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고위 공직자, 대형 로펌행 실태

 

-한승수 전 총리 김&장行 도덕성 논란 
-윤증현, 한덕수 등도 김&장 고문 출신

 


지난 9월 29일 물러난 한승수 전 총리가 한 달이 채 안 돼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의 고문으로 재취업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일고 있다.


한 전 총리의 김&장 복귀는 일반적인 상식 수준에서 보면 문제가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시민단체 관계자들은 “전직 고위 관료가 수억 원의 연봉을 받고 할 수 있는 일이란 사실상 뻔하다. 각종 정책 결정과 관련된 로비일 것”이라며 도덕성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공직자윤리법이 있어도 고위 공직자들에게 로펌 취업의 문은 무제한으로 열려있으며 이것이 곧 ‘회전문 인사’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 한승수 전 총리

한승수 전 총리는 지난 2004년 6월부터 지난해 2월 총리로 내정되기 전까지도 김&장 고문을 지냈다.
노태우 정권 때 상공부 장관, 김영삼 정권 때 주미대사, 경제부총리 등 공직에서 화려한 이력을 가진 한 전 총리는 공직에서 물러난 뒤 김&장 고문으로 있다가 국무총리로 입성했으며 이번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면서 다시 김&장 고문으로 재취업했다.


김&장측은 “한 전 총리가 하게 될 일은 경제 관련 부문의 자문을 맡게 될 것이며 한 전 총리에게는 개인 사무실과 차량이 제공될 것”이라고 전했다. 구체적인 연봉은 공개하지 않았지만 ‘국무총리급’이라는 점에서 연간 수억 원을 넘게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역시 부 2007년 8월부터 김&장 고문으로 재직하며 매월 5,000만원씩 연간 6억원 가량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덕수 주미대사 역시 김&장 고문 출신이며, 서동원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 김회선 전 국정원 2차장 등이 김&장 출신이다.


이처럼 고위 공직자들이 퇴임 후 너나없이 로펌으로 직행하고 있다. 공정위가 제출한 재산등록 의무자의 퇴직 후 법무법인 취업현황을 보면 2007년 10월부터 지난달까지 총 29명이 퇴직해 이중 15명(51.7%)가 대형로펌에 취업했다. 이 가운데 40%에 달하는 6명이 ‘김&장’ 법률사무소에 취업해 공정위 출신 공직자들이 로비창구 역할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지적됐다.


또 최근 5년간 19명의 공정위 공무원이 민간근무 휴직제를 통해 민간 기업에서 근무했는데 이 중 절반이 넘는 10명이 ‘김&장’, ‘세종’, ‘바른’ 같은 대형 법무법인에서 일했고 이들 중 5명이 김&장을 택했다.

 

공직자윤리법 있어도 로펌 취업

 

전직 고위관료들의 로펌행은 법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
공직자윤리법에 “4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경우 퇴임 후 2년 동안 업무 연관성이 있는 영리법인에 재취업하는 것을 제한”하고 있다. 또 공무원임용령 ‘제55조(민간기업 등의 준수사항) 제2항은 민간기업 등의 장은 휴직공무원에 대하여 보수·지위와 그 밖의 처우 등에서 다른 직원보다 특별한 우대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공직자윤리법상 재취업을 제한하는 영리법인의 기준이 ‘자본금 50억원, 매출액 150억원’ 이상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김&장 등 대평로펌은 이 기준을 피해가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2003년의 경우에는 김&장도 이 기준에 들어갔지만 최근 자본금을 줄인 상황이다. 국내 최대 로펌인 김&장이 재취업 금지 기준에 들어가지 않으니 다른 로펌들도 마찬가지.


이에 따라 공직자윤리법의 실효성 논란이 여러 차례 문제가 제기됐다. 여론이 악화되자 행정안전부는 지난해 7월 대형 로펌을 고위 공직자들의 취업 제한 대상에 포함하는 방향으로 공직자 윤리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이 개정안을 슬그머니 폐기했다.


한 전 총리의 김&장 재취업에 대해 참여연대 관계자는 “공직자윤리법의 허점도 문제지만 이렇게 뻔뻔한 행보를 보일 경우 공직자로서의 도덕성을 묻기조차 힘들다”며 비난했다. 또 “법조인도 아닌 한 전 총리와 같은 고위 공직자가 로펌으로 가는 것은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결국 로비스트 이외에 어떤 일을 하겠냐”며 대형 로펌으로의 재취업을 법적으로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취업제한 제도도 행위 제한으로 가야 한다”며 “이처럼 고위 공직자가 로비 가능성이 있는 사기업에 재취업했을 경우 공직자들과 접촉을 막거나 접촉시 공직자들이 사전에 신고를 하도록 하는 등 행위 제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인봉 변호사는 “한 총리는 불과 두 달 전까지 ‘일인지하만인지상’의 총리 자리에 있었다. 대통령제라고는 하지만 국무총리 자리는 막강한 자리이다. 한승수 총리의 경우, 모두들 그가 총리를 그만둔 다음 조용히 지낼 것으로 알았는데 퇴직 한달이 채 안돼 특정업체에서 매월 거액을 받는다는 것은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고 꼬집었다. 


