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반도체 공정 첫 공개


시민단체 “생산라인 공개는 불신 봉합용 임기응변”
삼성 “시민단체의 의혹 제기, 反삼성 캠페인일 뿐”


‘백혈병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반도체 생산라인’을 공개했다. 지난 15일 “반도체 제조공정과 근무환경에 대해 일각에서 제기하고 있는 의혹과 불신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해소할 것”이라며 기흥공장 5라인과 S라인을 언론에 처음으로 노출한 것이다. 이는 ‘삼성반도체 집단 백혈병 진상 규명과 노동기본권 확보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가 결성된 2007년 11월부터 지난 2년 반 동안, 피해 노동자들과 가족들이 줄기차게 주장해 온 요구이기도 하다.


지난 3월 31일 삼성반도체 백혈병 피해 노동자 박지연 씨의 사망을 계기로, 이곳에서 최소한 23명 이상의 림프조혈기계 암 피해 노동자가 존재하며 이 중 9명이 사망했다는 사실이 각종 매체를 통해 널리 알려졌다. 또한 박지연 씨의 지난한 투병 과정과 산재 인정을 위한 투쟁이 소개되면서 ‘삼성의 직업병 책임 인정과 안전하고 인간적인 노동조건 제공을 촉구하는 국제 청원 운동’에 40여개 국가에서 1200여 명이 참여했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진행되고 있는 ‘박지연 추모 서명’에 2800여 명이 참여하는 등, 삼성전자의 책임을 묻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온양공장 박지연씨, 백혈병으로 사망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어난 ‘집단 백혈병’ 사건 대부분은 화학물질에 반도체 원판을 담궜다 빼는 세척 공정을 수행하는 1~3라인에서 발생했다. 2005년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고 2007년 사망한 황유미씨, 1995년부터 6년간 삼성 LCD사업부에서 일하다가 2005년 소뇌부 뇌종양이 발병해 이 후유증으로 지체장애 1급 판정을 받은 한혜경씨 등은 모두 생산직 라인에 종사했다. 한혜경씨는 입사 3년차가 되던 때 무월경 상태가 지속되는 이상 증상을 보이기 시작했으며, 퇴사 몇 년 후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지난 3월 31일 삼성반도체 온양공장에 입사했다가 급성 골수성 백혈병에 걸려 32개월간 투병해온 1987년생 박지연의 사망으로 삼성 반도체 공정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1999년에 입사한 김경미씨는 몇차례 임신에 실패한 끝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지만 2008년 4월 급성 골수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이후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이하 반올림)측은 이 같은 사실을 알고 김 씨에게 산업재해를 신청할 것을 권했으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함께 하지 못했다고 전했다. 반올림 소속 공유정옥 산업의학과 전문의는 “지난해 이미 서울대 산학협력단에서 삼성 반도체 공정 발암물질을 발견했는데 삼성 측은 이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며 “유해물질을 다수 쓰는 근로자에게 어떤 물질을 쓰는지 언급도 하지 않았으며 지금도 발암 물질에 노출된 근로자에 대해 삼성 측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1998년 이후 지금까지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은 근로자·엔지니어 및 사무직 종사자들은 총 22명에 달한다. 노동부 산하 산업안전보건공단은 산재 유무를 판단하기 위해 2007년과 2008년 두 차례에 걸쳐 역학조사를 진행했지만 백혈병과 반도체 공정의 연관성은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종란 노무사는 <뉴스포스트>와의 최근 인터뷰에서 산재 불승인에 대해 ‘개인질병이란 게 입증이 안 되면 산재로 보고 치료권을 인정해 주자’는 산재보험의 취지를 무색하게 한 판정이라며 행정소송에서 재해를 인정받으면 회사를 상대로 정신적, 물질적 피해에 대한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산재처리가 갖는 의미에 대해 이 노무사는 “죽은 노동자들의 불명예를 회복할 수 있다. 현장 노동자들이 직업병을 유발하는 좋지 않은 작업환경에 노출되었을 때, 스스로 그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자신감도 심어줄 수 있다. 지금부터라도 산재로 보고 작업 환경을 바꾸면 더 큰 재앙을 막을 수 있다”고 전했다.

