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화동 무슨 일이? 주민들 벽화 훼손 사연

관광객 소음·쓰레기·주거침입 주민들 뿔나
마을 재개발사업 무산 직접적인 갈등의 불씨
현장에서 당황, 관광코스 예전 분위기 없어
종로구, “정숙관광캠페인 관광의식 유도 중”
‘부산감천문화마을’ 갈등 극복 사례 참고해야

▲ 지난 16일 찾은 이화동 벽화마을의 대표적 벽화 중 하나인 잉어계단 앞에 "물고기 계단이 잠시 공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계단에 그려졌던 잉어 그림은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 등을 이유로 박 모(55) 씨 등 주민 5명에 의해 지난달 지워졌다.(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뉴스포스트=안옥희 기자] 최근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의 대표 벽화를 주민이 훼손한 사건과 관련해 작고 평화롭던 마을 분위기가 뒤숭숭해졌다. 애초 재개발 지역으로 고층 아파트 건립이 추진됐던 이화동은 사업성이 없다는 이유로 재개발이 무산됐다. 이에 서울시가 낙후된 환경을 정비하는 도시재생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히자, 재생사업으로 이익을 얻는 주민과 피해를 보는 주민 의견이 엇갈렸다.

벽화를 훼손한 주민들과 같은 입장을 가진 주민들은 마을 벽면에 호소문을 붙이고 “재생사업을 통해 실제 거주하는 주민들의 주택 용도를 규제당하면서까지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수용할 수 없기에 부득이하게 벽화를 지우게 됐다”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벽화훼손 사건과 관련한 주민과 지자체, 주민 간 갈등이 개발 이익이 나뉘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음 더는 못 참아…주민들, 벽화 지워

▲ 최근 주민들이 지운 이화동 벽화마을의 대표적 벽화 중 하나인 해바라기 계단 옆에도 "해바라기 계단은 잠시 공사 중"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그 옆 벽면에는 붉은 래커로 "주거지에 관광지가 웬 말", "주민들도 편히 쉬고 싶다", "도시재생사업 반대" 문구가 쓰여 있다.(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지난달 동네 곳곳 아름다운 벽화로 필수 관광명소로 자리 잡은 서울 종로구 이화동 벽화마을의 유명한 벽화가 훼손된 일이 있었다. 범인은 박 모(55) 씨와 권 모(45) 씨 등 벽화마을 주민 5명이었다.

서울 혜화경찰서는 이들을 해바라기 계단 그림과 잉어 계단 그림을 훼손한 혐의(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 위반)로 13일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박 씨 등 마을주민 3명은 지난달 15일 저녁 벽화마을 계단에 그려진 4260만 원 상당의 해바라기 그림을 회색 수성페인트로 덧칠해 훼손했다.

권 씨 등 마을주민 2명은 지난달 24일 자정 벽화마을의 또 다른 계단에 그려진 1090만 원 상당의 잉어그림을 회색 유성페인트로 덧칠해 지웠다. 이들은 관광객들로 인한 소음과 낙서를 개선해달라는 민원을 종로구청과 문화체육관광부에 수차례 제기했지만,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아 그림을 훼손한 것으로 확인됐다.

해당 벽화들은 낙후 지역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문화체육관광부 주관으로 총 사업비 2억5000여만 원을 들인 공공미술프로젝트사업의 일환으로 그려졌다. 당시 대학교수 등 전문가 68명이 참여해 종로구 이화동 9번지 일대에 70여 개의 벽화를 그렸다. 이번에 훼손된 해바라기·잉어계단 그림은 이화동 벽화마을을 상징하는 대표 그림으로 관광객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소음·쓰레기·주민갈등 현장…벽화마을 탐방

▲ 벽화 대부분에 '낙서 금지' 문구가 같이 쓰여 있음에도 관광객이 주민 주거지 벽면에 펜과 래커로 남긴 빼곡한 낙서를 확인할 수 있었다.(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뉴스포스트>는 이화동에서 벌어진 벽화훼손사건 소식을 듣고 현장을 확인하기 위해 지난 16일 오후 벽화 훼손 현장을 찾았다.

한적한 평일 오후임에도 불구하고 마을 곳곳을 탐방하고 다니는 수 십명의 관광객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마을 규모가 작다보니 관광객들의 대화 소리와 발걸음 소리가 더 크게 느껴졌다. 단체로 소풍 온 학생들과 외국인 관광객들, 이색 데이트를 즐기러 온 연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이들은 방송과 인터넷상에서 많이 알려진 유명한 벽화들을 찾아다니며 사진 촬영을 하고 있었다.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에 소개되면서 ‘이승기 벽화’로 불리며 화제가 돼 전국적인 명소가 된 천사 날개 벽화는 몰려드는 관광객들에 해당 벽화 근처에 거주하는 주민들이 소음, 쓰레기, 주거침입 등으로 피해를 호소해 지워졌다가 장소를 옮겨 다시 그려졌다고 한다.

마을 규모가 작은 데 다 벽화가 그려진 위치가 바로 주민 주거지이기 때문에 주민들은 종일 소음과 초상권침해에 시달리고 있다고 했다. 해바라기 계단 근처에서 만난 주민 이 모(68) 씨는 “밤낮없이 사람들이 찾아와서 발걸음 소리가 집에까지 들려 정말 시끄럽다”며, “그래도 한번 주의를 주면 조용히 하는데 찾아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서 매번 주의를 주기에도 지친다”고 말했다.

