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 보증금 누구 손에?

 

한화, 김앤장 선임, 치열한 법정공방 예고
산은, “기업 지원에 사용하겠다” 입장 밝혀

 


3000 억 원에 달하는 이행보증금 반환 소송을 앞두고 한화그룹과 산업은행 양측의 긴장감이 높아지고 있다. 한화컨소시엄은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후 산업은행과의 MOU체결 당시 전체 대금 중 5%에 해당하는 금액을 선납했다. 인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한 금액이지만 매각대금 자체가 6조원을 넘는 만큼 이행보증금도 3000 억 원이라는 어마어마한 액수다. 얼마 전 롯데주류에서 인수한 ‘두산 처음처럼’ 매각가가 5030 억 원이었고 주력 계열사인 한화석유화학의 지난 2007년 당기순이익이 약 2000 억 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한화는 쉽게 물러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구정연휴를 이틀 앞둔 지난 22일 산업은행과 한화그룹에는 긴장감이 팽팽했다. 이날 오전 산업은행은 기자간담회를 열고 “한화컨소시엄과 대우조선해양 매각협상이 무산된 것은 전적으로 한화의 책임”이라며 먼저 초강수로 포문을 열었다.
그러자 오후에는 한화그룹에서 사장단회의가 소집됐다. 이 자리는 지난해 4월 대우조선해양 인수전을 시작한 후 무산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향후 임직원들이 동요 없이 비상경영계획을 추진해 줄 것을 당부하는 자리였지만 임원들 사이에서는 “산업은행의 적극적인 참여가 저조해 협상이 결렬됐다”는 성토가 터져 나왔다.
정인성 산업은행 부행장은 이날 여의도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화가 양해각서의 규정과 다른 사항을 요구해 협상이 결렬된 만큼 모든 책임은 한화 측에 있다”며 “한화가 최근 제출한 자금조달 계획서상 인수자금이 매각 대금에 크게 못 미쳤다”고 말했다.
그는 “한화의 지분 분할 인수 방안은 양해각서의 기본 내용을 준수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공적기관의 공개경쟁 입찰에서 요구되는 공정성과 투명성 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덧붙였다.
이어서 “인수합병(M&A)은 또 다음 기회가 기다리고 있는데 기본원칙을 훼손할 수 없다. 원칙이 무너지면 전체 시장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며 자금조달 계획이 미흡한 한화와 거래를 하는 것은 대우조선에도 도움이 안 되고 종국에는 내수시장까지 힘들어지지 않겠나하는 판단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화의 귀책사유는 양해각서상 합의된 내용과 다른 주장을 하면서 최종계약 체결을 거부한 것으로 3000 억 원이 넘는 이행보증금은 양해각서에 따라 몰취해 지분비율대로 자산관리공사와 배분, 기업지원 자금으로 쓸 계획”이라고 말을 마쳤다.
이에 대해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금춘수 사장은 같은 날 전 계열사 사장단 회의에서 “그 동안 그룹의 전 임직원이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해 총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무산에 이르게 됐다”며 “전대미문의 금융위기 하에서 계약 성사를 위해 상호 윈윈할 수 있는 현실적 대안을 제시했으나 수용되지 못한 점이 아쉽고 급격한 조선경기 위축으로 인수대상 기업의 부실 규모가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정밀실사 없이 본 계약을 체결하는 것은 무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동안 산은의 적극적인 도움이 없었기 때문에 정확한 실사를 거쳐 부실 여부를 판단할 수 없어 종국에는 협상이 결렬됐다는 속내를 표현한 것이다.
또한 한화석유화학과 (주)한화, 한화건설 등 컨소시엄 3사는 같은 날 22일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된 것에 대해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라며 산은에서 매각 무산의 책임이 한화측에 있다며 협상 결렬 사실을 발표한데 대해 “산은은 사상초유의 경제 위기 상항을 감안해 이번 인수 건을 대승적 차원에서 접근해야 했다”고 반박했다.
한화컨소시엄은 “산은은 우리에게 노조와의 사전 협의를 요구해 원활한 실사가 이뤄지지 못한 근 본원인을 제공했다”며 “수주가 취소되고 신규 수주가 전혀 없어 잠재 부실이 우려되는 대우조선의 실질 가치를 모르는 상태에서 6조원대의 초대형 계약을 체결할 처지였다”고 협상 과정의 불만을 나타냈다.
한화컨소시엄은 법무법인 세종에 법률검토를 맡겼으며 로펌 김앤장을 법정 대리인으로 정하고 이미 납부한 이행보증금을 회수하기 위해 산은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다.
법률 전문가들은 일단 산은측이 유리하지 않겠냐는 입장이다. 인수를 중도에 포기한 업체의 논리가 빈약해 공박 받을 우려가 많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법조계 한 인사는 “금전적인 채권·채무와 관련해서는 국가 부도 상황이 아니라면 협상 파기의 사유로 인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한 “외부적 요인이 발생했어도 매각 주체자가 고의성을 가지고 그 위기 상황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는 게 입증돼야만 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앞선 기존 판례들도 해당 기업의 주장에 긍정적이지 못하다. 대법원은 1963년 매매계약과 잔금을 지급하는 기간 사이에 화폐가치의 변동이 극심하더라도 그 계약을 해제하지 못한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학계의 반응도 비슷하다. 한 법대 교수는 “애초 MOU를 작성할 때 ‘경기가 급속히 나빠질 경우 계약사항을 변경한다’는 내용을 명문화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예측하지 못한 금융위기를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를 놓고 치열한 법률 공방이 예상되지만, 미국 등의 판례에서도 지진 등 자연적 재해가 아닌 이상 계약을 변경할 수 있는 사정 변경의 사유로 인정한 경우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이행각서 등이 파기될 때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과실이 없었다면 세계적 금융위기가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그는 “법원이 대법원 판례와 어긋나는 판결을 하기보다는 조정하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이번 협상 결렬로 인한 상처는 일단 한화측이 깊어 보인다. 혹시 찾더라도 소송이 끝날 때까지 막대한 자금이 묶이게 된다. 또한 소송 제기 시점도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한화그룹 관계자는 “실제 소송까지는 준비할 것도 많고, 시점도 살펴봐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지금 당장 소송에 들어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한화가 산은으로부터 받은 여신이 소송에 부담이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일각의 시각이 있지만, 이건은 별개로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을 밝혔다.
김 회장은 대한생명 등을 인수하면서 ‘재계의 승부사’라는 명칭을 얻었다. 김 회장은 지난달 13일 일본으로 출국, ㈜한화 도쿄법인과 사업장들을 방문한 뒤 31일 일본에서 귀국한 뒤 임직원들에게 “대우조선해양 인수 무산 등 지난 일에 신경 쓰지 말고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화그룹은 이미 지난 달 19일 비상경영을 선포하며 현금유동성 개선에 주력할 것을 강조한 바 있다. 한화는 대우조선 인수 포기로 오히려 현금에 여유가 생겼다. 김승연 회장과 한화그룹이 대우조선해양을 포기한 후 절치부심하며 시간이 걸리더라도 다른 M&A를 준비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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