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 용인술, 한국현대정치 이끈 ‘산실’ 역할

▲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가 23일 서울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조문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2015.11.23.(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설석용 기자] ‘민주화의 큰 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지난 22일 갑작적인 서거로 각계각층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자신을 ‘정치적 아들’이라고 밝히며 상주역할로 빈소를 지켰던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이른바 YS 키즈라 불리는 손학규 전 고문과 서청원 의원도 상주를 자처했다.

고인이 1998년 대통령 임기를 끝으로 정계를 은퇴한 뒤 현재까지 그를 통해 발탁됐던 ‘정치 문하생’들은 줄곧 한국 정치계를 주도해왔다.

노무현, 이명박 두 명의 대통령까지 발굴했던 고인의 ‘용인술’이 회자되자 ‘상도동계’ 인물들이 재차 주목받고 있다.

수많은 인재를 등용해 한국 정치를 이끌어 왔던 거산(巨山) 김영삼. 그는 25세 최연소 국회의원 당선부터 전무후무한 9선 의원까지 지내며 대통령의 자리까지 올랐다.

대한민국 민주화를 이루기까지 그가 손을 잡았던 인물들을 통해 거산의 정치인생을 되돌아봤다.


문민정부 잉태한 상도동계 YS 키즈 재조명

김무성·서청원·손학규 등 ‘YS 적자론’ 경쟁


◆ YS의 걸출한 용인술, 한국 정치 중심이 되다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은 한국 민주화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인물로 평가됨과 동시에 그가 정치계로 영입한 수많은 그의 ‘정치 문하생’이라는 정치적 유산을 남겼다.

김 전 대통령의 뛰어난 용인술로 대표적인 대한민국 전직 대통령인 노무현, 이명박 두 명의 대통령을 배출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인권변호사로 재야를 떠돌고 있던 88년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부산 동구 지역 13대 국회의원으로 정계에 발을 들였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92년 14대 민자당 비례대표로 영입됐고, 당시 이회창 대법관을 감사원장과 국무총리로 임명하며 정계 입문의 발판을 제공하기도 했다.

김 전 대통령이 발탁한 ‘정치 문하생’들은 상당하다. 특히 현실 정치 중심에서 활동하는 거물급 정치인 이인제, 손학규, 서청원, 김문수, 이재오 등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발탁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있기에 김 전 대통령은 1998년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정계를 은퇴한 이후에도 한국 정치의 대부로 군림할 수 있었다.

먼저 여권 내 차기 대권 후보 1순위로 거론되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의 가신 그룹인 상도동계의 막내로 대표적인 ‘YS 문하생’이다.

김 대표는 1985년 김 전 대통령의 정치적 숙명의 라이벌인 김대중 전 대통령과 손을 잡으며 결성한 민주화추진협의의 특별 부위원장을 역임하고 1992년 김영삼 대통령 후보의 정책보좌를 맡은 바 있다.

이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대통령 민정비서관, 사정1비서관, 내무부 차관을 지냈다. 15대 국회에서 김 대표는 처음 금배지를 달았다.

YS 최측근임을 증명이라도 하듯 현역 의원 중 가장 먼저 빈소에 도착한 사람은 김 대표였다. 그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로 자처하며 상주역할로 빈소를 찾는 조문객을 맞았다.

김 대표는 "김 전 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민주화를 실질적으로 할 수 있는 정치지도자였고 문민정부를 여신 대통령이셨다"며 "대통령 재임 중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한 위대한 개혁을 만드신 분"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너무나 가슴이 아프다. 저는 김영삼 대통령의 정치적 아들이다. 정성을 다해 모시겠다"며 영정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기도 했다. 김 대표는 서거 당일부터 마지막 날까지 빈소를 지키며 고인에 대한 예우를 표했다.

현재 여권 내 김 대표와 당권을 놓고 힘겨루기를 하고 있는 서청원 최고위원은 김 전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했고 문민정부에서 정무제1장관, 신한국당 원내총무(현 원내대표)를 지내며 뿌리를 함께 하고 있다. 서 최고위원 역시 이번 상중에 자신이 적자임을 은근하게 주장하며 상주 노릇을 자임했다.

