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단의 영구 존속을 꿈꾸지 말라”

정치 성향 ‘아태재단’ ‘일해재단’ 결국 폐쇄
해외 ‘카터센터’ ‘클린턴 재단’ 등은 성공적


이명박 대통령의 재산 기부 행위가 국내는 물론 미국 러시아 등 외국에서까지 화제가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거듭된 미루기로 진정성이 훼손됐다’ ‘공익재단 설립 방식은 실효성이 없다’는 등의 이유로 비판적 시각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체적으로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을 구현하고 사회지도층으로서 솔선수범하는 모델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뉴스포스트>는 그동안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대통령들의 기부 현황에 대해 알아보는 한편, 일반 기부 천사들의 이야기도 살펴봤다.


현직 대통령 재산 기부가 처음인 우리나라에서 ‘재단’ 형태로 재산 환원에 나선 대통령 중에는 박정희 대통령 일가가 있다.

 

 1969년 박 전 대통령 부인 육영수 여사가 어린이 복지 증진을 위해 육영재단을 설립한 것. 그러나 육영재단은 가족 간 내분으로 망가진 대표적인 사례가 됐다. 1982년부터 이사장직을 맡은 박근혜 의원은 동생과 갈등을 일으킨 끝에 사임했고, 90년부터 이사장을 맡은 박근령 씨도 동생 박지만 씨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2007년 11월 이후 육영재단 사무실은 박근령 씨와 박지만 씨가 동원한 용역 직원들이 서로 맞붙는 상태에 이르렀다. 일각에서는 1조가 넘을 것으로 예상되는 어린이회관 부지 개발 차익 때문에 쉽게 양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고 있다.


그 다음으로는 전두환 대통령의 일해재단과 김대중 대통령의 아태재단이 있다. 그러나 이들 재단은 설립·운영과정에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면서 무너진 대표적 사례다.

 

 특히 전 전 대통령은 ‘1983년 버마 아웅산묘소 폭발 사건으로 순직한 희생자들의 유족 지원 및 장학사업’이라는 명분으로 일해재단을 만들었다. 문제는 재단 설립을 위해 재벌들에게 노골적으로 정치헌금을 받았다는 점이다. 또 임기 만료 전에는 ‘국가원로자문회의법’을 통과시키면서 일해재단을 근거지로 삼아 수렴청정을 시도하려 했다는 의혹도 샀다. 결국 일해재단은 6공화국 출범 이후 5공 청산작업이 시작되면서 1988년 5월 명칭을 ‘재단법인 세종연구소’로 바꾸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아태재단 또한 재단 운영에 관여한 자식·가신들의 잇단 추문으로 오명을 남기며 문을 닫았다.

 

 김 전 대통령은 14대 대선 패배 후 1994년 재단을 설립했다. 출발은 동북아시아 평화와 외교안보 문제를 연구하는 순수 학술재단이었다. 이후 1995년 김 전 대통령이 정계 복귀를 선언한 뒤 학술재단이 아니라 대선캠프로 변모했다. 실제로 김대중 정부의 핵심 실세들이 아태재단을 거쳤다. 임동원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는 아태재단 사무총장 출신이었고, 신건 국정원장은 아태재단 서울지부장을 지냈다. 청와대 수석을 지내기도 한 남궁진  문광부 장관도 아태재단 출신이다.

 
더욱이 김대중 정부 출범 후 아태재단 관련자들은 잇단 비리에 연루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99년 5월에는 아태재단 후원회 중앙위원이었던 김영래 씨가, 같은 해 7월에는 이영우 아태재단 미주지부 전 지사가 구속됐다. 아태재단 부이사장으로 실질적 이사장 직무를 수행했던 홍업 씨는 대기업 등으로부터 이권청탁 명목으로 47억원을 받은 혐의로 2003년 구속됐고, 재단 상임이사 이수동씨는 ‘이용호게이트’에 연루돼 2004년 구속됐다.

 

이에 따라 김 전 대통령은 결국 2003년 2월에 재단 건물과 자료를 모두 연세대에 기증하고 아태재단은 사실상 문을 닫았다. 이후 이를 기증받은 연세대는 김대중도서관을 만들었고, 노벨평화상 상금 3억 원을 기증받았다.

