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영화관 개관, 노인의 즐길 권리 찾아줘”

어르신들의 ‘홍대’ 종로 유일의 실버 문화공간
‘추억 속에 위로받다’ 어르신들에게 추억 선사

▲ '허리우드 클래식'을 방문한 노신사가 영화 포스터를 보고 있다. (사진=뉴스포스트 최유희 기자)

[뉴스포스트=최유희 기자] 어르신들의 홍대라 불리는 종로에는 특별한 영화관이 하나 있다. 젊은이들이 찾는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아닌 60, 70년대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같은 추억의 영화, 고전 영화들을 365일 2000원에 상영하는 극장 ‘허리우드 클래식’이 바로 그곳이다.

서울 종로구 낙원동에 위치한 낙원상가의 4층으로 올라가면 추억의 영화 포스터들이 나열되어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낯선 이 풍경이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이다. 그래서일까, 허리우드 클래식에 들어서면 매표소부터 상영 대기 공간까지 모두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이 모여 있다.

특히 영화계에서는 국내 최초로 사회적 기업으로 인증을 받은 이곳은 일하는 직원들도 다 70대 이상이다. 종로를 찾는 어르신들은 하나같이 추억을 상영해주는 이곳의 대표 김은주 씨에게 고마움을 안고 있다고 말한다. ‘추억을 파는 극장’의 김은주 대표를 만나 ‘허리우드 클래식’과 얽힌 사연을 들어봤다.

여러 사연 담긴 옛 영화들을 다시 볼 수 있는 곳

▲ 실버영화관 ‘허리우드 클래식’ 김은주 대표 (사진=뉴스포스트 최유희 기자)

2009년 1월 21일 개관한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상영 프로그램을 바꿔가며 옛 영화를 제공하는 이곳은 좌석은 300석이지만 늘 만석이고, 영화를 보는 어르신들마다 ‘이 영화를 다시 보게 해줘서 고맙다’ ‘정말 추억이 담긴 영화인데’ 등의 반응이 나올 만큼 어르신들의 문화공간으로써 역할을 톡톡히 해내고 있다.

“일반 멀티플렉스에서 상영하지 않는 영화를 상영하는데, 그러다보니 필름이 국내에 안 들어와있어요. 외국에서 다시 사가지고 오죠. 일반영화를 상영하게 되면 필름이 오고, 수익의 5대5 나눠가지면 되는데 우리는 상영기간이 2-3년인 영화들을 사오다보니 기간 연장도 해야 하고 비용은 많이 들어요. 하지만 저작권 등 지킬 건 지켜야하기 때문에 저희가 서울시라던가 여러 필름공모사업이 있으면 직접 PT를 통해 사업을 따오고 합니다.”

그렇게 시작한 ‘허리우드 클래식’은 개관 당시 처음에는 하루에 한 200~300명 어르신들이 찾아왔다. 그러나 지금은 800~1000명의 어르신들이 찾는 인기 장소로 바뀌었다. 타 영화관들과 차별화를 둔 것은 무엇일까.

“우리 극장은 매회 매진 돼서 보조석까지 깔아요. 그리고 저희는 의자의 좌석번호가 손바닥 2개만하게 크죠. 또 갑자기 불이 꺼지면 어르신들이 아찔하기 때문에 계단에 손잡이가 다 있고, 화장실 가시거나 자리 못 찾으시는 분들 때문에 극장 안에 항상 안내하는 사람이 있어요. 대한민국에 다른 극장에서 없는 것들이 저흰 다 있고요. 제일 중요하고 저희 극장의 자랑은 자막이 2배로 커요. 그리고 어르신들이 앞이 안보이면 이리저리 고개 돌리느라 목도 아파하시기 때문에 자막도 더 위로 올렸어요.”

그렇다면 실버영화관을 처음 만들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김 대표는 ‘노인의 즐길 권리’라고 말한다.

“젊은 시절 고생만 하시다가 세월이 좋아졌어도 그 세월을 느낄 줄 모르세요. 왜냐, 요즘 꺼는 너무 어렵잖아요. 느낄 줄은 모르는데 시간은 너무나 많은거죠. 그러다보니까 나이 드신 분들이 막연히 젊은 사람들이 홍대에 가듯이 종로에 오시는 거예요. 막상 가도 공원에서 장기 두는 거 옆에서 보는 것뿐, 문화가 없어서 씁쓸했죠.”