서청원 최고위원은 "과거에 제가 모시고 민정운동을 같이 했다. 대한민국의 큰 별이 지셨다"며 "저는 김 전 대통령이 아꼈고, 정치적 대부셨다. 너무 애통스럽다"며 빈소를 지켰다.

서 최고위원은 24일 추도사를 통해 "이제 당신님이 서거하시고 업적이 다시 재평가되는 계기가 되는 것 같다"며 "저는 당신님의 공이 재조명되고 역사의 큰 별로 남으실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야권 내 잠룡으로 불리는 손학규 전 고문은 93년 김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보궐선거로 국회에 입성했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역임했다.

손학규 전 고문도 22일 빈소에 도착해 "이 땅의 위대한 정치 지도자 한 분을 잃었다"며 "문민정치와 개혁, 아마 대한민국에…. 현대 민주주의의 역사는 김영삼 정부 이전과 이후로 나뉠 것"이라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이날 "오늘이 제 생일"이라며 "집사람이 '김영삼 전 대통령께서 당신 생일에 돌아가셨으니 당신 복 많이 받을 거예요'라고 말했다"고 소개했다.

이어 "김 전 대통령은 저를 많이 아껴주셨다"며 "그 개혁의 정신을 잃지 않고 정치를 하고자 노력해왔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총선과 향후 대권 잠룡으로 부각되고 있는 이들 문하생들은 앞다투어 ‘YS 적자론’을 내세우는 등 조문 정국을 맞아 세간의 관심을 받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보이고 있다.

이 밖에도 새누리당 이인제 최고위원도 13대 통일민주당의 공천을 받아 금배지를 달고 문민정부에서 최연소 노동부장관을 거쳐 경기도지사를 지냈다.

뿐만 아니라 15대 국회에서는 이재오 의원과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가 신한국당 소속으로 금배지를 달았으며, 정의화 국회의장과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도 이때 초선의원이 됐다. 새누리당 정병국 의원도 대표적인 YS키로 꼽힌다.

▲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최형우 전 내무부 장관이 조문을 하며 오열을 하고 있다. 2015.11.25.(사진=뉴시스)

 

핵심4인방 ‘좌동영 우형우’,서석재, 김덕룡‘

필생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동지 ‘동교동계’


◆ YS의 그림자 4인방, 김동영 최형우, 서석재, 김덕룡

김 전 대통령의 사람을 대표하는 것으로 상도동계 인사들을 빼놓을 수 없다. 

YS 서거 소식을 접한 최 전 내무장관은 25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오열하기도 했다. 그러나 김 전 정무장관은 91년 암으로 이미 세상을 떠났다.

상도동계 인사는 평생을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하며 민주화를 일궈내고 문민정부를 출범시킨 핵심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정치권에서 ‘김영삼’ 가신으로 평가받는 인물은 최형우 전 내무장관과 김동영 전 정무장관, 서석재, 김덕룡 전 의원이다.

이들은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에 한 평생을 바친 김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이다. 이중 최 전 장관을 뺀 3명은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치를 시작했다.

특히 최 전 장관과 김 전 장관은 '좌(左)동영 우(右)형우'으로 불리며 '상도동계' 맏형 역할을 맡아 온 인물이다. 서 전 의원은 '상도동계' 살림을 책임졌고 김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분신’이라고 불릴 정도였다.

‘좌동영’ 김 전 장관은 1966년 국회전문위원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그런 1973년 김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9대 국회의원이 됐다.

그는 민추협 결성을 주도한 핵심 인물로 1985년 신한민주당 결성에 이어 1990년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 3당 합당을 이끌었다.

이듬해 민주자유당 창당에 적극 가담하며 문민정부 창출에 기반을 다졌다. 그러나 김 전 장관은 1991년 암으로 별세해 김 전 대통령이 문민정부를 수립하는 모습을 보지 못했다.

