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동아 조성식기자가 본 ‘한국의 조직 폭력’
신동아 조성식기자가 본 ‘한국의 조직 폭력’
  • 정자은 인턴기자
  • 승인 2009.02.18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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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과 낭만은 가고 돈만 판친다

전설이 된 ‘야인시대’ 돈 중심으로 세대 교체
김두한의 이정재 살해 지시 등 비화도 담아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주먹들이 있다. 그들은 ‘깡패’일 수도 있고, ‘양아치’일 수도 있고, ‘조폭’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그들에 대해서 아는 내용은 대체로 비슷하다. 가지런한 수염과 함께 떠오르는 김태촌, SBS 드라마 <모래시계>(1995)로 유명한 조양은, 김두한의 후계자로 잘 알려진 조일환. 또 우리는 대부분 희화화·과장으로 재구성된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서 본 것이 그 세계에 대한 전부다. 영화 <친구>(2001)에서 보여준 의리, <비열한 거리>(2006)에서 보여준 뒷골목의 풍경, 아니면 <투사부일체> 시리즈에서 보여준 무식함 정도. 그것을 바탕으로 우리는 실제 조폭들의 세계를 상상하거나 추정한다.
하지만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동아일보사 출판 저자 조성식)를 통해서 ‘리얼’한 주먹세계를 알 수 있게 됐다. 우리가 상상했던 것은 2%에 불과하다. 이젠 98%를 경험할 차례다. 조 기자가 말하는 주먹세계와 그 계보 중에서 관심을 끌만한 주제들을 소개한다.

 


- 건달계의 새 풍속도


처음 건달세계에는 ‘멋’과 ‘낭만’이 있었고 ‘의리’가 있었다. 하지만 SBS 드라마 <야인시대>(2002)가 한창 인기를 끌 무렵, 조성식 기자가 주먹계 세태를 취재했을 땐 그 풍속도가 바뀌어 있었다고 한다. 주먹은 사라지고 돈만 남은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현역 주먹들을 조 기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30대 후반~50대 초반인 이들은 다들 자기 사업을 하고 있었고 자신감이 넘쳤다. 나는 그들의 얘기를 들으며 주먹계 세대교체가 이뤄졌다고 판단했다. 이들에게 선배 주먹들의 영향력은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들은 독자적인 세력을 갖고 서로의 영역을 존중하면서 주먹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니까 의리나 충성심, 정의감과 낭만이 흐르던 ‘야인시대’는 전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리고 전통과 계보에 얽매이지 않으며 탄탄한 자금력을 갖고 있는 신흥조직의 젊은 주먹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게 된 것이다.

 

- 김홍빈이 말하는 진짜 야인시대


1950년대 서울 주먹계는 김두한, 시라소니(이성순), 이정재, 이화룡 4명이 좌지우지 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들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야인시대>이기도 하다. 그중 김두한이 실력으로나 명성으로나 한국 최고의 주먹이었지만, 그가 정치활동을 시작하면서 조직이 거의 무너졌다고 한다. 그때 조직으로는 이정재의 화랑동지회, 혹은 동대문 사단이 가장 셌다고.
시라소니를 형님으로 모시던 주먹계의 산증인 김홍빈 씨의 말에 따르면 이정재의 세력이 커지면서 김두한의 주먹계 입지는 매우 좁아졌다. 이정재가 동대문 시장을 발판으로 종로와 광화문, 서대문 일대까지 장악하자 김두한은 갈 곳 또한 없었다고. 그리고 돈 문제 등으로 인심을 잃은 탓에 그를 따르는 동생도 별로 없었다. 그래서 말년에 사업 실패로 빚쟁이들에게 시달렸고, 어떻게 죽었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실제로 김두한이 자신과 김명신을 불러 권총을 쥐어주며 이정재를 제거해 달라고 부탁한 적도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포함한 4명이 이틀 동안 이정재 사무실 부근 다방에서 백주 테러 계획을 세웠지만, 양쪽이 화해하는 바람에 없었던 일이 되어버렸다고. 또 그 무렵 종로에서는 김두한과 시라소니의 대결도 있었다. 그때도 김두한이 시라소니에게 “형님”이라 부르며 굽히는 바람에 자웅이 가려지지 않은 채 대결은 싱겁게 끝났다는 게 김홍빈의 설명이다.

 

- 시라소니 이후 ‘맨손주먹 1인자’ 조창조


조 기자는 조창조의 첫 인상이 ‘호남아(好男兒)’였다고 기억한다. ‘싸움의 달인’, ‘실전의 황제’로 불리는 그는 맞장에서 져본 적이 없다는 신화적인 주먹이기도 하다. 책에 서술된 조창조 이야기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평생 특정 조직을 거느린 적이 없으면서도 주먹계의 대부로 인정받은 것은 한국 주먹사에서 특이할 만한 사례’라는 저자의 말도 그렇지만, 유년 시절 이야기가 더욱 그랬다.
조창조의 주먹신화는 중학생 때부터 시작됐다. 그는 가방에 권투글러브를 넣고 다니며 방과 후 적당한 상대를 불러내 판을 벌이곤 했다. 6·25 직후라 사회가 불안했기 때문에 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덕분에 학교에서 그를 모르는 학생이 없을 정도였고, 대구 시내 중·고등학교의 이름난 싸움꾼들도 모두 그의 주먹에 나가떨어졌다고. 조창조는 이제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세계에서 라이벌이 없어요. 조일환이나 구달웅이나 다툴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제는 다들 나이가 들어 친구로 좋게 지냅니다. 그들이 한 가지 인정하는 게 있어요. 싸움으로는 나한테 안 된다는 것. 그걸로 저는 만족합니다. 그렇게 인정해주니 고맙지요.”
또한 조 기자와의 인터뷰 말미에 했던 말도 인상적이었다. “건달 아우들아, 가슴으로 안으마. 머리로는 절대 안지 않으마. 그들을 가슴으로 안고 끝내고 싶어요.”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주먹세계와 계보를 다룬 1부 ‘주먹들, 비탈에 서다’, 김태촌·조양은·안상민 등 8명의 주먹들의 개인사를 다룬 2부 ‘가지 않은 길’, 마지막으로 ‘조폭수사 대부 조승식 전 검사의 수사비화’까지. 서울고등검찰청 박영수 검사장의 말처럼, 이 책은 ‘인간의 본성인 폭력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바탕으로 주먹세계의 실상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 다양한 실태를 세밀하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지금까지 발간된 주먹 관련 서적과 달리 주목할 만하다.


