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재벌, 울고 웃는 경영승계 백태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기업에게도 빛과 어둠이 있다.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승승장구하는 기업이 있는가 하면 한 순간 무너지거나,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위태로운 상황을 맞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최근 기업 분야 최대 이슈는 ‘경영 승계’다. 재벌들의 후계 승계 움직임은 기업 내부 뿐 아니라 유관 산업과 관련 주식의 급변 등 경제 전반에 주는 파급력이 크다는 점에서 대기업 후계 구도에 대한 관심이 상당히 높아지고 있다.
이 같은 후계 승계 작업은 비단 잘나가는 기업집단의 오너일가만의 일은 아니다. 소위 잘 못나가거나 위기라고 불리는 이들도 경영 승계는 중요한 문제이긴 마찬가지다. 다만 경영 상태와 마찬가지로 사뭇 분위기가 다를 뿐이다. 최근 시선에서 살짝 빗겨나가 있는 ‘위험군’ 속한 오너일가들의 경영 승계 분위기를 살펴봤다.

▲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
웅진, 비난 속 경영승계로 재기 노려

웅진그룹은 늪에서 허덕이다 이제 막 벗어날 나뭇가지를 붙잡은 격으로 볼 수 있다. 윤석금 웅진그룹 회장은 백과사전 영업으로 시작해 30여년 만에 웅진그룹 일궈 재계 서열 30위로 키워내 ‘샐러리맨 신화’라는 칭호를 얻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지주회사인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몰락한 신화’라는 오명을 듣는 등 그야말로 ‘위기’에 봉착했다.

법정관리 과정에서 사기성 CP 발행 혐의를 받으며 존경받던 경영인에서 부도덕한 인물로 추락하기도 했다.

그러다 지난 2월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를 조기졸업하고 윤 회장이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그룹 재건에 힘을 쏟아 붇고 있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윤 회장을 둘러싼 부정적인 여론은 식지 않고 있다. 불거진 사기성 CP발행 혐의 뿐 아니라 윤 회장이 강조해온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는 말이 보기좋게 빗나갔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웅진홀딩스가 법정관리를 벗어나기도 전인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으로 자식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한 움직임을 보였다.

윤 회장의 두 아들인 윤형덕 웅진씽크빅 경영전략실장 실장과 윤새봄 윤새봄 웅진홀딩스 최고전략책임자(CSO)(당시 웅진케미칼 경영기획실장)이 윤 회장을 밀어내고 웅진홀딩스 최대주주에 오르면서 논란은 불거졌다.

2013년 12월 27일 공시에 따르면 당시 윤 회장이 웅진홀딩스 주식 297만393주(지분율 6.95%)을 두 아들에게 절반씩 매각해 장남 형덕씨가 3.67%, 3.63%로 증가했다.
여기에 법정관리 회생계획안에 따라 3자배정 유상증자를 진행해 두 아들의 지분을 25% 끌어올렸다.

그동안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주지 않겠다고 강조해왔던 터라 윤형덕 실장과 윤새봄 실장 모두 그룹 내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던 터라 더욱 주목을 받았다.

웅진 측에서는 “자산이 없는 윤 회장이 피해자 보상을 위해 아들에게 사재를 출연한 것”이라고 해명했고 당시 검찰 조사를 받고 있던 윤 회장이 직접 경영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두 아들을 내세웠다는 분석도 나왔다.

하지만 두 달 뒤인 지난 2월 두 형재가 나란히 웅진씽크빅과 웅진홀딩스의 정기 주주총회서 사내이사로 선임됐다. 이어 한달 뒤 웅진홀딩스가 두 아들에게 웅진씽크빅 주식 101만2654주(3.50%)를 매각, 웅진씽크빅 지분이 각각 1.75%로 올라서 지주사 웅진홀딩스를 제외하면 가장 많은 지분을 보유하게 되자 윤 회장이 2세 경영에 본격적으로 시동을 걸었다는 평가를 받게 됐다.

하지만 윤 회장의 이 같은 ‘경영 대물림’을 두고 곱지 않은 시선도 적지 않다. 윤 회장은 “부의 대물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해온 것을 스스로 깼다. 또 ‘샐러리맨 신화’로 불린 그가 재벌가가 보여줘 온 전형적인 부의 경영세습에 나섰다는 점에서 비판을 받고 있다.

