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 불안에 안정 택한 한은, 저성장국면 거세지는 금리인하 압박

▲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사진=뉴시스)

통화정책 한계, 부채급증 부작용 우려
시장 압박 속 상반기 인하 가능성 솔솔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우리 경제가 기준금리를 두고 딜레마에 빠졌다. 장기화되면서 마이너스 금리를 앞세운 양적완화 움직임이 유럽과 일본 등 국제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도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의 늪에 빠지면서 금리인하 압박이 거세지고 있지만 가계부채 부담과 외화 유출 가능성 등 불안요인이 상존하면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일단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했지만 경기부양을 위한 금리인하 요구와 금융시장의 안정 사이에서의 고민은 더욱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도 동결 결정

한국은행이 지난 16일 기준금리를 8개월째 연 1.50%로 동결했다. 기준금리 인하 압박에도 경기부양보다 금융안정을 선택한 것이다.

연초 국제유가 폭락,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기둔화, 유럽과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부작용 등 세계 곳곳에서 한번에 터진 악재들로 금융시장이 불안정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섣불리 금리를 내렸다간 오히려 시장에 혼란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판단이 우선했다.

이번 금리동결은 이미 예견된 결정이었다. 국내 채권시장 전문가 100명 중 99%가 금리동결을 전망하기도 했다.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안이 커지면서 한은이 당장 금리를 움직일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은 것이다.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 경기둔화 등으로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가 더욱 커지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유럽, 일본 등 주요 선진국과 아시아 증시는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예측하기 어려운 국면에 빠졌다.

저유가가 지속되는 상황도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저유가가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중국 경기 둔화 우려에 따른 수요량 감소 등으로 배럴당 20달러대로 떨어지며 폭락했고, 곡물·비철금속 등 기타 원자재 가격도 세계 수요 둔화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불확실한 상황에서 한은은 ‘조금더 지켜보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하지만 경제계와 시장에서는 인하 압박이 크다. 대내외 악재에 휩싸인 우리 경제가 수출과 내수 모두 부진에 빠지면서 저성장에서 쉽게 해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국제유가 하락과 중국 성장둔화 등 대내외 악제 직격탄을 맞은 우리 경제는 수출 부진이 장기화 국면에 접어들면서 내수가 위축되는 악순환이 고착화될 우려에 봉착해있다.

산업통상자원부와 관세청에 따르면 이달 1∼10일 수출액은 87억5200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7.1% 줄었다. 올 들어 이달 10일까지 누적 수출액 역시 454억9600만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20.3% 감소하는 등 극심한 수출 부진이 이어지고 있다.

내수도 부진하기는 마찬가지다. 지난해 4분기 성장률이 0.6%에 그치며 고꾸라졌고, 1월 소비자심리지수(CCSI)도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의 직격탄을 받았던 지난해 7월(100) 이후 최저치인 100을 기록하며 ‘소비절벽’ 우려까지 대두되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대외여건이 갈수록 악화되면서 수출 부진에서 탈출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저유가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되는 데다, 우리나라 수출의 25%가량을 차지하는 중국 경제는 지난달 달러화 기준으로 수출이 11.2%나 급감하며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여기에 북핵리스크로 인한 개성공단 철수와 한반도 사드배치 이슈가 더해지면서 대중 무역 환경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

수출부진으로 성장 동력에 힘이 빠지면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는 내수 경기 부양책도 한계에 봉착할 수 밖에 없다.

이 같은 상황이 지속된다면 3%대 성장률 달성은 더욱 어려워진다. 하지만 극심한 수출부진에서 벗어나기 위한 정부의 카드도 마땅치 않은 형편이다.

경기 회복에 총력을 쏟는 정부 정책에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가운데 유럽에 이어 일본이 지난달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나서는 등 주요 선진국들이 대대적인 완화정책에 뛰어들면서 한은의 고민은 더욱 깊어지고 있다.

▲ 사진=뉴시스

약발 떨어진 돈 풀기

그렇다고 한은은 섣불리 기준금리 인하카드를 꺼내기 힘든 입장이다. 당장 세계 금융시장에 위험자산 회피 심리가 커진 가운데 금리를 내리게 되면 외국인 자금 이탈을 더욱 확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 금융시장에서는 외국인의 순매도가 지속되며 불안감이 고조된 상황이다.

특히 1200조원에 달하는 가계부채와 기업의 부실채권 문제는 금리 인하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금리를 내리게 되면 지금도 한계치에 다다른 부채 증가세를 감당하기 힘들 수도 있다.

무엇보다 돈 풀기식의 통화정책이 더 이상 효과를 보기 힘들다는 판단이 한국은행이 금리인하 결정을 주저하게 만들고 있다.

각국의 ‘돈 풀기’ 정책은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라앉은 경기를 살리기 위한 유일한 카드로 통했다. 미 Fed가 ‘제로 금리’까지 내리고 국채를 본격 매입하면서 시중에 돈을 직접 풀기 시작하자, 유럽과 일본 등 주요 선진국의 중앙은행들도 가세했고, 중국을 비롯한 신흥국들도 뒤따르면서 전세계적으로 양적완화의 시대가 도래했다.

