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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도시화의 그늘 '젠트리피케이션' ①서촌.홍대 일대 원주민들의 슬픈 하소연

무소불위 합법적 약탈에 쫓겨나는 상인들
투기자본 유입 원주민 설 자리 읽고 내쫓겨
월세 힘들게 올려줘도 결국엔 나가라 식
문화 백화현상 대표적 사례 이대 상권 몰락
“임차인은 늘 당해야만 하는 을이 아니예요”
젠트리피케이션 해결 법과 제도 개선이 핵심

   
▲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사진=뉴스포스트 최유희 기자)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안옥희 인턴기자] 서울 종로구 내자동 세종마을음식문화거리. 작은 쌀가게와 파전집, 낡은 철물점을 지나 후각을 자극하는 고소한 생선구이 냄새를 따라가면 ‘통영 생선구이집’을 만날 수 있다. 이곳은 통영 출신 주인장이 신선한 제철 생물 생선만 취급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 덕에 도다리쑥국 등 지역 특색을 살린 메뉴를 먹을 수 있어 서울에서 드문 특색 있는 맛집으로 유명했다. 그러나 단골이 많아지면서 임대료가 상승해 이제는 음식 맛보다 건물주와의 분쟁으로 언론에 더 많이 보도되며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뉴스포스트> 사회팀은 전국을 중심으로 급격하게 확산되고 있는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장을 찾아 그곳에서 일어나는 애환과 명암을 조명해봤다. 젠트리피케이션의 대표적인 동네인 서울 종로구 서촌과 홍대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현실에 대해 다양한 목소리를 들어봤다.

임차인 노예로 만드는 법이 잘못

   
▲ '통영 생선구이' 대표 조옥선 씨 (사진=뉴스포스트 최유희 기자)

취재진이 처음 찾은 곳은 서촌에서만 6년간 자리를 지킨 ‘통영 생선구이집’. 이 식당의 대표 조옥선씨의 장사 경력 40여 년은 고통과 회한의 궤적이기도 하다. 안 해본 장사가 없을 만큼 장사에 도가 텄지만, 건물주와의 분쟁은 늘 힘겨운 투쟁의 연속이었다. 신촌의 망해버린 여관에서 장사할 때 오직 음식 솜씨만으로 단골을 형성하며 무너진 상권을 살렸다. 하지만 그렇게 상권을 살려놓을 때마다 건물주는 조 씨를 내보내려 했다.

지난해 개정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제10조는 최소 5년의 임대차기간을 보장해주지만, 당시에는 1년만 지나도 건물주가 무조건 내보내려 했다고 조 씨는 증언한다.

실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은 2015년 5월 개정을 통해 그간 법적으로 보호받지 못했던 권리금을 법제화해 건물주에게 세입자의 권리금 회수 기회를 방해하지 못하도록 하고 이를 어길 경우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재건축의 경우 권리금 분쟁에 관한 규정이 없고 서민 임차인이 대다수인 재래시장이 예외규정으로 보호대상에서 빠져 법의 허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그렇게 조 씨는 결국 서촌에서 다시 영업을 시작했다.

“첫 영업을 개시할 당시 권리금 4000만 원에 보증금 1000만 원, 월 임대료가 70만 원이었어요. 그러나 이곳 역시 최초 계약 이후 건물주의 태도가 달라졌죠.”

세 번 가격을 올려달라고 할 때마다 20%씩 올려줬다는 조 씨는 결국 5년 차 되기 4개월 전에 건물주로부터 나가라는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건물에서 나가지 않은 조 씨에게는 2개월 있다가 내용증명이 왔다. 이렇게 5년에서 2개월을 남겨놓고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은 건물주가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을 잘 알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조 씨.

그는 ‘건물주가 여기 내 집이니까 손대지 말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내가 아줌마고 법을 잘 모르니까 매일같이 울기만 했지”라며 막막함에 일도 손에 안 잡히던 당시를 회상했다.

강제집행 위기 속 맘상모와의 만남…삼삼오오 상인들 모여

   
▲ ‘통영 생선구이집’ 가게 외벽에 붙어있는 포스트잇 (사진=뉴스포스트 최유희 기자)

조 씨에 따르면 심란한 마음에 여기저기 수소문해 도움을 청했지만, 응답해주는 곳을 찾을 수 없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윗동네에서 꽃집을 운영하던 딸이 조 씨보다 1년 먼저 서촌에서 쫓겨나게 됐다. 3개월간 정신 나간 사람처럼 새벽 3~4시쯤 영업을 마친 후 딸의 꽃가게로 새벽기도까지 하러 다녔다.

