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전 그대로 소방공무원들의 열악한 환경

신고절차 복잡 부상당해도 사비로 치료해야
현장의 목소리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돼야’
박남춘 의원 “즉각적인 제도보완 마련 시급”
“소방관 처우↓ 소방의 질↓…국민안전 위험”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불구덩이 뿐 아니라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있는 어디에서든 구해내는 소방관들의 애환과 실상에 대해 들어본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소방공무원들의 건강문제를 일반 근로자집단에 비교해 보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심지어 현장에서 임무수행 중 부상을 당해 치료 받을 경우에는 그 치료비까지 사비로 지불하고 있었다.

1년 반 전, 시끌벅적했던 현장 개인장비 마련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처럼 보이지만 여전히 소방공무원들은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 취재 1년 그 후 시리즈 그 1탄으로 여전히 크게 개선되지 않은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환경 실태를 조명해본다.

우울증, 수면장애 등 일반 근로자에 비해 최대 20배 높아

▲ (사진=소방발전협의회)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이성호)는 지난해 11월12일 인권위 배움터에서 ‘소방공무원의 인권상황 실태 파악 및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번 실태조사에는 구급, 화재진압·구조, 119종합상황실 업무를 담당하는 전국의 소방공무원 8300여명이 참여했으며, 이는 전국 지방직 소방공무원의 21.3%에 해당된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방공무원들은 업무상 위험인지도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93%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 대표적 요인으로 ‘장비의 노후화’(73.1%), ‘위험물질에 대한 정보 부족’(50.7%), ‘건물구조에 대한 정보 부족’(46.0%), ‘인원부족’(77.0%) 등을 꼽았다.

특히, 전체 응답자의 33.2%인 2615명은 최근 3년간 장비 노후화 문제로 개인 안전장비인 장갑, 랜턴, 안전화 등을 자비로 구입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공무원들은 건강상 문제에 대해 전신피로(57.5%), 두통 및 눈의 피로(52.4%), 불면증 또는 수면장애(43.2%) 순으로 답하는 등 모든 건강문제 영역에서 대체로 높은 유병률을 보였다.

특히 그 중 청력문제(24.8%), 우울 또는 불안장애(19.4%), 불면증 및 수면장애(43.2%)는 일반 근로자집단에 비해 15~20배 정도 높은 것으로 나타나 이들의 업무상 안전 및 건강은 매우 우려할 만한 수준인 것으로 풀이됐다.

부상을 경험한 소방공무원의 8명 중 1명 정도는 공무상 요양승인을 받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으나, 국민의 안전을 위한 업무수행 과정에서 부상을 당해도 치료를 제대로 받기 어렵거나 치료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방공무원들은 자신들의 권익보호를 위한 대표기구의 필요성에 대해 거의 모든 응답자(97.6%/7854명)가 동의하였고, 대표기구가 생길 경우 대다수가 가입할 의사(95%/7662명)가 있다고 응답했다.

현재 ‘공무원의 노동조합 설립 및 운영 등에 관한 법률’은 소방공무원의 노동조합 가입을 허용하지 않고 있어 소방공무원 스스로 근로조건을 개선할 수 있는 제도가 없는 상황이다.

이에 인권위는 “이번 토론회를 통해 소방공무원의 안전 및 건강, 그리고 근로환경에 관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관련 전문가 및 관계자들의 의견수렴을 거쳐 소방공무원의 안전권 및 건강권, 노동권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라 밝혔다.

임무수행 중 당한 부상, 자비로 처리하는 경우 대다수

▲ (사진=소방발전협의회)

이처럼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있는 소방공무원들의 환경은 지난 2014년 기자의 취재당시와 비교해 크게 나아진 점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소방공무원들은 현장에서 입는 부상마저 대부분 자비로 치료받는다고 한다.

국회 안전행정위원회 박남춘 의원(새정치민주연합, 인천 남동갑)이 지난해 9월 전국의 현직 소방공무원 62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소방공무원 근무여건 개선에 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최근 3년간 현장 근무 중 한 번 이상 부상을 당한 사람은 120명으로 약 19%에 달했다.

이 중 치료비를 본인부담으로 처리했다고 응답한 소방관은 99명(80%)이고 나머지 21명(17%)만이 공상처리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상비용을 공상 처리하지 못한 이유로는 ‘신고절차가 복잡하거나 공상처리 신청 가능 부상의 기준이 부재하다는 응답이 65명(52%)으로 가장 많았고, ‘행정평가 상의 불이익이 때문’이 21명(17%), ‘신고를 해도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13명(10%)’순으로 나타났다.

