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DI 북한수용소 설문조사

 

고문 구타 인한 사망, 인권유린 심각
북한 형벌제도는 체제유지 위한 방편

 


지난 9일 한국개발연구원(KDI)은 미국 피터슨연구소가 탈북자들을 상대로 벌인 ‘수용소 경험’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2004년 8월부터 2005년 9월까지 중국 11개 지역에 거주하는 1천346명의 탈북자와 2008년 11월 한국에 거주하는 300명의 탈북자를 대상으로 실시되었다. 북한주민들에게 억압적인 형벌이 적용되고 있음을 밝히고 있는 이번 보고서는 북한 인권이 얼마나 침해당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자료이다.

 

 


KDI 보고서는 시장 경제활동에 종사하는 북한주민들에게 억압적인 형벌이 적용되고 있음을 밝혔다. 이러한 형벌은 체제 유지를 위한 시장통제는 물론 관리들로 하여금 뇌물수수를 용이하게 해 주민들에 대한 혹독한 강탈을 조장한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억압 정치와 북한 체제에 대해 강한 불만이 있지만 이에 대한 저항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북한이 집단행위에 대한 장벽이 높고, 정치적 반대행위가 전혀 허용될 수 없는 ‘극도의 개체화된 사회’의 특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KDI 보고서 중 2008년 설문조사결과를 보면 감금된 경험이 있는 응답자 102명 중 13명만이 재판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집결소에서 일정기간 감금되었던 사람들은 처형(75%), 급식 박탈(100%), 고문과 구타로 인한 사망(50%) 등을 목격했다고 응답했다. 중국 거주 탈북자의 55%는 ‘북한 수용소에서 생체 실험을 당했고’고 답했으며 ‘신생아 살해를 경험했다’는 응답자도 5%에 달했다. ‘생체 실험’이란 살아있는 사람을 대상으로 실험을 가하는 반인륜적인 행위를 말한다. 이에 대북인권단체 ‘좋은 벗들’ 이승용 사무국장에게 ‘생체 실험’ 자행에 대해 물으니 “항간에 떠도는 소문으로 안다. 대다수가 그런 생체실험 경험을 했다고 보진 않는다. 다소 과장된 내용이다”고 전했다. 북한 인권연합 이영환 조사연구팀장 역시 정보의 변형이 생긴 것 같다고 밝히며 번역 과정 중 오역이 생길 수 있다고 답했다. 덧붙여 “고문은 일반적으로 다 당한다. 구타, 폭행, 감금, 음식을 주지 않는 경우도 있다. 13살 정도의 아이를 메달아 놓고 이불을 덮어 석탄에 달군 부지깽이로 때린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이러한 북한의 형벌제도가 시장 지향적 경제활동을 통제하고 주민들에 대한 강탈을 조장한다고 전했다. 체포, 선고의 기준이 명확하지 않기에 주민들은 유치, 체포, 감금 등을 피하기 위해 관리들에게 공공연하게 뇌물을 바치게 된다는 것이다.


 

“北에서 김정일은 神”
탈북자 박건하 인터뷰

 



▲ 박건하 기획조정부장

 

북한 수용소 경험에 대한 생생한 증언을 듣기 위해 (사)NK지식인연대 박건하 기획조정부장을 만났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

 

-‘생체실험’에 대해 들어 보았는가.
“‘생체실험’은 비밀리에 이뤄진다. 직접 경험하진 않았으나 자주 듣긴 했다. 주로 대상자는 정치범들이며, 새로운 군사 장비나 생화학 무기가 나오면 방독면 같은 걸 씌워 ‘사람이 몇 시간 견딜 수 있나’를 실험해 보는 것이다. 군복무 할 때, 남조선에서 온 다큐멘터리라며 비디오를 본 적 있다. 여자가 말뚝에 세워진 사람을 실제 죽이는 장면이 나왔다. 창자가 다 나온 장면이 정지화면으로 나온 적 있다. 잔인해서 밥을 못 먹을 정도였다. 그 때는 ‘남조선이 북한을 이기기 위해 저렇게 억척스럽게 훈련하는 구나’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북한 영상이었다. 그 때 그 죽음을 당한 사람이 정치범이었던 것 같다. 군인들의 훈련용으로 쓰인 것이다.”

 

-‘정치범’이란 하면 어떤 사람들을 말하고, 어떤 벌을 받나.
“김일성, 김정일을 욕하는 사람들이다. 당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도 속한다. 김일성 사진이나 초상화를 훼손한 경우 누군가가 신고하면 잡혀간다. 최근에는 그 전보다 정치범에 대한 형벌이 많이 약화되었다. 탈북자의?가족들에 대한 처벌도 전만큼 강하지 않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탈북을 하다 보니 그 사람들을 다 일일이 형벌을 내릴 수 없는 것이다. 정치범들은 일반 죄수들과 따로 수용된다. 그 사람들은 재판도 없다. 정치부 수용소에 따로 격리된다. 수용소 마을에 가서 거의 10년 동안 살다 나온다. 울타리를 쳐 놓고 가족이면 가족 전체가 들어가 농사짓고 산다. 외부와 단절된다.”

