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정‧청, 공무원연금 개혁 갈등 ‘샅바싸움’ 치열

▲ (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홍세기 기자] 공무원연금 개혁이 여야뿐만 아니라 당‧정‧청 갈등 속에 막판 고비를 넘지 못한 채 한발짝도 못나가고 있다. 오는 17일 열릴 예정이었던 당‧정‧청 공무원연금 대책회의가 청와대의 요청으로 보류되면서 당청간 갈등 봉합에 난항을 겪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4개월여의 긴 진통 끝에 이달 초 합의한 개혁안이 국민연금과 연계돼 처리가 불발됐고, 협상의 물꼬가 다시 트일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여야가 애초 공무원연금 개혁에 나선 것은 국가재정의 파탄을 막고 국민연금과의 격차를 없애기 위한 것이다. 특히 정부와 여당은 '국민연금도 했는데 공무원연금도 못할 게 없다'며 공무원들도 고통 분담 차원에서 '더 내고 덜 받는' 방향의 고강도 연금 개혁에 협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게다가 시기를 놓치면 향후 언제 다시 개혁할 수 있을지 불투명한데다, 성과없이 끝나면 민심만 잃을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시한폭탄’이라는 표현까지 써가며 국회를 압박하는 이유다.

14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는 당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청와대와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오래 전 (당정청 회의를)17일 오후 3시로 잡았는데 어제(13일)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원 의장에게 보류해달라고 연락했다"고 밝혔다.
유 원내대표는 청와대 측 보류 요청의 이유에 대해선 "모르겠다"고 답했다. 당초 당은 17일 총리 공관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서 현재 여야 간 이견으로 난항으로 겪고 있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문제에 관한 향후 대책을 논의할 방침이었다.
앞서 유 원내대표는 지난 13일 기자들과 만나서도 "오는 17일 열리는 당·정·청 정책조정협의회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을 의제로 삼을 것"이라며 "향후 대책을 논의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이미 회의 의제와 날짜, 시간, 장소 등이 확정된 상황에서 청와대 측이 '보류'를 요청한 것을 두고 당 안팎에선 공무원연금 개혁 과정을 두고 당청이 갈등을 벌인 것에 이어 갈등이 표면화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에 있어서 당청 간에 이견이나 갈등이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부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무원연금개혁' 잇단 靑가이드라인에 정치권 '부글부글'

앞서 박근혜 대통령이 12일 공무원연금 개혁을 재차 촉구한 가운데 야당은 물론 여당 내에서도 이 같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 제시가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잇따라 터져나오고 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청와대가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해 잇따라 입장을 표명하자 '무차별 막말 공격', '매우 천박한 언행'이라는 격한 표현을 써가며 맹비난하고 있다. 또 새누리당도 공식적으로는 반발하고 있지 않지만 '적절치 못하다'는 당 내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새정치연합은 연금개혁 당사자들이 모여 수개월간의 협상 끝에 내놓은 합의문이 당청의 반대로 '도루묵'이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하자 불만이 최고조에 달했다.

새정치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가진 원내대책회의에서 "새누리당이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 50% 불가 입장을 확정했는데 이는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충실한 입장"이라며 "사실상 첫 원내대표 간 합의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새누리당 지도부가 손바닥뒤집 듯 뒤엎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국민을 대표하는 여야간 합의가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뒤집히는 게 되풀이 되면 국회가 유명무실해지고 설 자리를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국회 공무원연금개혁 특별위원회 야당 간사인 새정치연합 강기정 의원은 "청와대가 거대한 힘을 등에 업고 무차별적으로 막말 공격을 해대고 있는데 참으로 착잡하다"며 "당청이 왜 공무원연금을 논의하다 국민연금 50%를 논의하냐고 하는데 결국 이 같은 사회적 합의과정을 청와대와 정부가 전혀 보고받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의 반증이다"고 지적했다.

