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일러, 범죄심리학자 아닌 ‘범죄심리수사관’

“지망생 10명 중 8명은 힘들어 떨어져 나가”
불안정한 한국사회, 완충장치 무너져 강력범죄 증가
“경찰 범죄수사 심리학.사회학.인류학적인 접근”
사이코패스 등 흉악범 상대 고강도 고된 직업
“일부 범죄전문가들 방송출연 ‘소비’…자정 필요“
10년안에 프로파일링 재단.아카데미 설립 운영 꿈

▲ '국내 1호 프로파일러'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학과장 배상훈 교수(사진=배상훈)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최근 강력범죄가 잇달아 발생하면서 생소했던 ‘프로파일러’라는 단어가 익숙해지고 있다. 프로파일러는 주로 증거가 불충분한 강력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사건 현장에 출동해 일련의 범죄과정을 과학적으로 재구성해 사건을 분석하는 직업이다.

지난 23일 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있는 프로파일러 배상훈 교수를 만났다. 배 교수는 2004년 경찰청에서 공식 특채 선발된 1기 프로파일러로 방송, 자문, 저술, 후학양성, 팟 캐스트 진행등 활발한 활동으로 ‘국내 1호 프로파일러’의 명성을 떨치고 있다.

독일 철학자 니체는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그 과정에서 자신마저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랫동안 심연을 들여다보면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는 경구를 남겼다. 현직 프로파일러와의 인터뷰를 통해 프로파일러의 세계가 니체의 이 말과 꽤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자살, 범죄화, 인간관계의 어려움, 통증, 장애 등 직업병에 시달리며, 사이코패스 범죄자와 싸워야 하고 자신과 사회를 지키기 위해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해야하는 고된 직업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조명해본다.

Q. 국내 프로파일러 도입은 언제인가?
“2000년대 초반 프로파일링 개념이 처음 들어올 당시 범죄심리 ‘수사관’과 범죄심리학자가 하는 일의 차이를 적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론이나 경찰 내부에서조차 범죄심리를 바탕으로 특정 범죄를 분석하는 사람들을 뭉뚱그려 프로파일러로 부르면서 명칭에 대해 혼란이 가중된 측면이 있다.

흔히 범죄심리학자=프로파일러라고 생각하는데 둘은 전혀 다르다. 외부에서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다. 프로파일러들은 각자 자기만의 전공 영역을 살려 업무를 수행한다. 제 경우 면담을 주특기로 들어가서 면담을 했고 통계를 전공한 사람은 통계, 미세분석 전공자면 미세분석을 하는 식으로 움직인다.

2005~2008년 제가 1기 프로파일러로 일할 당시에는 프로파일러들이 과학수사대 투입 전에 수사관으로 현장에 뛰어들어 직접 수사를 진행했기 때문에 지금 명함에도 ‘범죄심리수사관’이라는 명칭을 적고 있다. 지금 4~6기 프로파일러들은 그때와 다르게 직접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한 것을 분석만 하므로 분석관이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때와 지금 프로파일러들의 업무도 위상도 모두 달라졌다.”

Q. 프로파일러 개념이 아직 명확하지 않은 것 같다. 프로파일러의 정의는?
“제 기준으로 봤을 때 프로파일러는 범죄와 관련한 이론적 지식과 풍부한 현장 경험을 통해 실전에서 단련된 범죄심리 ‘수사관’으로써 첫 번째로 실제 범죄현장의 행동증거를 재구성해서 수사선을 잡아주는 사람, 두 번째는 현장의 행동증거를 재구성하는데 행동증거라는 것이 결국은 범죄자의 심리적, 사회적, 인류학적 특성이 나타날 수밖에 없다. 그것을 찾기 위해 실제 용의자를 심문하는 사람, 세 번째로는 미제사건들을 수사하는 사람 이렇게 확장돼 가는 게 프로파일러의 업무이자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미국 FBI에서 프로파일러를 시작해 책 ‘살인자들과의 인터뷰’를 썼던 로버트 레슬러가 생각한 프로파일러의 개념과 미국의 시스템이 하는 프로파일러의 개념이 다르고 2000년대 초반 국내에 도입된 프로파일러의 개념이 또 다르다. 제가 2004년 경찰청 1기 프로파일러로 일할 때의 개념이 다르고 지금 운영되는 방식과도 다르다. 적어도 다섯 가지 정도의 개념적인 차이가 있는데 중요한 것은 ‘경찰 범죄수사의 심리학적, 사회학적, 인류학적인 접근을 하겠다’라는 것이 기본적인 모토다.”