그 길에 우연히 동네에서 한 주민을 만나게 됐고 그를 통해 조 씨는 ‘맘편히 장사하고픈상인모임(이하 맘상모)’의 존재를 알게 됐다. 그리고 주변에 자신처럼 합법적으로 쫓겨나는 사람들이 있음을 자각하게 됐다.

맘상모의 도움을 얻기 위해 조 씨는 3개월 동안 이 동네에서 자신처럼 억울한 일을 당한 상인 10여 명을 모았다. 그 일을 계기로 맘상모 임영희 사무국장을 만나게 된 조 씨는 “나와 같은 사람들이 있으니까 힘이 생겼다”고 말하며 “맘상모 덕분에 싸울 용기를 얻었다”고 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조 씨는 건물주가 낸 명도소송에서 패소해 강제집행을 당할 뻔했다. 강제집행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손님이 오면 나를 죽이러 온 게 아닐까 싶었다”고 말했다. 조 씨는 통영생선구이집을 위한 직접행동, 건물주에게 상생 요구서 전달, 법률 자문 등 맘상모와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강제집행만 떠올리면 아직도 분노가 차오른다며 세입자에 대한 강제집행법은 꼭 바뀌었으면 하는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나처럼 월세 꼬박꼬박 내고 올려달라는 것 다 올려준 사람이 왜 죄인이 돼야 해요?”라며 투기 자본의 유입을 부추겨 원주민이 내쫓기는 현상(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조장하는 기획부동산과 권리금으로 장사하는 일부 중개인들에 대해 “그런 약삭빠른 사람들을 잡는 게 법의 역할”이라고 일침했다.

한편 서촌에서 30여 년이라는 가장 오래된 역사를 가진 꽃집 ‘뽀빠이화원’의 사례도 온라인상에서 유명하다. 부모를 대신해 꽃집을 운영하고 있는 송모씨가 SNS 인스타그램을 통해 건물주의 임대료 향상 요구를 알리면서 서촌을 잠식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더욱 주목을 받게 됐다.

서촌의 원주민이라 할 수 있는 송 씨는 어려운 사정을 알리며 지난 1월부터 한 달여간 크라우드 펀딩에 나섰다. 송 씨는 ‘뽀빠이화원을 지켜주세요’ 프로젝트를 통해 “서촌이 감성과 추억의 거리로 널리 알려지면서 예스러움을 상업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임차인은 늘 당해야만 하는 ‘을’이 아니다”라고 호소했다. 이 프로젝트는 현재 목표 금액을 달성한 상태로 송 씨는 모인 후원금으로 남은 계약 기간을 버틸 수 있게 됐다.

젠트리피케이션 진원지 ‘홍대’의 흐름과 양상

   
▲ ‘맘상모’ 운영위원 신가람 씨(왼쪽)와 문화공간 ‘그문화다방’ 대표 김남균 씨(오른쪽) (사진=뉴스포스트 최유희 기자)

취재팀은 서촌에 이어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마포구 홍대로 이동했다. 그곳에서 ‘골목사장 생존법’의 저자이자 맘상모 회원, 문화공간 ‘그문화다방’ 대표 김남균 씨와 ‘맘상모’ 운영위원 신가람 씨를 만났다.

김 씨가 홍대의 문화적 중흥기를 이끌어온 1세대로서 현재 저자, 일러스트레이터, 축제 기획자, 시민청 운영 위원, 맘상모 회원 등 다양한 분야의 직업을 갖게 된 이유는 홍대 젠트리피케이션과 관계 깊다.

김 씨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인한 문화 백화현상을 막고 홍대 본연의 색깔을 되찾기 위해 전방위로 분투 중이다.

홍대 앞에서 15년간 10여 번 이사하면서 젠트리피케이션의 산증인이 된 김 씨에게 현재 홍대 인근 지역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흐름과 양상에 대해 들어봤다.

2006년 김 씨가 홍대 랜드마크인 상상마당 건너편에 사무실을 둘 때만 해도 주변엔 아무것도 없었다고 한다. 그 이후 10년이 지나면서 동네는 어마어마한 외적 변화와 함께 땅값이 8배 넘게 상승하게 됐다. 임대료는 “곳에 따라 10배에서 많게는 20배까지 오른 곳이 있다”고 말하며 “임대료가 많이 오른 원룸과 주택이 근린으로 개조돼 동네에 살던 문화생산자들이 지역을 떠나게 됐다”고 설명했다.

