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 전 그날의 진실 가릴 법정공방 다시 시작

복역중 무기수 재심결정 ‘사법 사상 최초’ 주목
2000년 당시 23살 김신혜씨, 아버지 살해 혐의 체포
교통사고 현장, 그러나 약물로 인한 사망으로 드러나
경찰 “직접 자백” VS 김신혜씨 “살해한 적 없어”
변호사협회 “수사기관의 권위, 비인권적 수사” 지적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수가 된 김신혜씨에 대한 재심 개시 판결이 났다.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5년 만이다.
이는 법원이 우리나라 사법 역사상 처음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을 내린 것으로 사건 발생 후 꾸준한 의혹이 제기돼 온 사건이다. 15년 전 그 날의 진실이 밝혀질 수 있을지 ‘무기수 김신혜 사건’의 전말을 추적해본다.

보험금 노린 살인사건? 정말 아버지를 죽였나

▲ (사진=SBS)

젊은 나이에 무기수가 된 김신혜(당시23세·현재38세)씨의 사건은 지난 2000년 3월 7일 오전 5시 50분께 전라남도 완도의 버스 정류장에서 한 남성(52)이 본인의 집에서 7㎞가량 떨어진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당시 사건 현장에서 깨진 방향지시등 차량의 잔해물 등이 발견돼 교통사고 현장처럼 보였고 이에 사건을 맡은 완도경찰서는 당초 이 사건을 뺑소니 교통사고로 판단했다.

하지만 사체에서 출혈은 물론이고 외상이 발견되지 않아 경찰은 타살된 후 교통사고로 위장됐을 가능성에 주목했다.
특히 국과수 부검 결과 사망원인은 뜻밖에도 약물로 인한 사망으로 드러나 타살 가능성을 뒷받침했다. 시신에서는 혈중 알코올 농도 0.303%와 함께 수면유도제 성분인 독실아민이 13.02㎍/ml이 검출되면서 경찰은 누군가가 수면유도제와 술을 이용해 살해한 후, 시신을 유기한 것으로 보고 수사에 착수했고 3월9일 새벽 0시10분께 이 사건의 용의자로 큰 딸 김신혜씨를 전격 체포했다.

경찰은 김신혜씨가 아버지를 살해한 동기는 성추행이라고 발표했다.

당시 경찰은 사건 발생 두 달 전인 2000년 1월께 이복 여동생으로부터 “아버지에게 강간 당했다”는 말을 들은 김신혜씨가 자신도 중학생 때부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해왔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버지를 살해하기로 결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살해 목적은 ‘사망 보험금’이라고 밝혔다. 김신혜씨가 사망한 아버지 명의로 8개의 상해보험에 가입한 사실을 이유로 들었다.

경찰에 따르면 김신혜씨는 아버지의 보험금을 노리고 이날 새벽 1시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성추행한 친아버지에게 수면유도제 30알이 든 술을 ‘간에 좋은 약’이라고 해서 마시게 한 후 함께 드라이브를 했다. 운전 중 아버지가 정신을 잃고 쓰러지자 버스정류장 앞 도로에 숨진 아버지를 내려놓은 뒤 교통사고처럼 꾸며 현장을 떠났다고 설명했다.

또한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당한 이유로는 보험금, 성추행 뿐 아니라 김신혜씨의 고모부가 여동생을 성추행한 아버지에게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는 김신혜씨의 자백을 들었다고 진술했기 때문이다.

알리바이 부재, 보험 내역, 범행 동기, 시나리오, 그리고 그녀의 자백 등 모든 증거들도 김신혜씨를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었다.