Q. 화학·문화인류학·사회학 등 전공분야가 다양하고 넓다. 어떤 이유로 프로파일러가 되겠다고 결심했는가.
“범죄 수사에는 법인류학, 문화인류학, 사회학, 가족사회학, 일탈 사회학, 임상심리학, 법 과학 등 다양한 배경 지식이 필요하다. 실제 일 해보면 범죄심리학쪽은 굉장히 작은 부분이다. 처음 경찰청 범죄분석 1기 프로파일러로 특채됐을 당시 가족 생애사 연구를 특기로 들어갔다. 일본군 ‘위안부’에 대한 미시 가족사연구, 살인범들에 대한 가족 생애사 연구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생애에서 어떤 폭력적인 상황에서의 중요한 방아쇠 요인을 찾는 것이 주요한 특기였다. 이 특기 때문에 프로파일러로 뽑힌 것이다.”

Q. 연쇄살인범 정남규·강호순 사건, 안양 초등학생 살인범 정성현사건 등 굵직한 사건에 참여했는데 가장 기억이 남는 사건이 있다면?
“먼저 언급한 것처럼 프로파일러들은 팀을 이뤄 움직이기 때문에 일련의 사건들에 모두 다 참여했다. 다 제가 주도한 게 아니라 우리 팀이 했다고 보는 게 맞다. 모든 사건이 다 기억에 남아 있지만, 특정 사건에 대한 언급과 공에 대한 이야기를 웬만하면 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 사건을 해결하고 범인을 잡은 형사들은 따로 있기 때문이다.”

Q. 강력범죄가 증가한 탓인지 프로파일러라는 이름을 달고 방송 출연하는 범죄전문가들이 많다. 어떻게 생각하는지?
“최근 강남역살인사건의 진행 과정을 보면 문제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처음에 모 수사관으로부터 “여자가 싫어서 죽였다”라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실제로 여자가 싫어서 살해한 살인범들은 많다. 그런데 이 말이 어떤 기자의 귀에 들어가고 모 채널에 퍼지면서 이 사건이 여성혐오 문제로 비화했다. 그다음으로 일부 방송사에서 이분법적 잣대로 소위 범죄전문가라는 사람들에게 이 사건이 “여성혐오 범죄냐, 묻지마 범죄냐”라고 질문을 했다. 그때 그 범죄학자들이 “묻지마 범죄다”라고 할 게 아니라 “이 사건은 무차별 범죄 중에 여성이 요인이 됐던 범죄다”라고 설명했어야 한다.

이렇게 일부 방송사들이 얼씨구나 하고 이게 여혐이냐 묻지마냐 이분법으로 대결구도를 만들어버리니까 일간베스트저장소 회원들이 난동을 부리고 그 난동에 강남역 추모집회를 주도하는 시민들이 휘말려서 ‘아 이 사건이 진짜 여성혐오구나’ 하면서 담론이 강화됐다.

우리 사회에 불평등 구조가 있고 여성혐오 시각이 있으므로 갈등이 촉발된 것이 맞지만, 이 사건 자체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방송 출연하는 범죄전문가들이 정확하게 짚어줘야 할 부분을 짚어주지 않고 엉뚱하게 범죄학, 범죄심리학에서 쓰는 개념들을 사회학이나 다른 학문 개념들과 등치 시켜버리니 지금 이런 사회적 갈등이 생겨난 것이다.

또 범죄전문가들을 통해 잔인한 장면 묘사가 많이 나오는 것도 문제다. 문제의 방송들은 매번 경고를 받으면서도 시청률 때문에 계속 출연시킨다. 제 생각에 이건 범죄전문가들이 일부 방송사들에 의해 ‘소비’되는 것이고 자정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 지난 23일 오후 서울디지털대학교 연구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배상훈 교수.(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Q. 범죄전문가들의 잦은 방송 출연으로 범죄자들이 프로파일링 수사기법을 분석해서 수사에 혼선을 주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등 악용할 여지는 없을까 우려되기도 한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방송에 나오는 범죄전문가들은 아주 정제된 말을 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경쟁이 붙어 버리니까 예를 들어 A채널에서 어떤 범죄전문가가 어떤 이야기를 했다면 B채널은 더 센 것을 원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범죄 기법에 대해 놓칠 여지가 생긴다.

또 다른 문제로는 방송사가 현장에 있는 경찰들과 연락을 해서 실제 수사상황을 내보낸 일이 있었다. 이것을 ‘국민의 알 권리’라고 하면 포장이 되지만, 사실은 피의사실 공표죄가 된다.”

Q. 현재 방송, 자문, 저술, 후학양성, 팟캐스트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제가 아니면 엉뚱한 사람이 프로파일러로 나와서 엉뚱한 이야기를 해버리니까 제가 나서서 프로파일러의 개념을 바로잡고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지금 이런 역할을 할 사람이 저밖에 없으니 하는 것이고 1~2년 후에 후배들이 교수가 되면 그때는 후배들이 이런 역할을 해주면 좋을 것 같다.”

