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차 극명 파행 거듭, 기한내 타결 미지수

▲ 지난 25일 오전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 앞에서 아르바이트생들이 2016년도 최저임금 동결안을 제시한 경총을 규탄하는 기습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노사정 갈등이 그 어느때보다 골이 깊어지고 있다. 임금피크제로 격돌했던 노사는 다시 최저임금제 논란으로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경영계는 노동계의 임금인상이 고용불안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엄포를 놓고 있고 최저임금의 현실화를 내세우고 있는 노동계는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며 파업 카드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정부는 전체 고용을 줄이지 않는 범위에서 최대한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며 중재에 나섰지만 양진영의 입장차를 줄여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나치게 ‘낮다VS높다’

임금수준에 대한 시각차가 극명하다. 내년도 최저임금으로 재계는 동결을, 노동계는 시급 1만원(월급 209만원)을 제시했다.

노동계는 현재 최저임금 수준이 최저생계비에 훨씬 못 미쳐 대폭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민주노총 자료에 따르면 월급 116만6000원인 올해 최저임금은 미혼·단신 노동자 생계비(155만3000원)의 70%, 2인 가구 생계비(274만4000원)의 39%, 3인 가구 생계비(336만3000원)의 32%에 불과하다.

또 5인 이상 사업장의 시간당 임금 평균은 1만8700원으로 최저임금 비중은 30%에도 못 미친다.

송주현 민노총 정책국장은 “최저임금 노동자의 상당수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인데, 3인 가구 생계비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임금으로 어떻게 생계를 꾸릴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반면 재계는 최저임금 상승률이 노동생산성 증가율, 소비자물가 상승률과 비교하면 지나치게 높다고 주장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자료에 따르면 2001년부터 지난해까지 최저임금 상승률은 연평균 8.8%다. 연평균 4.8%인 노동생산성(국민경제생산성) 증가율의 2배, 2.9%인 소비자물가상승률의 3배에 달하는 수치라는 것이다.

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서 우리나라의 최저임금 수준을 OECD 회원국 25개국 중 17위라고 발표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도 했다.

최저임금 수준이 높은 프랑스, 뉴질랜드 등은 대부분 상여금 등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키지만, 우리나라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점 등을 감안하면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21개국 중 6위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에 대해 OECD 국가 가운데 상당수가 최저임금제를 운용하고 있지 않고나 미국과 캐나다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5인 이상’ 또는 ‘1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임금 통계를 내고 있다는 차이를 간과한 주장 아니냐는 반박도 전문가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어 논쟁의 여지가 있는 대목이다.

▲ 박준성 최저임금위원회 위원장이 25일 오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 고용노동부 최저임금위원회 전원회의실에서 열린 제7차 전원회의에 참석해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기업 경쟁력 ‘악화’VS 경기 부양 ‘도움’

경영계에서는 임금 상승은 결국 기업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특히 최저임금을 적용하고 있는 중소·영세기업의 타격이 심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세계경제 침체, 엔저에 따른 수출 부진, 가계부채 급증 등으로 중소·영세기업의 경영난이 극에 달했는데, 최저임금마저 대폭 인상되면 파산하는 기업이 속출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에 따른 대량해고 등 고용불안이 야기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경총과 중소기업중앙회는 최근 중소기업 55.4%가 최저임금 인상시 고용을 축소하겠다는 설문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김동국 경총 기획본부장은 “최저임금 적용 근로자의 87%가 30인 이하 영세기업이나 PC방, 편의점 등 자영업자들”이라며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면 이들은 근로자를 해고하고 가족 종사자를 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반면 노동계에서는 최저임금 인상이 내수 활성화를 가져와 중소상인과의 상생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전국유통상인연합회, 청년유니온은 2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노동자들의 소비능력이 향상되는데 최저임금 인상을 반대할 이유가 없다”며 “최저임금 인상은 중소상인과 노동자가 상생할 수 있는 길이다”고 강조했다.

임금 인상으로 가계소득이 올라야 내수 활성화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저소득층 소득이 증가하면 소비가 활발해진다는 통계 또한 노동계 주장을 뒷받침해주고 있다.

통계청이 작성한 ‘2014년 4/4분기 및 연간 가계동향’의 ‘소득계층별 소비성향’을 보면 소득이 가장 적은 계층인 ‘소득 1분위’의 소비성향은 104.1이고, 소득이 가장 많은 계층인 ‘소득 5분위’의 소비성향은 61.6에 불과하다. 즉 저소득층은 소득이 들면 곧바로 소비로 이어져 경제 파급효과가 훨씬 크다는 것을 뜻한다.

또 이 같은 경제 활성화 효과는 이미 외국에서도 인정, 최저임금 인상 러시가 일어나고 있다고 노동계는 주장하고 있다.

