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쿠, ‘집착’ 부정적 이미지는 잊어줘요

마니아 수준 넘어 특정분야 전문가 대접
만화·애니메이션 등 특정 심취자 늘어나
마니아 뿐 아니라 외모로 ‘덕후’ 분류도
일본유아연쇄살인사건 이후 잠재적 범죄자 인식에서
최근 취향과 전문성 존중하는 긍정적인 분위기 확산

한 분야에 열중하는 마니아(Mania)보다 더욱 심취해 있는 사람을 이르는 일본어 오타쿠(オタク、おたく、ヲタク)를 순화한 말 오덕후. 자신이 좋아하는 특정분야에 대한 집착과 관심을 가져 일반적 상식이 결여된 사람이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는 정반대로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인 인식이 생겨나며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마니아를 넘어선 오타쿠 세계에 대해 알아봤다.

팬, 마니아 그리고 오타쿠

▲ (사진=뉴시스)

‘오타쿠’라는 단어는 원래 상대방의 집을 높여 부르는 말 ‘귀댁(お宅, おたく)’이라는 일본어에서 유래했다. 1970년대부터 만화나 애니메이션, 게임, 퍼스널컴퓨터(PC), 비디오 등에 몰두하며 같은 취미를 가진 일본사람들은 동호회에서 만나 서로 예의를 지키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상대를 ‘오타쿠’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오타쿠’란 말이 가타카나로 쓰일 경우 ‘이상한 것에 몰두하는 사람, 혹은 연구하는 사람’이란 뜻으로 쓰여 일본의 젊은층에서 흔히 나타나는 일본의 사회적 현상으로 일본 사회 내에서는 ‘애니메이션, SF영화 등 특정 취미·사물에는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분야의 지식이 부족하고 사교성이 결여된 인물’이라는 부정적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순히 무엇을 좋아하는 사람인 ‘팬’, 팬의 단계를 넘어서 자기의 관심분야에 대해 많이 연구하며 자기만족을 위해 깊게 파고드는 수집가적 기질이 강한 사람인 ‘마니아’, 그리고 그 수준을 넘어선 단계가 ‘오타쿠’라고 한다.

마니아의 단계에서 더욱 발전하여 자신만의 문화를 창조할 수 있는 극도의 경지에 이른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대한민국에서는 ‘오타쿠’에서 변형된 단어 오덕후(이하 ‘덕후’)가 사용되고 있다.

초기에는 일본의 광적인 애니메이션 광을 비하하는 말로 쓰이다가, 최근에는 ‘게을러 보이는 외모’를 빗댄 말로 쓰이기도 한다.

‘덕후’들의 관심분야 대상 또한 일정하지 않다.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 등 다양하다. 그렇기에 관심분야 다음에 ‘**오타’ ‘**덕후’ 식으로 종종 사용되고 있다. 유사 단어로 대한민국에는 폐인, 광(狂)이 있다. 위 단어들은 모두 특정 객체에 크게 빠져있는 경우를 일컫는 말로 의미가 상통하는 셈이다.

지난 2010년 1월 tvN ‘화성인 바이러스’ 에 출연한 이진규씨로 인해 십덕후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졌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이 씨는 베게 여자 친구와 뽀뽀를 하는 등 오덕후의 2배 이상 된다고 해서 이른바 ‘십덕후’로 불렸다. 십덕후는 보통 덕후들보다 한층 더 심한 덕후를 뜻한다.

이 씨는 당시 방송에서 “2005년 12월 초 애니메이션 ‘마법소녀 리리컬 나노하’를 보고 캐릭터인 페이트에 반해 결혼을 결심했다”며 “등신 인형을 만들어 곁에 두며, 놀이공원도 같이 가 2인 요금을 낸다”고 밝혔다.

또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며 “월급의 80%를 페이트 관련 용품을 구입하는 데 쓴다”며 “(방송당시)지금까지 1500~1600만원 가량 썼다”고 털어놨다.

이 씨는 “실제로 여자친구를 사귀거나 여자에게 사랑을 느껴본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페이트만이 유일한 사랑이고 페이트와의 결혼 외에 여자와 결혼을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현실 속 사람만을 사랑할 필요는 없다”며 “가상의 존재라도 사랑할 수 있으니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 씨는 영국 언론이 선정한 2010년 최고의 괴짜 스타타(Weird stars of 2010)로 선정되기도 해 화제를 모았다.

‘오타쿠’는 잠재적 범죄자? 부정적 인식

지난 1988년에 일본 고베에서 일어난 ‘연속 유아 살해 사건’의 범인 때문에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극심해졌다고 한다. 범인 미야자키 츠토무는 가벼운 장애로 인해 집에 틀어박혀 자신의 세계에 빠져 사회로부터 유리해 있는 인물이었다.

성인여성과의 관계에 자신이 없어 약 1년간에 걸쳐 7세 이하의 어린여자아이 4명을 유괴, 살해하고 실제로 그 사체를 먹음으로써 열등감을 해결하려고 했던 검정 뿔테 안경의, 손에 장애를 가진 20대 초반의 청년이었던 범인.

체포된 이후 공개된 그의 자택에는 6000여개에 달하는 잔혹물 비디오테이프, 수많은 로리콘(중년 남자가 소녀에게만 성욕을 느끼는 이상 심리) 애니메이션, 만화책 등이 증거물로 압수됐기 때문에 ‘오타쿠’의 범죄로 알려지게 됐고 이후 크게 파문이 일어났다.

