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황봉 꼭대기에 케이블카 왜 세우나”

환경부 자연공원법 개정안 입법 예고 강행
산악인 박영석 엄홍길 및 문화예술인 반대


지난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국립공원 케이블카 설치 반대 100인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은 환경부가 5월 1일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한 이후 외부 의견 수렴 없이 추진을 강행하고 있는 것을 강하게 질타했다. 만약 이 안이 시행된다면 지리산 천왕봉과 설악산 대청봉에도 케이블카가 들어설 수 있게 된다. 선언에 참가한 100인은 개정안 철회 및 케이블카 건설을 강하게 반대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자연공원은 총 76개(국립공원 20개)이며 면적은 약 7,807㎢으로 육상만 따진다면 전체 국토의 4.93%에 해당한다. 특히 국립공원 내의 자연보존지구는 자연공원 중에서도 생물다양성이 특히 풍부한 곳, 자연생태계가 원시성을 지니고 있는 곳, 특별히 보호할 가치가 높은 야생 동·식물이 살고 있는 곳, 경관이 특히 아름다운 곳 등을 보호할 목적으로 지정한 곳이다. 이 면적은 1,971.503㎢로 국토 면적의 2%에 불과하며 생태계 최후의 보루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곳이다.


2008년 4월 국토해양부가 ‘동·서·남해안권 발전특별법’ 시행령에 해상 국립공원 내 케이블카 설치를 규정한 것을 두고 내륙의 국립공원 상인들은 크게 반발했다. 이에 환경부는 케이블카 설치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고 ‘자연공원 로프웨이 설치·운영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또한 자연공원법 개정안을 통해 케이블카 건설 허용을 법으로 규정하기에 이르렀다.

 

 

국립공원관리 10년 후퇴


자연공원법 개정안은 자연보존지구 내 케이블카 거리규정을 2km에서 5km로, 케이블카 정류장 높이를 9m에서 15m로 완화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대표적 국립공원인 지리산과 설악산의 경우 자연보존지구 내 거리가 5km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케이블카를 설치할 수 있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대부분의 자연공원과 명산에 케이블카 건설이 도미노처럼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 개정안은 입법 예고가 되기 전부터 학계, 불교계, 환경단체와 같은 시민사회단체에서 반대의 목소리가 높았다. 시민사회단체는 이 법안이 국립공원관리를 10년 후퇴시킬 것이라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이들은 환경부가 국립공원제도 개선과 같은 공원기반구축사업은 뒤로 미루고 민원해소를 위해 사유지의 공원 제척과 함께 케이블카와 관광지 개발 사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지적한다.

 

 

케이블카로 인한 자연 훼손 심각


국립공원에 케이블카를 설치하려는 계획은 이전부터 있었다. 특히 지역개발 논리를 앞세운 지자체나 국립공원 상인들 및 건설업체는 자연공원법의 개정을 꾸준히 요구해왔다.


강원도 양양군은 오래 전부터 오색-대청봉까지 연결하는 케이블카 계획을 수립했지만 자연보존지구 내에 케이블카를 2km 이상 들어설 수 없다는 자연공원법에 의해 이를 추진하지 못했다. 최근 충북 보은군도 속리산 문장대까지 케이블카를 설치하겠다고 밝혀 개정안 통과 이후 케이블카 건설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우리나라 자연공원에서의 케이블카 운영 방침을 보면 얼마나 자연환경을 훼손하고 있는지가 단적으로 드러낸다. 현재 케이블카가 설치된 곳은 내장산국립공원, 덕유산국립공원, 설악산국립공원, 대둔산도립공원, 팔공산도립공원, 금오산도립공원, 두륜산도립공원 등 총 7곳이다. 이 중 내장산국립공원은 상부정류장 주변 식물이 모두 사라져 나대지가 확대되고 있고 천연기념물 제91호 굴거리나무 군락지가 양분된 상황이다. 또 설악산은 케이블카 운영으로 인해 권금성 정상부가 이미 초토화된 상태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기 때문에 등산로가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다.


이렇듯 국립공원의 환경파괴를 막고 자연생태계를 최우선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 때문에 케이블카 설치는 지난 몇 년 동안 추진되지 않았다. 국립공원 안에 케이블카가 설치된 것은 지난 1980년 내장산국립공원이 마지막이다. 
 
케이블카 설치는 국제 기준에도 역행




▲ 대둔산 케이블카

환경부는 지난 2007년 설악산, 지리산 , 월악산, 속리산, 오대산 등 5개 국립공원을 IUCN(세계자연보전연맹)이 정한 기준에 따른 국립공원으로 등재했다. 이를 두고 환경부는 “이제 우리나라도 국립공원의 자원가치와 관리 노력을 국제적으로 인정받았다”고 자평한 바 있다.


환경부는 올해 하반기 주왕산, 월출산, 다도해, 속리산 등을 경관보호지역으로 등재시킬 계획을 가진 것으로 전해졌다.


IUCN의 보호구역 관리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국립공원은 이용자 수를 강력하게 제한할 수 있는 핵심 구역을 두고  엄격한 자연생태계 보호(과학적 연구, 환경 교육 등을 위한 자연환경 확보)와 대중 접근을 제한하도록 하고 있어 국립공원의 핵심 구역인 자연보존 지구 내의 케이블카 설치를 촉진시키는 것은 국제 기준과 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라는 주장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세계적으로 국립공원을 제일 먼저 지정한 미국의 국립공원에는 케이블카가 단 한 곳도 없으며 한때 케이블카 건설이 한창이던 일본도 1990년 이후에 건설된 곳이 전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100인 선언에는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과 이정희 의원, 법륜 스님, 도종환 시인,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이치범 전 환경부장관 등 정치권과 학계, 종교계, 환경운동가 등 각계의 인사들이 참여했다. 또한 한국인 최초 에베레스트 남서벽에 코리안루트를 개척한 박영석 대장, 엄홍길 대장 등 산악인 11명도 이 선언에 동참했다.


2일 열린 기자회견에는 민주노동당 홍의덕 의원,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 유정칠 대표, 여성산악회 배경미 회장 등이 참석했으며 이들은 선언을 통해 “환경부가 자연과 경관 보존가치를 인정받은 자연보존지구마저 개발하겠다고 나선 데 대해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만약 케이블카 건설 계획을 강행한다면 환경단체와 사회인사 100인은 IUCN과 UNEP(유엔환경계획) 등을 압박해 환경부의 정책 철회를 요구할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제남 녹색연합 정책위원장은 “현행 제도로도 국립공원에 케이블카 설치가 가능하다. 그런데 지금 환경부 정책은 법까지 개정해서 정상에 더 가까이 케이블카 설치를 하도록 하고 있다”며 “지리산, 설악산 정상부는 아고산대 기후로 생태계가 한 번 훼손되면 복원하기가 힘든 곳이다. 거센 바람과 낮은 기온 때문에 생명이 자리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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