장과 전군표 전 청장이 사법처리 된 이후 국민들에게 머리를 조아렸던 한상률 청장. 비리혐의가 사실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자진사퇴를 선택하고 말았다. 그림 로비 진위 여부에 대해 검찰조사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이로써 국세청은 수장이 3연속 불명예 퇴진이라는 오점을 남기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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