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제: ‘서식환경’ 좋아지고… ‘수사환경’ 나빠지고

조직폭력배 31% 증가했지만 검거율은 ‘반타작’
합법적 사업 가장해 조폭 세력 확장
검·경 수사환경 나빠져 검거에 난항

 

조직폭력배들의 ‘서식환경’은 좋아지고 검찰·경찰의 ‘수사환경’은 나빠지면서 국내 조직폭력배 수는 매년 꾸준히 증가하는 반면 단속실적은 크게 줄고 있다. 자칫하다가는 일본 야쿠자나 러시아 마피아가 우리나라에서도 현실화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국내 폭력조직에 소속된 조직원 수는 2009년 말 현재 5450명으로 2001년에 비해 1297명(31.2%)이나 늘었다. 폭력조직(계파) 수도 2009년 223개로 같은 기간 24개(12.1%)가 늘었다. 반면 폭력조직에 대한 단속 실적은 증가세를 따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이 집계한 폭력조직 관련 구속자는 지난해 604명에 그쳐 2001년 1348명에 비해 55.2%나 줄었다.
이처럼 조폭이 활개를 치는 까닭은 이들이 합법적인 사업을 가장해 세력을 확장하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과거 살인, 폭행, 범죄단체 구성 등의 혐의를 쉽게 적용할 수 있었으나 최근 경제범죄로 옮겨가 단속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최윤수 대검 조직범죄과장은 “과거 폭력조직의 자금원이 유흥업소 운영 등에 국한됐지만 최근에는 대부업, 건설업 등으로 확대됐다”며 “자금원이 다양해지면서 폭력조직의 서식환경이 좋아짐에 따라 조직폭력배 수도 크게 늘어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대부·건설업으로 영역 확대
경제범죄는 살인·폭력에 비해 혐의내용이 복잡하고 법정에서 유죄를 입증하기도 상대적으로 어렵다. 탄탄한 경제적 기반을 갖춘 조폭들은 거액의 수임료를 들여 유력 법무법인이나 변호사 도움을 받는다.
 

또 피의자 인권보호를 강조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예전처럼 조폭을 상대로 강력한 수사를 펼치기도 어렵다고 수사관계자들은 토로한다. 특히 국내에서 활동 중인 외국인 범죄조직의 경우 정확한 규모조차 파악되지 않고 있다.
 

이런 실정임에도 불구하고 사법부의 공판중심주의와 불구속 수사원칙의 강화로 수사여건이 불리해졌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워진 폭력조직 수사·단속을 더욱 어렵게 하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조직범죄는 갈수록 치밀하고 교묘해져 법망을 피해 다니고 있지만 임의동행·압수수색·구속 등의 요건이 엄격해지면서 수사나 단속은 과거보다 더욱 힘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 아래 한국형 야쿠자가 탄생하진 않을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형사정책연구원 조병인 범죄연구센터장은 “기업형으로 성장한 범죄조직이 야쿠자처럼 정치권력과 결탁하는 순간 공권력을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게 될 수 있다”며 “수사나 단속은 때가 있는 법인데 적시에 대응하지 못하면 다른 나라들처럼 범죄조직이 활개치게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조직폭력배를 미화하는 영화나 드라마 때문에 왜곡된 국민의식도 조직범죄가 서식할 수 있는 토양을 제공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교정이나 개선 노력도 뒤따라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접대비 실명제 재도입 여론
 

이에 지난 13일 강기갑 민주노동당 대표는 “조직폭력배를 줄이기 위해 먼저 접대비 실명제를 다시 도입해야 한다”고 밝혔다.
 

강 대표는 “조직폭력배가 늘어나고 있는 이유는 조직폭력배가 자랄 수 있는 환경이 좋아지고 있기 때문”이라면서 “조직폭력배의 자금원인 유흥업소와 대부업이 번성하면 덩달아 조직폭력배가 번성할 수 있는 환경이 좋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이명박 정부는 기업 규제완화를 명분으로 접대비 실명제를 폐지하고 접대비 한도액을 증가시킴으로써 유흥업소가 번창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줬다”고 비판하고 “기업들이 접대비를 실명으로 지출하는 것과 비실명으로 지출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접대비를 세법상 손비로 인정해주는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대부업에 대한 관리, 감독, 처벌을 훨씬 강화해야 해야 한다”면서 “금융감독원, 경찰, 검찰력을 동원해 조직폭력배의 서식환경이 좋아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스

 

조폭은 어떻게 양산되나

 

조직폭력 조직에는 인사담당자가 있다. 이들은 조직원을 뽑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선출기준은 싸움실력과 ‘지연’이다. 다른 지역출신인 경우 아무리 싸움을 잘 해도 조직에 가입시키지 않는다. 나중에 마찰이 생겨 조직을 떠날 경우 밖에다 밀고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조직에 들어가게 되면 ‘인턴’을 거쳐야 한다. 인턴들은 ‘선배를 알아야 한다’, ‘양아치 짓은 절대 안 된다’, ‘전쟁(패싸움)이 나도 상체는 건드리면 안 된다’, ‘피는 안 섞였어도 우리는 형제다’, ‘도망치면 죽는다’는 등의 강령을 배운다.
 

이 과정에서 ‘처세’도 익히게 된다. 처세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예의범절이다. 맞담배 피우는 것, 자리에 먼저 앉는 것, 숟가락을 먼저 드는 것 등은 철저히 금지돼 있다. 술을 마실 때도 기본적으로 두세 번은 거절을 한 뒤 그래도 권할 경우 이빨과 입이 보이지 않게 손으로 가리고 마셔야 한다. 선배가 화장실을 갔다가 나올 때는 화장실 앞에서 물티슈를 들고 기다려야 한다.
 

신규 조직원들은 ‘합숙소’에서 생활하게 된다. 방은 선배들이 얻어주는데 3명 정도가 한 집에서 생활하는 것이 보통이다. 합숙소에서는 몸집을 불리기 위해 밥과 고기를 많이 먹는다. 어떤 조직원은 한 번에 밥 열 공기를 먹으라고 해 꾸역꾸역 먹다 토하기도 한다. 이런 생활에 염증을 느낀 몇몇은 도망치거나 가입을 거부하기도 한다.
 

하지만 조직은 이런 이들을 가만히 놔주지 않는다. 실제로 파주 스포츠파 행동대원 김모씨는 2008년 조직에서 나가고자 하는 당시 18살 조직원을 야구방망이로 때리고 회칼로 이마 부위를 베어냈다. 그 부위에서는 아직도 머리가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또 김씨는 조직 가입을 거부하는 학생의 허벅지에 칼을 찔러 넣기도 했다. 피해자들은 경찰에서 “조직을 탈퇴하면 가족과 여자친구까지 다 죽이겠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했다.
 

고양경찰서 강력1팀 담당형사는 “조직에 몸담았던 아이들은 하나같이 ‘조직에 가입했던 걸 뼈저리게 후회한다’고 말한다”며 “조폭에 오래 있다 보면 생일 케이크도 회칼로 자를 정도가 되는데 그때는 후회해도 늦는다”고 말했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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