지난해 최저임금제를 시행한 독일을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독일이 최저임금제 시행 이후 소비성향이 200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점을 강조하고 있다.

이 밖에도 미국의 경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최저임금 인상을 강력하게 주장하면서 각 주와 시 정부를 중심으로 최저임금 인상 움직임이 활발하다. 로스앤젤레스, 시애틀, 시카고 등은 수년 내 최저임금을 15달러까지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현재 미 연방 최저임금은 시간당 7.25달러다.

중국도 임금 인상을 통한 내수 활성화를 꾀하면서 최저임금을 2013년 17%, 지난해 14% 인상한 데 이어, 올해도 베이징, 톈진, 선전 등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최저임금이 10% 이상 올랐다.

한국노총의 이정식 사무처장은 “세계에서 기업 경쟁력을 가장 중시하는 미국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러시가 일어났다는 것은, 그만큼 최저임금의 경제 활성화 효과가 뛰어나다는 증거가 아니겠냐”고 반문했다. 따라서 대규모 해고 등 고용불안 전망은 과장됐다는 입장이다.

정부, 중재 역할 부각

양측의 입장차가 극명해지면서 정부의 위치선정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소비 부진을 해소하기 위해 올해 최저 임금을 가능한 한 큰 폭으로 올릴 방침을 내놓았다.

기획재정부가 25일 발표한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하반기 임금인상을 통한 가계소득 확충에 정책 역량을 집중하기로 했다.

정부는 우선 최저임금의 단계적 인상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최저임금 인상을 통한 소비여력을 향상시킨다는 점에서는 노동계와 입장을 같이 하면서도 기업의 부담은 최소화하겠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최경환 부총리는 “최저임금을 갑자기 너무 많이 올리면 전체 고용 총량을 감소시키는 문제가 있다”며 “고용총량을 줄이지 않는 범위내에서 가급적 많이 올리겠다”고 말했다.

정부는 노사정 논의를 거쳐 최저임금 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하기로 했다. 최저임금 통계 기준, 산입 범위, 지역별·업종별 최저임금 등 제도 전반에 대한 종합적인 개선 방안을 내놓을 계획이다.

좁혀지지 않는 입장, 논의 난항

하지만 최종합의 시한이 다가오고 있지만 노사간 입장차이를 좁히지 못하면서 진통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을 의결하는 최저임금위원회 법정활동시한이 코앞으로 다가오면서 경영계와 노동계의 대립 양상이 더욱 극명해지고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내년 최저임금 근로자위원 9명, 사용자위원 9명, 공익위원 9명으로 구성됐다. 인상안을 논의해 29일까지 의결해야한다. 최저임금위원회는 올해 최저임금은 시급 기준으로 작년보다 7.1% 오른 5580원이다. 월급으로는 116만6220원(월 209시간 기준)이다.
문제는 경영계와 노동계의 극명한 입장차다.

최저임금 인상안을 결정하기 위해 노사 양측이 한자리에 모였지만 예상대로 소득은 없었다. 먼저 자리를 박차고 나간 쪽은 경영계였다.

25일 진행된 최저임금위원회에서는 최저임금에 월급을 병기하는 안에 대한 경영계의 반발로 파행을 빚었다.

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를 포함한 사용자 위원 9명은 이날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열린 제 7차 최저임금위 전원회의에서 월급을 병기하는 안에 대해 표결을 단행하자 “심각한 유감을 표명한다”며 전원 퇴장했다.

경총은 “최저임금법에는 ‘최저임금액은 시급, 일급, 주급, 월급 중 하나로 정하고, 일급, 주급, 월급으로 정할 경우 시급을 병기’하도록 규정돼 있다”며 “최저임금 시급을 결정하면서 월급을 명기하자는 주장은 법리적으로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1988년 최저임금제 도입 이후 28년간 최저임금은 시급으로 결정돼 왔으며 이를 기반으로 산업현장에서 인사·노무관리가 이뤄지고 있다”면서 “이런 관행을 무시하고 최저임금을 월급 단위로 변경하면 산업 현장의 혼란만 부추길 뿐”이라고 주장했다.

위원회는 이날 시급-월급을 병기하는 결정단위와 업종별로 나눠 달리 정하자는 적용방식 등 운영 개선안을 논의한 후 최저임금 인상을 다룰 예정이었다. 특히 노동계와 경영계는 임금 인상 절충안을 제시할 예정이어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노사 간 양보 없는 다툼으로 내년도 최저임금 인상안에 대한 논의는 시작도 못한 채 협상 테이블은 무기한 연기됐다.

한편, 임금피크제에 이은 최저인금제 등 노동시장 개혁 대립은 노동계의 ‘하투(夏鬪)’에 불을 붙일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이미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이 다음달 15일 2차 총파업에 돌입한다고 공식 선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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