이어 "청와대와 박 대통령은 시종일관 공무원연금 개혁 시한을 지키라고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동안 여야를 비롯한 사회적 합의기구에서는 130일 간 노력해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이라며 "정부와 청와대가 이를 망각하고 공무원연금 개혁만 통과시키고 나머지는 다시 논의하자고 하는 것은 매우 천박한 언행이다"라고 덧붙였다.

이런 가운데 사실상 청와대의 '가이드라인'에 따라 당의 입장을 확정한 새누리당에서도 박 대통령의 이 같은 입장표명에 직접적으로 반기를 들고 있지는 않지만 당 내부에서는 '부적절'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유승민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입장표명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의 어려움과 시급한 필요성에 대해 강조한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유 원내대표는 "(오늘 발언이)그간 입장과 크게 달라진 것은 아닌 것 같다"며 "국회가 빨리 통과해달라는 요청을 한 말(인 것 같다")고 밝혔다.

이어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 인상에 매달려 추진을 못해서 그렇지 2060년에 기금이 고갈되는 만큼 그대로 둬야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대통령 말대로 국회가 통과를 조만간 시키지 못하면 갈수록 어려워지고 박근혜 정부의 개혁 성과라는게 국민들 눈으로 보기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며 "그러나 공무원연금 개혁은 확실한 성과라고 본다"고 말했다.

김용태 의원은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이 지난 10일 브리핑을 통해 공무원연금 개혁과 관련한 입장을 표명하자 라디오 인터뷰를 통해 "매우 적절치 못한 처신이다. 카드패를 먼저 보여준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홍일표 의원도 라디오 인터뷰에서 "(청와대가) 야당을 너무 자극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당 소속 초·재선 의원들의 모임인 아침소리 역시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여야 실무기구의 합의 후 현재까지 더 이상 진전이 없는 상태"라며 "청와대의 반대 의견 표명이 사태 공전의 주된 이유"라고 꼬집었다.

與 투톱, 公연금 개혁 정면돌파 나서나

여당 '투톱'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원내대표가 '제자리 걸음' 중인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정면 돌파에 나설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특히 잇따라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일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있는 청와대를 향해 '협상가에 재량을 줘야한다',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히라'며 공세적 자세로 돌아서고 있는 모양새다.

이에 따라 김 대표와 유 원내대표가 어수선한 '연금 정국'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13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정부의 입장 표명을 촉구했다. 김 대표는 "더 이상 이 내용을 잘 모르면서 무책임하게 잘못된 것처럼 국민을 속이는 주장은 중단돼야 한다"며 "국회에서 여야가 합의한 공무원연금 개혁안이 잘못됐는지, 잘 됐는지에 대한 정부의 입장을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포럼에 참석한 후 기자들과 만나서도 "5월2일 여야 대표가 합의서에 서명한 그 내용대로 우리는 약속을 지킨다"며 "그 누구도 거기에 대해 관여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해당 발언은 당에게 협상 재량권이 없음을 드러내면서 청와대를 우회적으로 비판한 전날 발언의 연장선상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김 대표는 전날에도 청와대가 잇따라 공무원연금 개혁에 대한 입장을 표명하던 상황에서도 "협상가에게 재량을 주지 않는 협상은 성공할 수가 없다"며 이번 공무원연금개혁 문제에 개입한 청와대를 간접적으로 비판한 바 있다.

유 원내대표도 박근혜 대통령이 전날 깊은 한숨을 내쉬며 공무원연금 개혁을 재차 촉구한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금은 당장 협상 재량권이 별로 없지만 결국 여야가 협상해 가며 절충점을 찾고, 각자가 당내 다른 의견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빨리 통과시키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靑 향해 연일 강경 발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최근 공무원연금개혁 지침을 내린 청와대에 대해 우회적으로 불쾌한 기색을 내비쳤다. 김 대표는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새누리당 통일경제교실 시즌3'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협상가에게 재량을 주지 않는 협상은 성공할 수가 없다"며 이번 공무원연금개혁 문제에 개입한 청와대를 간접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그러면서 사실상 공무원연금법 개정안의 5월국회 내 처리는 물 건너간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협상을 계속해서 일을 성사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10일 청와대 발표 이전 연락을 받았냐는 질문에도 "통보 받은 바가 없다"며 사전 교감이 없었음을 인정했다. 단, 청와대가 이번 국회 합의에 대해 '월권'이라며 비난한 부분에 대해서는 수긍했다.

