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발하는 시중은행 횡령 스캔들 진원지는?

은행들 ‘펑펑’ 터지는 금융사고 악성 추문에 몸살 앓아
경기 어려울 때, 고용 불안할 때, 조직 흔들릴 때 발생
 빈도·피해규모 1위 외환銀, 내부통제에 구멍 뚫렸나
투자금 손실 메우려다 신한·우리·신협 직원도 횡령

 

 

은행권이 연이은 횡령사건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가장 안전하게 고객 돈을 굴려야 할 은행들이 횡령, 정보유출, 회계의혹 같은 악성 스캔들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 것.

 

금감원 발표에 따르면 국내 은행들의 금융사고 금액은 2006년 429억원, 2008년 569억원에서 지난해엔 상반기만 310억원으로 늘어났다.

 

이는 2008년 같은 기간 189억원보다 64%나 증가한 수치다. 따라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금융 회사들의 내부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고 금융사고 금액이 크게 늘어났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시중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 금융시스템은 그 유통량에 비해 허술한 것이 사실이다.

 

몇몇 직원들끼리 담합만 하면 몇 십억, 몇 백억 횡령하는 건 문제도 아닐 정도로…”라고 말했다.   


외환은행의 경우 2008년부터 도쿄와 LA, 시드니 등 해외지점에서 자금세탁방지법 위반, 횡령, 부당대출 등의 문제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 들어서도 고객 돈 횡령, 해외지점 현지 실정법 위반, 수백억원 규모 부실발생 등 대형 금융사고가 세 건에 이른다.

 

지난 2월에는 모 지점 전·현직 직원들이 연루된 200억원대 대출사기로 사법당국 수사를 받고 있다.

2008년 부정 대출과정에서 직원이 업자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다.

 

지난 3월 19일에는 고객 돈을 횡령한 외환은행 전 선수촌 WM센터 지점잠 정 모(47)씨가  경찰에 고발됐다. 외환은행은 당초 27억원으로 알려진 횡령액이 440억원 더 빼돌려진 것으로 의심된다며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정씨가 지점장으로 부임한 2008년 초부터 자신이 관리하던 고객의 펀드손실을 만회하려고 다른 고객의 통장에서 돈을 빼내 자신 명의로 빌려준 뒤 이를 메우려고 ‘돌려막기’를 하다가 횡령액이 커졌다고 보고 있다.

 

실적 지상주의가 모럴해저드 낳아

 

2007년 말에는 외환은행 일본 오사카지점이 자금세탁방지법을 위반해 지난 1월 일본 금융청에서 3개월 영업정지 중징계를 받았다. 지점장이 자금 출처를 확인하지 않고 불순세력에 예금잔액 증명서 등을 발급했다는 이유다.


은행측 관계자는 “전직 직원은 이미 퇴직했고 당시 현직 직원은 대출부실로 징계를 받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단순히 지점장의 도덕적 해이로 치부하기엔 외환은행의 금융사고 빈도나 피해규모가 너무 커서 내부통제나 직원관리에 구멍이 뚫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2008년 12월에도 미국 LA법인 신용장 개설 실수로 300억원대의 손실을 입은 적이 있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외환은행에 대해 이 같은 금융사고에 대해 책임을 묻고 기관경고 조치를 취했다.


지난 3월 30일 주주총회에서 래리 클레인 행장은 “금감원에서 기관경고를 받았고 총 32명이 제재를 받았다”며 “재무적 손실과 외환은행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발생한 것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며 고개를 들지 못했다. 


외환은행 사고 원인은 수년째 M&A 대상으로 거론되는 불안감에서 찾을 수 있다. 여기에 인사에 대한 내부 불만도 있다. 외환은행 관계자는 “성과가 좋은 지점장을 더 열악한 곳으로 발령 낸다”며 “실력을 발휘하라는 취지겠지만 당하는 개인으로선 좋을 리 없다”고 말했다.


한 시중은행장은 “조직이 흔들리면 어디나 사고가 나기 마련이다. 외환은행은 벌써 몇 년째 매각 얘기가 나오면서 조직이 많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사고는 특정한 패턴이 있는 건 아니지만 경기가 어려울 때, 고용이 불안할 때, 조직이 흔들릴 때 주로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조직이 언제 누구에게 팔릴지 모르는 불확실성이 수년째 지속되다 보니 조직 전반에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퍼져 있는 것이 이 같은 모럴 해저드를 낳고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인수된 뒤 외환은행이 실적 지상주의에 빠지면서 직원들이 횡령, 실정법 위반 등 무리수를 두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게다가 일부 임원들이 5~6년씩 연임하는 등 장기집권 경향이 두드러진다.  또 다른 은행에 비해 외환업무나 무역금융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 보니 오히려 해외 관련 업무에서 사고가 빈발하는 부작용을 낳는다는 지적도 있다.

 

SC제일 ‘엇 회계상 실수!’ 

