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던 노풍 깨웠다” 유시민 경기도지사 후보 확정 후폭풍

오는 23일은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고향 봉하마을의 뒷산 부엉이 바위에서 몸을 던져 스스로 목숨을 끊은 지 1주기가 되는 날이다. 친노(親盧) 진영에서는 ‘노무현이즘’을 되새기기 위해 각종 추모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정치권의 친노 인사들은 이번 추모 열기를 6·2 지방선거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다. 친노 정치인들은 이미 국민참여당이란 정당을 꾸린 상태다.


유시민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후보 확정 ‘노풍’ 재현 예고편
‘盧 서거’ 1주기 지방선거 영향 ‘미풍’ 예견서 광풍 될 수도
한명숙-안희정-김두관 ‘친노 벨트’ 형성 ‘작은 노무현’ 다짐
‘진보 결집’ 분위기에 ‘노풍’이 ‘천안함 안보풍’ 덮을지 주목


5월13일 친노 진영은 환호성을 울렸다. 경기도지사 선거에 나선 국민참여당 유시민 후보가 민주당 김진표 후보와의 경기도지사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다. 이번 경선은 11, 12일 이틀간 선거인단(1만5천명)에 대한 여론조사인 ‘국민참여경선’과 일반 경기도민(2천명)을 대상으로 한 전화 여론조사를 실시한 뒤 각각의 결과를 50%씩 반영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국민참여경선에선 김 후보가 6천980표(52.07%)로, 6천424표(47.93%)를 얻은 유 후보를 앞섰지만 한국리서치와 동서리서치가 실시한 일반여론조사에선 유 후보가 53.04%를 획득해 46.96%를 얻은 김 후보를 앞섰다. 두 후보 간 격차는 불과 0.96% 포인트 밖에 되지 않았다. 유 후보가 야권의 단일후보가 되면서 경기도지사 선거는 한나라당 김문수 후보와 유 후보가 맞대결을 펼치는 구도로 정리됐다.

유시민, 잠자던 ‘노풍’ 깨워

유 후보의 이번 승리는 개인의 성공에 그치지 않는다. 6·2 지방선거에서 전국적으로 ‘노풍(盧風)’이 몰아칠 것임을 암시하는 예고편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정가에선 노 전 대통령의 1주기가 지방선거에 미칠 파급효과에 대해 다양한 분석이 나왔다. 대체적으론 “노풍이 미풍(微風)에 그칠 것”이란 견해가 많았다. 천안함 사건으로 국민들의 안보의식이 강화된 상황에서 진보 세력의 상징인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는 열기가 선거 분위기를 좌우하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까닭이다.

그러나 유 후보가 잠자고 있던 ‘노풍’을 일으켜 깨웠다. 유 후보는 노 전 대통령 시절 보건복지부 장관을 지내는 등 각별한 신임을 받았다. 언론에서는 그를 ‘노무현의 남자’라거나 ‘노무현의 정치적 경호실장’으로 불렀다. 그런 그가 노 전 대통령 서거 1주기를 맞는 시점에 ‘사고’를 친 셈이다.

유 후보의 승리 이후 야권은 들떴다. 현재 광역자치단체장 선거에 나선 대표적인 친노 인사로는 유 후보 외에 노무현 정권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민주당 한명숙 서울시장 후보, 행정자치부 장관을 지낸 무소속 김두관 경남도지사 후보가 있다. 또 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으로 ‘좌(左)희정 우(右)광재’로 불렸던 민주당 안희정 충남도지사 후보, 이광재 강원도지사 후보도 나섰다. 이들 가운데 유시민·한명숙 후보 등 수도권 출마자는 물론이고, 영남지역인 경남도지사 선거에 나선 김두관 후보도 선전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시·도지사 선거뿐만 아니다. 시장·군수·구청장을 뽑는 기초자치단체장 선거에도 10여 명의 친노 직계 인사들이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노 전 대통령시절 청와대 비서관과 행정관을 역임한 민주당 소속 수도권 기초단체장 출마자 14명은 지난 2월21일 국회 정론관에서 공동기자회견을 갖기도 했다.

친노 세력을 자임한 청와대 출신 출마자들은 인사제도비서관 최광웅(도봉구청장), 인사비서관 김용석(인천 부평구청장), 지속가능발전위 비서관 염태영(수원시장), 대변인 김만수(부천시장), 의전비서관 오상호(성북구청장), 정책조정비서관 김성환(노원구청장), 제2부속실장 이은희(마포구청장), 행사기획비서관 김영배(성북구청장), 정무기획비서관 윤건영(성북구청장), 시민사회 행정관 김용(광진구청장), 공직기강 행정관 권오중(고양시장), 정무 행정관 고용진(노원구청장), 인사관리 행정관 서양호(동대문구청장), 제1부속실 행정관 이창우(동작구청장) 등이다.

이들 가운데 일부는 민주당 공천을 받았고, 나머지는 야권후보 단일화 등의 과정에서 탈락했다. 당시 이들은 기자회견문에서 “부자와 특권층만의 MB정권에 맞서 서민의 삶을 보듬는 ‘작은 노무현들’이 되겠다”고 다짐했었다.

친노 세력들이 대부분 수도권의 광역 및 기초단체장에 출마함에 따라 서울과 경기도를 중심으로 ‘친노 벨트’가 구축됐다. 지난 2008년 18대 총선 당시 영남지역에 ‘친박(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벨트’가 형성된 사례를 연상케 한다. 물론 친노 벨트가 친박 벨트만큼 파괴력을 가질지는 단언하기 어렵다.

‘진보 결집’ 움직임 與 긴장

그러나 어쨌든 유시민 후보가 일으킨 ‘노풍’으로 이번 6·2 지방선거는 여·야 격돌 구도에 더해 신·구 정권이 대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현 정권인 이명박 정부와 이전 정권인 참여정부 인물들이 곳곳에서 맞대결을 펼치는 양상이 나타난 것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바짝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동안 지방선거는 ‘정권의 무덤’으로 통했다. 지방선거가 항상 ‘정권의 중간평가’ 성격을 띠었기 때문에 여당이 참패하는 결과가 이어져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는 그런 징크스가 깨질 것으로 한나라당은 기대하고 있었다.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보수세력이 뭉치는 조짐을 보인데다, 민주당이 내분으로 인해 야당으로서의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었던 까닭이다.

그러나 선거를 불과 20일 정도 남겨둔 시점에 상황이 급변해 버렸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맞아 진보 성향의 유권자들이 결집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특히 수도권에서 우리 후보들이 위험해졌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와 5·18 광주 민주화운동 추모 분위기가 맞물릴 경우 정권 초기의 촛불집회에 못지않은 위기가 닥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물론 한나라당도 친노 벨트를 끊기 위한 대응책은 있다. 친노 세력이 회귀하는 것을 역으로 이용해 ‘과거 정권 심판론’을 제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야권이 주장하는 ‘이명박 정권 심판론’에 대응할 수 있는 카드다. 벌써부터 이명박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인 영남권에선 친노 세력 결집에 대한 반작용으로 한나라당 지지층이 똘똘 뭉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정병국 사무총장이 “한국의 금융위기 극복은 세계의 교과서로서 경제 하나만은 확실히 살린다는 공약은 지구촌에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친노 집권 5년 동안 잠재성장률은 추락했고, 양극화는 심화됐으며, 기업은 부도로 쓰러졌다”고 지적한 것은 한나라당의 선거전략을 단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노풍’이 천안함 사건으로 일어난 ‘안보 풍’을 덮을 수 있을지 이번 지방선거 결과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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