▲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몰락한 신화 STX, 후계도 밑바닥부터

웅진의 윤 회장과 함께 거론되는 인물이 강덕수 STX그룹 전 회장이다. 윤 회장처럼 밑바닥부터 시작해 ‘셀러리맨 신화’로 평가 받았던 강 회장은 현재 사정이 많이 달라졌다. 그나마 위기에서 재기를 꿈꾸고 있는 윤 회장과 달리 강 회장은 이미 그룹이 사실상 해체됐고 경영인으로서 위치도 잃게 됐다.

후계 경영 과정도 이와 다른 의미로 사뭇 다르다. 윤 회장의 두 아들이 계열사 주요 직책을 맡고 아버지의 지분을 이어받는 전형적인 재벌 식 후계 승계 방식이라면 강 전 회장 아들 강 모씨는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일각에서는 강 전 회장의 성장 방식이 그대로 투영된 승계 방식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강 전 회장은 지난 1973년 쌍용양회에 평사원으로 입사해 직장생활 28년 만인 지난 2011년, 사재로 20억원을 들여 쌍용중공업은 인수한 뒤 STX그룹 체제를 구축, 재계 13위까지 올려놓은 인물이다.

당장 강 전 회장의 위치가 무너지면서 후계 승계를 논하기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다.

강 전 회장은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해운업 위축으로 유동성 위기를 맞으며 지난해 7월 STX팬오션의 대표자리에서 물러난 이후 STX조선해양과 STX중공업 등 그룹 주요 계열사 대표 자리에서도 줄줄이 물러나면서 사실상 경영 활동에서 손을 뗐다.

강 전 회장은 현재 STX엔진 이사회 의장, STX장학재단 이사장 등 단 두 가지 직함만 남게 됐다.

또한 지난해 6월 기준 채권단이 보유 중인 ㈜STX 담보주식을 처분하면서 강덕수 STX그룹 회장의 지분이 8%대로 떨어졌다. 강 회장과 특수관계인 보유 지분도 20%대에서 13%대로 낮아졌다.

우리은행과 증권금융 등이 강 회장과 포스텍이 담보로 맡긴 ㈜STX 담보주식을 처분하면서 강 회장 개인이 보유한 ㈜STX 지분율은 각각 8.28%로 떨어져 주주로서의 권한도 추락했다. 이렇다 보니 다른 회사에서 일하는 아들 강 모씨로의 경영 승계 변수마저 희미해졌다고 볼 수 있다.

▲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동부그룹, ‘회사부터 살리고’ 경영 승계 ‘숨고르기’

동부그룹은 최근 위험군에 꼽을 수 있는 기업 집단 중 하나다. 동부그룹은 재무위기가 닥치면서 산업은행을 위시한 채권단으로부터 강력한 자산 매각 압박을 받고 있는 중이다. 동부그룹은 자구계획에 따라 동부제철과 동부건설의 주요 자산과 동부하이텍, 동부팜한농 등 알짜 자회사 등을 시장에 내놓은 상태다. 심지어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은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사재출연까지 약속했다.

그룹 사정이 이렇다보니 당장 경영 승계를 논하기에는 상황이 여의치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동부그룹은 지난 1990년대 후반부터 경영 승계 작업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일각에서는 동부그룹의 후계승계 스타일을 두고 ‘소리 소문 없이 강하다’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경영 승계 작업은 착실이 이행하고 있으면서도 크게 드러나지 않게 추진해왔다는 뜻이다. 후계 1순위인 장남 남호씨가 지난 2010년 동부제철에 입사해 지금까지 부장 직함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장남 김남호 부장은 아직까지 경영 전면에 나서고 있지 않고 있지만 그룹 주요 회의 등에 참석하며 경영수업을 쌓아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경영 승계를 위한 지분 확보도 충실히 진행 중이다. 김 부장은 현재 동부그룹의 핵심인 동부화재해상보험 지분 13.29%, 지주회사 동부씨엔아이 지분 18.6%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부친인 김준기 회장이 보유한 동부화재 6.93%, 동부씨엔아이 12.37%보다 월등히 높다.
또한 그는 동부제철 주식 7.39%를 보유한 2대주주이기도 하다. 역시 4.04%를 보유한 김 회장보다 많다. 김 부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동부씨엔아이 11.23%의 간접지분까지 더하면 지분 비중은 더욱 높아진다.