중앙은행의 이런 공격적인 시장 개입은 한 동안 잘 작동하는 듯 보였고, 마침내 지난해말 금리 정상화에 나선 미국의 사례에서 보듯 성공적인 위기 탈출 해법으로 간주됐다.

하지만 역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도 많은 돈이 풀렸음에도 세계경제는 여전히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중앙은행이 주도하는 통화정책에 대한 한계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지고 있다.

유로존과 일본이 비장의 카드로 꺼내든 마이너스 금리정책이 경제를 살리기는 커녕 은행권을 중심으로 새로운 부실 심화 등 또다른 위기 가능성을 키우는 상황이다. 때문에 수년간 각국에서 경쟁적으로 돈을 풀고, 금리를 낮춰온 것에 대한 부작용이 이제 본격화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정원일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통화정책을 통한 경기부양의 효과성에 대한 의심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중앙은행의 의지대로 환율 등 경기변수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은 경제주체가 유동서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통화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이 총재는 기준금리 동결을 결정한 뒤 통화정책방향 설명회에서 주요 선진국들이 잇따라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하는 등 적극적인 완화정책을 단행하고 있는 점과 국내 경제상황이 차별화되고 있는 점을 강조하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일부 중앙은행이 비통상적인 정책을 편지 8년 정도 됐지만 통화정책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미국과 유럽, 일본 등 기축통화국이기 때문에 상식을 넘는 대응이 가능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금리를 조정했을 때 기대효과와 부작용이 있기 마련인데 지금 상황에서는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이 높아 부작용이 우려된다”면서 “대외여건이 불확실하다보니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효과가 확실치않다”며 통화정책의 한계성을 거듭 강조했다.

각국 중앙은행에서 지속적인 대규모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는 것에 대해서도 다소 우려섞인 시각을 드러냈다.

이 총재는 “지금의 저성장·저물가의 근본적 원인은 구조적 요인 때문”이라며 “이러한 상황에서 완화정책 기간이 길어진다면 분명 어느 한 쪽에서 불균형이 커질 것이다. 금융위기가 곧 닥칠 가능성이 높지 않지만 그런 가능성에도 경계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꺾이지 않은 금리인하 요구

문제는 돈 풀기 정책이 한계를 드러나고 있는데도 각국의 중앙은행에서 마땅히 내세울만한 다른 대안이 없다는 점에서 금리인하 압박은 계속될 것이라는 점이다.

글로벌 저성장과 저물가가 지속된다면 중앙은행이 제기하는 통화정책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금리인하 압박을 견디긴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금융시장에서는 결국 한은이 상반기중 금리를 인하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아지고 있다.

2월 기준금리를 동결한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오자 17일 금융시장에서는 금리인하 기대가 커지고 있다.

만장일치로 이뤄지던 금리동결이 8개월만에 깨지고, 금리인하 의견이 처음으로 등장한 것이어서 시장에서는 의미있는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는 분위기다. 하성근 금통위원은 전날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현재의 연 1.50%에서 0.25%p 내릴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주열 총재 취임 이후 한은 금통위는 2014년 8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총 4차례의 금리인하를 단행해왔다. 그간 금리인하가 전격적으로 단행되기 1~2개월 전에는 대부분 금리인하를 주장하는 소수의견이 나왔다.

지난 2014년 8월과 10월 두차례의 금리인하에 앞서 7월과 9월 금통위에서는 정해방 금통위원이 금리인하를 주장했다. 시장의 전망과 달리 이례적으로 금리인하가 이뤄졌던 지난해 3월을 제외하고는 6월 금리인하에 앞서서도 4~5월 하성근 금통위원이 소수의견으로 금리인하를 주장했다.

이로 인해 금융시장에서는 소수의견의 등장은 곧 금리조정을 위한 사전 ‘시그널’처럼 인식됐다.

금통위원 7명 중 한은 총재를 뺀 나머지 6명이 외부에서 목소리를 내는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에 금통위의 견해를 찾을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았다. 더욱이 금통위 회의 2주일 후에 공개되는 의사록에서도 내용이 익명으로 공개됐기 때문에 소수의견이 나오면 총재 발언과 더불어 향후 통화정책의 향방을 읽을 수 있는 유일한 단서로 통했던 것이다.

이번에도 시장은 금리인하 기대감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이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220원대를 돌파하며 5년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다. 채권금리(국고채 3년물 금리)도 전날 1.445%로 하락하며 사상 최저치를 나타냈다.

이 총재가 ‘매파적(통화긴축 선호)’ 발언을 수차례 던졌음에도 기존에 펼쳐온 통화정책 신중론과 다를 바 없다는 해석 등을 바탕으로 오히려 한은이 3~4월에는 기준금리 인하에 나설 것이라는 기대가 더 높아지고 있다.

소수의견 등장으로 금리인하에 대한 기대는 커졌지만 한은이 당장 금리인하에 나서기는 무리라는 의견도 있다. 3월 미국의 FOMC를 앞두고 있는 가운데 4월 임기가 만료되는 하성근 위원을 비롯해 정해방·정순원·문우식 위원 등 4명의 금통위원이 교체되기 때문에 금리조정에 당분간 신중하게 움직일 것이라는 분석이다.

중앙은행의 기준금리 인하에 대한 고민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