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에 롯데마트 사과·보상계획 밝혀지만 옥시 등 여전히 묵묵부답

▲ 지난 1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열린 '가습기살균제 제조사 소환조사 관련 피해자입장발표 및 검찰 내 가습기살균제 피해신고센터 설치요구 기자회견'에서 환경보건시민센터 관계자들이 가습기살균제 제조 및 판매사 소환조사를 촉구하고 있다.(사진=뉴시스)

[뉴스포스트=최병춘 기자] 국내에서 백여명의 사망자를 낸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 대한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수사가 진행되자 사건발생 5년만에 이번 사태 관련업체 중 하나인 롯데마트가 공식사과와 함께 보상계획을 밝힌 데 다 그동안 의혹에 휩싸였던 제조사 옥시에까지 수사가 확대됐다.

하지만 여전히 사건 진실 규명과 피해자 보상까지 난항이 예상되고 있다.

제조업체들이 불리한 증거를 없앤 정황이 드러나는 등 수사에 성과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인과관계를 규명하는데 어려운 단계가 남아있다. 또 롯데마트 등이 보상계획을 밝혔지만 보상이 어느정도까지 이뤄질지 아직 불분명한데다 옥시 등 여타 업체들은 아직 눈치보기에 급급한 상황이다.

옥시 첫 소환, '묵묵부답'

가습기 살균제 사망 사망을 수사 중인 검찰이 업체 관계자 소환조사를 본격화한다. 영국계 다국적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검찰의 첫 소환 대상이 됐다.

검찰은 폐손상 유발 가습기 살균제 업체로 옥시 레킷벤키저와 롯데마트, 홈플러스, 세퓨 등 4곳을 지목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옥시 관계자가 오늘 검찰에 첫 소환됐다. 검찰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가습기살균제 피해사건 특별수사팀(팀장 이철희 형사2부장)은 옥시 인사 담당자 A씨에게 오늘 검찰에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다.

검찰이 가습기 살균제 제조·판매업체 관련자를 공식 소환 통보를 한 것은 지난 1월 27일 수사전담팀이 꾸려진 지 83일 만에 처음이다.

옥시는 영국 기업 레킷벤키저가 2001년 ‘옥시’를 인수해 설립한 회사로 2001년부터 폴리헥사메틸렌구아니딘(PHMG)을 원료로 사용한 가습기 살균제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을 판매했다. 해당 제품은 가습기 살균제를 쓰다 숨진 사망자 143명 중 70%가 사용했다.

검찰은 소환 대상자를 선별한 뒤 PHMG를 가습기 살균제 원료로 사용하게 된 경위와 흡입 독성을 사전에 알았는지 여부 등을 조사한다.

특히 서울대 등 외부에 용역을 줬던 실험결과를 임의로 왜곡하거나 은폐했는지를 비롯해 회사 홈페이지에 올라온 소비자 부작용 호소글들을 검찰 압수수색 전 무더기로 삭제한 경위 등을 집중 추궁할 예정이다.

검찰은 실무자 조사를 마치는대로 이 회사 최고경영진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조사를 이어가겠다는 방침이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와 관련해 제조사인 옥시 측은 사과는 물론 아직까지 피해자 보상 대책에 침묵하고 있다.

▲ 1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서울에서 김종인 롯데마트 대표이사가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피해 보상 약속' 기자회견에 앞서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롯데마트, 5년 만에 첫 사과…보상까지는 난관

그나마 롯데마트와 홈플러스가 소환에 앞서 가습기 살균제 피해를 보상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다.

특히 롯데마트는 체 브랜드(PB)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에 대해 공식사과와 함께 ‘피해보상책’을 내놓았다.

롯데마트는 18일 오전 서울 중구 소공동 호텔롯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에 대한 100억원 규모의 ‘피해 보상책’을 발표했다.

롯데마트가 이날 발표한 내용은 가습기 살균제로 인한 피해보상 전담 조직을 설치한 뒤 피해 기준 등을 검토해 보상 협의를 하겠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하지만 피해자 및 가족들이 실제로 보상을 받기까지는 쉽지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롯데마트는 검찰 수사 종결 직후 인과관계가 있는 것으로 발표된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대상으로 피해 보상 협의를 추진한다는 전제를 깔았다.

자사제품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법적으로 규명될 경우 피해보상에 나설 것이라는 것으로 풀이된다.

결국 롯데마트는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이뤄진 정부조사에서 22명의 사망자를 발생시켰다는 부분에 대해서만 사실상 책임을 지겠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많아도 올해 1월까지 접수된 피해 신고자 130명이 포함된다.

하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용으로 폐 손상을 입은 피해자들이 롯데마트 제품을 섞어 사용하는 등 대상자를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에서 피해 대상은 더욱 줄 수 있다.

또 보상을 위해 롯데마트는 100억원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고 피해자들과의 협의를 진행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또한 구체적인 계획은 나오지 않았다.

검찰 수사가 길어질 경우 예전처럼 ‘피해 여부 확인이 어렵다’ 등 대응이 반복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홈플러스는 피해보상이라는 큰 틀에서는 합의를 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보상계획에 대해서는 사태추의를 더 지켜보겠다며 한발 물러섰다.

홈플러스는 공식 입장을 통해 “고객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려 대단히 죄송하며 피해자들의 아픔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며 “향후 검찰의 공정한 조사를 위해 최대한 협조하고 성실히 소명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홈플러스는 또 “검찰 수사가 종결되면 인과 관계가 확인된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 협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홈플러스는 이날 오전까지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다가 롯데마트의 사과·보상 발표가 나오자 발표문을 내놨다. 하지만 보상 규모와 피해자 설정 범위 등은 검찰 수사 이후로 미뤘다.

하지만 옥시 등 여타 업체들은 피해보상 문제에 대해 여전히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롯데마트 측은 다른 제조·유통업체와 최대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이 또한 실현 가능성은 높지않은 상황이다.

영국계 기업 옥시레킷벤키저(옥시)가 ‘가습기살균제 사망 사건’이 알려진 이후 법인을 청산했고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한 홈플러스 또한 피해 보상 검토를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기업들은 검찰 수사가 진행된 이후 법원의 판단이 나올 경우 대응을 결정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대법원의 판단이 나올때까지 피해자들은 또 다시 장기전이 불가피한 상황인 셈이다.

한편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들과 환경보건시민센터는 이날 “현재 신고된 1528명은 잠재적인 피해자의 최대 0.52%로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이라며 검찰청 내에 피해신고센터를 설치하고 추가 피해자들에 대한 조사를 계속할 것을 요구했다.

이들은 “20여 종의 가습기 살균제 제품 중에서 피해 신고된 14개 제품 제조·판매사를 소환해 조사해야 한다”며 검찰을 상대로 모든 가습기 제조·판매사들에 대한 소환 조사를 주문하기도 했다.

앞서 정부는 2013년 7월~2014년 4월과 2014년 7월~2015년 4월 두 차례에 걸쳐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조사를 벌였다. 조사를 통해 정부는 공식 피해자로 221명을 인정했고, 이 중 95명은 사망 피해자로 분류했다.

정부는 지난해 3차 피해자 접수를 끝으로 추가 피해자 접수를 중단하고 접수된 인원에 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4차 피해자 접수는 환경보건시민센터가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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