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영, 유현목 감독과 함께 50년대 한국영화중흥기 이끈 삼두마차
당대 최고 배우 최은희와 결혼 발표 화제
납북과 극적인 탈출…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삶
1994년 한국인 최초 칸영화제 심사위원
4월 11일 10주기…허리우드실버영화관 10~21일 대표작 상영

▲ 9일 서울 종로구 소재 허리우드실버영화관에서 열린 '故 신상옥 감독 추모행사'에서 안양예술고등학교 출신의 예술가가 신 감독의 업적을 드로잉쇼로 기리는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2006년 4월 11일 향년 80세의 나이로 타계한 故 신상옥 감독의 시대를 풍미한 영화인생을 돌아보고 추억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9일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위치한 허리우드실버영화관에서 ‘故 신상옥 감독 10주기 추모 행사’가 개최됐다.

신상옥 감독과 함께해온 원로배우 신영균, 신성일, 문희와 이장호 감독,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위원장, 류재림 한국영상자료원 원장, 김종원 평론가 등이 참석해 10주기 행사에 의미를 더했다. 신 감독의 아내이자 영화 인생의 동반자인 영화배우 최은희는 건강상의 이유로 불참했다. 이날 행사는 신 감독의 아들 신정균 감독의 연출과 안양예술고등학교 출신 동문의 축하 공연으로 화제가 됐다. 안양예고는 신 감독이 생전 후학 양성을 위해 설립한 학교로 각별한 애정을 쏟아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신상옥 감독의 지난날을 회고할 수 있는 영상과 함께 추모 행사와 1968년 영화 ‘여자의 일생’이 상영됐다.

▲ 이장호 감독과 원로배우 신영균,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명예위원장이 추모사를 낭독하는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이날 추모 행사에 참여한 이장호 감독은 “감독님은 비싸고 좋은 옷을 입고도 로우앵글 촬영을 위해서라면 흙이 묻어도 개의치 않았다. 물속 앵글을 잡을 때도 신발 신은 채 물속으로 첨벙첨벙 걸어 들어갔다. 감독님의 ‘난 영화였다’ 자서전 제목만 봐도 신상옥 감독님은 영화 그 자체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명예위원장은 “한국영화의 질적, 기술적인 수준을 많이 올려놓았고 특히 한국영화를 산업화한 큰 공적을 남겼다. 마틴 스콜세지가 세계영화재단을 설립해 사라져가는 영화를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그때 한국영화로는 최초로 신상옥 감독의 1961년 작 ‘연산군’이 선정돼 복원판이 칸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다”고 업적을 평가했다. 이어 “특히 1994년 칸영화제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면서 한국영화를 해외에 알리며 많은 역할을 해낸 유일한 감독”이라고 추모사를 끝맺었다.

한국영화중흥기를 이끈 故 신상옥 감독

▲ 이날 추모 행사에는 이장호 감독, 부산국제영화제 김동호 명예위원장, 원로배우 신영균, 문희, 신성일과 한국영상자료원 류재림 원장 등 영화관계자가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1926년 함경북도에서 태어난 신상옥 감독은 일본 도쿄 미술전문학교 졸업 후 미술감독으로 영화계에 입성했다. 1952년 ‘악야’로 데뷔한 후 80여 편 가까이 영화를 연출하며 ‘하녀’의 김기영, ‘오발탄’의 유현목과 함께 50년대 한국영화 중흥기를 이끄는 삼두마차로서 한국영화계에 굵직한 획을 그었다.

50년대 한국영화계는 6.25 전쟁 발발로 영화제작이 주춤하다가 53년 휴전선이 그어지고 55년부터 영화제작 붐이 일어났다. 자본주의 시대가 도래한 50년대 한국은 소비주의, 개인주의, 자유주의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돼 영화분야에서도 ‘산업으로서의 영화’가 대두됐다. 영화에서 예술성과 개성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가 조성돼 당시 유현목, 김기영과 함께 신상옥 감독이 신예로 주목받았다.

데뷔작 ‘악야’는 황남, 문정숙 주연의 양공주를 사랑하는 문학청년의 갈등을 그린 수작으로 8.15 광복과 6.25 전쟁에 이르기까지의 당대 상황을 사실적으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1953년에는 신상옥프로덕션을 설립해 영화제작과 수출, 배급을 시작했다. 이때 당대 최고의 톱스타 최은희와 결혼했다. 결혼 후 ‘코리아’, ‘꿈’, ‘젊은 그들’, ‘무영탑’, ‘지옥화’, ‘어느 여대생의 고백’, ‘로맨스 파파’, ‘이 생명 다하도록’, ‘성춘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로맨스 그레이’, ‘쌀, ’빨간 마후라‘, ‘벙어리 삼룡이’ 등에 이르기까지 1960년대 중반까지 단 세 편만을 제외하고 모든 영화를 인생의 동반자이자 영화적 동지인 최은희와 함께했다.