 

전두환·노태우는 ‘강제추징’


‘기부’나 ‘환원’ 형식은 아니지만 ‘강제추징’ 등을 통해 국가에 재산을 반납한 대통령도 있다. 전두환·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전 전 대통령의 재산은 공식적으로 신고 되거나 공개된 적이 없다. 현재까지 드러난 재산내역은 1995년 말 ‘12·12사태’ ‘5·18 광주학살’과 관련해 구속되면서 알려진 정도. 그리고 1988년에는 국회 청문회로 여론이 악화되자 “쓰고 남은 비자금이 139억원이다. 은닉재산이 더 있으면 어떤 책임추궁도 감수하겠다”고 말하며 139억원을 국가에 헌납하고 백담사로 들어갔다.


그러나 1995~1996년 검찰수사 결과, 전 전 대통령이 퇴임 때 2,100억원의 비자금을 남긴 것으로 드러나 2,200여억원을 추징금으로 선고받았다. 검찰은 쌍용그룹 경리창고에 보관된 61억원의 현금 등 389억원만 확인하고 나머지 숨긴 재산은 발견하지 못했다.


전 전 대통령은 또한 임기 초반(1983년) 자신의 아호를 딴 일해재단을 설립했다. 경기도 성남 공군비행장 부근 20만평의 땅에 세운 일해연구소는 호화 영빈관과 연구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부지 매입 등을 포함해 일해연구소 건립에 기업들로부터 천문학적 액수의 검은 돈을 끌어들였다.


비자금 추징금 확정판결을 받은 한 명의 전직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그는 포괄적 의미의 뇌물죄가 적용되어 1995년 11월16일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혐의로 검찰에 의해 구속 기소되어 항소심에서 징역 15년에 2,628억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는데, 이 가운데 약 2,076억원의 재산이 추징당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경호실장이었던 이현우가 검찰에 자진 출두해 (주)우일양행 명의 차명계좌에 입금되어 있는 돈은 노 전 대통령이 재임 중 조성해 사용하다 남은 돈이며, 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이태진이 관리해 왔다고 밝혀 비자금의 실제가 최초로 확인되었다.


노 전 대통령은 대국민 성명발표를 통해 재임 중 기업체로부터 5,000억원 가량을 받아 사용하고 1,700억원 가량이 남았다고 밝혔으나, 검찰 수사과정에서 당초의 성명발표 때와는 달리 기업체로부터 3,400∼3,500억원을 받고, 1987년 대통령 선거를 위해 조성한 자금 중 사용하고 남은 돈과 당선 축하금 1,100억원을 합해 조성했다고 진술했다.


이 당시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이 김석원 전 쌍용그룹 회장 명의로 숨겨둔 땅을 찾아내 이를 강제경매에 넘겨 국고에 환수했다.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200억원을 관리했던 김 전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부동산 명의까지 빌려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검찰은 김 전 회장 명의의 서울 이태원동 도로 및 대지 409㎡(124평)의 일부 지분을 강제경매로 매각한 대금 6억2,518만원을 노 전 대통령의 추징금으로 충당했다. 또한 안양시 석수동에 있는 255㎡(77평)의 땅도 경매로 팔아 6억2,026만원을 추징금으로 충당했는데, 이 땅은 원래부터 노 전 대통령 명의였다. 이로써 노 전 대통령은 추징금 2,629억원 중 89%인 2,339억원을 납부하게 됐다.

 

 

해외에는 성공사례 많아


미국의 전직 대통령이 만든 재단 중에는 ‘카터센터’와 ‘클린턴 재단’이 대표적이다. 카터센터는 전 세계 민주주의와 인권 증진을 목표로 1982년 설립됐으며, 카터는 2002년 전 세계 분쟁 해결과 민주주의 및 인권 증진에 기여한 공로로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1997년 설립된 클린턴 재단은 기후 변화 대응과 난민 구호·의료봉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설립 후 전 세계 75만여 명의 에이즈 환자 치료에 기여했으나, 투명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은 적도 있다.


대통령이 만든 재단은 아니지만, 이명박 대통령의 ‘청계재단’이 본보기로 삼을 만한 곳도 있다. 20세기 초반 미국을 대표하는 두 자본가 앤드류 카네기와 존 록펠러의 재단이 바로 그것. 둘은 비슷한 시기에 재산 축적에 몰두했고 은퇴한 후에는 앞다퉈 공익사업에 뛰어들었다.


