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 다른 허언증

학력위조, 거짓 대학합격 등 리플리 증후군 유명사건
외롭고 불후하고, 관심받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정신병
‘누가 더 거짓말 잘하나’ 대놓고 거짓말 놀이까지

만우절도 아닌데 어떤 목적을 가지고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 정상인이라도 의식적으로 거짓말을 반복하는 것을 가르키는 허언증은 단순히 허풍이나 과장이 심한 경우와 다르다. 거짓말에 대한 죄책감을 느끼지 않을뿐더러 자신이 왜곡한 사실을 스스로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허구를 진실이라고 믿고 거짓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반사회적 인경장애인 리플리 증후군(Ripley Syndrome)도 유사한 증상으로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한 말을 그대로 믿어버리는 무서운 정신병 허언증이 최근에는 놀이로 이용되며 신드롬 현상까지 생겼다.

반사회적 인격장애, 본인의 거짓말 실제로 믿어버려

▲ (사진=뉴시스)

1년 전인 2015년 6월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거짓말이 하나 있었다. 바로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동시 입학 허가를 받은 천재 수학소녀 김정윤 양의 거짓말이다. 방송사와 인터뷰를 할 만큼 대담한 모습을 보인 김 양이 공개한 대학 합격증이 결국 위조된 합격증이란 사실이 알려지자 감쪽같이 김양의 거짓말에 속은 온 국민은 충격에 빠졌다.

김 양의 거짓말은 이러하다. 당시 하버드대는 미국 토머스제퍼슨 과학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김 양을 일찌감치 지난해 말 조기 합격시켰다. 스탠퍼드대도 이에 질세라 교수들이 자신의 학교에 와 달라고 메시지를 보내며 김 양에게 매달렸다.

결국 김 양은 두 학교에서 모두 공부해 본 뒤 졸업할 대학을 결정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1∼2년은 스탠퍼드대에서, 2∼3년은 하버드대에서 각각 공부할 예정이고 연간 6만 달러에 이르는 학비도 전액 학교 측이 부담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명문대라고 할 수 있는 두 학교가 김 양을 위해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드는 등 이례적인 특혜를 쏟아냈다고 주장해 국내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그러나 한 매체를 통해 당시 하버드 대학 애나 코웬호번 공보팀장은 입학처의 확인을 거친 후 “합격증은 위조된 것”이라며 “하버드 합격증의 양식은 공개돼 있고, 합격증 위조는 종종 일어나는 일이다. 놀랍지 않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언론에 보도된 것과 달리 스탠퍼드대에 2년간 수학한 뒤 하버드대에서 공부를 마치고 어느 한 쪽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스탠퍼드대 입장도 마찬가지였다. 스탠퍼드대 리사 라핀 대외홍보담당 부총장은 이 매체를 통해 “김 양 측이 공개한 스탠퍼드 합격증은 위조됐다”며 “김양이 말한 것으로 보도된 스탠퍼드와 하버드 양측에서 수학한 뒤 졸업장을 어느 한쪽에서 받는 조건으로 입학하는 특별 전형은 우리 대학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이에 김 양의 아버지 김 씨는 “사실이 아닌 내용으로 큰 물의를 일으켜 진심으로 죄송하다. 실제로 모든 것이 다 제 잘못이고 제 책임”이라면서 “앞으로 가족 모두 아이를 잘 치료하고 돌보는데 전력하면서 조용히 살아가겠다”고 사과했다.

현실 부정하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많이 보여져

김 양의 사건이 알려지자 리플리 증후군에 대한 관심이 다시금 모여졌다. 리플리 증후군은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면서 자신이 만든 꿈꾸는 허구의 세계를 진실이라고 믿으며 거짓된 말과 행동을 상습적으로 반복하는 것으로 반사회적 인격 장애이다. 성취욕구가 강한 무능력한 개인이 마음속으로 강렬하게 원하는 것을 현실에서 이룰 수 없는 사회구조적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많이 발생한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없어 열등감과 피해의식에 시달리다가 상습적이고 반복적인 거짓말을 일삼으면서 이를 진실로 믿고 행동하게 된다.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욕구가 강할수록 많이 보여진다고 할 수 있다.