‘불곰’이라는 별명을 가진 그는 말기암 투병을 할 때까지도 그 사실을 숨기고 ‘김영삼 대통령 만들기’를 위해 정치인들과 폭탄주를 마다하지 않는 등 보좌를 계속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서 유독 눈길을 끄는 인물은 ‘우형우’ 최 전 장관이었다. 그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연일 찾아 흐느껴 우는 등 각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최 전 장관은 1964년 한일협상 반대 시위인 6·3항쟁을 계기로 김 전 대통령에게 발탁됐다. 이후 1971년 야당 신민당 소속으로 제8대 총선에서 금배지를 달았다. 그는 문민정부에서 민자당 사무총장으로서 공직자 재산공개를 주도하는 등 개혁의 선봉에 서기도 했다.

최 전 장관은 1996년 총선에서 6선 고지를 밟은 뒤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부상하며 왕성한 정치활동을 펼쳤다. 이후 1997년 여당의 대선후보 자리를 놓고 당시 이회창 고문과 경합을 벌이다 갑작스런 뇌졸중으로 쓰러져 정계에서 은퇴했다.

지난 2009년 12월 26일 향년 74세로 별세한 서석재 전 의원은 1968년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해 평생을 김 전 대통령과 함께한 인물이다. 특히 서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과 함께 통일민주당을 창당한 핵심인물로 상도동계 내에선 ‘조직의 귀재’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은 거인'으로 불렸던 그는 1992년 대선 당시 나라사랑실천본부란 사조직을 이끌며 YS의 대통령 당선에 일조했다. 김 전 대통령은 이후 그를 총무처 장관에 발탁했으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4000억원 비자금설을 주장해 8개월여 만에 물러났다.

김 전 대통령의 그림자 4인방 중 마지막 김덕룡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의 비서로 정계에 입문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이 임기동안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함께하는 등 ‘분신’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김 전 의원은 문민정부 당시 정무장관과 민주자유당 사무총장 등 주요 요직을 두루 거쳤다. PK(부산·경남) 인사가 주축인 상도동계에서 그는 호남의 대표성을 책임지는 역할을 맡기도 했다.

▲ 22일 오전 12시22분께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이날 숨을 거뒀다. 향년 88세.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 고인은 경남 거제 출신인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3김(金)시대를 호령하던 인물 중 김종필 전 국무총리를 제외한 두 명의 거목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사진은 1985년 3월 6일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한 YS. 2015.11.22.(사진=뉴시스)

◆ 숙명의 라이벌 DJ, ‘양金’의 명과 암

이번 김 전 대통령의 국가장이 ‘통합’과 ‘화합’으로 비춰질 수 있던 것은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함께했기 때문이다.

정치적 라이벌이자 민주화 동지를 자처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들의 가신 동교동계의 역할도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1968년 이 둘의 인연은 신민당 원내총무 경선에서 첫 격돌하며 시작됐다.

이 대결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승리로 돌아갔지만, 1970년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는 ‘40대 기수론’을 앞세운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그러나 대권은 3선 개헌을 통해 출마한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이에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부정권에 맞서 민주화추진협의회를 결성하며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한 배를 탔다. 그러나 이들은 1987년 대선후보 단일화에 실패하며 악연이 시작됐다.

14대 대선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3당 합당으로 여당 후보로 나섰고, 제1야당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후보로 내세웠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3년 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계에 복귀해 국민회의를 창당해 IMF사태에 대한 책임론을 부각시키며 김영삼 전 대통령을 향해 공격을 퍼부었다.

드디어 정권교체를 성공시켰지만,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독재를 한다”며 김대중 전 대통령을 비판하며 둘의 관계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들의 관계는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서거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이 병상을 찾으며 극적으로 화해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로 ‘양金 시대’는 비로소 막을 내렸다. 그러나 ‘양金’이 남긴 유산은 뚜렷하다.

이들은 유신 치하에서 민주화를 외쳤던 둘도 없는 동지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부 잔재인 ‘하나회’ 척결, 금융실명제를 실시해 비리 근절을 위한 제도를 구축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햇볕정책’으로 민주화를 안정시켰다는 호평을 받고 있다.

또한 이 둘은 현실 정치에 수많은 핵심 정치인들을 길러냈다.

그러나 보스정치와 지역, 계파 정치의 근본이 되기도 해 앞으로 한국 정치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유훈인 ‘통합과 화합’의 길로 나아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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