신상옥 감독은 작품성과 흥행성을 고루 갖춘 영화들을 발표하며 전방위로 종횡무진하며 영화를 연출했다.
문학작품 각색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어느 정도 극복한 문예영화 붐이 일어난 60년대에는 신 감독도 최은희, 김진규를 기용한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상록수’, ‘열녀문’, ‘벙어리 삼룡이’ 등 4대 문예영화를 내놓았고 이 작품들은 김기영, 유현목과 함께 트로이카 디렉터를 이루게 한 원동력이 됐다.

1963년에는 안양촬영소를 인수해서 한국영화의 기술 발전과 교육에 열중하다가 66년 당시 한국 최대 영화사 중 하나인 신필름을 설립했다. 이후 70년까지 300여 편을 제작하며, 한국영화의 질적, 기술적인 수준을 많이 높여놓고 한국영화 산업화에 큰 공적을 남겼다.

납북해 최초의 괴수영화 제작…영화 같은 파란만장한 삶

▲ 영화인들의 추모사가 끝난 뒤 故 신상옥 감독의 영화관을 엿볼 수 있는 생전 인터뷰와 활동 영상이 상영됐다.(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1978년 1월 영화감독과 배우로 왕성한 활동을 벌이던 아내 최은희가 홍콩에서 홍콩 영화사와 제작 및 홍보를 위해 체류하던 중 북한 공작원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에 7월 아내를 찾으러 간 신 감독도 홍콩에서 납북돼 부부는 월북설에 휘말리며 국제적 관심의 대상이 된다.

납북 8년 만인 1986년 3월 오스트리아 빈의 미국대사관을 통해 탈출하며 대중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삶을 보여줬다. 북한 억류 동안 부부는 신필름영화촬영소를 설립해 ‘돌아오지 않는 밀사’, ‘탈출기’, ‘소금’, ‘심청전’, ‘방파제’, ‘불가사리’ 등 7편의 영화를 제작했다. 이 중 고려 시대 민담에 기초한 ‘불가사리’는 한국영화 최초의 괴수영화로 2000년 7월 국내 극장에서 상영된 최초의 북한 영화로 기록됐다.

한편 지난 1월에는 이들 부부의 파란만장한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연인과 독재자’가 올해 선댄스필름페스티벌에서 최초 공개돼 영화제 최고의 화제작이 되기도 했다.

영국 출신 감독 로버트 캐넌과 로스 애덤이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에는 극비리에 공수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신상옥, 최은희 부부 납치를 언급하는 육성이 담겨 있어 현지에서 뜨거운 관심을 받았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다큐멘터리에서 공개된 육성으로 자신이 신 감독 부부의 납치를 지시했다고 주장하며 북한도 장례식처럼 우는 영화 말고 국제적 영화제에 나갈 만한 영화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연인과 독재자’의 두 감독은 신 감독 부부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을 때부터 영화로 만들고 싶었다며 이 사건에 대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알려졌다.

허리우드실버영화관 10~21일 대표작 상영

▲ 추모 행사에 참여한 한 노관객이 상영관 앞에 걸린 故 신상옥 감독 추모전 플래카드를 살펴보고 있다.(사진= 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故 신상옥 감독 10주기를 맞아 대표작을 만날 수 있는 상영회가 개최돼 눈길을 끈다. 서울 종로 낙원상가 4층에 있는 허리우드실버영화관에서 대표작 13편을 만날 수 있다.

9일 신상옥 감독의 1968년 작 ‘여자의 일생’ 상영을 시작으로 10일부터 21일까지 ‘강화도령’, ‘로맨스그레이’, ‘쌀’, ‘내시’, ‘성춘향’, ‘다정불심’, ‘대원군’, ‘벙어리삼룡’, ‘이별’, ‘이조여자잔혹사’, ‘빨간마후라’, ‘꿈’이 차례로 상영된다.

(사)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가 주최하고 허리우드실버영화관, 한국상영관협회 후원으로 진행된다. 이번 추모 행사를 주최한 (사)신상옥감독기념사업회는 “허리우드실버영화관은 과거 신상옥 감독이 직접 운영했던 역사 깊은 곳”이라며 “10주기에 신 감독의 자취를 돌아보는 데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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