영장 없이 진행한 압수수색, 폭행 그리고 강요

▲ 존속살해 혐의 등으로 기소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김신혜(38·여)씨 사건과 관련해 지난 18일 광주지법 해남지원이 재심 개시를 결정한 가운데 김씨가 구치감에서 나오고 있다. (사진=뉴시스)

경찰은 “김신혜씨가 자기 발로 걸어와 범행 일체를 자백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김신혜씨는 “폭행, 폭언 등의 자백을 강요하는 강압수사를 받았다”며 “사건 당시 범행을 자백했지만 수사와 재판이 진행되면서 ‘동생이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는 고모부의 말에 자신이 동생을 대신해 감옥에 가겠다고 했을 뿐 아버지를 살해한 적이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고모부가 왜 그렇게 말하는지 모르겠다. 난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고, 고모부에게 자백한 적도 없다. 밤 11시 20분께 고모부는 저를 불러서 ‘네 동생 종현(가명)이가 아버지를 죽인 것 같다, 네가 자백하지 않으면 동생이 큰일난다’라고 말했다 그 뒤 저는 고모부 집으로 끌려갔고, 내 뜻과 상관없이 경찰서로 간 거다”고 주장했다.

김신혜씨의 말대로 이 사건은 의문투성이였다. 김신혜씨가 들었던 보험은 이미 3개가 해지된 상태였고, 아버지의 장애 사실을 숨긴 채, 이른바 고지의무위반을 했을 경우 3년이 지나야 보험금을 수령할 수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또한 범행 도구인 수면유도제와 양주 등의 물증도 전혀 발견되지 않았고, 그녀가 수면제를 갈 때 사용했다고 진술한 행주와 밥그릇에서도 수면제 성분은 검출되지 않았다.

특히 SBS ‘그것이 알고 싶다’ 제작진이 전문가에게 확인한 바에 따르면 독실아민 13.02㎍/ml는 진술조서에 나왔던 30알이 아닌, 적어도 100알을 넘게 먹었을 경우 검출되는 수치였다.

이렇듯 김신혜씨는 결백을 주장했지만 결국 1심과 2심, 대법원에서는 보험금을 목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신혜씨는 복역하면서도 줄곧 “파렴치범이 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싸우겠다”며 결백을 호소했으며 아버지가 사망하더라도 가입 2년 이내 보험금이 지급되지 않아 살해 동기도 없다고 주장했다.

김신혜씨는 모든 진술이 경찰의 강압에 의한 것이라며 가석방도 포기하고 재판을 다시 받게 해달라고 호소해왔다.

지난 2014년 재심 청구소송 담당 박준영 변호사가 청주여자교도소에서 촬영한 영상 속에서 김신혜씨는 이렇게 말한다.

“(A경찰이) 종이 한 장을 내 앞에 놓더니 (지장을) 찍으래요. (내) 머리를 탁탁 치고 뺨을 막 때리면서, 빨리빨리 찍으래요. 나는 멍해서, 이런 말을 했어요. ‘이런 상황에서는 나는 (당신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른다’고 했죠. 경찰이 (내 손가락에) 인주를 묻혔고, 내가 (손을) 뒤로 빼니까 내 손을 잡아서 (지장을) 찍은 거예요. 그러고선 서명을 하라고 닦달했어요. 머리 때리고 뺨 때리면서”

대한변호사협회(이하 대한변협)는 지난 2월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김신혜 사건’에 대한 15년 전 재판기록과 증거 등을 검토한 결과, 경찰의 반인권적 수사가 이뤄졌다”고 밝혔다.

사건 당시, 수사 경찰이 영장 없이 김신혜씨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폭행과 가혹행위로 자백을 강요한 정황과 수사과정에서 억지로 현장 검증을 시켜 범행을 재연하게 한 점도 드러났다.

이에 대한변협은 김신혜씨에 대한 재심청구 소송을 제기한다고 밝혔다.

형사재판 과정에서 제출된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증거의 문제점과 피고인이 내용을 부인하는 피고인의 자백 진술 이외에는 명백한 증거가 없고 오히려 공소사실에 의문을 갖게 만드는 증거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재판과정에서 쟁점이 되지 못한 채 피고인에게 무기징역형을 선고한 판결이 과연 실체적 진실을 반영하고 있는지와 왜 피고인은 14년 넘게 홀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고 있는지에 대해 밝히겠다는 것이다.

대한변협에 따르면 지난 2001년6월1일 SBS 시사프로그램 뉴스추적, 2003년10월21일 MBC PD수첩, 신동아 2003년 10월호 ‘어느 존속살해 여자 무기수의 진실’을 통해 사연이 세상에 알려진 바 있었지만 언론보도 이후에도 법적인 조치는 전혀 이뤄진 바 없이 십 수 년의 시간이 흘렀다.