소제 ; 생산라인 공개의 한계
1~3라인에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명의 근로자가 백혈병·림프종에 걸렸지만 당시 근로자들에 대한 건강실태 조사 또한 불투명하다. 삼성 측은 전체 라인 근로자 대비 발병자 수를 대조하고 있지만 특정 지역에 대한 발병률 조사는 현재 이뤄지지 않았다.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이하 반올림) 측은 삼성이 발표한 방식의 생산라인 공개는 ‘투명한 정보공개’와는 전혀 다른 것이며, 이를 통해서는 도저히 ‘의혹과 불신을 공개적이고 투명하게 해소’할 수 없다고 측은 주장했다. 그동안 기흥공정에서 백혈병 등 암 피해 노동자들이 집중돼 있는 기존 1~3라인은 이미 없어지고 다른 공정이 들어섰으며, 이번에 공개한 5라인과 S라인도 이미 대대적인 변경을 하고 최신 자동화 설비가 도입돼 있기 때문이다. 피해 노동자들의 작업 환경상 유해 요인에 대한 논란에 대해 아무 것도 설명해 줄 수 없다는 주장이다. 기흥공장만 백혈병, 림프종 피해자가 있는 것이 아니다. 지난 3월 31일 세상을 떠난 고 박지연씨가 일했던 온양공장 현장도 박지연씨가 투병중 산재신청을 하고 나서야 적절한 보호구 지급 등 여러 부분이 바뀌었다고 한다. 오히려 이번 생산라인 공개의 목적은 ‘의혹과 불신을 서둘러 봉합하려는’ 임기응변, 특히 박지연 씨의 사망을 계기로 증폭된 삼성반도체 직업성 암 피해 사실에 대한 언론의 관심과 삼성 내부의 동요를 신속하게 잠재우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15일 경기도 기흥사업장에서 국내외 기자회견을 열고 일부 생산직 근로자들의 백혈병 발병 논란에 대해 “사업장 근로환경과 백혈병 발병 사이에 아무런 인과관계가 없다”고 밝혔다. 조수인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담당 사장은 “직원들이 불의의 질병으로 운명을 달리한 것에 대해 삼가 조의를 표한다”며 “반도체 제조공정 중 발암물질인 벤젠 성분이 검출됐다거나 작업자가 방사선에 노출돼 있다는 주장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고 말했다. 방사선 설비의 안전장치인 인터록을 해체하면 설비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는 동시에 가동도 멈추게 된다는 것이다. 그 동안 실시된 두 차례의 역학조사와 컨설팅을 통해서도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향후 국내외 공신력 있는 연구기관 학술단체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 모든 의혹을 남김없이 해소하겠다고 밝혔다.
삼성전자가 공개한 라인은 기흥사업장의 5라인과 S1라인이다. 의혹이 제기된 3라인은 공개되지 않았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현재 1라인과 2라인은 테스트라인으로 변경됐다. 그리고 3라인은 2차 역학조사 완료 후 2년간 보전하다 지난해 3월 LED라인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때문에 과거 3라인과 가장 유사한 라인은 5라인을 공개키로 결정한 것이다. S1라인의 경우 최신라인으로 전공정이 각종 첨단 설비로 채워져 있어 5라인과 비교를 하기 위해 이번 시찰에 포함됐다는 게 삼성전자 측 설명이다. 조수인 사장은 “3라인이 많이 이슈가 되고 있는데 그 환경이 없어진 것은 유감이다. 3라인과 관련된 동일한 라인은 보관중이며 사용 설비 및 공정이 유사해 3라인과 5라인은 큰 차이가 없다”고 강조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