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소주 인기 시들 속 전통주의 ‘반격’ 시작

주류시장 저도 과일주 반짝 유행 현재 주춤
와인.맥주등 외국술 범람속 전통주 부활 기대
전통주도 이제는 ‘전통에서 트렌드 시대로’
우리 술 부흥에 나선 ‘전통주갤러리’ 화제

 

▲ 지난 3일 오전 서울 중구 한 대형마트에서 소비자가 과일소주 앞을 지나는 모습(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최근까지 주류시장의 트렌드를 주도해온 것은 과일 맛 저도주였다. 단맛과 낮은 도수로 특히 젊은 여성 사이에서 인기를 끌던 과일소주는 출시 1년이 지나자 출고량이 반 토막 나며, 탄산주에 자리를 내주고 있는 추세다.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는 소주를 중심으로 주류 트렌드가 급변하는 가운데 전통주 시장은 고전 중이다.

안심할 수 있는 국내산 원료로 품질 안정화를 꾀한 전통주가 가진 다양한 매력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과일 맛 저도주의 무서운 인기는 이미 침체 위기였던 전통주 시장을 더 흔들어놓았다. 과일 소주의 인기가 사그라든 최근 주류시장의 틈새를 노리며, 재기와 부흥에 나선 전통주갤러리의 활약을 통해 전통주 시장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해봤다.

최근 주류시장 판도 ‘과일소주에서 탄산주로’

▲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전통주갤러리에 진열된 4가지 종류의 전통주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지난해 주류업계 시장 판도는 저도주 과일소주가 휩쓸었다. 유자, 복숭아, 사과 등 과즙이 첨가된 14도짜리 ‘순하리 처음처럼(롯데주류)’ 열풍이후 업계들이 앞다퉈 ‘자몽에 이슬(하이트진로)’, ‘좋은데이 컬러시리즈(무학)’ 등을 출시해 과일 소주 품귀현상을 빚을 정도였다. 정보분석기업 닐슨코리아가 지난 3월 공개한 ‘2015년 하반기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식품군 가운데 작년 하반기 매출 성장률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가장 높은 품목으로 탄산수(75%)에 이어 저도주(44%)가 2위를 기록, 과일소주의 인기를 대변했다.

하지만 과일 소주시장 1년, ‘달달한 열풍’도 점차 수그러드는 추세다. 주류업계에 따르면 지난해 4분기(10~12월) 과일 소주의 출고량은 3분기(7~9월)보다 40%가량 하락했다. 과일소주의 거품이 꺼지고 있지만, 업계에서는 과일 소주를 즐겼던 일부 소비자를 겨냥해 이번엔 탄산을 첨가한 5도 내외의 ‘부라더#소다(보해양조)’, ‘설중매 매실(롯데주류)’, ‘트로피칼이 톡소다(무학)’ 등을 내놓아 과일 소주의 열풍이 탄산 소주로도 이어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반면 소주를 중심으로 주류 트렌드가 급변하는 가운데 전통주 시장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3월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국내 굴지의 전통주 기업 국순당의 지난해 매출액은 774억4312만원으로 전년보다 15.6% 감소했다. 지난해 가짜 백수오 논란으로 백세주를 자진 회수하는 등 악재가 겹쳐 당기 순이익도 36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1992년 출시된 백세주는 한때 연 매출 1400억 원이 넘는 인기 상품이었으나 2014년 매출이 180억원에 그쳐 감소세를 보였다.

국순당의 형제 기업이자 산사춘으로 유명한 배상면주가의 상황도 심상치 않다. 업체에 따르면 2010년 처음 영업적자로 돌아선 뒤 2013년까지 영업손실을 기록하다가 2014년 양조장&펍 등을 운영하며 영업이익이 흑자 전환했다. 매출도 151억 원으로 11.7% 증가했으나, 전통주 시장의 하락세, 전반적인 내수 경기 침체 등으로 지난해 매출과 영업 이익이 다시 감소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대표적인 전통주 업체 국순당과 배상면주가의 실적 하락을 전통주 시장의 침체 때문으로 보고 있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와인(포도주) 수입액은 1억8978만 달러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지만, 국내 막걸리 시장 규모는 2011년 4000억 원에서 2013년 약 2000억 원대로 하락했다. 와인, 맥주 등 외국 주류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저도주의 과일 소주 열풍으로 인한 타격도 컸다는 지적이다. 과일 소주 등장 이전에는 백세주와 산사춘이 대표적인 저도주였지만, 지금은 소주만큼 급변하는 트렌드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주류시장의 중심에서 밀려난 상황이다.

외국술 득세 속 우리 술 부흥 나선 ‘전통주갤러리’
전통주 장점, 확실한 ‘국산원료’ 사용 ‘풍미’ 탁월

▲ 전통주갤러리 고무정 전통주 소믈리에가 일반인을 대상으로 시음회를 진행하는 모습(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이런 와중에 침체된 전통주 시장 활성화와 부흥을 위해 시음회 등 다양한 체험행사를 벌이는 곳이 있어 화제다. 본지는 지난 1일 서울 종로구 인사동 소재 전통주갤러리 명욱 부관장을 만나 원료, 역사, 문화를 알고 마시면 더 맛 좋은 전통주의 매력을 들여다봤다.

