뜬 지역상권,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는 부작용

서울시 상생 위한 정책 내놨지만 실효성 ‘글쎄’
홍대인근, 삼청동등 고 임대료 원주민 속속 떠나
빠른 속도로 지역 특색 잃고 상권 쇠퇴 진행중
임대차 기간 늘리면 유입상인.구 상인 상생가능
일본·독일, 임차인 보호기간 30년서 무한대까지

[뉴스포스트=안옥희 인턴기자, 최유희 기자] 가난하지만 개성 있는 화가, 조각가, 의상 디자이너, 액세서리 디자이너, 목수, 사진작가, 인디밴드, 지역의 특색을 살린 메뉴의 식당 등이 모여 독특하고 예술적인 공동체 문화를 만들었던 한국의 구석구석들. 특히 서울의 홍대 인근과 망원동, 상수동, 삼청동, 신사동 가로수길, 경복궁 옆 서촌, 경리단길, 성수동 등 과거 임대료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지역에 문화․예술가, 자영업자 등이 유입되면서 그 지역만의 특성과 상권이 형성됐다.

그렇게 유동인구가 증가하고 관광지로 유명해지는 등 지역상권이 뜨자 대자본으로 무장한 프랜차이즈 같은 상업 자본이 물밀듯이 들어와 임대료와 월세를 천정부지로 올렸다. 이에 지역 특색을 살린 식당이나 건물들의 영세상인과 원주민들은 임대료 상승으로 내쫓기고 새 대형 프랜차이즈가 들어서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을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라고 말한다. 실제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독특한 콘셉트의 카페와 이색적인 음식점이 즐비해 인산인해를 이뤘던 홍대와 합정동 부근은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 빠른 속도로 특색을 잃고 상권 쇠퇴가 진행 중이다.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빼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에 대해 서울시가 지역 개발 이익이 발전에 기여한 지역 주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을 마련한 가운데 그 현실화 가능성 등 2편에서 심층적으로 짚어본다.

서울시와 지자체,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대책마련 ‘골몰’

▲ (사진=네이버블로그 '원순씨네')

구도심에서 들불처럼 번지는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분쟁이 끊이지 않자 서울시와 지자체들이 선제 대응에 나섰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해 11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으로부터 원주민을 지키기 위해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종합대책을 내놨다.

시는 지난해 11월 광역자치단체 중 처음으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심각하다고 판단되는 대학로, 인사동, 신촌․홍대․합정, 북촌․서촌, 성미산 마을, 해방촌, 세운상가, 성수동 6개 지역에 대해 시 정책 수단과 자원을 선도적으로 지원, 모범 사례를 도출하고 시 전역으로 확산한다는 종합 대책을 내놨다. 종합대책은 크게 7대 사업으로 추진되며 임대인, 임차인, 지역주민, 전문가와 시․구 공무원으로 구성된 지역별 민관협의체가 실행 주축이 된다.

먼저 ▲상생협약을 전 지역 체결을 목표로 ▲시가 부동산을 매입 또는 임차해서 지역 특성을 대표하는 앵커(핵심)시설을 199억 원 예산을 편성해 건립하고 ▲장기 안심 상가 제도 도입 ▲소상공인 자산화 전략추진 ▲마을변호사와 마을세무사 총 60명으로 구성된 전담 법률지원단 운영 ▲‘서울시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 제정으로 시 차원의 제도적 기반 마련 ▲이와 같은 사업 추진에 앞서 지역별 민관협의체를 중심으로 토론회, 공청회, 컨퍼런스를 개최해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문제를 공론화한다는 계획이다.

시는 이와 같은 종합대책을 6개 지역에 종합 추진하되, 지역 상황과 특성을 고려해 전략 분야를 집중하기로 했다. ▲대학로, 인사동, 성미산 마을에는 시가 건물을 매입, 임대해 ‘앵커시설’을 집중시키고 ▲신촌‧홍대‧합정 지역은 ‘장기안심 상가’ ‘자원화 전략’을 ▲북촌‧서촌은 대형 프랜차이즈 업종이 골목상권에 들어오는 것을 일부 제한하고 커뮤니티 활성화 시설을 조성할 예정이다.

