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불공정 약관 35개 적발 시정

▲ 사진=뉴시스 제공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저조한 매출로 A사를 눈엣가시처럼 여기던 백화점은 납품 지연을 빌미로 A사와의 계약을 해지, A사는 계약기간 절반도 채우지 못하고 쫒겨나게 됐다.

A사가 입점당시 들인 막대한 매장 설비비용을 보상해달라며 퇴점을 거부하자 백화점은 용역업체를 동원해 물건을 마구잡이 반출했다.

이 과정에서 물건이 크게 손상돼 손해배상을 요구했지만 백화점은 보상은커녕 도리어 퇴점 지연을 이유로 추가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백화점은 계약서상 ‘공급자 귀책사유에 따른 중도해지’ 또는 ‘을이 계역종료 후에도 자기 소유물을 반출하지 않을 경우 이를 반출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을 들어 입점업체는 꼼짝없이 당할 수 밖에 없었다.

이처럼 백화점과 중소입점업체간 갑질 행태를 부르는 불공평한 계약조항이 계약서 내 상당부문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8일 공정위가 전국 13개 백화점 업체와 입점업체 간 계약서 약관을 조사한 결과, 총 35개유형의 불공정 약관 조항을 적발해 시정했다고 밝혔다.

조사 결과 불공정 약관 조항은 특약매입계약서, 임대차계약서, 직매입계약서 등 입점업체와 계약하는 대부분 계약서 상에서 발견됐다.

AK, 현대아이파크, 대구, 그랜드, M, 대동백화점 등은 매출과 직결되는 매장 위치 등을 ‘건물의 관리·운영상 부득이한 경우’ 라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해 백화점이 마음대로 변경해 왔다.

대규모유통업법에서는 정당한 사유업이 계약 기간 중 입점업체의 매장 위치와 면적, 시설 등을 변경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이에 공정위는 백화점이 전체적으로 매장위치와 시설을 동시에 변경하거나 입점업체가 자발적으로 요청하는 경우에만 허용토록 했다.

이랜드리테일(NC), 동아, 세이백화점은 고객의 불만이 제기된다는 이유만으로 상품 수령을 거부하거나 파견종업원의 교체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해왔던 조항이 시정됐다.

신세계, AK, NC, 동아, 그랜드 등 6개 백화점은 타당한 기준없이 자의적인 판단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규정해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약관법상 계약 해지 사유가 구체적을 열거돼야한다. 하지만 판매 대금 미입금, 개점 지연, 품질 검사 불합격, 입점업체에 대한 채권자의 회생·파산신청 등과 같이 그 자체만으로 채무 이행이 불가능하게 됐다고 볼 수 없는 경우에도 최고없이 계약을 즉시 해지할 수 있도록 해왔다.

또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에 따른 임점업체의 해지권을 제한하거나 임차인의 계약갱신요구권을 배제한 중도해지 조항도 시정조치 됐다.

매장을 운영하는데 꼭 필요한 설비 비용 등을 입점업체에 떠넘기는 조항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민법상 입점업체는 계약 기간 동안 매장의 보존·개량에 관한 비용을 지출했다면 백화점에게 그 상환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 신세계, 현대, NC 등 7개 주요 백화점은 점포 내장공사에 들어가는 비용 일체를 청구하지 못하도록 해왔다.

공정위는 개별 사안에 따라 비용지출 전에 백화점과 입점업체 간 사전협의를 통해 비용 분담을 결정하도록 시정했다.

또 계약이 중도 해지된 경우 백화점의 설비비용 보상을 면하게 하는 규정도 입점업체가 일방적으로 철수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매장 설비 비용을 보상하도록 시정했다.

임대보증금을 반환받기 전에 점포를 우선 명도하도록 하거나 권리 양도나 담보제공 시 백화점의 사전 동의를 강제하는 조항도 시정 조치됐다.

입점업체에게 부당하게 과중한 손해배상의무를 부담시키는 조항들도 다수 발견됐다.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등 12개 백화점에서는 임대료 미납 등 금전채무불이행시 연 24%의 고율의 지연이자를 부담시켜 온 것으로 조사됐다.

백화점이 입점업체에 상품 판매 대금의 지급을 지체하는 경우에는 대규모유통업법(제8조 제2항)에 따라 연 15.5%의 지연이자를 지급하는 반면, 입점업체가 임대료 미납 등 금전채무를 불이행하는 경우에는 연 24%의 지연이자를 부담시켰다.

공정위는 해당 조항의 지연이자율이 시중은행의 연체금리에 비하면 지나치게 과다하다고 판단, 고시 이율(현행 15.5%)을 초과할 수 없도록 시정했다.

백화점이 입점업체를 상대로 증명하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손해배상예정액이 실제 손해액보다 적다며 차액을 청구해왔던 조항은 백화점의 손해가 예정액을 초과한다 하더라도 초과 부분을 따로 청구할 수 없도록 시정됐다.

이와 함께 사고 발생 시 백화점의 면책을 규정한 조항은 백화점 건물 하자 등 과실 여부를 판단해 책임을 묻도록 했으며 백화점의 귀책으로 매장을 사용하지 못한 경우 백화점이 입점업체에 임대료와 관리비를 보상하도록 했다.

입점업체에 부당하게 불리하게 규정된 조항들도 시정 조치가 내려졌다.

계약 종료 후 입점업체가 설비 등 자기 소유물을 반출하지 않는 경우 백화점이 일방적으로 이를 반출할 수 있도록 한 일방적인 명도대행 조항 등도 적법절차를 거쳐 반출하도록 시정 조치했다. 또 종업원 파견 강요, 판매촉진비용 전가 등 입점업체에게 불합리한 부담을 줄 수 있는 조항들도 시정하도록 했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번 불공정 약관 시정으로 대형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중소상공인의 권익을 높이고, 불공정 약관으로 인해 발생하는 중소상공인의 피해를 줄일 것”이라며 “앞으로도 유통분야의 약관을 지속적으로 점검하고 불공정 약관을 적극적으로 시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롯데, 신세계, 현대, 갤러리아 등 조사 대상 13개 백화점은 공정위 약관 심사 과정에서 문제로 지적된 조항을 자진 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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