김 대표는 "주제는 공무원연금 개혁"이라며 "공무원연금 개혁의 내용을 갖고 잘됐느냐 못됐느냐, 어디가 부족하냐 이렇게 얘기를 해야지 국민연금 소득대체율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 싸잡아서 얘기를 하기 때문에 이해가 잘 안 되고 일이 잘 안 풀리는 것"이라며 "공무원연금개혁 특위가 만들어졌고, 그 활동범위는 공무원연금과 관련된 일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런데 다른 걸 들고 나와 문제가 생긴 것"이라며 "그러니까 월권이란 말이 맞는 말"이라고 덧붙였다.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 무산 이후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와 진지한 얘기를 해봤느냐는 질문에는 "그쪽 집안 사정이 복잡한데 지금 이게 귀에 들어오겠냐"고 답했다.

김 대표는 이어 이날 오후 의원총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당에게 협상 재량권이 없음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날 본회의에서 소득세법 개정안 등 3개 법안만 처리한 것과 관련, "두 가지 이유인데 하나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 인준을) 단독으로 했다, 또 공무원연금법 관련이다. 이런 분들(야당)과 우리가 협상을 해나가야 한다"며 "그런 상황에서 협상 재량권도 없고…"라고 언급했다.

김 대표는 그러면서 이에 관해 "국회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희한한 일들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며 "뭐라 말로 표현할 수 없다. 국민 앞에 정말 참 부끄럽다"고 말했다.

野 "공무원연금개혁 무산은 靑·與책임"

새정치민주연합은 14일 공무원연금개혁안 처리가 무산된 것은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은 정부와 여당 탓이라고 강조하며 여야 합의 이행을 거듭 촉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국회에서 정책조정회의를 열고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는 국민연금 정상화를 위한 사회적 대타협기구의 약속이자 합의"라며 "합의를 지키는 것이 연금개혁의 시작"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스웨덴이나 노르웨이의 사례처럼 사회적 대타협은 사회적 갈등을 치유하는 역할을 했다"며 "(우리는) 그 기회를 놓치고 있고 책임은 명백히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에 있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국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박근혜 정부와 청와대의 행동은 끝이 없다"며 "여당은 박 대통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국회를 공동으로 지켜야 하는 책임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강기정 정책위의장은 "공무원연금법이 처리되지 않은 것은 청와대와 여당이 사회적 합의를 지키지 않아서 그런 것"이라며 "약속을 해 놓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누구와 약속하고 합의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지적했다.

이어 "새누리당은 친박과 청와대의 거센 저항을 물리치고 사회적 합의대로 (공무원연금법을) 통과시켜야 한다"며 "더불어 유승민 원내대표가 대표연설에서 밝힌 법인세 정상화를 당론으로 모으는 등 야당에 성의를 보여야 협상이 잘 될 것"이라고 충고했다.

이춘석 원내수석부대표 역시 "실무기구 합의문에는 국민연금 소득대체율 50%가 명기돼 있고 여야 합의문에도 실무기구 합의사항을 존중한다고 명기돼 있다"며 "그렇다면 50%를 존중하면 되는 것인데 이를 지킬 수 없다고 하면서도 합의를 깨지 않았다고 하는 것은 '술은 먹었지만 음주운전은 아니다'는 말과 다를 바 없다"고 꼬집었다.

아울러 "국회는 청와대의 자판기가 결코 아니다. 여야의 대화의 창은 언제든 열려있고 협상 준비는 돼 있지만 협상력이 있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며 "하루 만에 깨질 합의를 위해서는 대화하지 않겠다. 청와대에 가 있는 협상권부터 찾아오라"고 힘주어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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