Q. 팟캐스트까지 만들어 진행하는 것을 보니 직업에 대한 소명의식이 강한 것 같다.
“일부 방송사나 언론에 의해 왜곡된 범죄 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프로파일러 배상훈의 범죄 팟캐스트’를 진행하고 있다. 범죄현상이라는 것이 다 똑같아 보이지만, 한쪽의 개념만 바뀌어도 엄청난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상주 농약사이다사건’이나 미제사건의 경우 엉뚱한 사람을 범인으로 몰 수도 있다. 그래서 특정한 사건·사안에 대해서 언론이 이야기하지 않는 것들을 방송과 팟캐스트를 통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Q. 사건 보도에서 언론이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는지?
“언론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사건이 언론을 통해서 보도되고 방송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언론 보도를 통해 사람들에게 무확정적인 공포감을 줄 수 있는 것이 문제다. 중국동포 ‘김하일 살인사건’ 보도와 기사들을 보면 조선족들을 부정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이런 식으로 하면 사안의 본질에서 벗어나게 된다. 사실은 조선족보다 미군범죄가 더 많고 그 다음으로는 몽골이다. 언론이 이런 핵심적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약한 국가, 약자만 공격한다. 이런 것을 비판하기 위해 팟캐스트를 하는 것이다.”

Q. 조성호 살인사건 등 토막살인이나 강남역 살인사건 등 갈수록 엽기 흉악범과 사건사고들이 늘고 있다. 이런 세태에 대해 진단한다면?
“불안정한 사회, 기본이 없는 사회라고 생각한다. 기본이 없고 불안정한 만큼 여성들이 더 불안한 것은 당연하다. 불평등 때문에 불안정이 생기는 것인데 불평등 자체가 불안을 야기한다볼 수는 없다. 소위 말하는 주류나 식자층이 불평등을 시정하거나 극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불평등을 바로잡거나 극복하려는 노력조차 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이다. 사람을 미치게 하는 것은 절대적 빈곤보다 상대적 빈곤이 더 크다. 사회가 불평등하더라도 다른 사람을 이해해줄 수 있는 구조가 있다고 하면 완충장치가 되는데 우리 사회는 이 완충장치가 무너져서 문제가 생겼다.”

Q. 최근 인기리에 방영된 드라마 ‘시그널’ 때문에 프로파일러라는 직업을 멋지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실제로는 어떠한가.
“소방관도 겉보기에 멋져 보이지만, 우리나라 소방관은 절대 하지 말라고 하지 않나. 자기 돈으로 장갑을 사야 하고 일하면서 손가락이 떨어져 나가도 자기가 치료해야 한다. 프로파일러는 그런 소방관들보다 딱 두 배 정도 더 심한 직업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경찰 트라우마 센터에도 못 가고 트라우마가 있어도 스스로 치료해야한다.

경찰청에서 일할 당시 매일 어린아이들의 토막 난 시신 사진을 보고 시신 부검하는 것을 보면서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하루 4시간 이상씩 면담했다. 그런 일을 당시 전국에서 열 명 남짓한 인원이 다 해내야 했다. 그런 강력범죄사건들은 대체로 서울, 경기지역에 집중돼 있는데 서울청, 경기청 수사관들은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다. 심지어 죽은 사람도 하나 있다. 그래서 프로파일러들에게는 적어도 2년에 한 번씩은 쉴 수 있게 안식년 같은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온전한 정신을 가지고 사이코패스 범죄자들을 상대할 수가 없을 것이다.”

Q. 프로파일러 지망생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찾아오면 정말로 절대로 프로파일러 하지 말라고 한다. 디지털대와 경찰학교 강의를 하면 두세 클래스에 한 명 정도는 프로파일러 어떻게 하면 될 수 있느냐고 물어보러 온다. 진심이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지금까지 이야기한 것처럼 직업으로서의 고충을 다 이야기 해준다. 그러면 10명 중 7~8명은 떨어져 나가고 죽어도 프로파일러를 하겠다는 한두 명에게는 프로파일러가 되기 위한 준비, 방법들을 알려준다.”

Q. 향후 계획은?
“경찰은 꺼리고 할 수도 없는, 민간에서는 하지 못하는 그런 사건들을 해결하는 반관반민 수사 시스템을 가진 효율적인 조직이 필요하다. 최소 10년 뒤쯤 관련 재단을 설립하고 싶다. 지금까지 프로파일러에 대한 막연한 환상만 가지고 온 사람들을 돌려보냈으니까 이제는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이 일을 할 수 있고 하고 싶어 하고 스스로 기반도 찾을 수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프로파일링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싶다.”

▶ 프로파일러 배상훈은?
- (현)서울디지털대학교 경찰학과 학과장
- 1969년 경기도 이천 출생
- 고려대학교 화학과(이학사)
- 고려대학교 사회학(문학석사)
- 고려대학교 사회학(문학박사)
고려대학교 노동문제 연구소 연구원(前)
서울시복지재단 부전문위원(前)
서울지방경찰청 범죄심리분석관(크리미널 프로파일러)(前)
중앙경찰학교 외래강사(前)
(저서) ‘누가 진짜 범인인가’, 도서출판앨피(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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