지금의 교도소는 개인이 필요한 만큼 노트를 소지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노트 한 권밖에 소지할 수 없던 시절, 다 쓴 노트를 가위로 잘라버리고 찢어버리는 등 폐기처리를 해야 새로운 노트 한 권을 받을 수 있었다.

그렇기에 김신혜씨는 속옷이나 양말 바닥 등에 기록을 해 가며 본인이 당했던 억울한 수사 및 재판을 낱낱이 정리하면서 쉼 없이 세상에 억울함을 호소했다.

이에 대한변협은 법률적 지원의 필요성을 검토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 재판기록은 중요사건으로 분류되었고, 약품처리되어 영구보존 중인바, 재판기록, 재판이 후 발견된 증거들, 재판이후 보다 인권적으로 바뀐 적법절차와 관련된 판례 등을 검토한 결과, 15년 전 수사경찰의 반인권적인 수사가 형법상 직무상 범죄에 해당하고, 당시 재판과정에서 채택된 증거들이 현재의 판례에 따르면 위법수집 증거에 해당하여 증거로 쓰여 질 수 없다는 판단을 했고 재심청구를 한다고 전했다.

향후 대한변협은 재심을 인용한 외국 사례들을 수집하고 재심청구 사유를 지속적으로 보완하여 재심에 소극적인 사법부의 전향적인 판단을 촉구할 예정이며, 재심개시 결정과 동시에 형집행 정지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한다고 밝혔다.

국내 최초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 결정

▲ 무기수 김신혜씨 사건에 대해 법원이 재심개시 결정을 내린 지난 18일 오후 변호인들이 광주지법 해남지원 현관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뉴시스)

김신혜씨에 대한 재심이 지난 18일 결정됐다.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이 결정된 것은 국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이날 존속살해 등 혐의로 복역 중인 김신혜씨의 재심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에 재판부는 사건을 다시 심리, 김신혜씨의 유·무죄를 다시 판단하게 된다.

법원은 당시 사건 수사에 관여한 경찰(사법경찰관리)이 압수·수색 영장에 따르지 않고 강제수사인 압수·수색을 실시했으며, 이 과정에 경찰을 참여시키지 않았음에도 마치 참여한 것처럼 압수조서를 허위로 작성했다고 판단(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허위공문서작성 등), 재심을 결정했다.

아울러 김 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음에도 불구, 영장에 의하지 않고 김 씨에게 장소를 이동하게 하면서 의무 없는 범행 재연을 하게 한 것으로도 봤다.

즉 김 씨 사건의 수사에 관여한 경찰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으로 봤으며, 이는 곧 재심 사유(형사소송법 제420조 제7호)에 해당한다는 의견이다.

단 무죄 등을 선고할 명백한 새로운 증거가 발견된 것은 아닌 만큼 형의 집행을 정지하는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재판부는 “재심사유 해당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 경찰 등이 범한 직무에 관한 죄가 사건의 실체에 관계된 것인지 여부나 재심사유가 재심대상 판결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는가의 실체적 사유는 고려해서는 안된다”고 설명했다.

재심결정에 대한변협은 “수사기관의 가혹행위로 인하여 스물세 살 꽃다운 나이에 아버지를 죽인 혐의로 무기수가 된 김신혜씨는 15년을 옥살이를 했다”며 재심 개시 결정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전했다.

대한변협은 “현재까지도 수사기관의 권위의식과 비인권적인 수사 방식 그리고 피의자를 겁박해 짜맞추어진 수사결과를 얻으려는 전근대적인 태도는 여전히 바뀌지 않고 있으며, 지난 10년간 검찰 수사 중 자살한 사람이 100명에 달한다는 사실이 이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러한 점에서 무기수 김신혜에 대한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은 복역 중인 무기수에 대한 재심이 개시된 첫 사례일 뿐만 아니라, 헌법이 보장하고 있는 적법절차의 원칙, 사법절차의 기본권, 무죄추정의 원칙 등이 15년 만에 실현된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으며, 대한변호사협회는 법원의 재심 개시 결정을 적극 환영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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