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 맞는 아내보다 사기녀가 더 많아요”

- 피해에도 불구 “몰상식한 폭행범” 누명
- 국제결혼 피해자 모임’ 통해 고충 나눠

 

이주 여성의 수가 12만 명을 넘어선 지금도 ‘가난한 나라의 여성’이 ‘농·어촌 지역의 노총각’과 하는 결혼이라는 인식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일반적인 편견 외에도 국제결혼에 대한 편견은 또 있다. ‘국제결혼 피해자는 언제나 여성’이라는 인식 또한 그 같은 편견 중 하나. <뉴스포스트>가 알아본 바에 따르면 많은 한국 남성들이 국제결혼 과정에서 적지 않은 피해를 입는다. 피해자의 입장이면서도 사회에서 ‘몰상식한 폭행범’으로 손가락질 당하지만 침묵할 수밖에 없는 국제결혼 남성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달, 국내에서 처음으로 부부강간죄가 인정돼 유죄 판결을 받은 한국 남성이 판결 4일 만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그는 판결 직후 “나이 차가 큰 외국인 아내가 한국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등 나도 섣부른 국제결혼의 피해자”라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하지만 사회·언론 등의 반응은 그에게 냉담했다. 이미 ‘국제결혼으로 피해보는 사람은 이주 여성’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매체는 겉으로 드러난 ‘부부강간죄’에 초점을 맞추며 ‘남성의 폭력성’이나 ‘결혼 이주 여성들의 피해’만을 보도했을 뿐, 정상적인 가정을 영위하지 못하는 남성의 억울함에 귀 기울이는 이는 별로 없었다. 결국 남성이 자살을 선택한 후에야 억울한 사연이 드러났다.
물론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는 등 신부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자연스러운 성관계를 거부하고 집안일에도 소홀했으며 결혼 4개월 만에 가출한 아내를 받아들여야 하는 남편의 입장 또한 피해자의 입장인 것은 매한가지였던 것. 남편이 벌금 100만 원을 내면서 아내를 데려왔고, 10여일 후 홧김에 강제로 성관계를 가지기까지의 과정이 모두 드러나면서 소통의 불능이 가져온 한 가정의 비극사에 관심을 기울이는 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중요한 건 이처럼 국제결혼으로 인해 피해를 당한 한국 남성들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보호·구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미비하는 점이다. 기껏해야 ‘다문화가족’ 관련 센터 정도. 결국 이주여성과 결혼해 다문화가정을 이루고 살아가는 많은 한국 남성들은 각자의 고충을 포털사이트에 개설된 ‘국제결혼 피해자 모임’등을 통해 나누는 실정이다. 이주여성구제를 전담하고 있는 ‘이주여성인권센터’가 여러 지역에 설립되어 있는 것과 비교한다면, 피해 남성들을 위한 장치는 형편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들이 나누는 피해내용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 것일까.

 

중개업소의 사기로 인한 피해

 

