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그룹 회생 가능성 집중해부

[뉴스포스트=김희정 기자] 지난해 유동성 위기와 경영권 다툼으로 극심한 위기를 맞았던 금호그룹.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신용등급을 일제히 안정적으로 상향 조정해 금호그룹의 회생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는 분위기다. 그런데 2008년에 있었던 금호타이어와 비컨과의 이면거래가 최근 수면 위로 떠올라 금호그룹 구조조정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구조조정 자구노력 따른 안정적인 ‘금호 신용도’에 찬물 끼얹은 이면거래
시장 속이고 쿠퍼 풋백옵션 계약에 페이퍼컴퍼니 동원 의혹 악영향 우려

지난 2월 채권단과 MOU를 체결한 금호그룹은 계열사별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진행하고 있다. 노사갈등과 대우건설 매각 지연 등 어려운 과제도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다.
채권단은 금호그룹을 3개군으로 나눠 경영하는데 합의했다. 지주회사격인 금호석유화학은 박찬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화학부문 회장 부자가 맡았다. 고 박정구 명예회장 장남인 박철완씨가 경영을 하고 있는 금호타이어는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맡는다.

이미 채권단 소유로 넘어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등은 당초 채권단 협의 등을 통해 추후 경영 주체가 결정될 예정이지만 그룹 전체의 명예회장인 박삼구 회장이 사실상 경영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이밖에 대우건설은 산업은행이 주관하는 사모펀드에 매각하고 대한통운은 6월말께 매각여부가 결정된다.
금호그룹은 유동성 위기를 겪으면서 형제간의 우애에도 금이 가는 혹독한 시련을 거쳤다. 유동성 위기에 대한 책임전가와 계열사 경영권을 둘러싼 공방으로 인해 극도로 악화된 박삼구·찬구 회장 형제는 1년간 왕래가 끊긴 가운데 지난 5월 15일에 있었던 모친 고 이순정 여사의 장례식에서야 비로소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

그룹의 재건을 위해 오너가의 화합이 무엇보다 필요한 시점에서 채권단을 비롯한 금융당국이 금호그룹의 재기를 물심양면으로 돕는 분위기가 여실히 느껴진다.
지난달 25일 산업은행 민유성 행장은 “금호그룹에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해 3년 정도로 예상되는 워크아웃이 끝난 뒤에는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의 주식을 되살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말했다.

3년 후 정상화된 금호그룹 계열사들을 되팔 때 채권단에서 인수 후보자들이 써낸 가격 중 최대 가격에 살 수 있는 권리를 준다는 것이다. 민 회장은 “우선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고 해서 박삼구 회장 일가에 반드시 되판다는 의미는 아니다”며 “금호그룹 워크아웃이 성공적으로 이뤄지고 채권단 출자전환 주식이 수익을 내고 금호가 자금을 확보할 때 동일한 조건에서 먼저 사갈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채권단 지원으로 경영 정상화 돌입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산업이 33.5%의 지분을 보유한 최대주주이지만 금호산업의 대주주가 채권단이기 때문에 사실상 채권단의 지배를 받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 5월말 경영개선을 위한 확약서를 채권단에 제출하고 채권단의 지원으로 정상적인 경영을 하고 있다.

금호산업은 채권단과 경영정상화계획 MOU를 체결한 후 본격적인 워크아웃 절차를 밟고 있다. 금호타이어는 지난 5월 31일 유상감자와 출자전환 등을 포함하는 내용의 재무개선약정을 채권단과 난항 끝에 체결했다. 금호석유화학도 채권금융사와 경영개선을 위한 MOU를 체결해 진행하고 있다.
상당수 계열사들은 유동성 문제가 해결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금호석유화학과 아시아나항공은 금호산업·금호타이어, 대우건설 관련 지분과 채권 손실액을 지난해 결산에 반영해 상당 부분을 상환했다. 최근에는 현금 흐름 역시 호조를 보이는 등 유동성이 개선되고 있다. 그리고 채권단의 채무상환 유예조치로 중·단기 차입금 상환부담도 크게 줄어들었다.

이 같은 금호그룹의 자구적인 노력 때문인지 지난해 말 하향 검토 대상에 올랐던 계열사들의 신용등급도 최근 일제히 상향 조정됐다. 한국신용평가와 힌신정평가는 지난 6일 금호석유화학, 아시아나항공, 대한통운, 금호피엔비화학, 한국복합물류의 신용등급을 하향 검토대상에서 해제하고 각 회사채 등급전망을 안정적(stable)이라고 매겼다. 유동성 리스크가 거의 없는 데다 자체 사업기반과 재무안정성이 우수하다는 게 이들 신평사의 공통된 분석이다. 또 장기적으로 적극적인 외형확장 전략과 투자규모 확대가 전망돼 자금소요의 상당 부분을 내부적으로 충당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쿠퍼 풋백옵션’ 때문에 비컨과 이면거래?