IT산업을 기반으로 하는 지식산업센터와 수제화, 봉제 공장 등 전통 산업이 혼재돼 준공업지역인 성수동의 경우에는 2012년부터 빈 공장과 창고에 젊은 예술가와 사회적기업이 들어서며 ‘뜨는’ 동네가 됐다. 강남과 인접해 있는 지리적 위치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개성 넘치는 카페와 레스토랑, 갤러리 등이 생겨나 지역 환경이 개선되니 임대료가 상승했고 원주민들이 내쫓기기 시작했다. 성동구는 이러한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방지를 위해 지난해 9월 전국 최초로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조례를 선포했다.

조례는 관할구역에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한 뒤 도심재생사업을 펼쳐 지역상권 발전을 유도하며 상권이 발전함에 따라 대형 프랜차이즈 등이 입점해 소상공인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주민들이 협의체를 구성해 외부에서 들어오는 입주업체를 선별할 수 있게 해 도시경쟁력과 문화 다양성을 보호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성동구는 조례를 구체화하기 위해 대형 민간건축물에 일정 부분의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이에 상응하는 공간을 확보해 안심 상가 등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안심 상가로 조성되는 공간은 성동구에서 소유권을 넘겨받아 직접 관리, 운영하며 임차상인의 내쫓김 현상을 방지한다. 또 지난달 1일 젠트리피케이션 방지 전담 기구인 지속가능도시추진단을 구성해 성수동 상권이 문화 다양성과 매력을 유지하면서 지속해서 성장 발전할 수 있게 대응을 시작했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 상가 지역이 많은 중구도 젠트리피케이션 현상 예방을 위해 발 벗고 나섰다. 1동 1명소 조성사업으로 인한 지역 활성화와 안정적인 상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중구는 ▲건물주는 임대 기간 동안 임대료를 인상하지 않고 임차인의 권리금을 보호하는 대신 임차인은 가격정찰제, 보도상 물건 적치 금지 등 합법적인 영업활동과 깨끗한 거리 환경 조성에 협력하고 ▲중구청은 환경 개선사업, 상인역량 강화 사업 등을 지원해 상권 활성화를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의 상생협약 표준안을 만들었다. ‘지역공동체 상생 협력에 관한 조례’는 대상 지역인 지속가능발전구역을 지정하고 주민협의체 구성과 운영, 상생협약 체결 등의 내용을 주요 골자로 하며 올 4월 중 공포할 예정이다.

“서울시 정책, 전체적으로는 좋지만 한계 있어”

▲ ‘맘상모’ 운영위원 신가람 씨(왼쪽)와 문화공간 ‘그문화다방’ 대표 김남균 씨(오른쪽) (사진=뉴스포스트 최유희 기자)

이러한 시의 종합대책에 대한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기 위해 취재진은 서울 종로구 서촌에 위치한 ‘통영 생선구이집’을 찾았다. (1편 참고) 이 식당의 대표 조옥선씨는 서울시가 ‘서울시 상가임차인 보호를 위한 조례’ 개정안을 발의 한 것에 대해 “제일 괘씸한 부분이 억울한 사람들이 모여 개정안을 만든건데 정작 그 사람들은 보호를 못받아요. 사각지대라는 거죠. 이제부터 하겠다고 하는데 그러면 법을 만들어 놓은 사람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울고 불며 쫓겨나고 또 환산보증금부분도 그걸로 보호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더라고”라고 말했다.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맘상모) 역시 종합대책 발표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서울시가 우려하고 해결하겠다고 밝힌 그 현상이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다”며 “잘못된 법과 제도를 악용해 임대인이 임차인을 내 보내고 있고, 임차인은 권리금은 물론 삶을 통째로 잃을 위기에 처해 있다. 법이 개정되었지만 개정 이전 계약만료 등으로 새법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임차인들이 강제집행으로 거리로 내몰릴 위기에 처해있다”고 설명했다.

서촌에 이어 취재진은 서울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의 진원지라 할 수 있는 마포구 홍대에서 ‘골목사장 생존법’의 저자이자 맘상모 회원, 문화공간 ‘그문화다방’ 대표 김남균 씨와 ‘맘상모’ 운영위원 신가람 씨를 만났다.

서울시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의 실효성에 대해 맘상모 운영위원 신가람 씨와 ‘그문화다방’ 대표 김남균 씨를 만나 현재 임차인 사이에서 가장 화두가 되는 몇 가지 문제를 짚어봤다.

