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총수들 돈 버는 방법 갖가지네”

 

-계열사 유망사업 가로채는 방식으로 수조원 축적
-선진국의 경우 엄격하게 규제

 


재벌총수가 계열사의 유망 사업의 기회를 중간에서 가로채는 방식으로 3조5,712억원의 부를 축적했다.
이는 국내 재벌 총수일가 전체가 얻은 재산의 84.3%에 해당한다. 이들 기업들은 애초에 4,970억원을 투자해 ‘회사 기회의 편취’를 통해 7~8배의 이익을 보았다. 경제개혁연구소가 21개 그룹 지배주주 일가 71명의 부의 증식 규모를 계산한 결과 이같이 나타난 것. 경제개혁연구소는 “회사 기회의 유용은 해당 회사와 소액 주주들에게도 막대한 손해를 끼칠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제동장치가 시급하다”며 재벌 총수일가의 사익추구 행위가 갈수록 늘고 있다고 비판했다.

 

 

 

 ‘회사기회의 편취(Usurpation of Corporate Opportunity)’란 유망한 사업기회가 있을 때 이를 회사에 귀속시키지 않고 지배주주나 이사 또는 경영진이 이를 수행해 이익을 얻는 경우를 말한다.
이때 회사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고 재정적 또는 기타 이유로 사업 기회를 편취했다면 그 사업 자체 또는 그로 인한 이익을 회사에 반환하거나 회사의 손해를 배상해야 하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공정거래법에 의한 ‘물량 몰아주기’ 규제가 유일한 규제수단일 뿐 이같은 ‘회사기회의 편취’를 했다고 해서 별다른 형법상의 제재를 받는 것은 아니다.


지난 2006년 법무부가 ‘회사 기회의 유용금지’ 조항을 신설하는 것을 포함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표한 바 있지만 재계에서 상법 개정안이 기업활동을 위축시키고 현행법상에 이사의 의무 규정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바람에 이 법안은 현재 국회에 계류 중에 있다.
하지만 경제개혁연구소가 지난 9월 3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대기업들의 회사기회의 유용 혹은 편취의 액수는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내 재벌그룹 총수 일가들은 계열사가 직접 영위할 수 있는 사업인데도 불구하고 자신이 대주주로 있는 회사에 사업기회를 넘기도록 한 뒤 계열사간 내부거래를 통해 기업 가치를 높여 결과적으로 많은 자본이득을 얻거나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만드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정위, 해당 기업에 과징금 부과

 



▲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경제개혁연구소의 발표에 따르면, 회사기회 유용을 통해 가장 많은 부를 늘린 사람은 이며 그 다음이 최태원 SK그룹 회장이다.


정의선 부회장은 글로비스를 통해 얻은 6,445억원을 포함해 7,520억원의 이익을 냈으며 최태원 회장은 SKC&C를 통해 4,976억원의 이익을 얻은 것을 포함해 5,390억원의 부를 축적했다.


이같은 액수는 회사 기회의 유용이 발생한 때부터 2008년 말까지 보유중인 주식 평가액에 배당금과 주식매각 금액을 더하고 주식의 최초 취득금액을 빼는 방식으로 산출한 것이다.


이때 지분율, 최초 취득금액, 주식매각액 등은 해당 회사의 사업보고서나 감사보고서, 최대주주 현황 등을 확인한 자료에 근거했다.


자료에 따르면 정의선 부회장은 글로비스, 오토에버시스템즈, 위스코, 본텍 등 자신이 대주주인 회사를 통해 재산을 늘렸으며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도 글로비스와 오토에버시스템즈를 통해 4,680억원의 이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차그룹 특수 관계자들의 부의 증가액은 1조2,102억원으로 21개 기업집단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전체 총액의 약 33.89%로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공정위에서 회사기회의 유용 행위를 확인한 경우와 사법당국에서 이미 유죄 판결한 사례는 현대 글로비스 사건과 삼성 SDS 판결 등이 대표적이다.  


2007년 10월 공정위는 글로비스와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현대모비스·현대제철간의 거래에서 비정상적인 가격의 거래와 현저한 규모의 거래를 통한 부당지원 행위를 확인하고 시정명령과 함께 과징금을 부과했다.


현대자동차측은 이에 불복하여 공정위의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2009년 8월에 행정법원이 글로비스에 대한 다른 계열사들의 ‘물량 몰아주기’ 거래가 공정거래법상 부당지원 행위에 해당하여 공정위의 제재조치가 적법하다는 판결을 내린 상태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도 재벌그룹 오너들 중 회사 기회를 유용해 치부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주로 유용한 회사는 SKC&C, 와이더댄 닷컴, 이노에이스는 SK텔레콤에 돌아갈 이익을 이 회사가 얻게 된 혐의이며 SK디앤디는 SK건설이 가져가야 할 이익을 유용한 것이다.


이같은 우려에 대해 SK그룹 관계자는 “정부 기관이나 공정위라든가 공신력있는 기관에서 낸 자료가 아니다. 회사기회 유용의 의심사례라는 애매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불공정 거래 등의 행위가 드러날 경우 과징금 처리라든가 배임처벌 등 해당 경우의 처벌이나 제재가 있을 것인데 조사 대상인 200개 기업 모두에게 그런 일이 발생한 것은 아니다”면서 “SK는 오히려 한국기업지배구조 개선지원센터가 선정하는 지배구조 우수기업에 2005년과 2006년에 선정되었고 2004년부터 사외이사 비중을 확대하고 이사회 운영 효율성 제고 등을 통해 이사회 중심경영과 투명경영을 지속적으로 실천해 온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고 말했다.