실제 올 2월 인천의 한 소방서가 소방 활동 중 안전사고를 당한 당사자와 지휘선상 책임자까지 불이익을 주겠다는 내용의 공문을 일선 119 안전센터에 내려 보내자 SNS는 발칵 뒤집혔고, 논란이 일자 철회하기도 하였다.

최근 5년간 소방공무원의 공상자 발생현황을 살펴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공상자는 평균 319.2건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4년 기준 전체 4만406명 중 0.8% 수준으로 현장의 위험한 업무환경을 고려했을 때 매우 적은 수치이다. 박 의원실의 조사와 비교 해봐도 공상처리자의 숫자가 매운 적은 상황이다.

그만큼 임무수행 중의 부상에 대해 공상처리가 아닌 자비로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다

한편 소방공무원들의 민간보험 가입도 직무위험군에 속한다는 이유로 제약이 따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남춘 의원실에서 보험협회 및 일선 보험관계자들에게 문의한 결과 “소방직 등 위험직군에 대해서는 보장성 상해 보험 같은 경우 보험료가 할증되거나 회사에 따라서는 가입을 거절하기도 한다”면서도, 관련 현황 자료를 제출하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개별 회사의 영업 비밀이기에 제출할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실제 서울 00소방서 A씨에 따르면, “민간보험을 들 때 소방공무원이라는 이유로 회피당하거나 보험료가 높게 책정되기 때문에 실제 부상을 입어도 금액이 많지 않은 경우, 본인부담으로 처리할 수밖에 없다” 밝혔다. 이런 현실임에도 불구하고 소방공무원을 위한 국가적인 정책적 보험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이에 대해 박 의원은 “몸을 돌보지 않고 현장에서 인명구조 활동을 벌이는 소방공무원들이 업무중 부상을 당해도 절차가 복잡하고 입증이 까다로워, 또는 근무 평정의 불이익을 이유로 공상 처리하지 않고 자비로 치료한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라며 “소방공무원들이 치료비 걱정 없이 국민을 위해 헌신할 수 있도록 즉각적인 제도 보완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

위험한 말벌집 제거, 하지만 ‘순직’ 처리 아닌 ‘공무상 사망’

▲ (사진=뉴시스)

지난해 12월에는 말벌집을 제거하기 위해 출동했다가 말벌에 쏘여 숨진 소방관의 순직 신청이 기각돼 논란이 일었다.

12월18일 혁신처에 따르면 최근 순직보상심사위원회는 경남소방본부 산청소방서 산악구조대 소속 고 이종택(47) 소방관 유족들이 낸 순직승인요청을 기각했다.

이 대원은 그 해 9월7일 감나무에 있는 말벌집을 제거해달란 신고를 받고 동료소방관과 산청군 중태마을로 출동했다. 감나무와 약 10여미터 떨어진 곳에서 이 대원은 동료소방관에 보호복을 입혔다.

보호복을 입은 동료소방관은 말벌집을 제거하러 떠났고, 보호복을 입지 않은 상태였던 이 대원은 잠시 뒤 말벌에 눈 등을 수차례 쏘여 숨졌다. 목격자가 없어 어느 지점에서 말벌에 쏘였는지 여부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신고자의 증언에 따르면 이 대원은 말벌에 쏘인 뒤 신고자의 집을 찾아 벌침을 제거해달라 했고, 신고자가 벌침을 찾지 못하자 물을 한 잔 달라고 해 마신 뒤 의식을 잃었다. 이후 응급구조가 이어졌으나 결국 쇼크사로 숨졌다.

순직 여부를 결정하는 혁신처 순직보상심사위원회는 이 대원의 당시 상황이 ‘생명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사망하는 경우’란 순직요건을 충족시키기엔 미흡하다고 판단, ‘공무상 사망’으로 결론 내렸다.

공무원연금법 제3조와 제61조에 따르면 공무 중 공무원이 사망하면 ‘공무상 부상이나 질병으로 인한 사망’과 ‘순직’으로 구분한다. 이중 공무원이 통상적인 근무 중 사망하면 ‘공무상 사망’이며, 고도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한 경우 ‘순직’으로 인정된다.

소방공무원의 경우 재난현장에서 화재진압이나 구조 등 생명을 무릅쓰고 직무를 수행하다 숨진 경우 ‘순직’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30년 넘게 근무한 이 대원의 경우 공무상 사망이 판정되면 유족연금은 기준소득월액의 32.5%, 유족보상금은 기준소득월액 23.4배를 받는다. 순직은 공무상 사망보다 금액이 높아 유족연금은 기준소득월액의 42.25%, 유족보상금은 공무원 전체 기준소득월액의 44.2배를 받게 된다.