국제결혼은 대부분 중개업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과정에서는 보통 300만 원~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개비’ 명목으로 지출하게 돼 있는데, 대부분의 중개업소가 이 금액을 터무니없이 올려 받고 있다. 대체로 국제결혼이 당사자에게는 절실하다는 걸 악용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남성들은 울며겨자먹기 식으로 들어줄 수밖에 없다.
불법으로 운영되는 중개업소의 경우 이 같은 피해는 더욱 심해질 수밖에 없다. 서면이 아닌 구두로만 계약한다거나 엉터리 계약서로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는 것이 피해당사자들의 하소연이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30~40대 후반인데 증거가 없어서 중개업소를 처벌하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통상 소개소를 통해 국제결혼을 진행하는 경우 소개비를 지불한 남성들은 베트남·캄보디아·중국 등으로 가서 ‘미팅’을 하게 된다. 적게는 5명에서 최고 50명까지 만나 서로의 조건을 주고받는데, 이 과정에서는 통역관이 개입해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한다. ‘사기결혼’의 피해자들 중 상당수가 ‘통역관의 거짓통역’에서부터 피해가 시작된다고 토로한다. 오직 ‘결혼 성사’에 목적을 두고 있는 소개소 입장에서는 무조건 연결하고 보자는 식으로 대화를 끌어가기 때문에 당사자들 간 충분한 정보가 교환되지 않아 결혼 전부터 오해가 쌓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오해는 결혼 이후에도 부부간 의사소통의 장벽을 만들어 불화의 원인으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피해자 A씨는 미팅을 할 때 마음에 드는 여성에게 “나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부모님·남동생 두 명과 함께 살고 있다. 그러니 맏며느리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하며 결혼 의사를 물었다. 다행히 여성으로부터 “할 수 있다”는 대답을 들었고, 그 길로 장인·장모에게 허락을 받으며 일사천리로 결혼식까지 올렸다. 신부가 한국에 오기까지는 보통 3개월이 걸린다. 각 나라에 혼인신고를 하고 비자를 받는 기간이다. 그런데 3개월 후, A씨의 신부는 한국에 오자마자 “속았다”는 말부터 내뱉었다고 한다. 시골, 부모님, 그리고 남동생의 존재까지도 전혀 듣지 못했다는 것이다.
취재과정에서 만난 많은 이들이 이처럼 처음 만나는 과정에서 접한 상대방의 정보가 틀려 결혼 후 실망하는 과정을 겪었다고 답했다.

 

‘합법’을 가장한 위장결혼

 

특히 본지가 만난 피해 남성 5명은, 한결같이 “여성들의 목적은 결혼이 아니라 국적 취득과 돈이었다”며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해 놓은 사기결혼”이라고 주장했다.
피해자 B씨의 신부는 한국에 오자마자 빚을 갚아야 한다며 600만 원을 요구했고, B씨는 어렵게 돈을 마련해 처가로 보내줬다. 그런데 그때부터 신부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결혼 두 달 만에 집을 나갔다. 그렇다고 두 달 동안의 결혼생활이 순탄하게 이어졌던 것도 아니다. B씨는 여느 부부들처럼 함께 텔레비전을 본다거나 산책을 즐기는 등 평범한 결혼생활을 기대했지만, 그의 아내는 B씨와 가정·결혼생활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어보였다. 빨래·청소·설거지 등 집안일은 일체 하지 않고, 컴퓨터 앞에 앉아서 채팅을 한다거나 드라마를 다운받아서 보고, 아니면 본국에 있는 친구들과 통화하기에만 바빴던 것이다.
게다가 신체 접근 금지를 시킨다거나 자기 물건에는 손을 대지 못하게 했는데, 만약 이를 어기면 사정없이 주변 사물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던졌다고. 그렇게 두 달을 보낸 신부는 느닷없이 가출을 했고, 동시에 사기결혼·폭력·알콜중독 등 있지도 온갖 거짓말로 위장한 이혼소송까지 걸었다고 한다.
또 다른 피해자인 물리치료사 C씨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그의 신부는 입국하기 전부터 매달 일정액의 용돈을 송금해달라고 요구했고, 한국에 오자마자 한 첫 마디도 “용돈은 얼마나 줄 것이냐”는 물음이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C씨는 남편으로서 그 정도는 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기에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고.
이후에도 아버지가 아프다거나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등의 이유로 3번에 걸쳐 본국에 다녀왔고, 그때마다 돈을 요구했다고 한다. 심지어 집을 담보로 대출받은 500만 원을 쥐어준 적도 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또 한 번 중국에 다녀와야겠다는 신부에게 C씨는 “보내줄 수 없다”고 대답한 것이다. 그날 저녁, C씨가 퇴근했을 때 신부는 여권·가방 등과 함께 집에 있는 귀금속까지 챙겨 가출을 했다.
이 같은 내용을 설명하면서 C씨는 “국민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는데도 그것에 별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국가에 실망했다”며 함께 사는 동안 몰래 피임약을 복용한 것과 체류연장 이틀 후에 가출한 것 등으로 미루어, “진심으로 그녀를 아내로 생각했던 나와 달리, 그녀는 처음부터 목적을 가지고 나와 결혼한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전문 상담기관 설치 시급