가상의 세계를 만들며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망상장애로 분류되기도 하는 리플리 증후군은 미국의 여류 소설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가 쓴 ‘재능있는 리플리씨/ The Talented Mr. Ripley/1995’라는 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의 이름에서 유래됐으며 소설 속에서 호텔 종업원으로 일하던 톰 리플리가 재벌의 아들인 친구 디키 그린리프를 죽이고 그 친구의 신분으로 살아가면서 거짓을 감추기 위해 대담한 거짓말을 반복적으로 한다는 범죄소설이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7년 신정아 씨의 학력위조 사건을 영국의 한 일간지가 보도하면서 해당 용어가 대중에게 소개된 바 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리플리 증후군 환자의 공통적인 특성은 ▲외롭고 불우하다 ▲관심을 받고 싶어 한다 ▲고립된 상황을 오래 겪은 적이 있다 ▲현실도피 열망이 강하다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가지고 있다 등이 있다.

이러한 리플리 증후군에 대해 지난 2014년 4월 ‘한수진의 SBS 전망대’에 출연한 정신건강의학전문의 손석한 박사는 거짓말을 잘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과 리플리 증후군은 다르다고 설명했다.

“거짓말을 대게 많이 하는 분들은 대게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나 혹시 자신의 잘못을 은폐하기 위해서, 감추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지만 리플리 증후군은 어떤 특정한 영역에 대해서 완전히 자신이 만들어낸 거짓말을 믿는다는 데 큰 차이가 있다”고 밝혔다.

이어 “리플리 증후군은 한참 시간이 지나서는 결국 거짓임이 드러나긴 하지만 누구나 다 처음에 믿게 만드는 재주같은 그런 능력이 있기 때문에 그냥 보통 거짓말을 잘 하는 사람과 리플리 증후군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말씀드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완전히 스스로 그것이 거짓이었고 망상이었다는 것을 인정하면 아마 본인이 더 처량해지고 괴로워진다고 생각해서 그런지 몰라도 이와 같은 상당부분 시간이 지나도 한 때 가졌던 견고한 믿음이 잘 없어지는 수가 있기 때문에 사실 치료나 예후에 대해서도 썩 좋게 보기도 어렵다”고 말하며 거짓말이 들통나더라도 자신을 정당화시키기 때문에 치료조차 어렵다고 설명했다.

장난? 온라인상에서 거짓말 유행하기도 ‘허언증 놀이’

▲ (사진=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허언증 갤러리)

하지만 최근에는 이러한 허언증을 재미로 승화시켜 하나의 놀이로 여기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다. ‘누가 더 재미있는 거짓말을 잘하는가’라는 식으로 누가봐도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놀이를 하는 온라인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 허언증 갤러리는 임시로 개설된 지 일주일 여 만에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며 정식 갤러리로 승격됐다. 하루에도 허세형, 풍자형 등의 뻔한 거짓말 수백개가 올라오고 댓글 역시 거짓말로 속아주고 있다.

갤러리를 살펴보면 ‘지구과학을 잘했으면 좋겠다’며 과외선생님을 구한다는 글에 본인 사진을 외계인 사진으로 올려두고, 자신을 ‘다이아수저’라고 소개한 한 글쓴이는 신용카드를 검은색 물감으로 칠해놓고서는 블랙카드를 사용한다고 자랑하고 있다. 또한 하버드대에 합격했다는 카카오톡 사진을 캡처해서 올려두는가 하면, 자신이 스티븐 잡스, 빌게이츠라며 소개하는 사람도 있다. 걸그룹 멤버가 계속 본인과 사귀고 싶어 한다며 귀찮다는 글도 보인다. 누가 봐도 뻔한 거짓말처럼 보이지만 재미로 즐기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신드롬에 CJ몰은 가벼운 거짓말로 남을 속이는 장난을 하면서 즐기는 날인 만우절을 맞아 지난 1일부터 7일까지 최고의 거짓말쟁이를 뽑는 ‘구라왕 콘테스트’ 참가자를 모집하기도 했다.

이번 행사는 최근 유행하는 ‘허언증 놀이’를 모티브로 황당무계한 거짓말을 담은 사진(구라샷)을 업로드하는 것이다.

이윤선 CJ오쇼핑 상품콘텐츠제작팀 팀장은 “만우절을 맞아 최근 유행하는 ‘허언증 놀이’를 콘테스트 형식으로 확장한 이벤트를 마련했다”며 “‘구라왕 콘테스트’에서 재기발랄한 ‘허언증 놀이’와 함께 즐거운 만우절을 보내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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