 

 

삼성 SDS 등 유죄판결 받아

 

삼성그룹의 경우, 경제개혁연구소가 회사 기회편취로 지적한 곳은 가치네트와 서울 통신기술이 대표적이다.


이들 회사들은 삼성SDS와 삼성전자에 돌아갈 물량을 유용해 이재용 전무의 주식을 재산을 증식시키는데 일조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삼성은 삼성증권이 2001년 3월 이재용 전무가 대주주로 있는 ‘가치네트’ 주식 6만주에 대해 총 1억8,700만원을 출자한 바 있다. 삼성측은 이와 관련하여 가치네트 지분 인수절차는 적정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삼성SDS가 비상장 주식을 이재용 전무 등에게 헐값에 넘긴 회사에 손해를 끼친 점으로 인해 최근 유죄 판결이 난 상태이다.


대림그룹 이준용 회장도 대림코퍼레인션 등을 통해 4,681억원의 부를 늘렸다. 
대림그룹은 이해욱 대림산업 부사장이 100% 보유하고 있던 대림H&L(복합운송주선업)을 대림코퍼레이션이 흡수합병하였다. 이해욱 부사장은 2001년 대림 H&L 설립 이후 총 110억원을 출자했는데 2008년 11월 합병 당시 대림H&L의 평가액은 1,956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번 합병으로 이해욱 부사장은 대림코퍼레이션의 지분 32.12%를 확보한 대신 이준용 대림그룹 회장의 지분율은 89.8%에서 60.60.96%로 낮아졌다. 대림코퍼레이션은 대림그룹의 핵심 계열사인 대림산업의 지분 21.67%를 보유하고 있는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이번 합병과 지분취득으로 이해욱 부사장은 그룹 경영권 승계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이해욱 대림 부사장은 2,283억원의 이익을 얻었다.


이밖에도 정몽근 현대백화점 명예회장(1,596억원), SK최기원(1,060억원),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1,056억원), 정교선 현대홈쇼핑 사장(942억원),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877억원) 순이다.

 

롯데 오너 일가도 의혹 받아

 



▲ 롯데 신영자 사장

경제개혁연구소는, 롯데의 경우에도 오너 일가가 별도의 명품 의류 수입업체를 운영하면서 롯데백화점에 입점해 막대한 차익을 챙긴 사례도 ‘회사 기회의 편취’ 사례로 지적한다.


롯데쇼핑 신영자 사장의 아들 장재영씨가 100% 지분을 보유한 수입의류 도소매 업체인 비앤에프통상을 통해 지난해 매출 269억5,000만원, 순익 23억3,000만원을 올렸다. 이 회사는 지난 2000년부터 2008년까지 1,500억원대의 매출을 올렸으며 순이익은 200억원대에 달한다. 따라서 기업의 특수 관계인이 지분을 100% 갖고 있고 내부 거래를 통해 매출을 내면서도 계열사가 되지 않는 것은 ‘회사기회의 편취’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밖에도 경제개혁연구소가 회사기회편취 의혹을 사고 있는 기업으로 지목한 곳은 현대커머셜, 에스케이디앤디, 아시아나애바카스, 엘에스글로벌인코퍼레이티드, 노틸러스효성 등 16개사가 있다.


박문덕 하이트그룹 회장은 2005년 말 기준으로 2,316억원의 증가가 있었지만 2008년 2월에는 자신이 100% 보유하고 있던 하이스코트의 지분을 아들 박태영과 친인척인 박재홍이 100% 보유하고 있는 삼진이엔지에 증여하면서 상위 10위권에서 빠졌다. 하지만 아들 박태영이 하이트맥주 그룹의 출자구조상 정점에 있는 삼진 이엔지의 최대 주주(58.44%)가 되면서 상당한 부의 승계가 이루어졌다.


이같은 사례들에 대해 경제개혁연구소 채이배 연구위원은 “총수 일가의 개인 회사에 다른 계열사들이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비상장사의 수익을 올려주어 결과적으로 지배 주주의 사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재벌그룹 전반에 걸쳐 만연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면에서도 심각성을 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상법 개정을 통해 총수 일가의 회사기회 유용 금지를 명문화해야 한다”면서 “공정거래위원회가 2007년 글로비스 부당지원에 대해 제재한 것처럼 계열사간 물량 몰아주기를 통한 회사기회 유용을 적극 규제할 수 있도록 상법상 회사기회 유용 금지를 명문화해야 하고 관계당국이 철저하게 조사하고 엄정하게 제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회사기회의 편취, 선진국은 어떻게 대처?


미국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회사 기회의 편취 문제를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미국은 이 문제가 건전한 경제 질서를 어지럽히는 행위라고 보고, 소액 주주들의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게끔 법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미국은 지난 80년 회사기회의 편취에 대한 첫 판례가 나온 후 30년 가까이 관련 법을 적용해오고 있다. 이 법에 따라 미국의 소액 주주들은 대기업 오너가 특정 계열사나 비상장 회사에게 물량 밀어주기 식으로 회사에 손해를 끼칠 경우, 법원에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 재벌 총수들의 회사 기회 편취 행위를 정부만 제재할 수 있게 되어 있는 한국에 비하면 합리적인 법 적용을 하고 있는 셈이다. 회사 기회의 편취 사례들을 하나씩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은 가히 재벌들의 천국이다.


미국의 한 저명한 경제학자는 삼성 애버랜드 사건과 관련해 “미국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고, 중대한 배임죄로 처벌됐을 것”이라고 꼬집은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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