동부씨엔아이는 동부건설 지분 22.0%를 보유하고 있고 동부하이텍(12.4%), 동부제철(14.0%), 동부메탈(10.0%), 동부팜한농(36.8%) 등에 지분을 고루 가지고 있어 김 부장의 경영 승계 바탕은 탄탄하다.

지분구조상으로는 김 부장의 경영승계가 사실상 마무리한 단계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룹이 구조조정이라는 큰 숙제를 안고 있는 비상상황인 관계로 다시 경영 승계는 수면아래로 가라앉은 분위기다.

동부그룹은 현재 김 회장을 필두로 지난 4월 동부그룹은 최연희 전 의원을 영입해 전문경영인 3인 회장 체제에서 사실상 4명의 회장 체제를 가동되고 있다.

건설, 농업 부문 등은 최 전 의원이 맡고 있다. 또한 동부하이텍은 지난해 영입된 오명 전 과기부 장관이 맡는 구조다. 여기에 지주사격인 동부씨앤아이 회장에는 윤대근 동부건설 부회장이 이끌고 있다. 김 부장의 임원승진은 뒤로 미뤄진 것으로 풀이된다.

여기에 동부그룹의 구조조정 영향이 지금까지 다져놓은 후계 구도에 얼마나 큰 변수로 작용할지도 미지수다.

▲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
동양그룹, 경영승계 이은 ‘참사’

동양그룹은 지난해 9월 극심한 자금난과 현재현 회장의 리더쉽 부재로 인한 비전문 경영인의 전횡, 무리한 경영권 승계 작업 등이 원인이 되어 계열사 (주)동양, 동양레저, 동양인터내셔널의 3개 회사에 대해서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다음달에는 동양시멘트와 동양네트웍스가 잇따라 법정관리에 처하게 됐다.

이른바 수조원대 피해를 야기시킨 동양사태의 서막이었다. 그런데 이 같은 일이 벌어지기 불과 몇 달전인 지난해 6월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의 장남 현승담 상무가 그룹 계열사 대표로 첫 취임하는 일이 벌어졌다.

당시 강도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던 동양그룹이 향후 원할한 경영권 승계를 위해 비매각 대상인 주요 계열사에 현 상무를 미리 전진 배치한 것으로 비춰졌다.

현 대표는 미국 스탠퍼드대학교에서 컴퓨터사이언스와 경제학을 복수전공했으며,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재원이었다. 이후 지난 2007년 동양메이저(現 ㈜동양) 차장으로 입사해 동양증권 부장, 동양시멘트 상무보 등을 지낸 뒤 동양네트웍스 사내 이사로 선임되며 경영 전면에 나설 준비를 해왔다.

동양네트웍스는 동양온라인 동양생명과학을 자회사로 거느리고 있는 비매각 대상 계열사로 동양그룹 구조조정 후 (주)동양과 함께 그룹의 양대축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터라 동양그룹의 신성장 동력인 삼척 화력발전소 사업을 영위할 동양파워를 거느린 (주)동양은 아버지인 현재현 회장이, 그외 사업은 장남인 현 상무가 담당하는 지배구조가 완성되게 된 셈이었다.

하지만 결국 동양사태로 무너진 그룹과 함께 현 상무의 경영 승계도 멈춰버렸다. 취임후 불과 4달 후 줄줄이 계열사가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됐고 장남 승담씨도 대표자리에서 내려와야했다. 대신 승담씨는 법정관리 대표자심문에 참석해야 했다.

이후 동양의 사기성 CP 발행 혐의로 법의 심판을 기다리는 상황에 이르게 됐다. 승담씨는 동양사태 피해자들로부터 아버지 현재현 회장과 어머니 이혜경 부회장과 함께 집단 소송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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