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동 티셔츠 할아버지’ 윤 교수의 환경 메시지 매주 일요일 펼쳐져

▲ 윤호섭 교수가 '티셔츠 퍼포먼스'에 참여하러 온 시민과 함께 티셔츠에 환경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리고 있다.(사진=안옥희 기자)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4월부터 9월까지 매주 일요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인사동 차 없는 거리에 가면 헌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선물해주는 ‘티셔츠 할아버지’를 만날 수 있다.

평소 입던 헌 티셔츠 등 밝은색 옷가지나 가방, 손수건 등을 ‘티셔츠 퍼포먼스’ 현장에 가져가면 100% 천연염료로 만들어진 초록색 물감으로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과 지구를 형상화한 디자인을 선물 받을 수 있다.

봄비 내리던 지난 3일 오전 11시 인사동 차 없는 거리에서 티셔츠 퍼포먼스의 주인공인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 윤호섭 명예교수(74)를 만나봤다.

국내 1호 그린 디자이너인 윤 교수는 일상 속에서 행할 수 있는 환경을 위한 실천을 중요시해 평소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냉장고를 사용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학부에 그린 디자인 전공을 처음 개설하고 학생들에게 장 지오노의 ‘나무를 심은 사람’ 필사를 과제로 내주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윤 교수는 개인전과 각종 환경 관련 행사와 포럼,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2002년부터 지금까지 10년 넘게 인사동 거리에서 꾸준히 티셔츠 퍼포먼스를 이어오고 있다.

모든 것을 초록색으로 그리는 이유는 녹색 식물의 잎 속에 들어 있는 녹색 화합물 ‘엽록소’의 색깔이자 생명을 상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 윤호섭 교수의 거침없는 붓질로 헌 티셔츠 속 상어가 생동감을 얻고 있다.(사진=안옥희 기자)

윤 교수는 개인홈페이지 ‘그린캔버스(www.greencanvas.com)’를 통해 티셔츠 퍼포먼스가 2000년경 개인전을 준비하며 우표, 낙엽, 옷을 주제로 환경 메시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시작됐다고 밝히고 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티셔츠 숫자를 세어보니 너무 많아서 티셔츠에 그림을 그려 넣어 시민에게 나눠주기 위해 거리로 나온 것이 오늘날 시민의 옷가지에 환경 메시지를 담은 그림을 그려주는 티셔츠 퍼포먼스로 이어진 것이다.

윤 교수가 그리는 ‘산양’, ‘돌고래’, ‘지구’ 등의 그림에는 메시지가 담겨 있어 환경문제를 환기한다.

‘산양’ 그림은 산양의 주 서식지에 설악산 케이블카 공사가 예정된 현실에 대한 메시지가, ‘돌고래’ 그림에는 불법 포획돼 제주 퍼시픽랜드와 서울대공원에서 돌고래쇼를 하다가 시민단체의 구조로 야생 방류된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사건에 대한 메시지가 담겨 있다.

윤 교수는 “사람들이 이렇게 환경 메시지가 담긴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것이 환경 메시지를 지속해서 전할 수 있는 ‘움직이는 플래카드’가 되리라 믿는다”며 티셔츠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설명했다.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는 인사동 거리에 아이를 동반한 한 가족이 윤 교수를 찾아왔다. 부모가 아이 옷에 들어갈 그림을 의뢰하자 윤 교수는 배낭 안에서 초록색 천연 페인트와 붓, 신문지 뭉치, 팔레트, 옷걸이 등을 꺼내 바로 작업을 시작했다. “티셔츠에 상어 그림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아이 의견에 따라 상어의 날카로운 이빨, 뾰족한 지느러미 등의 특징을 살려 ‘티셔츠 캔버스’에 거침없이 붓질해나갔다. 함께 온 윤 교수의 지인들은 티셔츠 안쪽에 신문지를 넣어 평평하게 만드는 등 퍼포먼스를 도왔다.

이날 아이 티셔츠와 자신의 에코백, 남편의 양말에 윤 교수의 디자인을 담아간 김정화 씨는 평소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아 “예전에 복지관 아이들과 함께 국민대로 찾아가서 교수님 강연을 들은 것을 인연으로 행사나 캠페인 때 종종 찾아뵙고 있다”고 전했다.

인사동 거리에서 진행되는 티셔츠 퍼포먼스는 2004년경부터 찾기 시작해 “아이를 데려온 것은 처음”이라고 했다. 김 씨는 아이와 동행하며 “‘지구를 사랑하는 할아버지’를 만나러 가자”고 설명했다고 한다. 아이 옷을 물려 입히는 것 등 평소 일상 속에서 친환경 실천을 한다는 김 씨는 이날 윤 교수의 디자인을 담은 아이 옷 역시 물려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 헌 티셔츠에 디자인을 의뢰한 아이를 안고 환하게 웃는 윤호섭 교수의 모습(사진=안옥희 기자)

최근 윤 교수는 한 출판사로부터 책 추천사를 의뢰받았으나 곰곰이 따져보니 종이가 많이 들어가는 프로젝트라 나무를 위해 고사한 일을 전했다. 필요 이상의 종이가 생산되고 낭비되는 데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것에서 삶과 디자인에서 환경 문제를 최소화하려는 윤 교수의 철학과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윤 교수에 따르면 친환경 실천은 거창하고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입지 않던 옷에 윤 교수처럼 디자인을 넣어 수명을 늘리는 것을 포함해 지금부터 종이컵 대신 머그잔(텀블러) 사용하기, 티슈 대신 손수건 사용하기, 이면지 활용하기 등을 시작하는 것도 지구별을 위한 작지만 의미 있는 실천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식목일(5일)과 지구의 날(22일)이 있는 4월, 일상에서 쉽게 할 수 있는 것부터 실천하며 환경 감수성을 키워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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