그는 또 “부총리가 되기 전 윤증현씨도 월 5,000만원씩을 받았다니 한승수씨도 얼마를 받을지 미루어 짐작이 간다. 한승수씨도 그 급료에 미안하지 않을 정도로 일은 해야 할 것이다. 그 일은 무엇일까? 이건 결국 공직에 있는 일과 관계되어 영향을 미치거나 그의 경험을 전해 주는 일일 것이다. 일국의 총리와 부총리가 법률업체인 김&장에서 파견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기업들이 김&장을 우러러 보지 않겠는가? 이래가지고서는 무슨 공정한 정책을 기대하겠나.”라고 비판했다.


한승수 전 총리 등 고위공직자들의 김&장 행에 대해 <뉴스포스트>는 지난주 내내 김&장측의 입장을 들으려 했지만 끝내 이에 대한 답변을 들려주지 않았다.


 

“고위공무원의 윤리의식이 문제”
인터뷰/민주당 홍영표 의원

 


민주당 홍영표의원은 국회 국정감사에서 공직자들의 민간 기업 취업 문제를 심도 있게 제기해 언론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홍의원은 “공무원들의 민간휴직 근무제가 원래의 취지에서 벗어나 ‘공무원들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라고 지적하는 한편 특히 고위직 출신과 대형로펌의 부적절한 결합을 집중 비판했다. <뉴스포스트>는 홍영표의원과 이 문제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공무원 민간휴직 근무제는 어떻게 생겨났나?
 “2002년 공무원이 6개월에서 3년간 민간기업에 근무하면서 민간부문의 경영기법을 배우고 민간기업은 공무원의 전문지식과 행정경험을 활용하자는 취지에서 도입되었다. 하지만 최근 민간근무휴직제가 공무원들의 법무법인 취업 및 고소득 수단으로 전락하고 있다. 예를 들어 관련 공무원 대부분이 대형로펌, 특히 김&장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퇴직한 고위공직자들도 대부분 김&장에 취업함으로써 대한민국을 김&장 공화국으로 만들고 있다.”

 

-민간근무 휴직제의 가장 큰 문제점은 뭔가.
“공무원 임용령에 ‘민간기업 등의 장은 휴직공무원에 대해 보수·지위와 그 밖의 처우 등에서 다른 직원보다 특별한 우대를 해서는 아니된다’고 명시되어 있는데도 공무원들이 고액의 연봉을 받음으로써 기강해이, 위화감 조성 등 여러 문제점들이 발생할 소지가 다분하다.”

 

-공직자들이 민간근무 휴직제를 통해 얻는 수익은 어느 정도인가.
“공정위가 제출한 최근 5년간 민간근무휴직 현황자료를 보면 총 19명이 민간근무를 했고 이들의 평균 연봉은 휴직 전 5,590만원에서 휴직 후 9,358만원으로 1.7배가 올랐다. 또 1억 이상 고액 연봉자도 7명으로 전체 19명의 36.8%에 달한다.
특히 김&장에 근무한 민간근무 휴직자의 경우 평균 연봉이 9,360만원으로 다른 로펌 근무자의 평균 연봉인 7,960만원보다 1,400만원이나 높다. 1억원 이상의 고액 연봉을 받은 로펌 근무자 3명 중 2명이 김&장에서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직자 윤리법의 실효성에 대한 문제점을 제기했는데 어떤 문제가 있나.
“현행 공직자윤리법에는 ‘퇴직일부터 2년간’ ‘퇴직 전 3년 이내’에 소속했던 부서의 업무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영리를 목적으로 한 사기업체에 취업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취업 금지 대상을 자본금 50억원 이상의 영리 사기업체로 제한하고 있는데 로펌의 특성상 자본금 50억원을 넘는 곳은 우리나라 그 어디에도 없다. 이 법대로 하자면 총리, 장관, 검사, 판사 등 직무와 직접 관련된 사람도 곧바로 로펌으로 옮겨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는 일반 국민이 생각해도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되는 부분이다. 이렇게 실효성 없는 법은 실효성이 있게끔 개정되어야 마땅하다.“

 

-법적인 문제 외에 다른 문제는 없나.
“이 문제의 핵심은 우리사회 지도층 및 고위공직자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대한 의식이 얼마만큼 확실한가와 무관치 않다. 공직자윤리법을 통해 재취업을 막기 이전에 사회지도층의 올바른 윤리의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특히 이명박 정부 취임 이후 사회지도층의 도덕성 문제는 매번 개각 때마다 문제가 되었다. 현 정부가 말하는 ‘서민을 위한 정치’의 시작은 사회지도층 및 고위공직자들의 윤리의식 재정립부터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근 한승수 전 총리의 김&장 고문 재취업이 논란이 되고 있는데.
“한승수 전 총리가 총리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이해 충돌 가능성이 있는 로펌으로 취업한 것은 누가 보더라도 비난의 대상이 되는 적절치 못한 처신이다. 정부에서 주요 요직을 맡고 계신 분들은 그에 걸맞는 처신이 필요하다.”

 

-민간근무휴직제가 공무원들의 고소득 수단으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은 없나.
“급여 상한선을 두어 과도한 연봉을 받는 것을 방지하고, 대형로펌 근무와 취업에 대해서도 적절한 통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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