특히 미야자키는 피해자 중 한명의 시신을 그녀의 가족에게 이마다 유코라는 가명으로 배달했다고 한다. 이는 미야자키가 가장 좋아했던 만화의 여주인공 이름이었다.

그리고 소녀들을 죽인 후 촬영한 사체의 비디오는 그 당시까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오타쿠’라는 사람들의 특징인 것으로 일본인의 뇌리에 강하게 박히게 되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지닌 사람들은 ‘오타쿠’라는 존재가 못생기고 뚱뚱하고, 만화 캐릭터에 집착을 보이며, 사회 부적응자, 잠재적 범죄자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반인들 눈에 비춰지길 “**짱 좋다능” “헠헠” “본인은~” “와타시~” 등 온라인상을 통해 노출된 몇몇 ‘덕후’들의 일명 ‘오덕체’의 말투며 행동들이 장난으로 느껴지지 않고 부정적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단어 사이사이에 일본어가 삽입되고 비교적 한국보다 애니메이션 문화가 풍부한 일본의 작품을 좋아한다는 것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게 한다는 것이다. 이에 ‘오타쿠’가 ‘일본빠’라고 불리는 경우도 있다.

비하단어 오덕후, 점점 긍정적 인식 변화추세

▲ (사진=tvN ‘화성인 바이러스’ 캡쳐)

1990년대 이후부터 ‘오타쿠’의 점차 의미가 확대되어 ‘특정 취미에 강한 사람’, ‘특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긍정적 의미를 포괄하게 됐다.

한 가지 분야, 주제에 몰두하는 어둠 속의 전문가 ‘오타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약해지면서 외국에서도 일본 만화 캐릭터에 빠진 이들이 늘고 있다고 한다.

일본에서는 세계 최초의 ‘오타쿠 정상회담’이 열리기도 했다. 일본 코미켓(코믹 마켓) 주최 측은 지난 3월28∼29일 도쿄 외곽 지바시 마쿠하리에서 열리는 ‘코미켓 스페셜 6’의 부대 행사로 ‘오타쿠 엑스포’를 개최했다.

엑스포에는 일본을 비롯해 18개국 46개 단체가 처음으로 참석했다. 각국을 대표하는 ‘오타쿠’들은 만화 캐릭터 코스프레를 통해 한자리에 총집합했다.

엑스포엔 일본 만화, 애니메이션 관광상품 홍보 부스도 마련됐으며 애니메이션, 게임 산업 등을 주제로 한 학술행사도 열렸다. ‘우리들의 코미켓이 그렇게 나쁜 행사일 리 없다’는 제목의 심포지엄도 있었다.

한편 코미켓은 일본 만화 마니아에겐 최대의 축제다. 1975년 시작돼 올해로 40주년을 맞았다. 매해 8월과 12월에 열리며 이번 ‘오타쿠 정상회담’처럼 비정기적 행사도 있다. 행사마다 보통 50만명 이상이 찾는, 일본의 주요 ‘산업’이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덕후’들을 스튜디오로 불러내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능력을 재조명하는 프로그램도 생겨났다.

MBC 새 예능 프로그램 ‘능력자들’이다. 지난 추석 파일럿 이후 호평 속에 정규 편성을 확정했다.

‘능력자들’은 파일럿 방송 후 젊은 층에서 많이 회자되는 ‘덕후’를 내세워 화제를 모았다. 추석 파일럿 당시 오드리 헵번 때문에 인생이 바뀐 21년 ‘오드리 헵번 덕후’, ‘무한도전’의 모든 장면을 기억하는 ‘무한도전 덕후’, 치킨의 튀겨진 생김새만으로 브랜드와 맛까지 모두 꿰고 있는 치믈리에 자격증 소유자, ‘치킨 덕후’들이 능력을 뽐내고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편의점, 버스, 열대어 등 애정의 대상은 다르지만, 단순히 열광하거나 수집하는 정도를 뛰어넘어 하나의 능력으로 이어진 사람들인 ‘덕후’.

한때 자신만의 세계에 갇힌 사람, 비호감의 대상으로 평가받았던 ‘덕후’가 이제 무서운 내공의 전문가, 유행을 선도하는 주체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능력자들’ 기자간담회에서 이지선 PD는 “부정적인 인식의 대상이었던 ‘덕후’가 이 시대 신지식인이 됐다는 것이 기획 배경”이라고 밝혔다. “‘무한도전’에 출연한 아이유 ‘덕후’를 보고 ‘사람이 한 가지를 파면 저런 일도 있구나’라고 생각한 데서 출발했다”며 “‘덕후’가 인정받는 사회 현상을 읽은 것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취업포털 인크루트는 지난 13일 최근 성인들의 덕후 기질이 이슈가 되는 것과 관련 자사 회원 962명을 대상으로 ‘당신의 덕후기질 테스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덕후들을 바라볼 때 시선으로는 ▲취미도 본인이 좋아한다면 존중해 주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돼야 한다(41%) ▲해당 분야 전문가적 지식을 보유한 만큼 노력을 높이 산다(29%) ▲특정 분야 소비증진에 기여하는 만큼 경제적으로 대우받아야 한다(10%) 등의 의견이 있었다. 그들의 취향과 전문성을 존중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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