하지만 혁신처는 말벌집 퇴치를 위해 현장에 출동했던 당시 상황이 이 같은 고도 위험을 무릅쓴 직무가 아니라고 판단, 이 대원 유족들의 순직을 불인정했다.

이에 누리꾼들은 말벌집 퇴치가 왜 위험직무가 아니냐는 비판과 함께 순직 인정을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돌입하기도 했다.

12월18일 포털 다음 아고라 ‘이슈 청원’ 코너에 혁신처 연금복지과를 상대로 ‘말벌퇴치 중 숨진 소방관의 순직 기각을 취소하고 인정해주십시오’라는 제목의 청원 글이 올라왔다.

한 소방관의 딸이자 평범한 대학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글쓴이는 “얼마 전 말벌 집을 제거하시다 벌침에 19발 쏘여 돌아가신 소방관의 순직 신청이 기각됐다는 소식을 들었다”며 “말벌퇴치 업무도 엄연한 소방관의 안전, 구조 업무 중에 하나다. 시민의 안전을 위해 말벌 집을 제거하다가 돌아가셨는데 순직이 아니라니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한민국의 소방환경은 열악하다. 그러나 많은 소방관들이 현재도 국민을 위해 일하고 계신다”며 “소방관에 대한 처우가 떨어지면 소방의 질이 떨어질 것이고 그렇다면 국민의 안전은 누가 지킨단 말입니까”라고 반문했다.

마지막으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소방관을 국민 여러분께서도 지켜주시기를 간절히 바란다”며 “여러분, 바쁘시겠지만 꼭 서명 부탁드린다. 한 분의 서명이 큰 힘이 되고 대한민국 소방에 큰 보탬이 됨을 믿는다”고 강조하며 관련 기사를 첨부했다. 이 청원글에는 7일 오후 3시 현재까지 총 1636명이 서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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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인터뷰> 소방발전협의회 전 회장, 17년차 현직 소방관 고진영 씨

2014년 8월, <뉴스포스트>는 현직 소방관인 고진영 씨를 만나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에 대한 관련 이야기들을 나눠봤다. 그리고 2016년 1월, 다시 만난 고진영 씨에게 현재 소방공무원 근무환경에 대한 최근 상황을 들어봤다.

Q. 2014년 당시 안전을 위한 개인장비 등이 제대로 마련 돼 있지 않았다. 현재는.

개인장비 지급이 많이 좋아졌다. 지금도 부족하고 열악하다고 하는데 그래도 그때에 비하면 개인장비가 지급이 많이 된 편이다. 그것 외에는 그때와 비교해 특별히 변화된 것은 없다.

Q. 대부분 소방공무원들이 현장에서 입는 부상마저 자비로 치료받는다던데, 공상 신청을 안하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다.

부상을 당한 뒤 자비로 치료한다는 것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필요가 있다. 부상을 당하면 안전사고가 발생을 한 것이다. 개인현장에서 일을 하다가 부상을 당하면 안전사고를 당하는 것이라 책임소재가 뒤따른다. 그러면 관리자급들은 ‘왜 관리를 잘 못했냐’고 책임소재가 따르고 그렇게 책임을 묻다보면 여러 가지 평가에서 안 좋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

개인적인 성과급에도 영향을 미칠 수도 있고 안전사고가 한번 일어나면 여러 가지 복잡한 일이 있을 수 있으니까 그것을 공상처리 하지 않고 큰 액수가 아닌 이상 본인이 자비로 치료받는 것이다.

Q. 소방공무원들의 처우개선을 위해 무엇이 개선되어야 하나.

1인 시위 이후로 제도적인 변화나 특이할 만한 사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당시에 개인장비를 직접 구매해서 쓴다는 이야기가 너무 많이 나와서 일정부분 소방공무원 개인안전장비를 지급하라는 예산이 세워진 부분이 있다.

그러나 여전히 현장에서 활동하는 소방공무원들의 처우나 열악한 환경은 그대로인 것 같다.

제가 봤을 때는 저희가 1인 시위를 하면서 주장한 여러 가지 이유들 중 하나인 ‘소방공무원, 국가직으로 전환’이 이뤄져서 국가에서 소방공무직을 책임진다면 소방공무원들의 근무여건이나 열악한 환경이 바뀔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소방발전협의회도 임의단체나 마찬가지이다. 최소한 소방관들에게도 직장협의회 정도는 허락해줘야하지 않겠느냐. 이런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문제점을 스스로 개선할 수 있는 어떤 그런 소통의 공간을 만들어줘야 할 것이라 생각한다.

<최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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