저자가 말하는 ‘프로페셔널한 폭력’
‘장군’, ‘주먹’을 이을 주제는 ‘검찰’


발로 쓴 책이 출판되었다. 그렇다고 여행기나 전기는 아니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끊임없이 등장했던 주먹들, 그들의 이야기를 동아일보 신동아팀 조성식 기자가 발로 써냈다. 지난 달 15일 발행된 <대한민국 주먹을 말하다>는 ‘영화보다 훨씬 더 영화 같은 조폭 이야기’라는 평을 받으며 주요 서점에 베스트셀러 순위에까지 오를 정도로 반응이 뜨겁다.
조성식 기자는 이미 <장군들의 리더십>(늘푸른소나무, 2005)을 출판한 바 있는, 말하자면 작가다. 혹자는, 기자가 되기 전 문학도를 꿈꿔왔다는 그가 ‘타고난 재능의 빈곤함’에 절망해 그 꿈을 버렸다고도 한다. 하지만 ‘출판’이라는 점에서 보면 장르가 다를지 몰라도 조 기자는 어릴 적 꿈을 이룬 셈이다.
그는 자신이 기자가 된 이유에 대해 자주 말한다. 그리고 그때마다 영화 <살바도르>(1988)가 등장한다. 사랑하는 연인을 찾아 헤매는 주인공의 낭만성과, 거대한 부조리를 고발하는 정의감. 이것을 모두 갖춘 기자가 되고 싶었다고. 그는 이미 그런 기자에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이회창 씨 두 아들의 병역기피 문제를 처음 보도하고, 통일교 이면을 파헤치며 기사를 썼다는 이유로 살인 위협까지 받은 적이 있었으니까. 낭만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그에게 맡겨둬야겠지만 말이다.
‘장군’세계에 이어 이번엔 ‘주먹’세계를 그것도 363페이지라는 적지 않은 분량에 담은 건, 그리 특별하거나 대단한 일이 아니다. 그의 삶은 곧 취재였고, 취재는 권력층이라고 해서 배제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더욱이 권력층과 주먹들은, 그의 표현을 빌리자면 ‘악어와 악어새’ 같은 공생의 관계다. 그 관계 이면에 관심이 많아 주로 취재를 해온 것이 출판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것이다.
조성식 기자는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구성원으로 주먹들을 보고 있다. 그런 그에게 주먹의 역사는 곧 사회의 이면사와 같은 것이다. 모든 인간에겐 ‘폭력’이라는 본성이 있지만, 그 폭력성의 차이에 따라 누구는 주먹이 되고, 누구는 보통 사람이 된다고도 했다. 이 차이를 그는 ‘폭력의 프로페셔널’ 정도라고 설명한다. “보통 사람들도 가족이나 친구 등과 일상생활을 하면서 작고 소소한 폭력을 행하면서 살아갑니다. 또 그들은 법에 의해서 스스로 자기규제를 할 줄 알죠. 하지만 주먹의 세계에서는 폭력 자체가 삶이고 생계 수단이거든요. 밤의 세계는 폭력이 기반이 되어 형성되니까요.”
아무리, 아무것도 무서울 게 없는 게 기자라지만 주먹들을 만나는 일이 어떻게 쉽기만 했겠는가! 그는 취재를 위해 김태촌, 박복만에 이어 양길모, 조양은 등에 이르기까지 많은 주먹들을 만나왔다. 그러니 그가 느꼈던 두려움의 크기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정도다. 책 속에서 ‘두려움’이라는 단어를 직접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읽는 사람들은 오금이 저릴 정도의 내용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게 영화나 소설처럼 판타지적인 요소가 끼어들 수 없는, 취재를 바탕으로 발로 써낸 내용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예를 들면 ‘서로 상대방의 영역을 기습해 연장질을 하는 사건이 수시로 발생했다’, ‘조씨의 아우들은 이날 최씨에게 10여 차례 칼을 먹였다’ 등이 그렇다. 이렇듯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쓰지 않는 표현들이 주먹들의 세계에서는 공공연하게 사용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밝힐 수는 없지만, 실제로 조 기자는 ‘폭력성’이 강하게 느껴졌던 주먹들은 지금도 가끔씩 생각난다고.
‘장군’과 ‘주먹’에 이어 그가 또 한 번 발로 써보고 싶은 주제는 ‘검찰’이다. 지금은 구상 중에 있다. <살바도르>를 보며 기자의 꿈을 키운 그. 소위 ‘거친 영역’을 주로 취재한 탓에 여러 번 목숨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지금까지 ‘기자’일 수 있는 이유. 그는 오랫동안 지켜왔던 것이라 생각할 거리도 못 된다는 듯이 너무나도 쉽게 말한다.
“공과 사를 구분하는 것이죠.”  <정>

 

정자은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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