 

국제결혼의 비중은 날로 늘어난다. 우리나라 총 혼인건수의 11.1%가 국제결혼이고, 농·어업에 종사하는 한국 남성 41%가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다는 통계도 있다. 언뜻 봐도 결코 적은 숫자가 아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피해 남성들을 위한 법·제도적 보호가 미비하다는 점을 지적하는 이들이 많다. 국제결혼으로 피해당한 이주 여성들은 보호를 받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자국민의 피해와 인권보호에 소홀하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를 낳고 있다.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제도적 조치 마련과 전문상담기관 설치가 가장 시급한 문제다.
이와 관련 정영대 변호사는 “상대방이 사기·위장으로 결혼했다는 사실을 혼인 후 알게 됐을 경우, 형사·민사소송을 통한 처벌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것 외에 특별한 법안은 없다”고 했다.
또한 사단법인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관계자는 “특별히 남성 인권침해 피해자나 이주 남성들의 상담문의가 들어온다고 하면 그 사안을 처리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그런 사례는 없었다”며 “아직 우리 사회에서 남성 피해자 구제를 위한 단체는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국가인권위원회도 이 사안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인권위의 역할은 법·제도·공권력으로 인한 인권침해·차별을 받은 사건에 한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피해자를 구제하는 건 힘들겠지만, 2007년 12월에 공포된 ‘결혼중개업의 관리에 관한 법률’ 수정을 권고할 수는 있다.”라고 밝혔다. 

 


 

국제결혼 피해 남성 D씨의 사례

 

 “TV를 통해 이주 여성들이 한국 남성에게 학대받는 것을 보고, 내가 잘 해줘야겠다는 생각으로 국제결혼을 선택했다”던 D씨. 그는 결혼생활을 유지했던 2년 6개월 동안 신부 쪽에서 폭력을 유도했다고 말했다. 예를 들면 평생 부모님 생신선물 한 번 챙겨본 적 없는 D씨가 장모님 생신에 20만 원을 보내드렸는데 “배운 것이 없어서 그것 밖에 못 보냈냐”며 언성을 높인다거나, “늦었으니 집에 가자”는 D씨의 말에 “내가 도망 갈까봐 겁나냐”고 비아냥거리는 식이었다고. 끝내 이혼소송을 제기한 것도 아내쪽이었다고 D씨는 설명했다.
D씨는 재판 때마다 신부가 제출하는 증거자료를 보면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라며 구체적으로 이야기 했다. 신부가 첫 번째 제출한 자료는 각서였다. 한국에 온지 2주 정도가 지났을 때 처음 부부싸움을 했는데, 그때 신부가 ‘나가라고 하지 않는다’ ‘좋은 말만 한다’ ‘싸우면 남자가 먼저 화해한다’는 등 6가지 내용을 담은 각서를 달라고 해 D씨가 작성해 주었던 것이라고 했다.
두 번째 자료는 D씨가 정신이상자임을 증명하는 약 처방전. 신부는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우울증에 걸렸다며 한의원에 가자고 했고, 그곳에서 별 이상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도 한의원에서 나오자마자 신경정신과에 가자고 하더니 갑자기 의료보험증이 없어졌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D씨의 이름으로 진단을 받은 후 처방전까지 받았는데, 이것을 약국에 제출하지 않고 보관했다는 것이 D씨의 설명이다. D씨는 이어 “어느 날 수납함에 깊숙이 넣어 두었던 연장용 칼을 들고 신부가 차에 탄 적이 있다. 그것을 내 손에 들려주면서 사진을 찍겠다고 하기에, 재미로 생각하면서 찍었다”며 “다음 재판에서는 그 사진을 증거물로 제출할 것”이라고도 했다.
인터뷰 중 D씨는 자신의 인생 전부를 투자해서라도 아내와의 재판에서 꼭 이기고 싶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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