시는 소상공인이 아예 상가를 매입해서 소유할 수 있도록 시가 8억 범위 내에서 매입비의 최대 75%까지 시중금리보다 1%p 낮게 장기(최장 15년)로 융자해주는 ‘자산화 전략’을 해법으로 내놨다. 이에 대해 신 씨는 “임차인에게 돈을 빌려줘서 그 대출자금으로 차라리 건물을 사서 건물주가 돼 장사를 하라는 것”이라며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라고 평가했다. “투기로 연결될 우려가 있으므로 건전하게 임대하고 임차 받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 이라며 자산화 전략이 젠트리피케이션 종합대책 중 주된 정책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한 시는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의 개정을 중앙정부와 국회에 건의했다. 건의안의 주요 내용은 임대차존속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고 임대료 인상률을 지자체 조례로 위임, 임차인 퇴거보상제도 도입 등이다.

이에 대해 김 씨와 신 씨는 “전체적으로 공감이 되고 환영할만한 대책”이라고 평가했지만, “실효성 논란 등의 한계가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설명했다.

권리금과 현행 5년으로 돼 있는 임대차존속기간은 관계가 깊다며 권리금의 폐해를 줄이려며 임대차존속기간을 장기간 보장해야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5년인 임대차존속기간, 일본처럼 무한대로 늘리길

▲ 홍대거리 (사진=뉴시스)

아울러 외국의 임대차 기간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김 씨는 보호기간이 긴 나라로 알려진 일본과 독일의 사례를 들어 설명했다. “일본은 정한 기간이 없는 무한대고 독일은 보호기간이 30년이라서 임차인이 원하는 기간만큼 오래도록 장사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 씨에 따르면 일본은 권리금이 없는 대신 임대인이 임차인에게 건물을 비워달라고 요구했을 때 임대인이 퇴거에 대한 보상을 해주는 퇴거보상비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건물을 비울 때 임대인과 임차인이 상호 합의에 이르지 못했을 경우 임대인이 제시한 보상비용을 근거로 사법기관에 법률적 판단을 구해야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많은 비용을 제시해야하므로 한번 계약한 임차인을 내보내는 것은 상당히 어렵다고 이야기했다.

김 씨에 따르면 권리금은 임대차존속기간과 관계가 있다. 시는 이번에 임대차존속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는 개정법을 국회에 발의했다. “현재 존속기간이 5년이라서 5년 뒤에 쫓겨날 수 있다는 불확실성이 생긴다”고 토로했다. 임차인이 임대인에게 계약갱신권을 청구헸을 때 5년간은 거절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임대차존속기간 개정안의 핵심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임대차존속기간이 5년이라서 생기는 문제로는 비정상적인 권리금 시장이 확대되는 문제를 꼽았다.

만약 시가 제시한대로 기간이 10년이 된다면 기존 4년에 한번씩 돌아가던 권리금이 9년에 한번으로 기간이 늘어나면서 권리금 거래량이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신 씨는 “외국처럼 부모부터 자식까지 대대손손 장사를 할 수 있는 구조라면 권리금이 필요 없을 수도 있다”고 했다. 결국 임대차존속기간이 오래 보장돼야 권리금으로 인한 폐해도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른바 ‘권리금 장사’를 하는 일부 상인들에 대해서 신 씨는 “그런 상인들이 실제 존재하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상인들이 권리금을 빼앗겨도 된다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며 “권리금을 없애는 게 아니라 이런 편법을 막는 법 제도가 생겨야 한다”고 역설했다.

김 씨는 “현재 권리금 설정이 굉장히 잘못돼 있다”고 설명하며 그것을 현실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임대차존속기간이 오래 보장되는 것이 핵심”이라고 이야기했다.

김 씨는 “권리금은 장사치들이 만들어낸 사이드비용이 아니다”라며 “권리금은 하나의 지식재산 같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가게는 ‘바로 그 자리, 그 지정학적 위치가 중요한 것’이므로 현행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대로 5년마다 자리를 이동하게 된다면 가게의 가치를 돈으로 환산, 현금화해서 다른 곳에 똑같이 옮겨야 하는데 이때 어쩔 수 없이 권리금이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일어난 지역의 유입상인과 구상권상인이 상생할 수 있는 방안으로 김 씨는 임대차존속기간을 늘리는 방안을 제시했다. 그러면서 현재 시는 기간을 10년으로 연장하려고 하는데 김 씨와 신 씨는 일본처럼 무한대로 하는 것이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했다.

“임대차 존속기간을 무한대로 해주고 임대인에 의해 가게를 옮기게 될 경우 퇴거보상비를 지급하는 등 제도를 타이트하게 만들어준다면 구 상권과 신 상권이 공존하며 여러 세대가 만들어내는 다양한 층위를 볼 수 있을 것”이라며 꼭 그런 날이 오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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