전통주갤러리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문화체육관광부가 협업해서 운영하는 곳으로 농림부가 인증한 다양한 전통주를 접할 수 있는 곳이다. 음식의 꽃 발효 미학 전통주를 매달 주제에 따라 상시 전시하기도 한다. 또한, 매달 주제를 달리해 막걸리, 약주(청주), 전통 소주, 한국와인(과실주 등) 등 주종별 전시 및 시음회가 예약제로 운영된다. 시음은 모두 무료로 진행된다. 전통주 갤러리는 관련 사업 자문 및 한식과의 페어링, 관련 전통주 행사 및 방송 등 다양한 정보도 얻을 수 있어 전통주를 잘 모르는 입문자들에게 전통주의 매력과 우수함을 알리는 창구가 된다는 평을 받고 있다.

전통주갤러리의 명욱 부관장은 전통주를 신뢰할 수 있는 근거로 “누가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 수 있어 안심하고 마실 수 있다는 점”을 첫째로 꼽았다. 명욱 부관장에 따르면 전통 소주와 일반 소주의 차이점은 재료에 있다. 일반소주는 원재료를 잉여농산물로 만드는 경우가 많고 주로 수입품을 많이 쓴다고 한다. 명욱 부관장은 오직 취하기 위해 술을 마셨던 국내 음주 문화가 국산주류의 고급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봤다. 전통 소주는 원료의 원산지가 확실하다 보니 일반 소주보다 원료의 풍미가 살아있는 대신 가격이 좀 더 높게 책정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통주는 대략적으로 막걸리, 약주(청주), 전통 소주, 한국와인 총 4가지로 분류할 수 있고 2000여 종류가 있을 정도로 다양하다. 전통주라고 하면 ‘도수가 셀 것 같다’거나 ‘숙취가 심할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많은 종류만큼 도수도 다양해서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명욱 부관장은 “막걸리의 경우 맥주와 비슷한 도수로 볼 수 있고 약주와 청주는 와인, 사케 도수와 비슷하다”고 설명했다. 막걸리는 사실 ‘이제 막 걸렀다’, ‘거칠게 걸렀다’는 뜻을 가진 신선한 술이지만, 대부분 신선함보다는 대표적인 서민의 술로 인식해 저렴하고 어두운 이미지만 가지고 있다. 이는 전통주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다.

전통주, 원료·역사·문화 알고 마시면 더 좋아
수요자가 알고 마셔야 전통주산업 발전 가능

▲ 우리 술 부흥에 나선 전통주갤러리의 명욱 부관장(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일본 술의 경우 전통적으로 한겨울 농사를 짓지 않을 때 남자들이 양조장에 모여 빚기 때문에 남성적인 느낌이 강한 반면 우리나라의 술은 과거 대부분 어머니가 빚어 여성적인 느낌이 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또한, 봄에는 진달래꽃을 넣기도 하고 여름에는 연잎을 넣는 등 계절, 시기마다 다른 제철 식품, 꽃, 약재 등을 넣어 술을 빚었기 때문에 전통주갤러리는 4월의 술, 5월의 술 등 매달 다른 술로 시음회를 진행한다고 했다.

소주는 고려 시대 몽골의 침입으로 국내에 전파됐다고 추정된다. 특히 몽골의 주둔지였던 안동과 개성, 제주도에서 소주가 발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명욱 부관장은 “제주도에서 막걸리를 이르는 ‘쉰다리’라는 말은 몽골어 ‘슌타리’를 어원으로 한다”며 “전통주를 공부해보면 각 지역의 역사와 문화까지 알 수 있어 알고 마실수록 더욱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술”이라고 강조했다.

이렇듯 오래전부터 있던 전통주가 그 역사만큼 즐기는 문화와 시장이 발전하지 않은 이유는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마셔야 하는지 몰라서”라고 명 부관장은 말했다. 그는 “이제까지는 공급자가 전통주 산업을 리드하고 있어서 전통주를 즐기는 문화가 발전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며, 수요자가 리드해야 시장이 활성화되며 발전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수요자가 ‘어느 지역 술이지?’, ‘무엇으로 만들었을까?’, ‘누가, 어떤 방식으로 빚었을까?’ 등만 알고 마셔도 조금 더 좋은 술을 고르는 안목이 생겨 자연스럽게 전통주 산업의 발전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명욱 부관장은 단순히 취하기 위한 음주에서 탈피해 조금 더 다른 것, 조금 더 좋은 것을 추구하는 이런 경향을 두고 지금 시대에서 이야기하는 ‘스몰 럭셔리’ 문화의 시작과도 부합된다고 설명했다. 이런 현상은 궁극적으로 사람들이 우리 문화에 자긍심을 가지게 되는 동기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시음회를 하다 보면 우리나라 전통주가 이렇게 다양한 줄 몰랐다고 새로워하는 반응이 많다”며 다양한 전통주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강의, 시음회, 수요자 교육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지금은 이제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전통주의 맛과 역사를 알리고 새로운 전통주 콘텐츠를 발굴하고 발전하는 단계라고 했다.

아울러 전통주 시장이 침체했다고 하지만, 최근 여러 대학 학보사에서 취재와 강연 요청이 들어오는 등 전통주에 대한 젊은층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유행에 민감하고 트렌드를 주도하는 대학생들이 전통주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대해서는 “전통주가 트렌드가 됐다기보다는 이제까지 전통주에 대해 너무 몰랐던 것”이라고 말했다.

명욱 부관장은 “한복을 입고 마시거나 제사 때만 마시는 술이라는 고리타분하고 올드했던 전통주의 이미지가 이제 젊은 층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전통에서 트렌드로 넘어가는 시기’에 와 있는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저작권자 © 뉴스포스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