카네기는 1901년 카네기철강회사를 JP모건에 매각하고 받은 돈이 당시 일본 한 해 예산의 5분의 1에 해당할 정도로 대단한 부호였다. 그는 “자식에게 막대한 유산을 남겨주는 것은 독이나 저주를 남겨주는 것과 같다”면서 현역에서 은퇴한 후 18년 동안 자선사업에 여생을 바쳤다.


록펠러는 스탠더드오일의 시장 독점력을 확장하는 과정에서 뇌물 살포, 스파이와 폭력을 동원한 무자비한 인수합병, 노동운동 탄압을 자행하여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1911년 연방대법원 결정으로 스탠더드오일이 해체되면서 시카고대학 설립과 확장에만 4억1,000만 달러를 기부하는 등 총 60억 달러 정도를 사회에 기부했다.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 또한 21세기의 카네기와 록펠러라고 부를 만하다. 게이츠가 94년 설립한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은 350억 달러에 달하는 기금을 바탕으로 제3세계 빈민구호와 질병 퇴치 등에 앞장서고 있다. 또한 2004년에 결핵 백신재단에 8,300만 달러를 기부했는데, 이 액수는 연간 전 세계 결핵 백신 연구비용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워렌 버핏은 가족 명의의 재단을 두고도 2006년 6월 370억 달러를 빌 게이츠 재단에 기부해 세계를 놀라게 한 바 있다. 지금은 게이츠 부부와 함께 게이츠재단의 이사로 재직하고 있는데, 게이츠재단은 2006년 셋 중 마지막 사람이 죽는 시점으로부터 50년 이내에 재단 활동을 종료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유는 “최대한 빨리, 가능한 많은 일을 하기 위해서”라고.


자크 시라크 프랑스 전 대통령 또한 퇴임 후 자신의 이름을 딴 공익재단을 설립, 빈곤퇴치·환경보호 등 사회공익사업을 하고 있다.

 

영국에서도 해리왕자의 기증이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오토바이를 타고 아프리카 대륙 비포장도로 1,000마일을 여행하며 30만파운드를 모아 만달레 아동기금과 유니세프에 기증했기 때문이다.


한편, 미국의 자선연구가 닐슨은 <미국 사선주의의 숨은 이야기(1996)>를 통해 ‘자선 10계명’을 전하고 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한다. △자신의 성향과 관심에 맞는 기관·기구를 찾아 기부하라 △가족재단을 만들지 말라 △재단 이사회 구성에 친구나 회사 임원 등을 임명하지 말라 △재단 창설이 능사가 아니다 △재단의 영구적 존속을 꿈꾸지 말라.

 



연예인 기부천사 이모저모
김장훈· 문근영· 박상민 등 기부천사 대열


연예계에서는 기부 행위가 종종 있어 왔다. 김장훈, 문근영 등 몇몇 선행 연예인이 두각을 나타내면서 기부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때문.
그 중에서도 김장훈은 10년 넘게 전세를 살며 약 50억원을 기부한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김 씨는 주로 소외아동이나 과학기술 발전을 위해 기부하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기부는 그의 직업인 노래와 연장선상에 있다. “기부는 누군가를 행복하게 하는 일이라는 점에서 노래와 같다. 평소 생활에서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는 일이 뒷받침돼야 내 노래 역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는 점 때문. 또 “대한민국이 잘되려면 특히 어린이에게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범죄 없는 사회를 구현하려면 청소년이 성장기 때 상처 안 받게 하면 된다. 또 과학이 기술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기 때문에 과학에도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문근영도 기부를 많이 하는 연예인으로 유명하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2003년부터 2008년까지 익명으로 기부한 개인 최고액 기부자가 알고 보니 문근영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크게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또 그녀는 3억원을 기부해 만든 전남 해남의 ‘땅끝지역아동센터’를 비정부기구(NGO) 단체인 ‘굿피플’에 기증하고, 수년간 ‘기적의 도서관’을 후원하는 등 다방면으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는 광주시가 운영하는 빛고을장학재단에 1억원을 기부해 개인 기부 순위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박상민도 남몰래 40억원 가량을 기부해오다 뒤늦게 밝혀졌고, 장나라도 꾸준히 선행에 앞장서서 총 50억여원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지는 등 연예계 ‘기부 천사’들이 잇단 화제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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