 

지난해 10월, 신한은행 원주지점 출납담당 직원이 6개월 동안 금고에 들어가 3억6000만원을 빼낸 것이 적발됐다. 자체 감사 결과 이 직원은 도박에 손을 댔다가 지점 돈을 빼냈다.

 

처음에는 많은 돈을 빼돌리지 않다가 금액이 늘어난 것. 신한은행은 해당 직원의 횡령사실을 파악한 후 면직조치하고 횡령금은 모두 회수했다.


이 지점은 2008년말에도 김 모(48) 지점장이 우정사업본부 모 지부가 신한은행에 예치한 자금 400억원 중 225억을 횡령한 곳이다.

 

특별감사가 시작되자 김 지점장은 12월 31일 자신의 선산이 있는 강원도 횡성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신한은행 관계자는 “김씨가 평소 돈을 과하게 사용하는 등 행적이 의심스럽다는 제보가 있어 특별감사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건은 신한은행이 횡령금액 전액을 우정사업본부에 입금해 주기로 합의하고 종결됐다. 신한은행은 지난해 10월에는 동아건설 자금부장인 박 부장이 900억원을 횡령한 사건에 연루돼 곤혹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3월 24일. 신한금융지주 자회사인 제주은행 서문지점 여직원인 강 모씨(34)가 일반 고객들의 도장을 위조해 예금을 인출해 사용해오다가 꼬리를 잡혔다.

 

경찰 조사결과 강씨는 이미 2006년부터 고객예금을 빼돌린 것이 확인됐으며 전체 피해자 수도 은행측이 밝힌 4~5명이 아닌 10여명으로 친인척이 아닌 일반 고객의 돈을 유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제주은행은 올 초에도 현직 지사 사촌의 금품수수 비리사건과 관련해 친인척 관계인 은행 여직원 김 모씨가 자금관리를 맡아 수억원의 자금을 여러 개의 차명계좌로 돈세탁한 것이 검찰수사에서 드러나는 등 내부 관리감독에 허점을 노출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9월 대출부실로 담당직원이 금감원의 징계를 받은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신용부도스왑(CDS)이나 부채담보부증권(CDO) 투자로 인한 손실로 임원들까지 무더기 징계를 받았다.


SC제일은행은 지난 2008년 있었던 회계상 실수 책임으로 감독당국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SC제일은행은 2008년 4분기 순이익을 당초 411억원 적자로 발표했다.

 

이후 지난해 11월 이를 576억원 흑자로, 지난해 1분기 순이익은 2111억원에서 1124억원으로 정정했다. 2008년 12월 31일 발생한 거래에서 오류가 발생했다며 순이익을 정정했으며 지난해 대손 충당금이 충당된 결과라고 말했지만 분식회계라는 오명을 남길 뻔했다.


이에 대해 신뢰를 담보로 하는 은행에서 회계상 실수를 일으켰다는 것이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특히 투명성을 유달리 강조하는 외국계 은행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개인 투자금으로 유용 ‘덜미’

 

제 2금융권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10월 14일. 신협 직원이 10억여원을 횡령하다 구속됐다.

 

모 신협 전 직원 A씨(40)씨는 2000년 11월부터 2008년까지 고객 몰래 정기 예탁금 해지 청구서를 위조해 인출하거나 고객으로부터 예탁의뢰를 받은 돈을 입금하지 않는 수법으로 10억여원을 횡령했다.


A씨는 빼돌린 돈을 고객이 요구하면 다른 고객의 돈을 다시 빼돌려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범행을 은폐했으나 횡령액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지난해 7월 퇴사했다.

 

경찰에서 A씨는 “횡령한 돈을 한 업체에 투자했으나 투자했던 업체가 문을 닫아 회수를 할 수 없었다”며 “손실을 메우고 횡령사실을 감추기 위해 점차 많은 돈을 빼돌리게 됐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최근 5년간 시중은행에서 발생한 금융사고는 모두 230건이며 사고 금액은 4152억원이라고 밝혔다. 이 가운데 담보나 보증 등을 통해 회수 가능한 금액을 제외한 은행의 순손실은 1485억원이었다.


따라서 금감원은 지난해 주가 급락 여파로 금융회사 직원들의 횡령사건이 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금융회사들에 내부 통제를 강화하라고 지시했다.

 

2~3년 전에는 CDS, CDO 등 파생상품 투자로 본 손실이었기 때문에 정책당국이 투자를 유도한 측면도 있어 정책실패의 측면이 컸다.


하지만 최근의 스캔들은 특정 은행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일련의 사고는 대부분 은행 내부 기본윤리와 기강이 무너진 탓이다. 준법의식 자체에 구멍이 뚫렸다는 점에서 한층 심각한 것으로 평가된다.


금융산업이 전환기이고 금융당국도 새 규제 틀을 정하지 못한 데다 합병이슈까지 겹쳐있어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금융 빅뱅을 논하기 전에 기본부터 지켜라”는 쓴소리가 곳곳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한 시중은행 감사는 “결국 금융사고 예방은 내부통제를 강화하는 방법 외에는 없다”며 강력한 내부통제와 금융감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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