하지만 2008년에 금호타이어가 페이퍼 컴퍼니를 동원해 허위공시를 하고 분식회계를 했다는 논란이 최근 제기되면서 금호그룹을 곤욕스럽게 하고 있다.
지난 10일 경제개혁연대는 금호타이어의 허위공시, 회계기준 위반, 자사주 취득제한 규정 위반에 대한 조사와 제재조치를 요구하는 공문을 금융감독원에 제출했다.
경개연에 따르면 금호타이어는 2008년 8월 페이퍼컴퍼니인 비컨과 이면계약을 맺고 금호 타이어 홍콩법인을 통해 1억695만달러를 빌려 당시 2대 주주였던 쿠퍼타이어가 보유하고 있던 지분 10.71%를 사들이고는 마치 새로운 투자자가 나타나 지분을 인수한 것처럼 공시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2008년 당시부터 시작된 금호의 유동성 위기가 맞물려 있다. 2008년 7월 30일 금호그룹 주요 계열사 주가는 동반 급락세를 탔다. 금호산업이 전일 대비 12% 떨어졌고 금호타이어도 7%나 주가가 빠졌다. 금호석유화학은 하한가까지 미끄러졌다.
금호타이어는 2005년 2월 기업공개 때 쿠퍼타이어의 자본을 유치하면서 3년 후 금호타이어나 금호타이어가 지정하는 제 3자에게 기업공개 가격인 주당 14.26달러(1만4650원)에 주식을 되팔 수 있는 풋백옵션 권리를 보장해줬다.

당시 이 같은 전략적 제휴를 한 이유는 금호타이어를 발판 삼아 중국에 진출하려는 쿠퍼타이어와 출자총액제한제도 규제 때문에 해외 투자자를 찾던 금호타이어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졌기 때문. 그러나 이후 중국타이어 회사를 직접 인수하면서 굳이 금호타이어와 전략적 제휴를 맺을 필요가 없어진 쿠퍼타이어는 금호타이어 주가가 하락하자 풋백옵션을 행사하기로 결정한 것.

쿠퍼타이어의 750만주 풋백옵션 행사로 금호가 부담해야 했던 금액은 당시 주가인 1만4650원을 기준으로 계산할 때 1099억원으로 그룹 전체로 보면 그다지 큰 부담이 되는 규모는 아니었다. 하지만 올해 초 금호그룹을 워크아웃으로 몰고 간 대우건설 풋백옵션 리스크와 맞물려 쿠퍼타이어의 풋백옵션 행사 역시 어려움으로 다가 온 것이다.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가 본격화 될 조짐을 보이고 있었던 때라 시가보다 두 배나 비싼 가격에 금호타이어 주식을 인수할 투자자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금호타이어 주가는 7000원대로 쿠퍼타이어의 옵션 행사가 대비 절반 수준까지 떨어진 상태다.

결국 금호타이어는 홍콩법인이 JP모건에 전환사채를 발행해 조달한 1억달러를 포함해 총 1억695만달러의 자금을 비컨이라는 케이먼 군도 소재 SPC(특수목적회사)에게 대여해주면서 쿠퍼타이어의 풋백 옵션 물량을 인수하도록 했다. 대여조건은 만기 63개월, 연 이자율 4%의 수준이다.
이로써 금호타이어는 사실상 자기 자금으로 자기 주식을 산 셈이다. 금호타이어가 주식인수 자금을 대면서까지 비컨을 2대 주주로 끌어들인 것은 당시 팽배했던 그룹 유동성 위기설을 잠재우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금호는 주식시장과 회사내부까지 속일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해외법인과 본사의 손실로 귀결됐다는 것이다.

경개연은 “금호타이어가 비컨에 빌려준 1억695만달러에 대해 대손 충당금을 적정하게 쌓지 않아 2008년 당기 손익을 왜곡하고 회계기준을 위반한 협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홍콩법인에 전환사채 상환 등의 용도로 1억2000만달러를 빌려주면서 이를 ‘시설자금 대여’로 공시한 것은 허위공시이며 해외법인과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사실상 자사주를 취득한 것에 대해서는 증권거래법상의 자사주 취득제한 규정위반 혐의가 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경개연은 “회사의 재무상황을 오판하게 하는 거짓정보를 공시하고 재무제표를 왜곡해 투자자들에게 손실을 끼치고 궁극적으로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해친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엄정한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 같은 도덕적 해이를 묵인할 경우 금호그룹의 구조조정 과정은 시장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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