 

-잡혀가면 어떤 과정을 거치나.
“일단 잡아다놓고 며칠 동안 잠을 재우지 않고 잘못한 점에 대해 노트에 쓰라고 한다. 쓰다보면 전에 밥 한 공기 훔친 것까지 적게 된다. ‘죄를 지은 적이 없다, 잘못한 일이 없다’라고 하면 몽둥이로 때리거나, 연필을 손가락 사이에 껴서 손가락을 비틀어 버린다. 굶기고, 때리고, 잠을 안 재우는 등 육체적 고통 뿐 아니라 정신적인 고통도 준다. 남한과의 차이점은 고문을 통해 자백을 받아낸다는 것이다. 자백 후에 검찰에 넘기면 재판을 통해 벌을 받는다. 재판 받기 전까지는 구류장(구치소)에 있다가 재판 받은 후 교화소(감옥)에 간다.”

 

-어떤 이유로 고문을 당했나.
“세관에서 일했다. 국가재산을 탐한 죄로 4년형을 받았다. 운이 좋아 북한 노동당 50주년 기념 사면 때, 10개월만 구류장(구치소)에 있었다. 구류장 질서를 지키지 않는다는 이유로 죽기 직전까지 맞았다. 구둣발로 차이면서 피가 터질 때까지 맞았다. 구류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건 ‘인권’이 없다는 것이다. 범죄 자체는 나쁘지만 사람 이하의 취급을 당한다. 밤 10시에 재워서 아침 6시에 기상 시킨다. 한 시간 동안 청소하고 아침 먹은 후 그 자리에 계속 앉아 있어야 한다. 자유자재로 앉을 수 있는 게 아니라 무릎 꿇고 정자세로 앉아야 한다. 교도관이 2시간마다 운동을 시킨다. 눕는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구류장에서의 생활은 어땠나?
“한 방에 6명 정도 생활했다. 사람이 겨우 잠잘 수 있는 공간이었다. 변기에서 물을 받아 세면하고, 청소를 한다. 교도관들이 밥 먹을 때, 자신들이 맡고 있는 자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급식으로 벌을 준다. 콩밥을 절반밖에 주지 않는다. 내가 배가 아파서 밥을 못 먹는다고 내 밥을 다른 사람에게 마음대로 줄 수도 없다. 구류장 안에는 송장 냄새가 난다. 특히, ‘이’가 엄청 많다.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화장실 갈 때와 ‘이’ 잡을 때이다. 교도관에게 손들고 ‘한 가지 제의가 있습니다. 소변 좀 볼 수 있을까요?’라고 물으면 착한 교도관은 갔다 오라고 하지만 대다수는 ‘가만 앉아 있어’라고 한다. 10개월 동안의 구류장에서의 생활이 10년처럼 느껴진다.”

 

-김정일의 권위는 실제 북한에서 어느 정도인가.
“북한에 있을 때, 김정일의 부인과 자식이 몇 명인지 몰랐다. 김정일은 그저 ‘신’인 것이다. 김정일이 먹는 농작물은 따로 재배된다. 정부와 노동당은 인민군이 살든 죽든 상관 안한다. 북한 주민들이 굶어 죽을 때, 오히려 경찰은 많이 늘어났다. 사람들이 혼란을 겪고, 정부에 반발심이 생기면 폭동이 일어날 것을 알고 통제력을 강화한 것이다. 인민들끼리도 3명당 1명꼴로 스파이다. 가족도 못 믿고, 아버지, 어머니도 못 믿는다. 가장 못 믿는 게 부부이다. 이혼하면 남이 되니 제일 가깝지만 믿을 수 없는 관계가 바로 부부다. 김정일을 조금이라도 비방하면 바로 잡혀가는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노동당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다. 나머지 당은 노동당의 하수당이다.”

 

-최근 들어 북한 사회에 변화가 있나
“NK지식연대는 북한의 소식통과 정보를 주고받는 곳이다. 이번 북한의 ‘화폐개혁’ 소식도 우리가 먼저 전했다. 최근 북한에는 컴퓨터와 MP3가 많이 보급되었다. 인트라넷을 통해 북한 뉴스를 접하고 남한의 소식도 알려준다. 들은 얘기로 중국 국경에서 북한 밀수꾼들이 포르노 DVD를 많이 요구한단다. 컴퓨터로 보는 것이다. 남한의 드라마와 영화도 많이 본다. 인신매매가 많아지고 있는 것도 변화이다. 밀수꾼들이 있는데 이들이 북한 여자들을 중국에 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것이다. 그런데 워낙 북한 상황이 안 좋다보니 여자들이 자의적으로 찾아와 중국에 팔아달라고 하기도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탈북을 해 북한과 다른 환경에서 살고자 하는 것이다.”

 

-북한 인권을 어떻게 보나
“10년 전과 달라진 건 없다. 살기가 어려워졌지만 그 대신 김정일에 대한 충성도가 떨어졌다. 거주이전, 여행의 자유가 없다. 정보를 철저히 차단당하고, 조선정보국 채널 한 개, 개성채널도 있지만 평양시와 그 주변 지역들을 위한 주말 방송일 뿐이다. 라디오도 듣지 못한다. 모두 유선방송이다. 서울에서 일어난 일은 빨라도 6개월 후에나 듣게 된다. 종교의 자유는 인정하나 교회, 절은 없다. 소학교 2학년 때부터 조직생활을 시작한다. 소년단 생활을 시작으로 철들어서 죽을 때까지 일하게 된다. 소년단은 초등학교에서 만든 조직 단체로 노동당 선전, 농촌 지원 활동을 한다. 파지, 고철 등을 모아서 고물상에 팔아 돈을 받아 학교에 바친다. 중학생이 되면 1년에 1개월 정도는 합숙생활을 하면서 농장 일을 돕는다. 대학생이 되면 1개월 반 정도 농사일을 돕는다. 북한에는 ‘인권’이란 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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