월세와 임대료가 너무 올라서 살 수가 없게 된 문화생산자들은 홍대 인근 연남동, 망원동, 당인동 쪽으로 넘어가게 됐다. 젠트리피케이션을 피해 떠났지만 떠난 곳마저 자본의 유입이 급속도로 이뤄져 월세와 임대료가 오르는 현상이 어김없이 일어났다고 한다.

“홍대 문화 1세대들이 옮겨간 곳들이 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일어난 곳이에요. 지금 경리단길도 마찬가지고요.”

김 씨는 “홍대 앞 중심가에서 점점 밀려서 계속 이사를 할 수밖에 없던 뮤지션들의 이야기를 추적하면 홍대 변천사가 보인다”고 설명하며 홍대를 근거지로 삼던 문화예술가들의 이동이 최근 이태원 경리단길이 뜨는 동네로 부상한 것에 영향을 줬다고 주장했다.

이런 현상을 부채질하는 원인 중 하나로 김 씨는 기획부동산을 지목했다. 기획부동산은 불법 부동산 중개 및 투기 조장을 하며 부동산시장을 왜곡하는 세력을 의미한다.

또 판매에 대해 일정한 수수료를 받는 공인중개사법의 문제도 지적했다. 임대료 산정에서 시장원리에 의한 게 아니라 실제 판매자인 건물주의 입장에 치우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상인 처지에서는 중개인이 저승사자처럼 느껴지는 거예요.”

그러나 이제 뜨는 동네들은 예전만큼 사람이 많지 않다고 지적하며 ‘문화 백화현상’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라 진단했다. 문화 백화현상은 문화예술가들 유입 지역에 유동인구 증가→임대료 상승→상업시설 입주→문화예술가와 개성 있는 소규모 가게들이 빠져나가는 과정으로 더는 문화예술이 없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문화예술가들이 기반을 잡아놓으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처럼 거위의 배를 가르러 오는 거죠.”

김 씨는 문화 백화현상의 대표적 사례로 이대 상권의 몰락을 꼽았다. 젠트리피케이션이 휩쓸고 지나간 이대 골목은 을씨년스러울 만큼 대낮에도 사람이 없고 빈 상점들로 가득하다. 늘어나는 공실률과 몰락한 골목 상권을 회생시키기 위해 지난해 건물주와 서대문구청, 문화활력생산기지가 머리를 맞대고 ‘이화여대 뒷골목 임대료 안정화를 위한 협약’을 맺었다. 다시 한 번 과거 영광이 재현될지 주목됐지만, 상권 회생 효과가 있을지는 더 지켜볼 일이다.

“이리카페 들어온 뒤로 젊은 사람들이 다니기 시작하니 원류를 몰아내는 겁니다.” 김 씨는 홍대 대표적 문화공간인 이리카페를 예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을 설명했다. 많은 문화예술인의 아지트였던 이리카페가 2009년 처음 자리했던 서교동 산울림소극장 근처는 원래 아무것도 없는 주택 골목이었다. 그런데 골목에 이리카페가 1호로 들어오면서부터 우후죽순 카페들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이리카페는 카페기능도 있었지만, 예술가들의 커뮤니티 기능이 더 강화됐던 거죠. 예술가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라 콘텐츠가 확산됐던 거예요.”

이리카페는 개업 5년 만에 서교동에서 쫓겨나 상권이 전혀 없는 곳으로 옮겼지만, 그곳에서도 똑같은 상황이 반복됐다고 한다. 김 씨는 과거 이리카페가 자리했던 작은 골목은 특히나 원주민 비율이 높은 지역이라 정보 공유가 활발하다며 “한쪽에서 임대료를 올리면 모든 상점의 임대료가 상승하고 이것이 주택으로까지 연쇄작용이 일어난다”고 설명했다.

결국, 상가문제와 주택문제는 본질이 같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현재 영업 기간을 5년밖에 보장하지 않는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재개정 등 제도의 보완이 필수라고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김 씨는 이런 현상을 단순히 임대인과 임차인만의 문제가 아닌 공동체의 존립 측면에서 살펴보기를 권했다. 지금처럼 10년 동안 최소 5번을 이사해야하는 현실을 바꾸지 않는다면 지자체에서 추진 중인 마을공동체 사업, 도시재생사업 등도 의미를 잃을 것이라 내다보며 결국 젠트리피케이션의 문제는 법과 제도 문제 개선이 핵심이라고 밝혔다.

(2탄에서 계속)

안옥희 기자  ahnoh0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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