벽화가 그려진 곳이 특히 사람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벽화 근처에 사는 주민들의 피해가 극심해 보였다. 벽화 근처에는 “쉿, 주민이 살고 있어요”라는 문구의 토끼그림 표지판이 걸려 있다. 기자가 현장 취재한 결과 벽화가 그려진 집 대부분이 이중방범창을 설치한 상태였고 낙서·쓰레기 투기 금지와 금연, 정숙을 요청하는 메시지를 써 붙여 놨다.

벽마다 관광객이 펜과 래커로 남긴 빼곡한 낙서를 확인할 수 있었고 몇몇 집은 이미 낙서들을 여러번 페인트로 덧칠한 흔적도 있었다. 벽면뿐 아니라 지붕에서도 낙서를 찾아볼 수 있었다. 벽화마을은 규모에 비해 많은 CCTV가 설치돼 있었다.

최근 벽화훼손사건으로 그림이 지워진 해바라기 계단과 잉어계단 앞에는 “관광객 여러분 죄송합니다. 해바라기 계단이 잠시 공사 중입니다”라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 보니 곳곳에서 테이크아웃 커피 컵, 음료수 캔 등 쓰레기와 관광객이 인근에서 사먹고 바닥에 버리고 간 음식물 쓰레기 등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일부 주민에 의해 붉은색 래커로 써진 “허울뿐인 보존, 주민들은 고통”, “주민 동의 없던 일방적 벽화사업, 주민들도 편안하게 살고 싶다”, “주민들이 원숭이냐, 주민협의회 재선출” 등 문구들을 통해 사업주체와 마을주민 그리고 마을주민들 간 의견 차이와 갈등이 극심한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 다른 벽면에는 지난 4월 18일 자 이화동 주민협의회의 이름으로 붙여진 안내문과 호소문이 붙어있었다. 안내문에는 “현 시각 이후 계단에 벽화를 새로 그리거나 복구할 경우 우리 이화동 주민협의회는 벽화를 그린 사람에게 주민들이 받는 정신적 피해에 대한 집단손해배상 청구를 할 것”이라는 경고 내용이 적혀 있었다.

종로구, “시민의식 문제…정숙관광캠페인 지속할 것”

▲ 종로구청 정숙관광캠페인의 일환으로 걸린 정숙을 요청하는 토끼그림 표지판 아래 추억의 교복을 입은 한 연인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아름다운 이화동 벽화마을이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인한 피해를 호소하며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자 종로구는 관광지이자 주민 생활공간이기도 한 이화동 벽화마을 등에서 올해도 ‘정숙관광캠페인’을 진행한다고 3월 밝힌 바 있다.

정숙관광캠페인은 이화동과 북촌 등 지역주민의 정주권을 보호하면서 관광태도 변화를 유도하기 위한 캠페인으로 지난 2013년 북촌을 시작으로 이화동 벽화마을, 세종마을, 동네골목길까지 확대해 실시 중이다.

주 내용은 ▲관광안내지도에 정숙관광 안내문구 삽입 ▲동네 어르신들의 정숙관광 홍보 캠페인 ▲정숙관광안내표지판 및 현수막 설치 ▲정숙관광 홍보동영상 상영 ▲정숙관광 홍보물 제작·배포 ▲유관기관 및 관광업체에 정숙관광 안내 등이다.

벽화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정숙을 요청하는 토끼그림 표지판도 정숙관광캠페인의 일환이다.

기자가 현장 취재 내용을 전달하고 관련 대책을 문의하자 종로구청 관계자는 “어느 정도 효과를 거뒀는지 수치로 확인할 수 있는 성격이 아니다”라며, “시민의식과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에 단시간에 빠른 효과를 거두기 어려울 수 있으므로 꾸준히 캠페인을 진행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수익·혜택 환원되는 복지사업 추진 해법

▲ 16일 KBS2 ‘해피선데이-1박2일’에 소개되면서 ‘이승기 벽화’로 불리며 화제가 돼 전국적인 명소가 된 천사 날개 벽화 앞에서 중국인 관광객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사진=뉴스포스트 안옥희 기자)

이화동 벽화마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지자, 다른 지역의 사례를 통해 극복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사하구 감천문화마을은 성공적인 도시재생형 모델로 손꼽혀 다른 지역에서도 벤치마킹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의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미관 개선 사업이 진행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사)감천문화마을 주민협의회에서는 카페, 맛집, 관광기념품 판매점 등 9개소를 사회적기업 형태로 운영해서 나오는 수익금으로 피해를 보게 된 주민들의 집수리, 경로잔치, 장학금 지급 등으로 주민에게 환원하고 있다.

부산 사하구청 창조도시기획단 정승교 창조전략계장은 “초창기에는 문화마을 사업과 관련해 부정적인 시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감천문화마을이 생기면서 사하구에서 약 250명의 일자리가 생긴 것으로 추산되고 주민들을 채용하기 때문에 주민협의회 주도로 마을 사업들이 체계적으로 운영·관리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주민협의회 산하 6개 사업단 중 민박사업단에서는 게스트하우스를 운영하며 빨래방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감천문화마을의 노인 인구 비율이 부산시 전체 13% 정도 보다 두 배가량 많은 25% 정도이기 때문에 지역 특성에 맞춰 이불빨래 등 노인을 위한 복지사업을 하는 것이다.

이곳이 현재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주민 갈등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으나, 주민복지를 먼저 고려해 주민협의회를 관광 수익이 환원되는 사회적 기업으로 운영하면서 많은 갈등과 부작용을 줄일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감천문화마을의 사례처럼 이화동 벽화마을도 생활의 불편함을 겪게 된 주민들에게 재생사업으로 인한 수익과 혜택이 환원되는 복지사업 추진도 해법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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