이에 김 대표는 종로에 영화관을 하나 설립해야하는 상황이 오자 대한민국에 모든 사람들이 젊은 친구들을 위한 극장을 하는 현실에서 ‘나이 드신 분들이 젊은 사람보다 더 많은 종로에서까지 똑같은걸 해야 할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망해도 다시 재기할 수 있을 때, 한 살이라도 어릴 때 실버 영화관을 해보자라고 호기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2000원의 영화 관람비에 비해 턱없이 높은 2000만원의 월세. 입장료로 들어온 돈은 월세로 나가면 끝인 제정적인 애로점 등 힘든 것이 없는 건 아니다.

“근데 저는 가격인상 할 생각이 없어요. 그래서 제가 열심히 PT를 해서 따오는 이유가 뭐냐면 ‘요금을 높이기 전에 시에서 들어오는 필름이나 이런 것들을 그걸로 충당하자’거든요. 그리고 저희가 진정성 있게 열심히 하니까 SK케미칼에서도 1년에 1억2000 정도 후원받고 유한킴벌리에서도 광고비 좀 받고해요. 근데 제일 중요한 게 뭐냐면, 요즘은 시대가 시대인지라 기업들도 결국 ‘그 기업이 얼마나 진정성 있게 열심히 하느냐’ 그걸 보고 후원하거든요. 분명히 자기네가 이 회사에 기부를 함으로써 보람을 느껴야 된다 말이죠. 이유 있는 기부를 하는 추세이고, 또 우리가 나아가서 그런 기부 문화가 활성화가 되려면, 기부하고 싶은 곳이 많아야 되기 때문에 그런 기업이 되는 것도 우리의 하나의 목표이기도 해요.”

나이 들어서도 삶의 즐거움과 행복감 느낄 수 있도록

▲ (사진=추억을 파는 극장)

이렇듯 실버영화관을 위해 열심히 달려온 김 대표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관객은 누구일까. 김 대표는 미소를 띠며 많은 어르신들을 떠올렸다.

“좋은 데다 쓰라고 파주에서 100만평 땅문서 가져온 분도 계셨고 감자 쪄와서 주신 분도 있고 자살하려다가 여기 영화 보면서 다시 살 결심을 했다고 편지를 써주신 분도 있었어요.”

2009년부터 허리우드클래식을 운영해 온 김 대표는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했다.

‘자살하려고 했는데 여기 와서 자기보다 나이 많고 힘들어 하시는 분들이 열심히 매일 와서 영화보시고 거기서 즐거움을 찾는 것을 보고 자기도 다시 살려고 결심했다.’고 편지를 써준 관객도 기억에 남고 ‘집이 너무 고독한데 이곳에 오니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며 즐거워하던 관객도 뇌리에서 잊히지 않는다고 한다. 심지어 후원을 해주겠다고 후원 계좌를 열라고 한 관객도 상당수라고 한다.

“그런 반응을 볼 때마다 ‘이분들이 굉장히 만족을 하고 있구나, 지금 우리 세대가 7~80이 됐을 때도 저렴하게 영화도 보고 친구도 만날 수 있는 허리우드 클래식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게 돼요.”

김 대표는 현재 관객이 만족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지금 세대에게도 허리우드 클래식 같은 공간이 있어서 즐겁게 노년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늙는 것은 누구에게나 거부할 수 없는 분명한 미래다. 때문에 나이가 들어서도 삶의 즐거움이나 행복감을 느끼는 일을 찾아야하는데 바로 그때를 대비해서 허리우드 클래식 같은 공간을 꾸려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지금 허리우드클래식을 꾸려가는 일이 결국 자신의 행복한 노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믿는다. 막연하게 허리우드클래식 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기만 하는 것보다 나부터 먼저 이런 공간을 만들어가고 가꾸려고 하는 것이 현명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세계에서 제일 잘 돼있다는 고령사회의 모델이자 일본의 노인 거리로 알려진 ‘스가모시장’이 우리나라보다 못하다고 말하는 김 대표는 “그 분들이 자기네 또래를 위해서 특별히 뭔가를 하는 건 없지만 우리는 있잖아요. ‘효의 문화’ 이런 것들이 있어서 아마도 고령사회에서 조금만 우리가 신경 쓰면 전 세계에서 가장 현명하게 고령사회를 헤쳐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서 김 대표는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서도 한마디 남겼다. “계속 가다보면 길이 생기는 거니까 ‘셈 하지 말자’는 게 제 비전이에요. 그냥 내가 여태까지 해온 게 셈 안하고 하다 보니까 ‘어 너 참 잘하는 구나’하면서 기업이 와서 손 잡아주고 방법이 생기고 그래서 여태까지 운영을 하게 됐고 그러다 보니까 앞으로도 계속 셈하지 않고 진정성 있게 가자. 그게 제 방침이고, 제 비전이고, 제 목표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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