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같은 큰 정치인 필요한때...통합과 화해 유지 받들자

▲ 이완재 편집국장

[뉴스포스트=이완재 편집국장] 한국정치사에 민주화의 상징으로 추앙받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 고 김대중 대통령과 ‘양김시대’를 열고 한 시대를 풍미했으며 현대사의 산 증인인 그의 죽음에 국가적인 애도 물결이 뜨겁다.

전직 국가원수이자 거물정치인의 타계에 발 빠른 언론은 연일 그의 공과(功過)를 조명중이다. 재임 기간 그가 남긴 업적을 미리 준비해놓은 보도자료 내놓듯 경쟁적으로 다루고 있다. 보통 한 사람의 일생을 돌아볼 때 몇 년의 시간이 걸린 후 평전이나 역사가들에 의해 회자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YS의 경우는 다른 양상이다. YS의 삶 자체가 워낙 롤러코스터 같은 역동성을 띄고 있고, 옳고그른 이분법적 기준에 선명한 길을 걸어온 방증의 결과이리라.

언론은 YS의 공(功)으로 문민정부 출범, 하나회척결을 통한 군정종식, 금융 및 부동산 실명제, 역사 바로세우기 등을 들고 있다. 또 과(過)로는 3당야합과 재임 기간 중 IMF사태 초래, 차남 김현철씨 비자금 문제 같은 측근비리 등을 꼽고 있다.

그러나 여러 공과에도 YS가 현대정치사를 상징하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는 이유는 그의 ‘대도무문(大道無門)의 삶에서 확인된다. 작은 체구에도 특유의 거침없는 승부사적 기질로 누구도 이룰 수 없었던 민주화를 활짝 열어젖힌 인물이 바로 그다. 헌정 사상 26세 약관의 나이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9선 의원까지, 최연소 당선에 최다선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정치인들 중에 이른바 ‘YS키즈’로 불리는 김 전 대통령의 정치 문하생은 셀 수 없이 많다. 생전의 YS가 정치 9단답게 워낙 용인술에 능했고, 오는 사람 마다않고 인재를 고루 등용했기 때문이다. 현 집권당 대표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부터 서청원 최고위원, 이재오, 정병국 의원 등 여권 내 실세의원들이 모두 YS 사람들이다. 모래시계 검사로 불렸던 홍준표 경남 지사 역시 1996년 15대 총선에 YS의 공천을 받아 정계에 입문한 케이스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역시 이들의 범주에 속한다.

야권에서는 고 노무현 대통령과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 김영춘 전 의원 등이 YS 사람들로 분류된다. 여야를 넘나드는 폭넓은 인맥 스펙트럼을 자랑하고 있다. YS의 “머리는 빌리면 된다”는 투박하지만 확실한 추진력은 필요한 사람은 반드시 데려와 적재적소 인재풀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그것은 곧 정치9단 YS만의 카리스마였다.

그의 영원한 정치맞수이자 숙명의 라이벌이었던 고 김대중 대통령마저 YS가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20여일만에 하나회를 숙청한 것을 놓고 혀를 내둘렀다는 후문은 유명한 일화다.

특히 오늘의 여의도 정치현실을 볼 때 돈보다 사람 욕심이 많았던 YS의 용인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여야 공히 당내 비생산적인 계파싸움에 함몰 돼 있고, 차기 대권을 꿈꾸는 잠룡(潛龍)군에서 YS의 힘이나 카리스마를 느낄 수 없다. 정부는 민감한 현안이 터질 때마다 국정추진력을 잃고 우왕좌왕하기 일쑤다. 오죽하면 현 정권의 역사의 후퇴를 얘기하는 이도 꽤 많다. 매번 국론은 좌우 진보.보수로 나뉘고 이를 추스르고 끌어안을 줄 아는 힘 있는 정치인의 존재는 눈 씻고 찾아봐도 미미하다.

YS의 빈소에 조문 온 정치인들마다 조금의 연줄이라도 닿아있으면 후광을 얻기위해 ‘적자론’ ‘장자론’을 주장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이었던 거산 김영삼 전 대통령. 그의 서거는 작금의 현실에 비춰볼 때 단순한 죽음 이상의 깊은 울림과 의미로 다가온다. 지금이야말로 이 땅의 정치를 한다는 사람이라면, 그것도 큰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YS를 통해 자신을 돌아볼 일이다.

이제 영원한 정치9단 YS가 남긴 ‘통합과 화해’의 메시지는 우리의 숙제로 남게됐다. 지금은 YS 같은 시대를 앞서간 큰 정치인이 절실한 때다. 어느 때보다 심각한 정치의 갈수기, 한동안 그가 그리울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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