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 사무총장 노린 일본의 음모?

“아프카니스탄 문제 등 미국 이익 주문” 시각도
뉴스위크 일본판만 재록해 고도의 노림수 가능성


지난 23일 뉴스위크 재팬 인터넷판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한국인, 반기문’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이는 미국의 격월간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최근호의 기사를 재보도한 것으로 “반기문 UN 사무총장이 세계의 지도자가 된 것은 세계적 불운”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이런 이례적인 기사가 실린 것에 대해 국내 언론들은 반 총장의 아시아적 스타일을 이해하지 못한 것에서 비롯된 보도라는 반응을 보였다. 그 밖에 반 총장의 연임을 막기 위한 복합적인 정치계산이라는 분석도 제기되었다. 하지만 문제의 기사를 작성한 제이콥 하일브룬(Jacob Heilbrunn)이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시니어 에디터라는 점과 내셔널 인터레스트의 성향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일브룬은 “(반 총장은) 핵확산의 위협이나 난민 위기에도 관심을 보이지 않아 유엔은 있든 없든 관계없는 무의미한 존재가 됐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이어 쿠르트 발트하임, 부트로스 부트로스 갈리, 코피 아난 등의 전 사무총장들을 거론하며 “그러나 심지어 이런 인상적이지 못한 유엔 사무총장들과 비교해도 반기문 사무총장은 실패의 표준을 보여주는 것 같다”는 표현도 서슴치 않게 등장했다.
또한 그는 뉴욕의 싱크탱크, 외교 평의회에서 했던 연설을 두고 “그의 지루한 연설과 불안정한 영어구사로 잠을 청하게 됐다”며 반 총장의 영어에 약간 문제가 있음을 주장했다.
반 총장의 사무실과 비서관을 두고 “그의 집무실 벽에 삼성 TV들을 진열해놓고 한국의 동료들을 수석 고문으로 임명했다. 이처럼 주식회사 ‘한국’의 자회사처럼 하는 역할 이외에 그의 모습은 무시해도 좋을 정도”라고 문제를 삼기도 했다.

 

하일브룬의 글은 어불성설


이에 반 총장은 직접 나서지는 않았다. 대신 비서실장이 코멘트 형식의 반론문을 냈다. 그리고 유엔재단이 후원하는 ‘유엔 디스패치’(UN Dispatch) 블로그의 글이 반론 성격으로 포린 폴리시 홈페이지에 올랐다.
비서실장 비자이 남비아르(Vijay Nambiar)는 하일브룬의 글은 진지한 분석이 아니며 빈정대고 거들먹댄다고 반발했다. 반 총장이 기후변화와 세계 식량위기에 대해 역설하고 또 폐허가 된 가자지구에서 국제사회에 목소리를 높일 때는 보지 않고 그저 ‘그가 보이지 않는다’며 진실을 왜곡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사이클론 ‘나르기스’가 미얀마를 휩쓴 이후 인도적인 지원을 호소했던 반 총장은 국제적으로 찬사를 받았고 G20 정상회의에서 10억 명의 기아문제에 대한 관심과 지원을 호소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역대 유엔 사무총장 중 반 총장이 가장 무능하고 한 일이 없다고 하지만 반 총장은 이제 임기가 2년 6개월 밖에 안 됐는데 어떻게 5~10년 동안 활동한 역대 총장들과 비교할 수 있느냐고 반문했다.
2007년 9월 반 총장은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 아놀드 슈월츠제네거 미 주지사, 앨 고어 전 미 부통령 등을 유엔본부로 초대해 기후변화회의를 가졌고 올 12월에 열리는 코펜하겐 정상회담은 이것이 모멘텀이 된 것이라고 전했다.

 

비판에 자유롭지 못한 사무총장


반 총장이 아시아적 색채가 강하다고 보도한 국내 언론에 대해서 최재천 전 민주당 의원은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엘리트주의, 오리엔탈리즘의 부정적 편견을 바탕으로 반 총장의 문제를 바라보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업무 수행보다는 스타일을 비판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런 비판이야말로 편견”이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헤일브룬의 자극적인 기사를 두고 “코피 아난 전 사무총장의 경우도 그랬듯이 역대 어느 사무총장도 미국 언론의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며 “이는 미국 보수 성향 편집자의 언론플레이”라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 헤일브룬이 속한 내셔널 인터레스트에는 이 기사가 없으며 포린 폴리시에만 기사가 실린 점을 들었다. 또한 뉴스위크 중 오직 일본판에서만 이 기사가 재록된 것을 두고 일본 보수 언론의 의견이 주로 반영됐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남비아르 비서실장의 반론 글이 포린 폴리시에 올랐지만 뉴스위크 재팬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반 총장의 당선부터 그를 불편히 여긴 일본 보수언론이 이달 30일 일본 방문을 앞둔 반 총장을 미리 압박하려는 의도일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한편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네오콘의 대변지라 불리울 정도로 보수의 색채를 띠고 있다.   이 잡지는 미국 신보수주의의 대부로 여겨지는 어빙 크리스톨(Irving Kristol)에 의해 1980년대 중반 창간됐다. 이전에 창간됐던 ‘퍼블릭 인터레스트’가 미국 내 문제에 대한 신보수주의의 견해를 전달해 주는 매체라면 ‘내셔널 인터레스트’는 국제 문제 전문지의 역할을 했다. 때문에 이곳에서 시니어 에디터로 활동하고 있는 헤일브룬의 성향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다.

 



코피 아난과 조지 부시의 갈등

 



▲ 알자지라 2007 일러스트
2004년 일부 미 상원 의원들이 코피 아난 UN 사무총장의 사임을 요구한 적이 있다.
당시 미국의 CNN과 NBC 등 거의 모든 방송들이 아난 사무총장의 이라크 ‘석유-식량 프로그램’ 연루 의혹을 제기하는 보도를 내보낸 바 있다.
AP통신은 “아난 총장이 석유-식량 계획과 관련된 스위스 업체로부터 매달 2,500달러의 급료를 받은 것에 대해 매우 실망스럽고 충격을 받았다는 말을 되풀이하면서 자신은 어떤 부정에도 연루되지 않았다는 기존의 입장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이에 유엔 직원 3천여명은 코피아난 사무총장의 사임을 압박하는 미국 국무부와 언론의 보도에 대해 비판하면서 아난 총장을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2006년 12월 31일에는 10년 동안의 사무총장 임기를 끝내고 떠난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11일(현지시간) 사실상의 고별 연설에서 조지 W.부시 대통령과 미국의 일방주의적 외교노선을 신랄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아난 총창은 “힘, 특히 군사력은 국제사회가 옳은 목적이라는 정당성을 부여하는 경우에만 사용돼야 한다”며 “미국이 자국의 이상과 목표를 포기하는 것처럼 보일 때 미국 우방들은 곤경에 처하고 혼란에 빠지게 된다”고 밝혀 부시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으면서도 다분히 이라크 전쟁을 비난하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미국 정부는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숀 맥코맥 국무부 대변인은 “아난 총장은 의견을 말할 권리가 있다”면서도 “그러나 미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의 정책에 대해 유엔 사무총장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미국정부와 유엔 사무총장간의 이런 갈등의 전례에 비춰볼 때 최근의 이번 반기문 총장 비판 기사는 단순한 인물 평이 아닌 고도의 정치적 노림수가 숨어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